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다시피 홍경래의 난은 순조 11년 12월 18일 홍경래 등 지도부가 10년간의 치밀한 준비끝에 일으킨 반란입니다.
특히 이 난은 서북인에 대한 조선왕조 집권층의 지역차별 정책 때문에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또 일부 학계에서는
봉건사회 해체를 지향한 농민전쟁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봉기 때 홍경래와 그 봉기군이 띄운 격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관서를 버림이 분토와 다름 없다. 심지어 권세있는 가문의 노비들도 서토를 보면 반드시 평안도놈이라고 일컫는다. 서토에 있는 자로서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표현했지만 실제로 조사에 의하면 효종부터 과거제가 폐지되는 갑오개혁까지 과거 급제자의 군현을 조사하면
뜻밖에도 17세기의 경우에는 7.5%에 불과했으나 18세기에는 거의 14%에 이르렀고 19세게에는 15,4%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제가 시행된 최후 30년간인 고종 때에는 22.8%에 달했으니, 전 급제자의 거의 1/4에 해당하는 셈이죠
이렇게 볼때 홍경래의 격문이 왜 이렇게 나온것인가를 규명하는게 급선무인것 같은데
님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