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의 화신이 친일로! 한국 차기 대통령, 이재명이 일본애 얘기를 시작한 이유 / 2/11(화) / JBpress
(히라이 토시하루, 한국 한양여대 조교수)
이재명 씨의 친일 발언이 최근 한국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씨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로 단연 인기를 자랑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반일의 화신'으로 지명도가 높다.
그동안 일본에 대해 극히 강경한 발언을 반복해 왔다. 특히 기억에 새로운 것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 2023년 8월부터 시작된 처리수의 해양 방출을 둘러싼 항의 활동이다.
처리수를 오염수라고 부르며 한때는 매일같이 한국에서 일본을 향해 방출 반대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해양 방출이 실시되면 「단식」을 결행해, 18일째에 병원에 이송되어도 단식은 계속. 문재인 전직 대통령들의 설득도 있었고, 24일 만에 겨우 중단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일본을 비판하고 한국을 지켜내겠다는 이미지 전략을 자랑해온 것이다.
그의 대일 강경 자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21년 7월에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침략 국가인 일본이 분단되었어야 했다」라고 발언. 23년 1월에는 전 징용공 문제를 둘러싸고 윤 정부가 '재단이 대신 배상하는 안'을 내놓자, 「한국 기업에 배상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라고 바 비판.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같은 해 11월 서울고법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자 "일본 정부는 반성은커녕 뻔뻔한 대응으로 응수했다. 적반하장이다" 라고 강한 말로 비난했다.
하지만 이 씨의 반일적 언동으로서 가장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신 친일파 척결"에 의한 반정부 캠페인이다.
■ 친일로 전향해 토착 왜구 비판
일본에서 친일이라고 하면 일본 사회나 정부에 이해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친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협력한 사람을 말하며, 그 사람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그는 이 친일을 확대해 현대에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고 일본과의 우호에 적극적인 세력을 신친일로 삼았다. 그중에는 윤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씨는 최근 들어 갑자기 일본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6일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대사와의 회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고 밝히고 "역사문제 등과 분리해 문화경제협력이 활발히 이뤄지면 한일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겠느냐"고 일본애를 밝혔다.
이어 2월 4일에는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발언했다.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과거가 있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방위력을 위협으로 보는 것이 교과서대로다. 그래서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이해를 표시하면 한국인인데도 일본의 침략에 가담한다는 뜻의 '토착 왜구'로 불리며 비판을 받는다.
이 씨도 오랜 세월 교과서대로 입장을 취해 왔다. 지난해 4월에는 한미동맹에 더해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축으로 한 윤 정권의 외교 방침에 대해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 없다"고 못박은 바 있다.
이 같은 돌변을 한국 언론은 놀람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 어떻게 해서든 트럼프 대통령 마음에 들고 싶다
애초 최근의 언행은 자신이 과거 윤 정권 비판에 사용했던 신친일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의 입장과 다르다'는 말이 나오고, 여당인 국민의당에서는 "도대체 왜 갑자기 토착 왜구가 됐느냐"는 야유가 나오고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씨는 최근 들어 왜 친일로 변신했을까.
그 배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된 미국의 존재가 있다.
이 씨는 그동안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될 경우 외유지로 가장 먼저 방문하겠다고 한 곳이 중국이었고 미국은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국 국내는 그 화살이 언제 향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더구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대행을 맡고 있던 한덕수 총리 탄핵을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정치는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과 입회할 인물조차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 씨 안에서는 미국의 관심을 어떻게든 한국으로 끌고 가겠다는 속셈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허들은 높다.
왜냐하면 한국은 정치를 둘러싸고 사회가 크게 둘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인가, 혁신인가. 그 일을 둘러싸고 국민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바람에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이래서는 국제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러던 중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분단의 원인으로 이 씨를 소개하고 있다. 1월 30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알력을 불러 일으키는 진보파 리더"라고 논평했다.
■ 애초에 '반일'도 아닌 현실주의자
그는 지난해 11월 말경 트럼프 대통령이 돼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출 수 있었던 날에는 노벨 평화상을, 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려는 속셈으로 보이지만 한국이 불안정한 이상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일관계다.
그 때문에, 이 씨에게는 한일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를 세계를 향해 발신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이 미국으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 중시는 최저 조건인 것이다.
그는 반일적 언행을 반복해 왔지만 그렇다고 이념에 물든 것은 아니다. 처리수 방출에 대한 항의도, 정치적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밟으면 깨끗이 그만두었다.
그런 점에서 이 씨의 성격은 오히려 현실주의적이다.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면 손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라는 사냥감을 탐탐하고 있다.
이 씨는 바로 카멜레온이다. 과거 반일, 심지어 반미, 신랄한 발언을 반복해 온 그는 이제 현실적인 외교 경제노선으로 탈피하고 있다. 수많은 위법 행위를 해 왔다고 하는 "의혹의 백화점"에서 사법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전혀 불투명하다. 그래도 이재명 씨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물론, 그 변화에, 일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는 한국 사회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긴 하지만.
히라이 토시하루
1969년, 토치기현 아시카가시 출생. 가나자와대 이학부 졸업 후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독일 문학을 연구해 한국으로 건너간다. 전문은 한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정신사. 한양여대 조교수.
히라이토시하루
https://news.yahoo.co.jp/articles/caef7bddf717fb31f4f90e4309736a2a19d7ea08?page=1
“反日の権化”が親日に!韓国次期大統領の本命、李在明氏が日本愛を語りはじめたワケ
2/11(火) 11:51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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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press
反日から親日に主張を変えはじめた韓国野党・共に民主党代表の李在明氏(写真:ロイター/アフロ)
(平井 敏晴:韓国・漢陽女子大学助教授)
李在明(イ・ジェミョン)氏の親日発言が、このところ韓国で物議を醸している。
【写真】李氏は「処理水放出」に反対してハンストを実施したことも
李氏といえば、尹錫悦(ユン・ソンニョル)大統領の弾劾審判が大詰めを迎えているなか、次期大統領の最有力候補としてダントツの人気を誇る。とりわけ日本では、“反日の権化”として知名度が高い。
これまで、日本に対して極めて強硬的な発言を繰り返してきた。とりわけ記憶に新しいのが、東京電力福島第1原子力発電所で2023年8月から始まった処理水の海洋放出をめぐる抗議活動である。
処理水のことを「汚染水」と呼び、一時期は毎日のように韓国から日本に向けて、「放出反対」とシュプレヒコールをあげていた。海洋放出が実施されると「断食」を決行し、18日目に病院に移送されるも断食は継続。文在寅(ムン・ジェイン)前大統領らの説得もあり、24日目でようやく中断した。
まさに命を懸けて日本を批判し、韓国を守り抜くというイメージ戦略を得意としてきたのだ。
李氏の対日強硬姿勢は枚挙にいとまがない。
21年7月には、朝鮮半島が南北に分断されていることを念頭に置きながら、「侵略国家である日本が分断されるべきだった」と発言。23年1月には元徴用工問題をめぐり尹政権が財団が賠償を肩代わり案を打ち出すと、「韓国企業に賠償責任を転嫁するものだ」と間髪を入れずに批判。慰安婦被害者に賠償を命じた同年11月のソウル高裁での判決に対し、日本政府が上告せず判決が確定すると、「日本政府は反省はおろか、厚かましい対応で応酬した。盗人猛々しい態度を見せている」と強い言葉で非難している。
だが、李氏の反日的言動としてもっとも忘れてはいけないのは、「新親日派撲滅」による反政府キャンペーンである。
■ 親日に転向で「土着倭寇」との批判
日本で「親日」といえば、日本の社会や政府に理解のある人をいう。だが、韓国における「親日」とは日本統治時代に日本に協力した人を指し、その人たちは犯罪者扱いされる。李氏はこの「親日」を拡大し、現代において、過去史を問題とせず日本との友好に積極的な勢力を「新親日」とした。その中には尹大統領も含まれている。
ところが李氏は、最近になって突然、日本にラブコールを送り始めたのだ。
去年の12月26日、水嶋光一駐韓大使との会談で「私は個人的に日本への愛情がとても深い」とアピールし、「歴史問題などと分離して文化や経済の協力が活発に行われれば、韓日関係も根本的に改善する余地が大きいのではないか」と日本愛を語った。
さらに2月4日には「日本の防衛力強化は韓国にとって脅威にはならない」と発言した。日本から侵略された過去がある韓国では、日本の防衛力は脅威としてとらえるのが教科書通りである。そのため、日本の防衛力強化に理解を示すと、韓国人なのに日本の侵略に加担するという意味の「土着倭寇」と呼ばれて批判を浴びる。
李氏も長年にわたって教科書どおりの立場をとってきた。去年の4月には、米韓同盟に加えて日本との関係強化を軸にした尹政権の外交方針に対して、「国益も国家も守ることができない」と釘をさしている。
このような豹変ぶりを、韓国メデイアは驚きをもって報道している。
■ 何としてもトランプ大統領に気に入られたい
そもそも最近の言動は、本人がかつて尹政権批判に用いた「新親日」にそのまま当てはまるのだ。李氏が代表を務める最大野党「共に民主党」からは「党の立場と違っている」とのコメントが出されたり、与党「国民の党」からは「いったいなぜ突然、土着倭寇になったのか」と揶揄されたりしている。
それにしても、李氏はここへきて、なぜ親日へ転身したのか。
その背後には、トランプ政権となったアメリカの存在がある。
李氏はこれまでも米韓関係が重要だと何度も口にしてきた。しかしその一方で、アメリカよりも中国の方が重要だと考えていた。大統領候補者の討論会で、大統領になった場合の外遊先として真っ先に訪問するとしたのが中国で、アメリカは二の次だったのだ。
だが、現在の韓国ではそんなことを言える雰囲気ではない。トランプ政権は世界各国に対して関税をかける動きを見せていて、韓国国内はその矛先がいつ向けられるのかと戦々恐々だ。
しかも、尹大統領の弾劾訴追案可決のあと、代行を務めていた韓悳洙(ハン・ドクス)総理の弾劾を共に民主党が中心に進めてしまい、国内政治は麻痺状態に陥っている。そのため、トランプ大統領と立ち話できる人物すらもいない。
そうした状況にあって、李氏のなかでは、アメリカの関心を何とか韓国に引き付けておきたいという思惑が渦巻いているはずだ。だが、そのハードルは高い。
というのも、韓国は政治をめぐって社会が大きく二つに分裂してしまっているからだ。
保守なのか、革新なのか。そのことをめぐって、国民が互いを敵視しているために、社会が不安定になっている。これでは国際的な信頼は得られにくい。
そうしたなか、英国の経済誌エコノミストは、そうした分断の原因として李氏を紹介している。1月30日付のインタビュー記事で、「あつれきを招く進歩派リーダー」だと論評した。
■ そもそも「反日」でもない現実主義者
李氏は去年の11月末ごろ、トランプ大統領になってウクライナ戦争を止めることができた暁にはノーベル平和賞を、と発言している。トランプ大統領の関心を引きつけようという魂胆だと思われるが、韓国が不安定である以上、トランプ大統領にしてみれば、東アジア地域の安定を維持するうえで最も重要なのは日米関係である。
そのため、李氏には日韓の良好な関係を維持する姿勢を世界に向けて発信する必要がある。つまり、自身が米国から信頼されるためには、日韓関係重視は最低条件なのだ。
李氏は反日的な言動を繰り返してきたが、かといって、イデオロギーに染まっていたわけではない。処理水放出への抗議も、政治的に効果が見込めないと踏むとあっさりやめてしまった。
そうした点からすれば、李氏の性格はむしろ現実主義的である。得をすると思えば手を付けるし、そうでなければ見向きもしない。そして大統領の座という獲物を眈々と狙っている。
李氏はまさにカメレオンだ。かつて反日、さらには反米で辛辣な発言を繰り返してきた李氏は、いま、現実的な外交・経済路線へと脱皮しつつある。数々の違法行為をしてきたとされる“疑惑のデパート”で司法リスクがあるため、実際に大統領になれるかどうかはまったく不透明である。それでも李在明氏は最善を尽くそうとしている。
もちろん、その変化(へんげ)ぶりに、日米だけでなく、自分の支持率が一向に上がらない韓国社会からどれだけ信頼を得られるかもまた、未知数ではあるのだが。
平井 敏晴(ひらい・としはる)
1969年、栃木県足利市生まれ。金沢大学理学部卒業後、東京都立大学大学院でドイツ文学を研究し、韓国に渡る。専門は、日韓を中心とする東アジアの文化精神史。漢陽女子大学助教授。
平井 敏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