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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blog.daum.net/haj4062/15730641
대통령 하겠다 나서리라 생각 못했는데…”
신중하고 책임감 강했던‘박근혜 양’, 공부 잘하고 잘 놀던 ‘문재인 군’, 조용하고 영민한 모범생 ‘안철수 군’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 공주라는 말에 눈물 흘린 대통령의 딸
“40여 년 전, OOO씨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만약 당신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강산이 바뀌어도 네 번이나 변했을 오래전의 일을 왜 묻는지 반문하리라. 그러나 지금은 꼭 필요한 질문이다. ‘OOO씨’는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이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의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 그들이 걸어온 과거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난 6일 치러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고교 시절 동성애자 등 학우들을 심하게 괴롭혔다고 보도했고, 이 기사는 유권자들이 후보의 자질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후보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박 후보가 중·고교를 다닐 때 박 전 대통령은 현직이었다. 그런데 박 후보는 고교 시절 “대통령의 딸이라는 티를 안 냈다”고 은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심지어 “공주…” 운운하는 선생님의 말에 울음을 터트릴 때도 있었다.
고교 동기생들은 “혼식 밥에 똑같은 반찬의 도시락을 싸오는 바람에 친구들을 실망시켰다”고 증언한다. 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썰렁 개그’는 고교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특기 아닌 특기라고 친구들은 말한다. 박 후보의 은사들은 “공부도 잘했고, 책임감도 강했다”고 기억한다. 은사들이 기억하는 박 후보는 “원래 역사학자가 꿈이었지만 아버지를 도우려 전자공학을 전공한 효녀”이기도 하다. 박 후보는 고교 생활기록부에 ‘지나치게 어른스러움’과 ‘지나친 신중’이 고쳐야 할 점으로 기록돼 있다.
“책임감이 무척 강했습니다. 근혜가 반장이었는데 남대문 시장에 빗자루를 사러 갔을 거예요. 돈을 잃어버릴까 봐 주먹에 꼭 쥐고 가더라고요.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어요. 빗자루 사기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웃음) 근혜는 그 정도로 책임감이 대단했어요. 자기가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죠.”
박 후보가 고교 2, 3학년 때 연거푸 담임교사를 맡았던 오주훈(여·75) 씨의 말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워낙 유명한 분이시니 무엇이든 늘 잘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책임감에 짓눌려 있는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성심여고 8회 졸업생이다. 당시 이 학교는 한 학년 정원이 60여명 안팎일 정도로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이 때문에 학생들끼리는 물론 교사와 학생들 역시 서로 속속들이 아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성심여중·고 교장을 지낸 김재숙(81) 수녀 역시 오씨와 비슷하게 박 후보를 기억했다. “여고생 때는 누구나 그렇듯 고민이 있을 법한 나이잖아요. 그런데 근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속으로 삭히고 그러는 성격이죠.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하루는 근혜를 불러다 ‘얘, 속 이야기 좀 하고 그래’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혼자 웃고 말더군요.”
김 전 교장은 아직도 박 후보에 애잔한 마음을 품은 듯했다. “언젠가, 자유롭게 지내지 못하는 근혜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치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 어디든 도망가고 싶을 땐 나한테 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기자들이 너무 괴롭힌다 싶을 때요. 수녀원은 ‘금남(禁男)의 집’이니깐 남자들이 얼씬도 못하잖아요. 그것만은 언제든 네게 해줄 수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근혜는 웃으면서 ‘그럴 일이 있겠어요?’ 라고 하더라고요. 아직까지 나한테 온 적은 없네요.”(웃음)
정일권 전 총리 딸과 1, 2등 다퉈
박 후보는 여고 시절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했다고 은사들은 기억한다. 오주훈 씨는 “매우 성실하게 공부하는 노력파였다”며 “특히 외국어,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박 후보와 함께 전차를 타고 통학을 했던 박 후보의 여고 동기생 임향자(60) 씨도 “전차 안에서도 영어사전을 들여다볼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였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역시 동기생인 서임정(60)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근혜와 1학년 때 짝이었던 희숙이라는 친구에게 전해들은 얘깁니다. 하루는 근혜가 아침에 등교해 오늘 너무 늦게 일어나 할 일을 못하고 왔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근혜가 그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답니다. 그 친구가 너무 놀라서 ‘그럼 평소에 너는 언제 일어나느냐’고 했더니 새벽 4시라고 했다는 겁니다. 근혜가 그렇게 일찍 일어나해야 할 일이 뭐였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침형 인간’이었나 봐요.”(웃음)
당시 성심여고엔 정일권 전 총리의 딸 성혜 씨가 박 후보의 동기생으로 함께 재학했다. 김 전 교장은 두 사람을 이렇게 기억했다. “성혜도 공부를 꽤 잘했지요. 근혜와 성혜가 1, 2등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그랬으니까요. 성혜는 아주 세련됐고, 근혜는 오히려 수수한 편이었죠. 두 아이가 사이 좋게 잘 지냈다고 알고 있습니다.”오씨는 박 후보가 당시 ‘대통령의 딸’이었지만 그런 티를 잘 내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우리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대통령 딸이 다닌다고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선생님이 부임 후 몇 개월 지난 후 교사회의 때 ‘도대체 대통령 딸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그만큼 근혜가 ‘대통령 딸’이라는 티가 안 나도록 노력했겠죠.”
여고 동기생 박봉선(60) 씨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때는 국가적으로 쌀과 보리 등의 잡곡을 섞은 이른바 혼식(밥)을 장려할 때고 학생들 또한 도시락을 싸와야 할 때였습니다. 대통령 딸은 과연 혼식 밥을 싸오는지, 또 어떤 반찬인지 궁금할 수밖에요. 밥과 반찬이 우리 도시락과 별다르지 않아 오히려 김이 빠졌던 일이 생각납니다.” 박씨에겐 또 다른 기억도 있다.
“한번은 생물 선생님이 근혜를 보고 ‘옛날 같으면 공주인데…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야 좋은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근혜가 그 말을 듣고 울고 말았어요. 아마 그때 근혜가 마음의 부담을 많이 느꼈나 봐요.” 박 후보는 여고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청와대 생활을 이야기한 적은 드물었다고 한다. 서임정 씨는 “신문에서 알 수 있는 정도 말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다든지, 동생이 이랬다는 등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교장은 박 후보의 부모 공경이 각별했다고 기억한다. 대학(서강대) 진학 때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전자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도 아버지를 돕겠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원래 근혜는 문학적 소질이 많은 아이입니다. 글도 잘 썼지요. 본인은 원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전자공학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한 끝에 아버지 주변에 전자공학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결국 본인이 공부해서 아버지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 정도로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어요.” 김 전 교장은 “아버지에게 느끼는 근혜의 그런 애틋한 마음을 아는데 이번에 역사인식 논란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말을 덧붙였다.
“고교 때도 근혜가 유머 적어와 말하는데 좀 썰렁했죠”
당시 김 전 교장은 고 육영수 여사의 초대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의 ‘평범한 아버지’ 모습을 목격하고 적잖이 놀랐다. “육 여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들어오셨죠. 꽤 떨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뒤척뒤척했어요. 근혜 아버지가 ‘편안하게 계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때 근혜 동생 지만이가 아버지 머리에 올라타고 장난을 치는 겁니다. 육 여사가 ‘손님도 계신데 그러면 안 된다’ 라고 말리는데 지만이가 듣지를 않아요.”
이 장면을 보고 김 전 교장은 “박 전 대통령이 밖으로 알려진 것과 집에서의 모습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박 후보의 당시 선생님뿐 아니라 고교 동기생도 ‘친구 집’인 청와대에 가서 놀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박봉선 씨는 “반 친구들 전체가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요새 가수 싸이가 추는 ‘말춤’ 있잖아요. 그게 우리 여고 다닐때 유행이었거든요. 그때 외국에서 살다 온 동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들에게 말춤을 가르쳐줬죠. 그 친구를 가운데 세워놓고 우리끼리 빙 둘러서 말춤을 췄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근혜도 함께 췄습니다.”(웃음) 또 한 명의 여고 동기생인 신동은(60) 씨는 당시 박 후보가 “친구들끼리 이야기지만 솔직히 재미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본 유머를 흉내를 내고, 팝송을 흥얼거리면서 틈나면 장난을 쳤는데 근혜는 안 그랬습니다. 그런 근혜가 드물게 친구들을 웃기려고 유머를 하는 데 그게 너무 썰렁했어요. 왜 잡지에 보면 ‘유머 시리즈’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걸 외워서 우리한테 들려주는 식이죠. 근혜가 요새도 가끔 ‘썰렁개그’한다면서요?”
박 후보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평범한 여고생처럼 학교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박봉선 씨는 “근혜와 가까운 친구들이 수업 끝나면 같이 전차를 타고 입시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김신조(1·21사태 때 생포자)가 북한에서 내려온 다음부터인가 근혜는 자동차로 통학을 했죠. 더 이상 같이 학원을 가는 일도 없어 방과 후에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반정부 시위’ 대열에 동참했던 일도 있었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 분위기는 고교에도 번졌고, 성심여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임정 씨는 “3학년 선배 언니들의 주도로 시위가 열렸다”면서 그때 박 후보의 모습을 어제 일처럼 회상했다.
“1, 2학년 학생들은 선배들을 따라 일렬로 서 있었습니다. 각 반별로 반장이 중심이었어요. 그때 근혜는 어떻게 할까 궁금했죠. 근혜한테는 바로 아버지 일이잖아요. 그런데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선배 언니들을 따라 그 대열에 같이 서더군요. 표정도 평소처럼 담담했고요. 단체 생활이니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박 후보가 평범한 여고생과는 달랐지만 정치를 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은사와 동기생들은 입을 모은다. 오주훈 씨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말한다”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근혜의 삶이 바뀌었겠죠.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정치에 눈뜨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근혜도 평범하게 살았겠죠. 예전에는 근혜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살기를 바랬죠.”
그러나 오 씨는 “지금은 아니다”며 손을 내저었다. “근혜가 어떤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보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그때 제가 근혜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을 했어요. 아직 간직하는 그 편지를 지금 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김재숙 전 교장은 박 후보가 영부인 역할을 맡게 됐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고 했다.
“그 이전까지는 그래도 평범하게 살았는데 졸지에 영부인 노릇을 하게 됐잖아요. 어린 나이에 사실상 정치를 하게 된 셈이죠. 그때 근혜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굽실거렸겠습니까? 그게 근혜에게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싶어 많이 걱정했죠.” 그러면서 김 전 교장은 “지금은 그저 몸 상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면서 박 후보의 건강을 걱정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 공부도, 놀기도 잘한 자유분방한 아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전통의 명문 경남중·고를 나왔다. 이 시절 은사들의 기억 속에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좀 별난 학생”었다. 고교 시절에 일찌감치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 ‘문제아’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 솔직히 인정하고 벌을 달게 받는 ‘정직한 아이’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연탄 배달을 하는 등 ‘인생의 쓴 맛’도 일찍이 경험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씩씩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무전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축구를 하러 다녔다. 그 덕분인지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에 또래보다는 훨씬 빨리 눈을 뜬 듯하다. 고등학교 학생 신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 반대시위가 벌어지자 시위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의 경남고 시절 체육교사였던 이길상(80) 옹은 ‘고교생 문재인’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이씨는 어느 학교에서나 체육교사가 그랬듯이 경남고에서 ‘호랑이선생님’으로 통했다. “그때는 기백이 살아있을 때 아닙니까? 아(이)들 사이에 ‘길상이 뜬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벌벌 떨었다니까요. 재인이도 뭐 다를 거 없었겠죠.”
‘노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축구 좋아해
부산에는 경남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덕평 포럼’이있다. 이 포럼은 두 달에 한 번씩 조찬모임을 한다. 경남고 동문 중 유명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모임이다. 지난 8월에는 당시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문재인 의원’이 강사로 초청됐다. 이씨는 “그때 모인 동창들은 아마 모르긴 해도 ‘저놈아가 무슨 말을 할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그때 ‘70명 정도 모였던 강연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문 후보가 아직도 어린 제자로 보이는 듯 호칭이 ‘그마’ ‘저마’였다. “장관이나 각종 기관장 등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한가락했다는 졸업생이 많이 모였습니다. 저도 단상 바로 앞에 앉아 있었어요. 왜냐면 재인이가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에 혹시 오해 살까봐 동창들을 일절 안 만났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거든요. 경남고 동창들은 아예 상대도 안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꽤 있었답니다.”
이씨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다들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재인이가 이렇게 말을 시작하더군요.
‘사회생활을 할 때 경남고 시절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고요. 그러더니 학교 옆에 유원지가 있었는데 휴식시간에 친구들 대여섯명 하고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앞에 앉아계신 이길상 선생님에게 잡혀 1주일 정학을 먹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자 사람들이 박장대소했습니다. 그래도 스승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재인이가 ‘그때 이길상 선생님은 상벌계를맡으셨기 때문에 그런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러더군요. 그렇게 분위기를 풀어놓은 후에야 본 강연을 시작했어요.”
이씨는 그런 문 후보를 보고 “청중 휘어잡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느꼈다면서 “대통령비서실장 할 만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재인 후보의 자서전 격인 <운명>에도 이 일화가 나온다. ‘고교생 문재인’은 여름방학 끝날 무렵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한 다음, 학교 뒷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고성방가를 하다가 하필 당직이었던 지도부 주임 선생님에게 걸려 몽땅 유기정학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중·고등학교 때 그의 별명이 ‘문제아’였던 이유다. 문 후보는 “처음엔 그냥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는데, 이 일로 진짜 문제아가 됐다”고 술회했다. 이씨도 고교 시절 문 후보가 “좀 별난 편이었다”고 기억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책만 파는 그런 ‘공부벌레’가 대부분이잖아요. 또 대체로 얌전한 편이고요. 그런데 그 아(문 후보)는 안 그랬어요. 껄렁거리는 끼도 있어 주위에 친구들도 많고, 또 인기도 많았습니다. ‘공부벌레’만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징계도 받고 그랬겠죠. 그래도 말썽을 아주 많이 피우진 않았습니다. 제가 상벌계를 맡았던 때여서 그때 진짜 말썽을 핀 놈들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더 큰 사건은 문 후보가 고3 때 일어났다. 당시 경남고에서는 대학입시 때문에 가을소풍이 없어 봄소풍은 고교 시절 마지막 소풍이었다. 당시만 해도 ‘문제아’로 통했던 문 후보를 비롯한 친구 몇 명이 자유시간에 인근 마을에서 술을 사 들고 와서 몰래 마셨다. 그러다 한 친구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담임선생님 앞에서 쓰러져버린 것이다. 문 후보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은 선생님을 찾아가 이실직고한 다음 친구를 업고 병원에 가서 위 세척을 받게 했다. 문 후보는 “학교에서 처벌을 하니 마니 하다가 그래도 의리를 지켜 이실직고한 정상이 참작돼, 뻗은 친구만 정학 받으며 끝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고교생 문재인’은 고교 시절 서클 활동을 하고, 방학 때 무전여행이나 캠핑을 가며 분방한 생활을 했다. 문 후보는 “술·담배를 하게 되면서 ‘노는 친구들’과도 어울렸고, 축구를 좋아해 공차는 애들과도 가깝게 지냈다”며 “공부는 더 뒷전이 됐지만 친구를 폭넓게 사귀게 됐다”고 했다.
“재인이와 무현이가 여러모로 비슷했어요.”
이길상 옹은 공교롭게 부산상고를 졸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승이기도 하다. 경남고로 전근을 오기 전 부산상고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재인이와 무현이는 여러모로 비슷했다”고 말한다. “둘 다 머리가 좋고,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책만파는 ‘공부벌레’ 성격은 또 아니었어요. 적당히 반항 기질도 있었죠. 어려운 가정환경도 그렇고 약간 삐딱했던 성격까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일도 했겠죠.”
그러면서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의 고교 시절 ‘반항아’의 모습 한가지를 전했다. 이씨가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나왔던 얘기라고 한다. “예전 무현이가 부산상고를 다닐 때 머리를 3cm 이상 못 길렀거든요. 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청와대에 갔을 때 무현이가 그러더군요. 내가 ‘바리깡’(이발기의 일본어)을 들고 수업시간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머리카락 잘리기 싫어서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갔다고요.”(웃음)
이씨는 문 후보보다는 노 전 대통령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일화를 떠올렸다. “무현이는 당시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다가 내가 반칙이라도 잡아내면 ‘아, 선생님요, 우리가 선수도 아닌데 좀 봐주면 안돼요?’이러곤 했죠. 자기 생각에 아니다 싶으면 그렇게 당당하게 표현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씨는 1969년 3선 개헌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문재인도 반대시위를 했다”고 말했다. 3선개헌은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재선으로 제한된 임기를 3선으로 늘리려고 추진된 개헌을 말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를 통해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다시 당선됨으로써 1972년 이후 유신체제와 함께 장기집권에 돌입했다.
“당시 경남고 아(이)들도 다 나가서 시위를 했죠. 젊은 아(이)들이라 말릴 수가 없더라고요. 앞에선 경찰과 시위 학생들이 대치를 하는데, 아(이)들은 담을 넘어서 가려고 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때 학교 담 위에 철조망 같은 게 있었습니다. 이 철조망을 교내 목수를 불러 일부러 끊었어요. 안 그러면 학생들이 다치거든요. 그때 재인이도 아마 같이 시위했을 겁니다.”
문 후보도 <운명>에서 이 사실을 적어놓았다. 문 후보는 “당시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은 지금처럼 대학생 수가 많지 않아 고등학생이면 많이 배운 축에 속해 사회에서도 고등학생들을 꽤 어른 대접해줬다”며 “4·19 전통이 아직 생생할 때여서, 중요 시국상황을 맞이하면 고등학생도 시위대열에 동참했다”고 했다. “2학년 때 전교생이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다. 그 무렵 막 도입된 페퍼포그 차(시위진압용 최루가스 발사 장치를 장착한 경찰 특수 차량)까지 출동해 교문을 막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 일로 꽤 오랫동안 휴교를 했다.”
문 후보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다. “그 이듬해 초부터 고등학교에서도 교련이 실시됐다. 장기집권을 위해 학교를 병영화하고,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그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교련시험 때 백지 답안지를 집단으로 낸 일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우리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을 크게 키워줬다. 어쨌든 순수하고 좋은 시절이었다.”
어머니 연탄배달 도우며 성장
문 후보의 가정형편은 꽤 어려운 편이었다. 아버지는 부산 양말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팔다가 부도를 맞았다. 그 여파로 지게 된 빚을 갚느라 허덕이다 생을 마감했다. 문 후보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그래서 문 후보 역시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연탄 리어카를 끌거나, 연탄을 손에 들고 배달하는 일을 주로 했다. 어린 마음에 온 몸에 연탄 검댕을 묻히는 일이 늘 창피했다고 한다. 경남중에 진학한 후 자신보다 부유한 친구들을 보면서 세상의 불공평함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후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세상을 알게 됐다고 문 후보는 말했다.
이길상 옹도 문 후보의 당시 어려웠던 처지를 어렴풋이 기억했다. “가정 환경이 잘 사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못 살아서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었죠. 안쓰럽기는 해도 스승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냥 지켜볼 뿐이었죠. 그래도 재인이는 기가 죽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문 후보의 고 3 때 담임교사였던 길창순(90) 옹은 문 후보를 ‘열정적이고 착실했던 학생’이라고 기억했다. “잘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어떤 일에든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던 학생이었어요. 공부를 꽤 잘했던 걸로 기억해요.” 길씨는 “처음엔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지만 제자가 대통령 선거에 나와 마음이 뿌듯하다”며 “기왕 나왔으니 됐으면 좋겠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 - 쉬는 시간에도 책 읽던 독서광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의사인 아버지 덕분으로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혼자 있는 시간에 늘 책 읽기를 즐겨 ‘책벌레’ 소리를 어렸을 적부터 들었다. 성인이 된 후까지 안 후보의 왕성한 호기심과 창의력의 원천이 엄청난 그 독서에서 나왔다.
안 후보는 고교 때부터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좀체 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아 은사들은 “어린 학생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장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시킬 생각이 없을 만큼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친구들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 은사들과 친구들은 기억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부산고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김영일(67) 씨는 안 후보를 떠올리면 그의 부모님이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부친은 의사로, 올해 간판을 내린 부산 범천동 ‘범천의원’ 안영모 원장이다. 안 원장은 안 후보가 갓 돌을 지난 직후 작고 소박한 이 병원을 개업해 40여 년 동안 운영했다.
“한번은 철수네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어요. 학부모가 교사를 식사대접을 할 때 대부분 밖에서 하지 집으로 모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저도 자녀를 키워봤지만 선생님을 집에 초대해서 대접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철수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음식을 준비했는데 아주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후보는 그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요.
철수 아버지가 저한테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며 이것저것 물어보시더군요. 두 분 다 자상하고 조용하신 편이었어요. 아주 차분한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식사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철수의 가정 분위기 대로라면 (안 후보가) 참 바르게 컸으리란 생각을 늘 했죠. ” 김씨는 안 후보를 “조용하고, 나이에 비해 자제력이 뛰어났던 학생”이라고 기억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담임을 했던 반에서 일부 아이가 잘못해서 단체 기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 팔굽혀펴기를 시켰던 거 같아요. 그때 아이들 입이 대부분 튀어나왔죠. 잘못을 저지른 몇 명 때문에 반 전체 학생이 벌을 받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에서였겠죠. 그런데 철수는 그 순간에도 얼굴에 표정 변화가 전혀 없어요. 보통은 마음속의 싫고, 좋은 감정이 아이들 얼굴에는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학급에서 1~2등 다툰 우수한 아이
김씨의 눈에 안 후보는 ‘어른 같은 아이’로 비쳤던 듯하다. “철수는 그때처럼 벌을 받을 때는 물론 다른 상황에서도 자기 감정을 내색하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때 철수가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요. 때로는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놀라기까지 했죠. 아마 철수 부모가 집안에서 그렇게 가르치셨던 것 같아요. 요새도 언론에서 보면 철수의 얼굴에 표정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잖아요. 철수의 표정만 보고선 일반사람들은 정말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모를 겁니다.”
김씨는 안 후보가 “예전부터 그랬다”면서 ‘내 생각으로는 미덕인 것 같은데…” 라며 ‘제자 사랑’의 마음을 드러냈다. 안 후보는 김씨가 말한 그런 성격 탓인지 고교시절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안 후보의 동기생인 박근식(51) 씨는 “친구들 중 철수의 고등학교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도 많다”며 “공부는 잘했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장난을 칠 때도 철수는 늘 책을 꺼내 읽던 모범생이었다. 그 친구가 당시 읽었던 책이 삼중당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문고본 같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기생인 김대영 케이넷투자파트너스 대표도 지난 8월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철수는 쉬는 시간에도 애들하고 장난치기보다 자기 일을 하는 진중한 스타일이었다”고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안 후보는 스스로 ‘독서광’이었음을 고백한 적도 있다. 지난 7월 SBS의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책의 페이지 수, 발행연월일, 저자 소개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읽혔는데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어요. 거의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죠.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께서 아는 사람이 병원에 책을 팔러 오면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 과학전집 등을 사주셨어요. 그러면 마음이 급해서 박스를 막 뜯어 책을 꺼낸 뒤 박스 위에 앉아 읽었는데 이렇게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버릇이 중학교 때까지 갔는데, 아마 평생 읽은 책의 절반 정도는 중학교 때까지 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대학 땐 아무래도 입시 공부, 전공 공부하느라 그 전처럼 다른 책을 많이 읽진 못했어요.”
안 후보의 고교시절 성적 또한 우수한 편이었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초등학교 내내 공부를 못했다. 중학교 때도 반에서 1등 한 번 못해 봤다. 고교 때 조금씩 나아지더니 고3 때 이과 전체 1등을 처음 해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영일 씨는 “1학년 때부터 학급에서 1~2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고 안 후보의 회고와 달리 말했다. 김씨는 “당시 부산고에서는 ‘월요고사’라고 해서 매주 국영수 시험을 봤다”며 “이 시험 결과를 보면 해당 학생이 꾸준히 공부를 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철수는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고 수학교사였던 이의원(75) 옹은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철수는 수학을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과목도 그렇겠지만, 수학은 유독 싫어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죠. 그런데 철수는 수학을 좋아하고, 즐겁게 공부했다는 기억이 납니다. ”
“앞장서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았는데”
안 후보는 이처럼 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조용했다”는 고교 시절 은사들의 평가대로 반장을 하는 등 학급 일에서나서는 경우는 없었다. “철수가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반장을 하면 본인이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장은 어떤 때는 떠드는 친구에게 윽박지르는 일도 해야 하잖습니까.
제 생각에 철수가 그런 걸 잘할 수 없을 듯해서 반장으로 추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철수 같은 친구보다는 공부는 적당히 하면서 주먹도 좀 있고 이런 학생이 반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안 후보는 서울대 의대 1학년 재학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김씨의 집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철수가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했던 그 반 학생 중 5명이 서울대에 들어갔어요. 그 아이들이 우리 집에 맥주 한 상자를 들고 인사하러 우리 집에 찾아왔죠. 맥주를 마시면서 제자들이 얘기를 하는데 철수가 친구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철수가 하도 조용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좀 걱정했었거든요. 철수가 눈에 띄진 않아도 부드러운 성격이라서 친구들이 아끼고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고교 1학년 때 짝꿍이었던 백동진(51) 씨는 안 후보를 ‘고마운 친구’로 기억한다. 백씨는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으로 학교생활을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늘 필요한 처지였다. “당시 철수가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는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준 착한 친구였다”고 한다.
이의원 옹도 “철수가 몸이 불편한 친구에게 뭔가를 계속 설명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박근식 씨는 “철수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면 철수는 어떻게 해결을 할 지 도움을 주려고 꽤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했다”며 “또래들보다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동안 안 후보는 잇단 강연과 저서를 통해 “(부산고가) 야구 명문이라 응원하러 많이 다녔다”는 식으로 모교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근식 씨는 “당시 부산고 야구부가 이기면 친구들은 부산역까지 행진을 했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응원단을 꾸려 자발적으로 응원연습을 했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부산고 다닌 사람 치고 야구를 안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는데 안 후보도 그런 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
안 후보의 은사와 동기생들은 고교 시절 ‘조용한 모범생’이었던 안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 뜻밖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식씨는 “철수가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동기생들 사이에선 자랑스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대통령 후보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영일 씨도 비슷한 소감을 밝혔다. “고교 시절에 철수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 확실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꿈이 있었으리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죠. 기업인 활동을 하면서 보다 큰 꿈을 꾸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심성이 참 고운 사람이라 남의 청탁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 거 같아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이의원 옹도 제자를 응원했지만 걱정도 함께 내비쳤다. “정치는 표정과 말로 하는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철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눈에는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준 사람으로 보입니다. 과연 정치판에서 이런 것들이 통할지는 의문이 들고, 그런 면에서 안쓰러운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기 때문에 대통령을 해도 잘할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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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빅3대선후보라길래 3번째가 이정희인줄..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예전 꺼야
올ㅋ 달님 올ㅋ 문제아였다니 근데 문제아였어도 존나멋있었을거같아...그 미친외모로...어우..상상돼...
역사...ㅋㅋ 저여자는역사를공부할자격이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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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달님ㅋㅋㅋㅋㅋㅋㅋ문제아셨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
올ㅋ달님ㅋㄱㅋ술에담배까짘ㅋㅋㅋ재밌다ㅎㅎ
이야 어릴때 부터 문학에 소질이 있다더니만 그래서 요새도 수첩에 소설써내려가는구나...그 수첩 함 보고싶어용 그네공주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렌즈얘기는 안 나오고 겁나 좋은 얘기만 해주네
문제아 달님 보고싶다 ♥♥
새롭다..
박근혜가 정말 안타까운건..그냥 그 사람 자체의 현실..그렇게 살아왔기때문에 그럴수 밖에 없다는말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같아.. 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맞다고 생각해왔던 것을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아까 박근혜의 집 이라면서 글 봤는데 정말 예전 그 시대에 머물러있더라 그냥 불쌍한 죽은 영혼 같다. 제발 이제 정신 차리고 현실에 눈을 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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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공... 참... 증언대로라면 진짜 정치하면서 멍청해졌나? 다들 받들어주고 하니까..ㅋ 문리버 술담배라니 뭔가 의외당ㅋㅋㅋ
정독했어ㅋㅋㅋ달니뮤ㅜㅠㅠ박근혜부분이 더 길어보이는건 내 착각인가?공주란말 싫어했구나 공주공주공주공주공주
박근혜 진짜 공주처럼 자랐구나ㅠㅠ 저때처럼 세상은 바뀌지 않는구나
ㅋ.... 역사.... 역사....
이 글 보니까 무섭다 이제 앞으로는 전부 대놓고 박근혜랑 박정희 미화하겠지.. 솔직히 저 글 보고도 좀 흔들리는데.. 앞으로 더 한 글이나 방송 보면서 나도 변할꺼 같아 ㅠㅠ...
2나도ㅠ근데흔들리면안되ㅡㅜㅡ
안철수님 뭔가 부유한 80년대 귀공자풍의 첫사랑 오빠st이야 내겐 너무 먼 당신 문님은 뭔가 츤데레돋을거같고 장난끼 가득한 뭔가 여주를 좋아하는 남자주인공st.....
먼가상상됨!!!망상방으로 고고...!!!!
역사학자? 차라리 역사학자가 되지 그랬어. 그랬으면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을 텐데.
박근혜가 역사학자였다면 참 볼만 했겠네ㅋㅋㅋㅋㅋㅋㅋ 달님은 하ㅠㅠㅠ 달님ㅠㅠㅠㅠㅠ존잘 고딩 달님ㅠㅠㅠㅠㅠ 달님달님ㅠㅠㅠㅠㅠ
박근혜가 역사학자 됐으면 진짜 무섭겠다 쳇
근데ㅋㅋㅋ 뭐.... 옛날에 박근혜라고 하면 진짜 와... 이런 느낌이었다구 들었는데 대충 어떤건지 알것같아 권력있는 대통령의 딸에 얼굴도 예쁘장하고 신중하고 진중하고 공부도 잘하고 젊었을때 인터뷰하는거 봣는데 말도 진짜 조곤조곤 예쁘고 차분하게 하더라...
나도...너무까는건 아닌듯 ㅠㅠ
뭔가 재밋는사실들이많네. 근데 박근혜 저거는 뭔가 사실에 비해 더 미화된듯. 나까지 홀릴뻔함
박근혜랑 역사학자라니 웃겨서 말이 안 나오네.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규????^^??????
다좋은데역사에관심가졌단말은넣어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