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바보 제자
법정스님이 1975년 불일암을 지을 때 큰절 송광사에서 현장스님이
일꾼들의 밥과 반찬을 몸소 날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현장스님이 직접 얘기를 해주셨는데 말하자면 상좌 대역을 한 것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행자생활을 마친 한 출가자가 불일암 마당에서
무릎 꿇고 눈을 맞으며 법정스님이 상좌가 되겠다고
버텼음에도 끝내 스님이 받아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옛 스님들이 '상좌 하나에 지옥 하나'라고 하여
제자 두는 것을 경계하였겠는가. 법정스님 역시 상좌 받기를 꺼려했다.
불일암에 가서 "왜 상좌를 두지 않습니까?"라고 여쭈면
부처님도 55세 이전에는 시자侍者를 두지 않았다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서 '내 손발이 상좌'라고 하셨다.
내 손발이 성하니 풋풋한 출가자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말씀이엇다.
부처님에게 아난, 가섭 등 10대 제자가 있듯 스님들에게도 사제관계가 있다.
이를 절에서는 은사와 상좌라고 부른다.
상좌를 아예 받지 않는 스님도 있고, 차
마 거절하지 못해 수십 명의 상좌를 받는 스님도 있다.
시자란 요샛말로 한다면 은사와 늘 함께 생활하는 상근비서쯤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나이 드시어 제자들의 요청을 받아 시자를 두기로 했는데,
아난은 시자가 되는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건의했다고 전해진다.
1 값비싼 가사를 저에게 주지 마십시오.
2 맛있는 음식을 저에게 주지 마십시오.
3 세존의 숙소에 저를 머물게 하지 마십시오.
4 초청받은 집에 저를 데리고 가지 마십시오.
네 가지의 특권을 포기하겠으니 부처님께서 받아주시겠다면
기꺼이 시자가 되겠다는 아난의 아름다운 건의였다.
건의한다는 말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거나 시정해달라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아난의 건의는 정반대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내려놓겠으니 허락해달라고 간청한다.
보통의 상식을 벗어나 지고지순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특권이 많은 저명한 스님들에게만
상좌 후보자들이 모인다고 하니 아난은 '바보 아닌 바보'인 셈이다.
법정스님은 1983년 덕德자 돌림의 상좌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왜 덕 자 돌림으로 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은 망설임 없이 바로 답하셨다.
'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오.
제자들만큼은 덕으로 둘레를 맑히며 살라고 덕 자를 붙여주었어요."
오늘 돌이켜 생각해보니 덕이란 글자는 차라리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덕이 앝은 나야말로 바람 거친 산중에서 나무꾼도
거들떠보지 않는 삭정이처럼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덕화德化라고 부르는 향기롭고 그윽한 단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덕이란 인仁이고 사랑이고 자비가 아닐까?
법정스님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