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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57분 뒤에 화내라” 정신과 의사가 분노하는 법
카드 발행 일시2024.08.30
에디터
김태호
이경은
조은재
신다은
VOICE:세상을 말하다
관심
‘어떻게 되든지 나는 폭발할 거야’라면서 분노할 때 느끼는 쾌감을 못 참는 분들이 계세요. 일종의 ‘분노중독’이죠.
‘분노 사회’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 사회에 타인에 대한 관용이 부족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양창순(양창순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사회가 ‘감정’을 가르치지 않았고, 당연히 감정을 다스리는 법도 안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단 ‘분노’라는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지난 40년간 환자를 진료하고, 여러 강연·저술·방송 활동을 통해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피력해 온 양 원장은 “서양 정신의학만으로 인간과 삶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한계를 느껴 주역을 공부해 환자 진료에 응용해 왔다”고 했다. 동양 사상의 한 축인 ‘주역(周易)’을 정신 건강 진료에 접목해 온 그는 현대인들의 복잡한 정신 건강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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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양창순(양창순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 중앙일보 VOICE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양 원장은 ‘실수에 대처하는 관용의 자세’는 무엇인지, 주역과 정신의학에선 ‘관용을 상실한 분노’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전했다. 그는 “분노는 자만심과 함께 간다”고 했다. 그 말의 속뜻은 뭘까. 결국 분노는 갈등에서 시작한다. 갈등을 마주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동양과 서양은 이에 대해 어떤 접점을 갖고 해답을 내놨을까.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고독’과 ‘고립’이란 감정은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감정적 결과물이다. 주역과 정신의학에서 이를 어떻게 구별할까.
양 원장은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100회 넘게 〈심리클리닉〉을 진행하며 오피니언 리더들의 리더십과 인간관계 고민을 상담했다. 리더들은 실제 현장에서 그에게 어떤 고민을 털어놨을까. 그는 주역과 정신의학에서 말한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이고, 현장에서 경험한 리더십 고민은 어떤 게 있었는지 등을 인터뷰에서 상세히 전했다.
목차
1. 수풍정(水風井) : 실수와 관용에 대하여
2. 중수감(重水坎) : 분노에 관하여
3. 화택규(火澤暌) : 갈등을 마주하는 법
4. 화산여(火山旅) : 고독을 마주하는 법
5. 중천건(重天乾)과 중지곤(重地坤) : 리더십과 포용
앞서 인터뷰 상편 〈“호구 안 되려다 그놈 만난다” 주역으로 풀어낸 정신 건강〉에서 양 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 중요한 화두인 ‘자존감’과 ‘열등감‘의 관계는 무엇인지, ‘현대 사회의 적’으로 불리는 ‘두려움과 불안’‘겸손과 교만’의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지, 정신의학과 주역의 해석을 넘나들며 풀이했다. 이 밖에 조금의 손해도 용납 못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피해의식’은 ‘손해’라는 감정과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다뤘다.
주역으로 풀어낸 정신 건강
상편: “호구 안 되려다 그놈 만난다” 주역으로 풀어낸 정신건강
하편: “23시간 57분 뒤에 화내라” 정신과 의사가 분노하는 법
수풍정(水風井): 실수와 관용에 대하여
타인의 실수를 눈감아주지 못하는 분위기다.
요즘 관용이 참 어렵다. 관용에 관해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게 수풍정괘(水風井卦)다. 옛날에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다. 누가 오든 어떤 차별 없이 우물물을 길어 줬다. 이게 관용인데,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우린 누구나 단 한 번 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상담해 보면 억울한 일에 더해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난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내 인생은 원래 그래 끝났어’라며 현실적인 억울함에 더해 자신을 괴롭히는 짐까지 얹는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좌절도 쉬워질 듯하다.
그림을 그린다고 바로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이들에게 “피카소의 일대기를 한번 보시라”고 권한다. 그 역시 좌절했다.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을 그려도 스스로 받아들였다. 그게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 관용, 건강한 자긍심이다. 자신이 한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운전하며 접촉 사고를 낼 수 있다. 결국 보면 ‘1000원짜리 사고’다. 근데 그걸 1만원, 10만원짜리 사고로 여겨서 문제가 생긴다. 내가 저지른 실수, 실패가 얼마짜리인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상대 실수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에서 물건 살 때만 가격을 매기는 게 아니라, 내 감정도 객관적 크기를 따져봐야 한다.
중수감(重水坎): 분노에 관하여
관용을 상실해서 그런지, 결국 ‘분노 사회’가 됐다.
적절한 분노는 인류 역사를 발전시켰지만, 분노는 사실 굉장히 위험한 감정이다. 잘못하면 공멸한다. ‘우리는 왜 분노할까’.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과에서 볼 때, 분노·불안·우울은 함께한다. 분노가 케이크 위 장식물이라면, 그 안에 불안과 우울이 있다. ‘내게 왜 이리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나 어떻게 살지’라고 불안해하다가 우울해진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라며 내 감정을 남 탓으로 돌린다.
그래픽 이경은.
남 탓은 일종의 감정적 회피일까.
요즘 젊은 내담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흥미로운 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감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건 정말 생각해볼 문제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감정’을 배울 만큼 우리 사회가 감정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 감정을 다스리는 법도 안 가르쳤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분노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 화를 잘 내는 아이들을 상담해 보면 부모들도 화를 잘 낸다. 보고 배운 거다. 그래서 분노란 감정을 다스릴 때, 나의 경우 ‘분노 표현법’을 강조한다.
분노 표현법은 뭔가.
화를 잘 내는 이들에게 숙제를 낸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어떻게 분노하는지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권한다. 녹음한 걸 들어보면 스스로 놀란다. ‘내가 왜 화를 냈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 분노할 때 말하는 걸 들어보면 ‘내가 얼마나 잘났고, 너는 얼마나 못났는지’만 이야기한다. 화를 내면 상대방은 일단 그 내용을 듣지 않는다. 화낼 때 표정과 말투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분노를 잘하는 분들에게 “23시간57분 후에 화를 내시라”고 권한다. 하루 지나면 그 분노가 1000원짜리인지, 1만원짜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10만원짜리 분노’라면 화를 내야 한다. 그것도 간단명료하게.
주역에선 ‘분노’를 어떻게 해석하나.
주역에서 분노에 해당하는 괘(卦)는 중수감괘(重水坎卦)다. 상괘(上卦)와 하괘(下卦) 모두 ‘물’이다. 분노는 ‘버뮤다 삼각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바닷물에 빠지는 것과 같다. 오행학적으로 물은 지혜도 상징하지만, 쓸데없는 근심이나 걱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노할 때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화를 내고 온종일 걱정하고… 그때 소모되는 에너지가 크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분노와 후회는 같이 간다’고 말했다. 분노하면 늘 후회하지 않나. 그래서 분노를 참는 연습을 시키는데, 그걸 못 견디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되든지 나는 폭발할 거야’라면서 분노할 때 느끼는 그 쾌감을 못 참는다. 그것도 일종의 ‘분노중독’이다. 그럴 때 이 중수감괘(重水坎卦)를 설명한다. “(분노하게 되면) 정말 깊은 태평양에 빠지시는 겁니다. 망망대해에··· 누가 본인을 보호하고, 본인을 끄집어낼 수 있겠어요?”라고 설명하면 그때 다시 생각한다.
유독 분노를 잘하는 성정(性情)이 따로 있을까.
분노를 잘하는 이들의 기본적 심리는 ‘내가 잘났다’이다. 자만심과 분노는 함께 간다. 누가 회사에서 제일 화를 잘 낼까. 제일 위에 계신 분들이다. 내가 굉장히 옳기 때문이다. 내 의견과 다른 이야기를 못 견딘다. 또 하나, ‘왜 위로 올라갈수록 아부에 약할까’ 위로 올라갈수록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더에게 요구만 한다. 그래서 사실 위로 올라갈수록 외롭다. ‘리더의 자리는 산봉우리와 같다’고 한다. 비 오면 가장 먼저 맞고, 눈이 쌓이면 가장 늦게까지 안 녹는 자리다. 남의 눈에 잘 띄니 욕도 많이 듣는다. 그래서 리더들을 상담해 보면 거의 다 외로워한다. 근데 그 외로움이란 감정조차 스스로 억압하고 회피한다. ‘외롭다’ ‘힘들다’고 느껴야 하는데, ‘내가 CEO인데, 겨우 이런 걸로 내가 외로워해?’라며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그리고 폭발할 땐 그렇게 눌렸던 것 이상의 분노가 분출된다. 그럴 때 옆에서 “화 잘 내셨습니다”라며 위로하면 그게 기분이 좋지만, ‘진통제’일 수 있다. 마약처럼 중독된다. 그래서 점점 내게 좋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곁에 둔다.
화택규(火澤暌): 갈등을 마주하는 법
결국 갈등이 문제다. 주역에선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나.
‘갈등(葛藤)’은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를 쓴다. 서로 반대로 올라가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형상이다. 대개 갈등이 생기면 양보를 안 한다. 그럴 땐 상대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역에선 이를 화택규괘(火澤暌卦)로 설명한다. 상괘(上卦)가 불(火)이다. 하괘(下卦)가 연못(택·澤)이다. ‘불’은 위로 향하고, ‘연못’은 잔잔하다. 아래를 향한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 이와 비슷한 괘가 천지비괘(天地否卦)다. 상괘(上卦)는 하늘(건·乾卦)이고, 하괘(下卦)는 땅(곤·坤卦)이다. 하늘은 위를 향하고, 땅은 숙인다. 이 역시 어긋남을 의미한다. 반대로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지천태괘(地天泰卦)는 천지비괘(天地否卦)의 위아래 괘(卦) 위치가 뒤바뀐다. 땅이 위로 가고, 하늘이 아래로 간다. 서로 입장이 바뀐다.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일 못 한다고 난리 쳤는데, ‘조직원 입장에서 현장에서 뛰어보니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조직원도 맨날 ‘리더가 잘 못한다’고 비난했지만, 입장을 바꿔 보니 ‘CEO가 돼 보니까 보통 고민이 아니다’라는 걸 이해한다. 서로의 위치를 이해하면 갈등은 해결된다.
요즘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을 격하게 아끼는 게 우선 같다.
요즘 ‘자기중심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 내가 최고이고, 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런 나를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겨주는 심리가 나르시시즘이다. 이것 자체는 ‘자기애(自己愛)’로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다. 그런데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적 나르시시즘’은 차이가 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내가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당신도 소중하다’는 수평 관계, 즉 ‘I-YOU’의 관계다. 반대로 ‘병적 나르시시즘’은 ‘나만 잘났고, 타인은 나를 비춰주는 물건’이다. ‘I-IT’ 관계다. 정신과적으로 갈등 해결을 위해선 ‘나의 나르시시즘뿐 아니라 상대의 나르시시즘도 소중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화산여(火山旅): 고독을 마주하는 법
고독이 시대의 화두다. 우려되는 부분 없나.
고독은 긍정적으로 본다. 정신과적으로 인간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친밀형, ‘인간관계는 필요 없다’는 회피형, 수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지배형이 있다. 정신과적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란 어울리고 싶을 때 어울리고,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자기주장을 해야 할 땐 하고, 상대 의견이 옳을 땐 순응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 에너지를 쓴 만큼 혼자 있을 때 채워야 한다. 밤이 필요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고독이 고립으로 이어지진 않나. 구분이 어렵다.
고독은 능동적인 행위다. 혼자 있는 의미를 아는 상태다. 고립은 수동적이다. 피해의식을 갖는 행위다. 그런데 후자와 상담해 보면 그들 역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악플러들이 왜 댓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자.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으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 없다. 근데 그들은 혼자 방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나? 인간관계의 상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감정이다. 정신과적으로 ‘거부불안’이다. 이런 ‘거부불안’의 기저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열등감이 짙게 깔려 있다. ‘상처받기 싫다’는 감정에서 비롯돼 자기 자신을 가둔다. 그게 고립이다. 반대로 고독은 자신이 그 외로움을 즐기는 것이다.
주역에서 고독을 ‘화산여괘(火山旅卦)’로 설명한다. 어떤 의미인가.
태양은 홀로 존재한다. 지구를 기준으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홀로 진다. 태양은 자기 역할을 혼자서 충실하되,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게 고독이다. 인간도 혼자 있을 때 나를 돌아본다. 쉼과 여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근데 우리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나를 돌아보기 힘들다. 자꾸 나의 단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유튜브나 TV를 본다. 잠을 못 잔다. 우리 몸도 자연의 이치와 닿아 있다. 밤에 홀로 나를 돌아보며 고독을 통해 지혜를 구할 수 있는 화산여괘(火山旅卦)의 시간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중천건(重天乾)과 중지곤(重地坤): 리더십과 포용
리더 심리 상담을 많이 했다. 그들 특징은.
첫째, 자기 분야에 실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가 되려면 내면을 잘 채워야 한다. 전공 분야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고민해야 한다. 또 이들은 겸손하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르는 걸 지적받아도 화내지 않는다. 남의 의견 듣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는 척하는 분들은 자기 스스로 부족함을 안다. 남을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그래서 모르는 걸 묻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는 걸 누가 아는 것 같으면 화를 낸다. 둘째, 인기를 쫓지 않는다. ‘가짜 리더’는 인기 있는 척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가볍게, 재미있게 함께 놀긴 하지만 그걸로 존경하진 않는다. 신뢰를 얻는 리더는 ‘잘한 건 조직원 덕, 문제가 생기면 자기 탓’을 한다. 내담자 중 인간관계에 신뢰를 얻은 이들은 조직원들이 정말 믿고 따르고 헌신한다. ‘내가 왜 이 조직에 몸담는지’ 그 의미를 알게 해주고 자신이 성장할 거라는 희망을 준다. 만약 조직원이 나를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셋째,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잘 다스린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직원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의 심리적 특성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는 리더가 있고, 그 이상을 뛰어넘는 리더가 있다. 그 차이는 실력에 더해 ‘심리지능’이라고 하는데,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태도가 가른다. 조직은 사람이 움직인다. 물론 어떨 때는 리더가 자기 확신을 갖고 단호해야 한다. ‘허허실실’ 리더가 좋은 리더가 아니다. 단호할 땐 단호하고, 야단칠 땐 야단쳐야 한다. 무시나 모욕이 아니라 배우고 공부할 것을 지적해야 한다.
리더십은 결국 주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나.
주역에서 리더십을 의미하는 건괘(乾卦·하늘)와 곤괘(坤卦·대지)다. 여기서 강조하는 게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 나의 스승을 보라’. 바꿔 말하면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쓴소리 하는 사람을 옆에 두라’는 의미인데, 그게 참 어렵다. 정신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제일 먼저 배신하는가’를 보면 아부를 잘하는 사람, 그리고 지극히 예의가 지나친 사람들이 가정 먼저 배신한다. 내담자들에게도 “그런 분들이 먼저 배신할 겁니다”고 말한다. 정신과는 항상 극과 극이 통한다.
주역에서 강조한 중천건괘(重天乾卦)는 리더십 관련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중천건(重天乾)은 자연에선 ‘하늘’, 사람에겐 ‘아버지’를 비유한다. 괘상의 1층부터 6층까지 양(陽)의 성격이 강하다. 괘(卦)의 조언은 앞서 말한 ‘이견대인(利見大人)’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만나 나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래픽 최수아
나를 본다는 것은 섬세한 일이다. 근데 우리나라 리더들의 공통점은 신중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봐야 한다. 주역에서 ‘호랑이 꼬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긴 천택리괘(天澤履卦)가 있다. ‘연못’에 ‘하늘’이 비치는 형상이다. 자기 확신과 주도성을 갖되, 언제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언제 물러날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결국 ‘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래픽 조은재.
중지곤괘(重地坤卦)는 리더의 포용을 말한다.
중지곤괘(重地坤卦)는 ‘땅’ ‘어머니’를 상징한다. 생명력을 의미한다. 땅은 내가 버리는 게 ‘쓰레기’인지, ‘씨앗’인지 가리지 않고 품는다. 인간 역시 너그러움이 필요한데, 중요한 건 ‘서리를 밟으면 반드시 얼음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경거망동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리더는 건괘(乾卦·하늘)만 있어서도 안 되고, 곤괘(坤卦·땅)와 함께 가야 한다. 땅이 있어야 하늘이 있듯, 조직원이 있어야 리더도 있다. 대립 되는 형질을 갈등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모습도 수용하는 직관과 지혜가 필요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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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조은재
에디터
김태호
관심
중앙일보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4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