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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이 글은 한겨레신문 8월 21일(수)자 30쪽에 있는 고정 칼럼난인 [안도현의 발견]에 님이 "도서대출카드"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좋은 글이라 여겨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았읍니다.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
[안도현의 발견]
도서대출카드
무심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 한 권을 뽑아 펼친다. 생각보다 가볍다. 파리똥이 앉아 있는 표지는 빛이 바랬고, 본문의 종이는 부석부석하고 누렇다. 마치 잘 마른 생선 같다. 밑줄 친 흔적도 간간이 보인다. 내가 언제 이 책을 읽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판권을 보니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책이다. 뒤표지 안쪽에 참으로 반가운 게 눈에 띈다. 갑자기 뭉클해진다. 노란 봉투 속에 빳빳한 종이가 한 장 끼어 있는 것이다. 도서대출기록표. 이 책의 주인이 도서관이라는 표시다.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았거나 누군가 슬쩍 훔쳐온 게 분명하다. 맹세코 나는 범인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장물의 소유자란 사실을 피할 길은 없다. ‘도서대출카드’로도 부르는 이 한 장의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지금은 바코드로 책을 인식한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이 도서대출카드에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했다. 대출일자, 대출자, 반납일자를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적어 넣었다. 도서관에 책이 입고된 후에 어떤 사람이 대출했는지 시간대별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책이 유전한 기록이었으므로. 대학도서관의 도서대출카드는 학과명을 적게 되어 있었다. 먼저 책을 빌려간, 얼굴 모르는 여학생의 전공과 이름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있다. 약간은 존경 어린 눈빛으로, 알 수 없는 흠모의 마음으로. 그리고 맨 밑에 내 이름 하나가 얹혀 있는 걸 바라볼 때의 뿌듯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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