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억류 아닌가요.”
중국에 들어갔다 석 달째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사업가 서모 씨(56)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서 씨는 8월 21일 랴오닝(遼寧) 성 선양(
瀋陽) 시 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려다 중국 법원 측에 여권을 압수당했다.서 씨가 여권을 압수당한 이유는 이렇다. 그는 2004년 충남 S사의 대표였다. 이 회사는 중국 산둥(
山東) 성 옌타이(
煙臺) 시의 L사로부터 모래를 수입하기로 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했다. S사는 계약금 1만 달러를 포기했고 계약은 자동 파기됐다.하지만 L사는 중국 법원에 S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모래 보관료 등으로 손해가 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 씨는 “모래 수입이 무산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회사까지 문을 닫아 소송 제기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결국 중국 법원은 2005년 L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S사가 84만9283위안(약 1억4715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서 씨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갑자기 여권이 압수된 것. 서 씨는 “현재 중국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중국 법원이 이처럼 민사소송의 판결 불이행을 이유로 한국인 등 외국인의 여권을 압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출국을 금지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국인 가운데 백모 씨가 비슷한 사정으로 여권을 압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선양에서 한국인 장모 씨가 개인 빚을 갚지 않은 이유로, 2008년 광둥(
廣東) 성 선전(
深(수,천))에서 한국인 사업가 오모 씨가 임금을 체불했다는 이유로 출국이 금지됐다.
중국 민사소송법 출입국관리법은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내외국인에 대해 출국 제한조치와 최장 15일 동안의 구금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주중 한국대사관은 밝혔다. 한국 미국 일본 등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한중 양국에서 활동 중인 정연호 변호사는 “민사사건으로 개인 신병을 제약하는 법은 선진 법체계를 갖춘 국가에는 없다”며 “중국이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려면 이런 불합리한 법률 체계를 국제 수준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은 법이 달라 뜻밖의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소송이 제기됐을 때 적극적으로 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