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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그의 첫 제자
요한복음 1:1-51(신p.142) 찬송 90장 / 사도신경 / 찬송 85장 20241227
오늘도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제까지 우리가 누가복음의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이제 오늘부터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한 장씩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복음서는 복음서의 기록자와 그 글을 읽는 독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앞서 살펴보았던 복음서 와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 요한복음은 당시 헬라 철학자들이나 이방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라는 것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관점이 같은 공관복음이라고 한다면, 이 요한복음 은 다른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4복음서라고 구분을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만의 특징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잠깐 설명을 드리면,
그 첫번째가 헬라어의 문법 중에 하나인 “에고 에이미,나는 ~ 이다”라는 신적인 표현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요한복음에만 에고 에이미라는 문법이 7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나는 생명의 떡이다. 2.나는 세상의 빛이다. 3.나는 양의 문이다. 4.나는 선한 목자다. 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6.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7.나는 참 포도나무다.
이런 표현은 신적인 표현들입니다. 앞으로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다 기록하지 않고, 7가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됩니다.
1.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표적(2장). 2.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는 표적(4장). 3.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표적5장). 4.오병이어의 기적(6장). 5.바다 위로 걸어 가시는 표적(6장). 6.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게 하는 표적(9장). 7.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11장)
요한 이렇게 7가지 기적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은 당시 헬라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화법을 통해 진리를 보여주는 그런 방법들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많은 대화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도마와의 대화, 빌립과의 대화, 베드로의 대화, 또 많은 바리새인과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진리들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 전혀 다루고 있지 않는, 거듭남의 비밀과 예배의 원리와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사역(요한복음 14-16장), 성령론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기도, 또 베드로의 사랑고백 같은 이런 내용들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요한은 12제자들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살아 남아 있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A.D 90년까지 살아 있으면서 다른 복음서들의 기록이 있음에도 많은 이단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전하게 될 때 이런 이단들의 잘 못된 지식을 바로잡기 위해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기록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게 될 때, 영생을 얻게 된다는 그런 관점에서 이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기록해 두었는데요. 그 부분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20:30절-31절까지 말씀을 한번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보시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였으나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다 기록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을 기록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구원자)라는 것을 믿게 하려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될 때 “생명,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기록을 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을 우리가 제대로 읽고 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원자 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요한복음의 말씀을 한 장씩 읽고 묵상할 때 이 기록자의 목적대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더 분명히 알고, 또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요한복음 1:1절 말씀에 보시면, 특이하게 시작을 합니다.
예수님의 출생기사도 아니고, 역사적인 배경도 아니고, 아예 태초부터 기록을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말씀이라는 것은 헬라어로 “로고스”라는 말입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말합니다.
또 여기 태초라는 말은 “아르케”라는 말인데, 이 아르케에 로고스(말씀이) 있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아르케라는 말은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태초 이전에 로고스(말씀이) 있었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이 로고스가 있었는데, 이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이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이다”
이 세상의 출발이 로고스요, 그 로고스가 하나님이요,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 역사 속에 들어오셨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가 “바로 예수님이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14절 말씀에 보시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 말씀에 보시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이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 말씀에 “그 안에 생명이 있는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생명이 영생을 말하는 것이고, 그 영생을 이 땅에 주러 왔다. 빛으로 설명을 하면 이 땅에 빛을 비추러 왔다! 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을 당시에 알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빛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12절 말씀에 보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 땅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고, 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소개하고 알리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6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19절 말씀 이하에 보시면
사람들이 이 세례요한을 보고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을 합니다.
21절 말씀에 “네가 엘리야냐?, 네가 선지자냐?”,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을 할 때,
이 세례요한은 23절 말씀에 “이사야 40:3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포네,폰)로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광야에 외치는 음성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요한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알리고, 전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라고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회개”를 말하는 것이고, 또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거듭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회개시키러 왔지만, 예수님은 거듭나게 해서, 영생을 주려고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것을 보고 해석을 합니다.
29절 말씀에 보시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 사람은 요한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이 이사야 53장 말씀에 나오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게 될 메시야”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야의 첫 사역이 바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32절 말씀에 보시면,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또 증언을 합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고, 그가 성령으로 세례 베푸는 이인 줄을 알았고,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라고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레요한의 증언대로 말하면“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말씀에 예언 되어 있는데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고,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5절 말씀부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5절 말씀에 세례요한의 제자 두 명이 있었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소개를 할 때, 이 두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제자가 바로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안드레가 세례요한의 제자로 영적인 지식을 사모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였는데,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형인 베드로를 전도하게 됩니다.
가버나움에 있는 이 안드레의 집 앞에 바로 회당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안드레의 집 앞에는 바로 교회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어릴 때부터 말씀으로 자라났고 또 이 말씀과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는 자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여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41절-4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치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헬)는 번역하면 베드로라(히))”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안드레는 메시야를 사모했고, 또 자기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드레가 베드로를 전도한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5장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을 떠나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한날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헛탕을 치고 돌아왔을 때,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물에 들어가 두 배에 잠길 만큼 물고기를 잡고 난 뒤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면서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는 사람이 해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제자가 되고 성도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전도해도 금방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어떤 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43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바돌로매와 같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베드로와 한 동네에 사는 경건한 사람인데, 빌립의 소개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 메시야를 만났다, 그분이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나사렛에 사는) 예수라”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때 나다나엘이 한 말이 유명한 말입니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날 수 있느냐? 그런 예언은 없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나다나엘을 만났을 때 “네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네 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됩니다.
여기에 “간사한 것”이라는 말은 “미끼, 덫이나 올무, 속이는 것”라는 뜻입니다.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정결한 사람, 속이는 것이 없이, 말씀 앞에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를 아느냐?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경건생활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렇ㄱ 나무 밑에서 가면 시원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나무 밑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하나님 앞에 “간사함이 없는 회개하는 심령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시간이지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어놓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이 안 들으시는 것 같지만, 그 모습을 다 지켜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나다나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합 니다.
여러분 50절 말씀에 보시면,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51절 말씀에 보시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빼앗는 바람에 형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 갈 때 벧엘에서 돌 베게를 배고 잠을 자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먼 길을 가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심으로 이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을 지켜 주실 것을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다나엘이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갈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안드레를 부르시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베드로를 부르시고, 마음이 정결한 나다나엘을 부르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할 때, 이 땅에서도 하늘문을 여시고,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요한복음 1장 말씀에는 하나님이 이 땅에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고, 또 그 일꾼을 부르심으로 영생을 주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마음에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시고,
또 이 땅에서 내게 주신 성도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하고,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섬기는 교회의 부흥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고,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