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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민중의 소리 원문주소: http://www.vop.co.kr/A00000433947.html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 입력 2011-09-21 12:14:37 수정 2011-09-21 13:08:36
[천안함 2차공판 후기①] 주목해야 할 몇가지 논점들해군작전사령부는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모든 보고와 지시를 내리는 명령계통에서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고 당사자인 천안함과 소속부대인 2함대사령부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보고내용을 접수하고 분석한 후 해군참모총장과 합참 그리고 국방부에 보고하고 해경 등 유관 기관에 공조를 요청하는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군작전사령부는 55년간 진해에 있었으나 2007년 12월 부산으로 옮겼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하였고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는 평택에 있으며 합참과 국방부는 서울에 있는데 그 상황에서의 모든 보고와 지휘체계의 중심인 해군작전사령부는 그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한 작전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군 통신망 체계이며 그 중심에는 KNTDS가 있습니다. 당시 서해에서는 한미합동해상훈련이 실시 중이었으므로 해군작전사령부는 당연히 KNTDS를 통해 훈련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함께 훈련을 했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즉 천안함이 소멸되는 과정 역시 실시간으로 공유했었다는 뜻입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보고, 분석, 지시, 조치 등 모든 명령계통의 중심인 해군작전사령부, 그 내부에서 가장 중심적 임무를 수행한 직무가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입니다. 당시 작전처장을 맡았던 심승섭 준장(당시 대령)이 증인석에 섰습니다. 그리고 천안함 사고와 관련 핵심적인 질문사항에 답변을 하였습니다. 수색 책임간부, 사고원인 ‘좌초’로 보고했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이후 함의 장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2함대 사령부, 함대사령부로부터 보고를 받은 해군작전사령부 그리고 해군작전사령부가 합참과 국방부에 최초로 보고한 천안함 사고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여부는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승섭 작전처장은 천안함 사고 직후 사고원인과 관련 무엇이라 보고를 받았고 무엇이라 보고를 하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2함대로부터 사고원인을 ‘좌초’로 보고 받았고 합참에도 ‘좌초’로 보고하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 동안 MBC에서 입수하여 보도한 해경의 상황일지에 기록된 ‘초계함(천안함) 좌초’ 그리고 조선일보 및 몇몇 언론에 소개된 <해군, 천안함 침몰 첫 통보시 ‘좌초’표현>등의 보도는 있어왔지만 이 사건의 핵심 실무책임자의 진술을 통해 공식적으로 언급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최초 상황에서 ‘잠수함 공격’이나 ‘폭발’등 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번 재판에서 매우 의미있는 성과라 할 것입니다. 최초상황발생 시간은 ‘21시 15분’으로 보고했다 천안함 사건에서 <사고원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최초 사고발생 시간입니다. 상황이 단 한번 발생하였다면 <최초사건발생시간=사건발생시간>이 됩니다. 그러나 상황이 한 번이 아니라 그 이상 연속된 사고로 이어진다면 그 등식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지진파 진도 1.5로 기록된 <어떤 큰 충격>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간이 21시22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밝혀져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때가 바로 최초의 사건 발생시간이었는가 여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많은 정황들이 그 시간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MBC에서 입수하여 보도한 자료에는 <21:15 최초사황발생> 및 <21:16 백령도 방공33진지에서 폭음청취> 그리고 <21:16 여자친구와 문자중 끊김>등의 정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발표가 21시45분->30분->25분->22분으로 오락가락하는 사이 해경에서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사고시간은 21시15분>으로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승섭 작전처장은 “최초상황발생 시간은 ‘21시15분’으로 보고하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고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정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업무가 해군작전사령부의 역할이기에 그 판단의 무게감은 적지않다 할 것입니다. 사고이후 천안함 함수는 무려 '16시간22분간' 떠 있었다 심승섭 작전처장의 증인심문에 앞서 탐사구조단 백령도 현장 책임자인 최영순 소령에 대한 증인심문이 있었는데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 <사고 익일 오전내내 떠 있었던 천안함 함수> 관련부분입니다. ⓒ옹진군청 제공 사고 다음날 오후까지 떠 있었던 천안함 함수 모습.
ⓒ신상철 천안함 사고 직후 상황과 조치내용. 심승섭 작전처장, “천안함 함수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 최영순 소령은 <가라앉는 배는 위험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피해갑니다. 상식밖의 증언이지요. 가라앉는 배가 위험한 것은 순간적으로 급속히 가라앉을 때 생기는 현상(주위 물이 선체 내부로 쓸려 들어가는 현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 공기가 남아 함수 끄트머리만 떠 있는 선박은 그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주 서서히 가라앉을 일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함수가 무려 16시간22분간 떠 있고 곁에서 해경정이 지키고 있었음에도 부표나 에어백도 설치하지 않고 최소한 가라앉고 난 이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부이(Buoy) 조차 매달아 두지 않은 채 방치하고, 함수가 사라지고 난 후 이틀간 그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심지어 UDT 베테랑 한주호 준위의 아까운 목숨까지 잃게 한 것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를 일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심승섭 작전처장은 “천안함 함수는 27일 오후 13시37분에 완전 침몰하였으며, 해작사에서는 함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놀라운 증언을 하였고 “그러면 그 위치를 현장 수색단에 통보해 주었느냐”고 묻자 심 처장은 “함수의 위치를 탐색구조대에 통보해 주었다” 고 증언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 밝혀짐에 따하 저희 변호인은 “그러면 왜 현장의 탐색구조단에서는 함수에 접근하고 구조하지 않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심승섭 작전처장은 “글세 왜 조치를 하지 않았지?”라고 반문을 해 방청객에서 실소가 터져나오고 웅성거렸습니다. 급기야 재판장이 나서서 진정시켜야 했을 정도로 듣는 이 모두를 아연실색케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천안함 함수의 위치를 가라앉을 때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그러한 사실을 백령도 현장의 탐색수색대에 통보해 주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가라앉도록 방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 있던 해경정이 조용히 자리를 뜬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열리게 될 재판과 증인심문을 통해 계속 유형을 달리하며 나타날 것입니다. 천안함 재판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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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문재인 대통은 투트랙이라할 것을
아랫 참모들이 해석한 동선의 이해 방법인듯 보입니다.
언론 개혁을 먼저하고 국뽕법을 해체시키고
성역없는 수사를 하고
미국이란 국가를 한국의 법률 테두리에서 심판을 시작하여야
진실이 보이기 시작 할텐데요
아직 무슨 정책이 지나가는 시간을 합리화 시킬 지는몰라도
문통의 새가슴으로 결정되는 정책은 고스란히
국민들과 억울한 누명자의 고통으로 유지되고 있는것이 사실 입니다.
그런 임민의 고통을 투트랙이라고 이름하여
그 고통을 합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통의 투트랙은
썩 좋은 정책이다고 추앙 받긴 고통속 현실에서는 아직 어색하다고 봅니다.
16시간 22분동안 함수가 떠 있었다면
안에서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것이었군요
그것은 아닙니다.
함수가 오른쪽으로 90도 엎어져서
함수에 있던 장병들은... 배가 엎어져 상부가 된 좌현의 외벽에 올라타 있었지요.
너울파도가 2~3미터인 상황에서 안 미끄러지려고 노력하면서요.
7년 전인 2011년 9월, 신상철 대표가 작성한 이 기사가 중요한 것은
2010.3.26. 천안함사고 당시 종합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던 당시 해군작전사령부의 작전처장이었던 심승섭씨가
그 1년 후에 재판에 나와서
천안함의 최초 원인은 좌초였고
최초 상황발생시간은 9시 15분이었고
천안함의 함수 위치를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다고 법정증언하였는데...
지금 이분이 해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해군의 상황일지에
사고 직후 5시간 정도가 지난 새벽 2시 25분에 해경이 함수의 위치에 부표 표시를 했고
다음날 오후 1시 37분까지 그 부표 위치에 함수가 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 다음날
구조대가 장촌백사장에 도착한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엎어진 통한의 눈물
재발방지와 역지사지의 진실을 알려면
양심대사면령 시행으로
진실된 양심적인 반성문 작성이 가능하다면
기획된 참살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므로
온 세계가 밝아지는 불꽃의 시초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