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공 박여해 선조의 생애 복원을 기치로 내걸고 연구를 결행한 지
10개월이 넘은 시점에 실로 새로운 과제가 도출되었다.
그것은 감찰공의 큰 형님이 되시는 군사공 박여항 선조의 생애에
대한 것이었다.
덧붙이면 감찰공의 둘째 형님은 현감공 박여위 선조이시다.
감찰공은 3남 3녀중의 3남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군사공에 대한 기록은 족보에 군사를 지낸 것과 함께 세종실록에
있는 기록이 전부라고 할 만큼 자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군사공께서 감찰공의 큰 형님이라는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으나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세종실록에 북경에서 별세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세종실록의 기록을 본 기억이 나지만 사실 그때는 그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감찰공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군사공의 행적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으니, 이런 거 보면 연구라는
것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세종실록 1419년 10월 15일자 기사에 황해도 수안지역의 군사로 재임하던
군사공께서 사신단의 일원으로 '전(箋)'을 받드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북경에서 별세하였으며, 그러한 부음을 세종대왕이 알고 부의를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문암은 군사공이 합류하였던 사신단의 실체를 추적한 결과 1419년 7월 27일
진하사 정사 이징, 부사 허지를 주축으로 한 사신단으로 결론내렸다.
여기서 정사 이징은 태조의 이복동생 회안대군 이화의 아들이 되므로
세종대왕의 당숙이 된다.
사신단이 북경에서 임무를 마치고 그 해 10월 19일에 한양에 도착하는데
일행이 도착하기 4일전에 세종대왕이 누군가로부터 군사공의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공은 사신단이 북경을 출발하기 전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사신단의 일원중의 한명이 이러한 소식을 한양에 있는 평도공에게
전하고 평도공은 이를 세종에게 보고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관련 기록이 있으면 보다 확신을 가지고 논할 수 있을 터인데,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확신 단계가 아닌 추정이라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런 근거없이 추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팩트에 근거하여 문암이
해석하였다는 것을 밝혀 둔다.
사실 이 시기를 전후해 여러 사신단이 한양을 출발해 북경에서 임무를 마치고
다시 한양에 도착했으나 그 시기가 10월 15일에 가장 가까운 사신단이 바로
이징을 주축으로 한 사신단이기에 문암은 군사공께서 이 사신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었을 것으로 추론한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정밀 추적의 작업을 진행할 것이며, 새로운
성과가 도출되면 그 결과를 공개할 것이다.
2025년 4월 5일(토)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