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브리지 , 가에탕 브리지 저자(글) · 이세진 번역 · 오노레 드 발자크 원작
학고재 · 2024년 10월 01일
「발자크의 해학」을 원작으로 한 그래픽 노블
“만약 나의 작품 중에서 후세에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발자크의 해학」일 것입니다.”
- 발자크가 한스카 백작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발자크의 또 다른 정수 『발자크의 해학』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났다. 전설적인 필력으로 무려 140여 편의 작품을 썼으며, 그중 90여 편의 작품을 묶은 총서 『인간극』이 있다. 발자크는 『인간극』에서 빼어난 관찰력, 분석력, 표현력으로 19세기 프랑스의 사회 풍속을 그려내어 후세까지 이름을 떨친다. 하지만 젊은 날의 발자크에게는 『인간극』 말고 다른 프로젝트가 있었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19세기 전반, 프랑스는 수많은 이들이 피 흘려 세운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 왕정복고, 두 번째 공화정, 두 번째 제정으로 치닫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기였다. 발자크에게는 자신이 맞닥뜨린 사회 현실을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충만했다. 반대로 현실에서 느끼는 억압이나 위선을 상상력을 통해서 깨트리고 싶은 욕구 또한 공존했다. 바로 후자가 발자크의 다른 프로젝트로, 〈해학 이야기 100〉이다.
〈해학 이야기 100〉은 1832~1837년까지 작품 30편이 『발자크의 해학』으로 출판된 뒤 중단된다. 이 작품들은 『인간극』에 포함되지 않으며, 시대적 배경이나 주제, 문체까지 발자크의 다른 작품과는 아주 판이하다. 『발자크의 해학』에는 15세기 투렌 지방을 배회하던 사람 좋고 나이 든 수도사들의 풍류담과 주교좌성당의 참사원들, 호시절을 보낸 정숙한 체하는 노파들이 이야기한 것이 담겨 있다. 발자크는 19세기, 시대의 풍랑에 시달리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때로는 명랑하고 때로는 허풍기 있고 때로는 허튼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발자크는 『발자크의 해학』이 자신의 또 다른 정수가 깃들여 있다고 한다. 평생 연인이던 한스카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나의 작품 중에 후세에 남을 만한 것은 『발자크의 해학』입니다.”라고 밝힐 정도이다. 『발자크의 해학』은 오늘날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읽히는 발자크의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를 갉아먹고 상하게 하는 슬픔을 한바탕 폭소로
발자크의 또 다른 정수는 프랑스 시골, 특히 그의 고향 투렌 지방의 풍속을 그려낸 데 있다. 이곳 사람들의 르네상스 시기 프랑스 대문호 라블레에 천착하는 모습, 제어되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인간의 욕망 등이다. 『발자크의 해학』에는 고결한 정신, 이성적 판단과는 거리가 먼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그러다 역습당하기도 하는 사연이 대부분이다. 발자크는 억압된 것을 감히 탐하고 규칙을 거스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승화시킨다.
『발자크의 해학』에는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이며, 외설적이며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맛깔나게 펼쳐진다. 알뜰하게 묘사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은 뭇사람들의 웃음보를 터지게 한다. 옛사람들은 한번 웃기 시작하면 뱃속에서 말이 뛰어나오든 명랑한 망아지가 뛰오나오든 아랑곳하지 않고 뱃속으로부터 웃어댔다고 한다. 그래서 발자크는 말한다. “저자에게 욕지거릴랑 삼가주시기를, 그리고 낮보다는 밤에 이 배꼽 빠지는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그러면서 자신에게 이 프로젝트의 영감을 준 대스승 프랑수아 라블레의 말을 인용한다.
“자, 마음의 벗들이여 즐기시라. 사지와 허리를 쭉 펴시고 즐겁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시라. 그리고 읽은 다음에 싱거운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열병에 걸려 저승에 가시라.”
한국의 독자들 또한 『발자크의 해학』에 실린 이야기를 막힘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그것이 바로 대문호 발자크의 솜씨이니까. 발자크 또한 자신 있게, 자기 입으로 몇 번이나 “즐겨 달라”고 말한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부디, 기꺼이 『발자크의 해학』을 즐겨 주시라!
폴 & 가에탕 브리지의 빼어난 캐릭터 디자인과 화면 연출!
폴과 가에탕 브리지 형제는 『발자크의 해학』 중 4편을 골라 그래픽 노블을 구성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미녀 앵페리아〉 이다.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하려던 젊은 사제 필리프 드 말라가 고위 성직자들의 총애를 받는 고급 창녀 앵페리아에게 첫눈에 반해 위기에 빠지는 사연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이야기 〈가벼운 죄〉와 네 번째 이야기 〈원수 부인〉은 오쟁이 진 남편이라는 전형적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이야기 〈악마의 상속자〉는 발자크가 가끔씩 다루는 오컬트적 요소와 민담에 흔히 등장하는 ‘못된 형들과 어리숙한 막내’라는 원형의 변주가 어우러져 독특한 재미를 준다.
각 이야기는 발자크 자신이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미 가장 위대한 작가인 귀스타브 도레, 알버트 로비다, 알베르 뒤브 등이 그린 발자크의 작품을 다루기 위해서는 형제의 용기와 재능이 필요했을 것이다. 폴과 가에탕 브리지가 해석한 캐릭터 디자인과 화면 연출은 발자크가 선사하는 웃음을 한층 배가시킨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은 버리자.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그래픽 노블로 새롭게 탄생한 『발자크의 해학』을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