위치 ; 애월읍 하소로 338, 장전리 333-6번지, 장전로 89-12
규격 ; 길이 약 90m, 높이2m
장전리는 제주시에서 서쪽 중산간도로를 따라 14km 지점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서 동쪽은 고성, 서쪽은 상가, 북쪽은 수산, 남쪽은 소길리와 접하고 있으며 항파두리 토성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말 1271년부터 시작된 제주삼별초의 대몽항쟁시에 규모가 가장 큰 훈련장소가 장전마을 일대에 설치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이 당시부터 장전마을에 군사들과 제주의 장정 및 주변 사람들이 촌락 형태를 이루어 살기 시작한 것에서 설촌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장전리의 속칭 ‘사장밭’ 곧 활터는 제주 삼별초가 무술을 연마하던 훈련장이라고 보고 있으며 또한 ‘長田’(장전)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역(驛)의 우두머리, 역장에게 토지를 지급했듯이 제주삼별초의 김통정장군이 장전리 일대 삼별초군의 훈련장을 관할하던 책임자에게 지급했던 토지의 이름을 뜻하는 ‘장전(長田)’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옛기록으로는 17세기 말 제주옛지도에서 ‘長田村 (장전촌)’이 표기되고 있다. 장전리의 옛이름 ‘장밧’, ‘진밧’ 일대에 들어섰던 마을의 이름을 한자차용해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전리 지형은 대부분의 한라산 북쪽 마을들처럼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남고북저의 지형이다. 동쪽에는 능선이ᄆᆞ를이, 서쪽으로는 대한이ᄆᆞ를과 문잣동산이, 남쪽은 한라산으로 이어진 높직한 지대가 마을을 감싸고 있지만 북쪽은 바다가 보이는 트인 지형이다.
장전리에서는 마을 지형의 허한 방위를 막아서 마을을 평안하게 한다는 비보풍수에 의해 남대북탑(南坮北塔)형식으로 남쪽에는 솟대를 세우고 북쪽에는 성담을 쌓아 마을의 액(厄)을 막고 비보(裨補)하였다.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오래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장전리 고남균(1933년생) 어르신이 들었던 기억에 의하면 육지에서 내려온 풍수지리사가 지나가다 장전리 동쪽 능선이동산에 올라서서 내려다보고는 사람이 살만한 곳인데 북쪽이 트여서 가난하겠다 해서 성을 쌓기로 했다. 마을의 북쪽에 높이 약 3m 정도의 성담을 동서로 길게 쌓았으며 반대편 남쪽에는 2m 이상의 밭담 위에 솟대를 세웠다. 솟대의 크기는 어른 키보다 조금 큰 정도로 멀리서 보면 밭담 높이 포함해 4~5m 정도의 높이로 보였다. 어릴 적에 솟대가 쓰러져 산담 위에 걸쳐놓은 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놀다가 동네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덕분에 마을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솟대에 대한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담이 축조되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보름에 한 번꼴로 발생하고 비가 내리면 물이 범람했다고 한다. 지관의 말에 따라 남쪽 솟대 가까운 곳(장전리 988-6)에 7~8평 되는 못을 파고 성담에는 물구멍을 내자 비로소 마을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장전리 토질이 좋지 않고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메밀이나 보리농사도 잘 되지 않다가 성담을 쌓고 부지런히 살아 장전과 신엄 사이 땅들의 80%를 장전사람들이 소유하게 되었으며 하루 세 끼 먹을 걱정이 없어졌다. 못의 물은 주로 마소가 먹는 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메워졌으며 과수원 남쪽 돌담(장전리 999번지)에 세워져 있던 솟대도 어느 사이엔가 없어졌다.
1948년 11월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소개되었다가 1949년 봄, 마을을 재건할 때 마을방어성담을 쌓으면서 기존의 북쪽 성담에 이어서 성담을 쌓았다. 이 때 원래 성담의 물구멍은 페쇄되었으나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모두 7개의 물구멍을 다시 내었다고 한다. 과수원 주인 고민종씨(1970년생)에 따르면 장마가 지거나 비가 많이 오면 장전리의 위쪽 마을인 소길리 동남쪽에 있는 좌랑못에 물이 가득 차면서 아랫동네인 장전으로 물이 쏟아져 내려 성담 부근 주택과 밭들이 물에 잠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4·3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성담의 돌들이 헐리어 밭담과 집담, 산담 등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졌으나 마을을 비보하는 기능의 북쪽 성담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북쪽 성담 중에서 진덕진씨 주택(하소로 338번지) 북쪽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약 20여 미터는 4·3 당시 쌓은 성담이 남은 것이다. 원래의 비보성담은 애월읍 하소로 336-1주택의 북쪽 담장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주택이 들어서 있는 주변은 모두 없어졌고 서쪽 박운포씨 과수원(장전리 333-6번지)과 고민종씨 과수원(장전리 359번지)의 북쪽 밭담으로 이용되고 있는 약 90m 정도 남아 있다. 윗부분이 대부분 허물어지고 칡넝쿨과 대나무가 뒤덮여 있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넓게 쌓은 겹담과 남아있는 물구멍 형태를 볼 수 있다. 성담의 물구멍은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설이다. 물구멍은 박운포씨 과수원 북쪽 성담에 세 개가 확인되고 고민종씨 과수원 성담에 한 개가 남아 있다. 이 성담은 중산간도로와 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장전마을지, 2022. 참고)
《작성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