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제목과. 저자 등만 독서록에 적고, 책에는 밑줄도 치고 낙서도 해가면서 한 번 죽 읽고 끝내는 게 내 독서 습관인데 재독은 했다는 기록에, 그렇다면 삼독을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2025. 10.2.' 이렇게 시작 날짜를 썼다. 옛날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괜찮았다.
음악도 왠지 근래 멀리하게 됐던 모차르트 중, 현란한 정감을 샘솟게 하는 다양한 디베르티멘토(嬉遊曲)들과 플루트 4중주 등 작은 편성의 곡들이 당겨서 반복해 듣고 있다. 그야말로 요술방망이 핸드폰으로 얼마든지 명연주를 즐길 수 있는 시대 아닌가. 게다가 동숙인이 추석 쇠러가 이어폰도 없이 맘 놓고 즐기는 중이다. 천재 모차르트가 뿜어내는 독특한 기氣로 하여 나의 심금心琴도 상쾌하게 조율되는 중에, 아침 6시 아침공양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만만치 않은 하루 수행도 대충 따라 해가며 '라이크로프트'를 닷새 만에 독파했다.2021년에 쓴 독후감 이래로 한 줄 띄어, 2025. 10.6. 추석날 공주에서 3독 끝내다. 너무도 진솔한 너무도 살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국인의 gentle pride의 전형을 봤다. 이렇게 짤막한 3독후 소감까지 남겼다.
전번에 줄을 친 부분에 색연필로 덧줄까지 보태다 보니 논어 학이 學而 편이 생각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 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항상 익혀 나가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건 문자 그대로 기싱의 나날의 생활이네. 나? 물론 규모 면에서 상대가 안 되기는 하지만 나 나름으로는 그와 비슷한 지향으로 살아온 셈이기는 하다. 팔십이 훌쩍 넘은 요즘 친구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유봉자원방래 불효낙호 有朋自邊方來 不亦樂平.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말해 무엇하리! 이어서 내친김에,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당대에 잘나가는 문필가 친구들의 칭송은 받았으나 대중에게 인기가 없어 책이 안 팔려 굶주려도 기죽지 않고 버텼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여기서 나는 땅거미 지고 있는 내 인생의 실 상을 그에게서 보고 배우며 위로를 받는다. 기싱이 '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빌어 자서自序에 밝혔듯이 '눈으로만 읽지 않고 마음으로도 읽는 독자들에게는, 적어도 그 성실성만으로도 가치가 없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나는 출간을 결심했다. "형식상으로는 가상의 인물인 '나'가 주인공인 라이크로프트를 가리켜 하는 말이지만 기실 기싱 자신에 대한 뼈아픈 술회이기도 할 것이다.
내 책꽂이를 훑어볼 때마다 으레 나는 찰스 램의 "누더기를 걸친 노병들"이 생각난다. 내 책 전부가 고서점에서 구입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 배에서 오랫동안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는 바로 그 시간에 나는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 하던 책에 아주 싼 값이 매겨져 있는 것을 보고 차마 그냥 둘 수 없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을 산다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을 의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이네 (1729~1812)의 <티블루스> 가 바로 그런 순간에 산 책이다. 하이네가 편찬한 티블루스의 작품집. 내가 가진 전 재산인 6펜스. 그 돈이면 한 접시의 야채와 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내일이면 적으나마 돈이 생기게 돼 있었지만 나로서는 '티불루스'가 그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바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두 가지 욕구가 갈등하는 가운데 나는 그 판매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며 보도위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결국 그 책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와 버터만 바른 빵으로 정찬을 삼으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기고만장했었다. 이 책의 뒷장에는 '1792년 10월 4일 독파'라 적혀 있었다. 100년 전에 이 책을 소장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마음씨 점잖은 티불루스! 그에 대해서는 어떤 시인이 그린 초상이 한 구절 전해 오고 있는데 로마의 문학에서 시로 그린 초상치고 이보다 더 읽기 즐거운 구절은 없을 것이다 -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내밀한 기록> (이상옥 옮김, 50~51쪽, 푸른 사상)
무식한 나는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기원전 401년에 그리스 군이 페르시아까지 원정했다가 퇴각한 이야기라는 <아나바시스> 등 헌책방에서 구했다는 책 이야기는 내용을 몰라도, 아니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기싱의 이 행보만으로도 그저 감동스럽다.
최근에 음악이 듣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내 욕구가 충족되었다.서던 헤이에서 어느 집을 지나는데 창이 열려 있던 아래층에서 피아노 곡이 울려 나왔다. 솜씨 있게 치는 소리였다. 내가 희망을 걸며 걸음을 멈추고 있으니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걸 무어라고 해야 할까. 내 가슴이 뛰었다. 그 화려한 곡이 짙어가는 땅거미 속에 서 있는 내 주위를 감돌았다. 나는 곡을 즐기며 황홀해서 몸을 떨었다. 피아노 소리가 멎자 나는 또 한 곡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연주는 없었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듣고 싶은 때마다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잘된 일이다. 늘 음악을 들은 수 있다면 이따금 우연한 기회에 듣고 얻게 되는 이런 강열한 쾌감을 느끼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걸으면서도 그 먼 길을 잊고 있었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집에 도착해서는 그 미지의 은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 위 책, 165~166쪽
요즘 차고 넘치는 자료들의 홍수 속에서 미아迷兒가 될 지경이라서인지 조지 기싱이 살던 그 시절, 아니 나의 70,80년대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어수선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