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참..드라마라지만 정말 재밌습니다..개인적으로는..지금 하는 사랑드라마같은것보다는 훨씬 낮다고 생각됍니다..
세상에..한나라의 대표가 타고갈 비행기가 없어서 남의나라 비행기 한켠얻어타고 가야한다니..
이것은 박정희대통령의 일화입니다.정말 화가나고 울분이 올라오지 않습니까?
약소국의 서러움입니다.헌데...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지금 외국인노동자 핏박하고..우리도 아직까지 저 부유한 나라에서 천대받고있는데..(영국같은 나라 초딩들..동양인 중국인 하면서 엄청무시합니다)남대문 시장에서의 단란한 외국인노동자들의 가족을 보며 비록 이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던 이당시를 생각해봅니다..
.. 5.16혁명 뒤 미국은 박정희 소장의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는 중단됐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까지 갔었지만
끝내 케네디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서독에 돈을 빌리기위해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가 필요해서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만6000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대학을 나온 학사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볼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월 600마르크(160달러)의 직장에 이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실업율이 10%가 훨신 넘는 그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 이었다.
낮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66년 1월 128명이 독일로 떠날때의 우리 간호사들의 월 보수는
440마르크(110달러) 였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 미터 이상의 깊은 땅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일을 했다.
이들은 루르탄광 지하 1000M 와 3000M 사이 막장에서 1M 파들어
갈때마다 4~5마르크를 더 받았다.
66년 12월 3년의고용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파독광부 제1진이
귀국했을때 거의 전원이 1회 이상의 골절상 병력을 안고 있었다.
사망한 사람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다.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 30명,
광부들은 63~78년 까지 7800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온 여자간호사
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 어떻게 저렇게 일할수가 있나 싶어~~,
그들의 별명을 "코리아 엔젤" 이라고 붙여 주었다.
몇년뒤 서독 뤼브게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쿠데타 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 되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 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 땡큐 !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게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 하기위하여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여명이 들어갈수 있는,
대통령이 연설 하기로 되어있는 그 곳에 모여 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게 대통령 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온통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단상에 올라섰다.
그 순간 함보른탄광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 하기 시작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차츰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목메인 소리로 변해갔고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가사를 대신해 버렸다.
대통령 부부, 300여명의 우리 광부와 50여명의 우리 간호사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먹였다.
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더니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 여러분 만리 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 합니다~~~""
대통령의 준비된 연설은 여기서 몇 구절 더 나가지 못했다.
이 구석 저 구석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정희는 연설원고를 옆으로 밀쳐 버렸다.
" 광원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
결국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본인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을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곪고 있는
가난한 내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그는 눈물을 터트렸던 것이다.
대통령이란 신분도 있은 채 소리내어 눈물을 흘리고
자리하고 있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함께 울면서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 나갔다.
" 어머니~~~~! 어머니~ ! 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 주며
"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며 함께 울고 있었다.
뤼브게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붙잡고
" 우릴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 여사에 매달렸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게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건네주며
"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 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 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개국, 필리핀 국민소득 170여불,
태국 220여불 등, 한국은 76불 이엿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120 개국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였다.
1964년 우리나라의 연간 국민소득 100 달러
100 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4600년 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때 우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사람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아갈 쌀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아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었이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 하며, "한강의 기적" 이라며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 이었다.
박 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
지금 안산공단 부근에서 곧잘 마주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국인
파키스탄으로 제철소 건설과 운영의 노하우를 배우러 시찰단을
보냈던 나라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또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이 만큼 이라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당시 국가의 지도자와 젊은 세대들이 힘을 합쳐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수천미터 지하에서 땀을 흘리고
저 열사의 중동에서 일하고 일한 지난 세대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나라 경제건설을 위해 몸바쳐 땀흘려 일한 그들이 없었다면
분명 오늘과 같은 우리나라는 없었을 것 이다.
올라가는 역사만 기억하고 내려갔던 역사는 잊고 사는 국가가 있다.
그런 국가는 잊고 싶은 역사의 바로 그 대목을 되풀이하게 돼 있다.
그것이 제멋대로의 선택적 망각에 대해 역사가 내리는 벌(罰)이다.
젊은 그대들이여~~~~~~!
국가의 운명은 큰틀 전체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정이 잘살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듯
국가관은 더욱 넓게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한 국가관이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애국가 마지막 구절을 통곡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설움을 까맣게 잊고 사는
오늘의 한국이 두렵고 걱정스러운것도 이 때문이다.
말지인가?? 한겨레인가에 거짓이라고 나왔던데요.그러나 거짓보다는 약간 과장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왜냐하면 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이라고 신빙성이 있는 어디서(어디인지는 까먹음 ㅡ.ㅡ;) 들었습니다.그러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박정희에 대한 공이든 과이든 사실그대로 보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너무 부정만 보거나 너무 긍정만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한 것이 없는 미래가 정확할지도 모릅니다.역사카페면 제가 주로 다니는 곳인데,님이신가요?? ^^ 저는 코멘트를 안달았습니다만 보통 역사카페는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책을 읽으신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 것입니다.저는 긍정적인 면도 알고 부정적인 면도 알지만,사실 박정희는 긍,부정적인 것을 떠나서 우리에게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왜냐하면 죽은 사람이 이토록 치열하게 논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김대중전대통령도 인정하는 사람이 박정희인 것
현대사를 정확히 서술하는 책은 거의 없는 이유는 각자의 이익과 연결된 사관으로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때문입니다.그것이 현대사를 저술하는 책의 근원적인 약점이자 강점이죠.그러니 다양한 시각을 골고루 섭렵하는 것이 그나마 제대로 된 입체적인 사관을 형성할 것 같네요.
카페는 하도 눈팅으로 활동하는 곳이 많아서요.^^; 워낙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카페는 전부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12월호 말지에서는 대충 보건데 육사교장의 서신이 지은이가 불분명하고 날짜가 틀리고 실제로는 원조가 정해졌고 지원해달라는 것이 다른 것처럼 나왔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거짓이라고 하는데 실제사건은 있었던 것이고 실제적으로 날짜나 착오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그 기사도 확실한 반박근거가 없는 것 같네요.(어떻게 보면 근거가 강준만씨의 글이죠.)들은 것도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약간과장했다고 했습니다.한겨레는 신문으로 나왔습니다.그럼 즐거운 하루가 되세요.
투자하세요.강준만 현대사 산책 전 15권 분량 서운하지 않을겁니다^^문제는 해방 후 친일잔재들이 90년대까지 역사를 주름잡았다는 것이지요.올바른 역사울 우리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이런 상태에서 편향을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싶습니다.실제로 제가 국어책에 배웠던 거의 모든 문인들이 친
일 앞잡이였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으로 옷을 벗고 아부하는 수준이었지요.이런 상태에서 편향이 있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그래서 친일 후예들이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지요.좌우를 논하기 전에 면서 정확한 역사의 뼈대
첫댓글 저도 드라마만 보고 얘기한다면....자신은 멋진 말과 행동만하고, 악역은 그 똘마니들이 알아서 다 처리하니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이번 일요일 인가? 잠시 재방송을 보다 떠오른 생각이예요. 강준만의 현대사산책 추천이요^^
제라늄님의 말속에는..음음..;제 생각은 괜히 단듯 싶군요..;사실 다른카페에다가도 올렸다가 꾸중같은 말씀들을 들었지요...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하지만 특별히 다른 오해는 하지말아주세요..ㅠ(박정희란사람..역시 긍정과 부정적인 면에 대한 말들이 많군요.)
근대의 멕시코와 하와이에서 강제 이주된 중앙아시아, 독일, 중동까지.. 우리 민족의 꾸준히 흘려온 땀이 배어나오지 않는 곳이 없겠죠.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불린게 조금 걸리네요.)
벅정희 대통령 손수건 일화는 거짓으로 알고 있습니다만.-_-; 하긴 엄청 옛날부터 보아온 글이니깐요.
오해라니요^^ 아마 현대사 산책 70년대일꺼예요^^
말지인가?? 한겨레인가에 거짓이라고 나왔던데요.그러나 거짓보다는 약간 과장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왜냐하면 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이라고 신빙성이 있는 어디서(어디인지는 까먹음 ㅡ.ㅡ;) 들었습니다.그러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박정희에 대한 공이든 과이든 사실그대로 보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너무 부정만 보거나 너무 긍정만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한 것이 없는 미래가 정확할지도 모릅니다.역사카페면 제가 주로 다니는 곳인데,님이신가요?? ^^ 저는 코멘트를 안달았습니다만 보통 역사카페는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책을 읽으신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 것입니다.저는 긍정적인 면도 알고 부정적인 면도 알지만,사실 박정희는 긍,부정적인 것을 떠나서 우리에게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왜냐하면 죽은 사람이 이토록 치열하게 논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김대중전대통령도 인정하는 사람이 박정희인 것
같습니다.(김통은 정적으로 죽을뻔하다가 살아났죠.)그것이 망령이든 영웅이든간에요...(참고로 강준만씨는 김통지지자로 박통반대쪽에서 보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편향되어있습니다.물론 저는 사료가치는 있다고 보지만요.진중권씨와 더불어 상당히 논리적인 저자이죠.)
현대사를 정확히 서술하는 책은 거의 없는 이유는 각자의 이익과 연결된 사관으로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때문입니다.그것이 현대사를 저술하는 책의 근원적인 약점이자 강점이죠.그러니 다양한 시각을 골고루 섭렵하는 것이 그나마 제대로 된 입체적인 사관을 형성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저 혹시 그 카페가 어디인지..?
카페는 하도 눈팅으로 활동하는 곳이 많아서요.^^; 워낙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카페는 전부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12월호 말지에서는 대충 보건데 육사교장의 서신이 지은이가 불분명하고 날짜가 틀리고 실제로는 원조가 정해졌고 지원해달라는 것이 다른 것처럼 나왔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거짓이라고 하는데 실제사건은 있었던 것이고 실제적으로 날짜나 착오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그 기사도 확실한 반박근거가 없는 것 같네요.(어떻게 보면 근거가 강준만씨의 글이죠.)들은 것도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약간과장했다고 했습니다.한겨레는 신문으로 나왔습니다.그럼 즐거운 하루가 되세요.
일단은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을 섭렵하시고 나름의 판단을 하심이 좋겠다 싶습니다.그 방대한 자료의 취합과 정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긍정과 부정이 함께 존재하기도 하지요.
역사라구 다시 눈 번쩍....... 그 카페 어디에요 @@ 제발 알려주세요
투자하세요.강준만 현대사 산책 전 15권 분량 서운하지 않을겁니다^^문제는 해방 후 친일잔재들이 90년대까지 역사를 주름잡았다는 것이지요.올바른 역사울 우리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이런 상태에서 편향을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싶습니다.실제로 제가 국어책에 배웠던 거의 모든 문인들이 친
일 앞잡이였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으로 옷을 벗고 아부하는 수준이었지요.이런 상태에서 편향이 있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그래서 친일 후예들이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지요.좌우를 논하기 전에 면서 정확한 역사의 뼈대
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입니다.그리고 한국의 교육과정이나 내용이 증말 웄기는 짬뽕이란 생각입니다.정 궁금하신 분들은 민족문제 연구소를 검색하셔서 자료를 나름대로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