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1요한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복음 요한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 보았던 시험은 받아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단어나 문장을 말씀하시면 이를 듣고 시험지에 받아쓰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문제를 내시기 전에 선생님께서는 절대로 남의 시험지를 봐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책상 가운데에 책가방을 세워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뒤부터 계속해서 선생님께서는 남의 것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절대로 커닝(cunning)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데 남의 시험지나 미리 준비한 답을 봐서 좋은 성적을 얻는다면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이런 시험을 초등학교 때부터 쭉 봤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들어가서 뜻밖의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쎄 시험 전에 교수 신부님께서 ‘오픈북’이니까 책을 가지고 와서 답안지를 작성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책의 내용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디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만 알면 답안지를 쉽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시험을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책의 어디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책을 읽었고, 책을 읽다보니 다른 친구들과 많은 토론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목적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봤던 글이 하나 생각납니다.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 젊은 교사가 부임해서 아이들에게 시험을 나눠주면서 절대로 커닝(cunning)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잠시 뒤에 몇몇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은 그래서는 안 된다며 호통을 쳤지요. 그러자 한 아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선생님, 어른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혼자 해결하지 말고 여럿이 지혜를 모아 해결하라고 했어요. 오늘 시험문제가 어려워서 어른들 말씀대로 한 것뿐인데 잘못된 것인가요?”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가 되면 안 될까요?
오늘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다는 제자로 알려져 있는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늘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모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도 십자가 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성모님과 함께 하셨으며,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예수님 부활 소식에 베드로와 함께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제자들과도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함께 하는 삶이 요한 서간 한 가운데 ‘사랑’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쟁보다 함께 할 때, 함께 함에서 ‘사랑’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랑이 바로 주님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현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켄 블랜차드).
외젠 뷔르낭의 '달려가는 제자들' 오늘 이 말은 꼭 해주세요(‘좋은 글’ 중에서)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힘을 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해 보도록 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걱정이 사라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들려주세요. 그러면 당신도 걱정이 줄어들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용기를 잃지 마세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조건 없이 "용서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격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들려주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서를 받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푸근해 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감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환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소곤거리세요. 그러면 당신도 아름다워지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해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요. 요한 사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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