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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철금속의 발전 개황
한국의 비쳘금속 공업은 고려의 청동기 시대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일제시대에 일본의 전쟁물자 준비와 산금장려 정책으로 한반도에 비교적 많은 5개의 제련소가 있었으나 그중 남한에는 장항제련소 하나만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방후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만들어 지기까지 비철금속 공업은 다른 공업에 비하여 발전된 상황이었다. 예를 들면 60년대에는 공대와 상공부에 전자과는 없었지만 광산과와 금속과 그리고 지질광물 연구고소가 있을 정도였다
64년에 한국광업 제련의 장항제련소에서 시설보수로 소규모의 동과 연제련을 하기 시작했고 65년에 동신금속의 아연제련, 69년에 한국알미늄의 알미늄 제련, 70년에는 영풍상사의 아연 제련소가 건설되었다.
이중 특기할 것은 영풍상사가 경북 봉화에 연및 아연광의 발굴을 계기로 60년대 후반에 비철 최대의 규모인 연산 8천톤의 아연 제련소를 건설한 것이다.
70년대초 까지의 비철금속 공업은 규모도 작고 생산 시설이 열악하고 생산과정에서 공해를 발생하는 혐오 공업으로 낙인 찍혔다.
이리하여 중화학에서는 70년대의 한국공업의 선진화를 위하여 구태를 탈파하여 "세계 First Class" 비철금속공업을 건설키로 계획하였다.
그것은 1). 시설규모의 대단위화 2). 최신의 무공해 공정 채용 3). 염가의 수입원광 사용 4). 비철금속 공업의 단지화 5). 공해공장의 공동관리를 기한다는 것이었다.
70년대초 한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살펴보면 비철금속은 상당수준이라고 할수 있으므로 중화학을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수요가 생겼을 때에 비철금속을 위한 제련소를 단계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순리적이었으나 금속공업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혁명적 비철금속 육성방법을 택한 것이다.
4. 중화학에 의한 비철금속 공업건설 계획(요지)
가)정책
4대전략 비철금속인 1) 아연, 2)동
3)연, 4)알미늄 생산 기반구축
나) 공장 건설계회
제1단계
*아연 제련소: 연산 5만톤
78년 완공
*동제련소: 연산 8만톤
79년 완공
제2단계 (80년대초 착수)
* 연 및 알미늄 제련소 건설
다). 목표및 효과( 86년 기준 )
(1)국가 4대전략 비철금속(동, 아 연, 연, 알미늄)과 닉켈의 자급 목표를 달성한다
(2) 부산물로서 귀금속인 금, 은, 카드뮴의 생산으로 귀금속 공업을 확립하고 비철금속 공 업의 기업성 향상을 이룩한다.
다량의 황산 생산으로 정밀화
학 육성에 기여한다
3)최신 설계 및 공정 채용으로 현대식 생산체제를 구축하여
공해발생의 소지를 제거한다.
라.실수요자 선정
1)민영을 원칙으로 하고 실수요자는 상공부 장관이 결정한다.
2) 기존 기업체에게 우선권을 주되
민간의 희망업체가 없을 때에는 정부가 지정한다.
5, 온산 비철 금속단지의 규모
가).비철금속단지는 온산으로 하고
주거지역을 포함하여 약1천만평(실 지로 7,340 천평)을 지정한다.
나).계획인구 5만명 규모로한 주거지역 (약60만평) 과 녹지와 해면 확보를 계획한다.
나) 항만시설로서 2천톤-5만톤급의 3,4 개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 할수 있는 충분한 부두와 방파제를 구축한 다.
다) 정부지원 사업으로 입지지정, 부지 조성을 비롯하여 공업용수와 전기인 입선 그리고 철도, 도로 건설은 조기 에 완공 한다 ( 대단히 중요한 사항 임)
6. 온산 기지내 입주공장 건설 상황
79년~80년 사이에 비철금속 분야에서는 고려아연, 동제련, 효성 알미늄, 풍산신동등의 비철금속의 주종 공장 모두가 건설 되었다.
일반산업의 주요 공장으로는 쌍용정유, 동해펄프, 한국제지, 럭키염료, 한림, 금양, 송원 아루마등 20여개의 업체가 입주하여 예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실적을 걷우었다 . 비철 금속 단지의 성과는 박정희의 중화학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철 계속)
2024. 6.8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