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 금씨(鳳城琴氏.봉성은 봉화의 옛이름)의 족보는 상세하지만 번거롭지 않고, 간략하지만 법이 있으며, 고증이 정밀하고 넓어 남은 흠이 없음은 밀암(密菴) 이공(李公.갈암 이현일의 아들 이재)의 서문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며, 내외(內外)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적서(嫡庶)의 구분을 엄격히 하여 질서정연하고 차례가 있음은 눌은(訥隱) 이공(李公.이광정)의 서문에서 또 언급하였다. 소목(昭穆)의 순서를 매기고 돈목(敦睦)을 강론하는 것을 책머리에 두고 규약을 세워 오래도록 전함에 이르렀으니, 또 다른 족보에는 아직 없는 바이다. 내가 이에 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홀로 생각건대, 금씨의 족보는 다행으로 여길 만한 것 하나와 귀하게 여길 만한 것 하나가 있으며, 또 경계로 삼을 만한 것 하나와 면려할 만한 것 하나가 있다.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선조에 대해 누군들 그 시조로부터 알고자 하지 않겠는가만 아주 옛 세대여서 아득히 멀어 증거가 없다. 비록 문헌이 있은 뒤에라도 그 보첩(譜牒)을 잃어버리지 않고 전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사람의 일에서 기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동방의 사대부는 진실로 그 연원이 매우 먼 경우가 있어 기자(箕子)나 신라(新羅) 때부터 시작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거의 없어지고, 심지어 가깝게는 곧 혹 조선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금씨는 고려(高麗) 태사(太師)로부터 시작하였다. 태사 이하는 비록 그 세계(世系)를 조금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태보(太保)로부터 이후로 지금까지 근 천 년 동안 한 세대도 잃어버림이 없었으니, 이것이 그 다행으로 여길 만한 것의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사대부는 대다수 벼슬을 계속 유지하여 상세(上世) 이하로 혹 대대로 끊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이와 같이 하여 나라 가운데 행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금씨는 태보(太保.금의) 이후로 비록 간간히 현달(顯達)한 벼슬을 한 사람이 있고 큰 벼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으나, 이에 천 년 가까이 나라 가운데서 행세하여 명문가가 되는 데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이는 그 덕행이 대대로 뛰어남이 있어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의 하나라는 것이다.
금씨의 선대 가운데 퇴도(이황)의 문하에서 종유(從遊)한 자로 성성재(惺惺齋.금난수)와 일휴당(日休堂.금응협)과 면진재(勉進齋.금응훈)와 매헌(梅軒.금보) 같은 여러 어진 이가 있는데 모두 당시에 명성이 있어 지금도 사림(士林)이 크게 우러름이 쇠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풍(遺風)과 여운(餘韻)은 마치 항상 보존되지 못할 듯하니, 앞서 이른바 ‘덕행이 남보다 뛰어나다.’라는 것을 근거하여 징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 경계할 만한 것의 하나라는 것이다.
금씨가 각처에 흩어져 산 것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하늘이 부여한 성(性)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동일하게 받은 바가 있으니, 설령 이보다 앞서 혹 놓쳐 버린 바가 있더라도 지금부터 분발하여 공부함이 있어 선조의 어짊을 본받는다면 선조의 자취에 거의 따라갈 수 있음이 아직 늦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 면려할 만한 것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네 가지 가운데 다행으로 여길 만한 것은 하늘에 달렸고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은 사람에게 달렸으며, 이에 경계할 만한 것과 면려할 만한 것 같음은 또 다만 마음에 달렸다. 하늘에 달린 것은 바란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니, 오직 마땅히 그 사람에 달렸고 마음에 달린 것에 힘을 다해야 할 뿐이다. 또 선조의 현명함을 누가 본받지 않겠는가마는 성성재(惺惺齋) 이하의 여러 어진 이들의 학문 같은 데 이르러서는 실로 퇴계의 문하에서 터득한 것이다. 퇴계 문하의 가르침이 해와 별이 걸린 듯 밝으니 만약 사람에 달렸고 마음에 달린 것에 힘을 다하고자 한다면, 여기에 그 힘을 쓰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런 뒤라야 그 지성(至誠)을 극진히 한 것이 되니, 이와 같이 하면 지금부터 그것으로 나라에 행할 수 있는 것이 또 어찌 다만 이미 지나간 천년과 같을 뿐이겠는가.
상사(上舍) 영택(英澤)씨가 족보가 중간된 것으로 한마디 말로 그 책에 서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사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드디어 오래도록 이어진 것이 다만 하늘에 달린 것만이 아니라는 것으로 위와 같이 써서 돌려보내어 봉성 금씨 족보 중간서(鳳城琴氏族譜重刊序)로 삼게 한다. 번역: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