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菊花)
국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나는 국화의 그윽하고 풋풋한 향기와 길고도 강인한 생명력을 사랑한다. 국화(菊花)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니, 이는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의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송(宋)나라 주렴계(周濂溪)는 국화를 꽃 중의 은일(隱逸)이라 하였다. 국화가 다른 꽃들이 영화를 누리는 봄과 여름에 자신을 드러내었다면 늦가을까지 고고한 자태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국화처럼 은일의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국화에게서 적어도 삶의 지혜는 배워야 할 것 같다. 국화를 더욱 사랑하는 까닭이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花卉) 중에 홀로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 되곤 하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精氣)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성취되기 때문이리라.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그 고고한 향취(香臭)를 풍기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 또한 어찌 이와 다르지 않다. 옛사람들이 너무 일찍 벼슬길에 올라 영달하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도 이 때문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문재(文才)가 일찍이 뛰어났던 아들 서하 이민서 선생이 과거보는 것을 미루어 다음 기회에 보게 했던 것이 그 사례일 것이다. 반면에 서하 이민서 선생의 형 죽서 이민적 선생은 일찍이 장원급제를 하고 벼슬길에 올라 고결하고 드높은 이름을 날렸으나 시절의 흐름을 타고 한 때의 어려움이 닥치자 동생 서하 이민서 선생보다 그만 일찍 돌아가 고 말았다. 죽서 이민적 선생도 동생처럼 과거를 좀 늦게 보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우리가 늦게 피어나는 국화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풋풋하고도 고상한 향기에서 배워야할 삶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세상사 모든 것은 억지로 꾸미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바에 감사하면서 순리(順理)대로 따라 사는 길이 가장 복된 길이다.
2024 10. 6.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