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에 초대 받은 듯 살아라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드리고
먼 절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마음을 다잡고 감사 기도를 드린인다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혼을 담아 열과 성으로 최선을 다하자
진심과 정성을 다해 참되게 살자
묵상기도를 드린다
차 주전자에 맑은 물을 담아 차를 끓인다
차 주전자에 쓰인글 처럼
‘가이청심야’(可以淸心也)라는 다섯 글자로 마음을 다스린다
可以淸心也 (가이청심야)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以淸心也可 (이청심야가)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淸心也可以 (청심야가이)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心也可以淸 (심야가이청)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也可以淸心 (야가이청심) 또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
마음을 맑게 하고
좋은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보람 있게 사는 것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삶의 향기를 이웃에 나리는 것이다
햇빛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
소소한 의 한가로움이든, 상큼한 공기이든, 신선한 바람이 불고. 새들이 노래하며,
꽃들이 피어 향연을 즐긴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길을 잃고 잠시 졸다 깨면
눈앞의 대형 캔버스가 “어디 한번 그려봐” 한다.
50여 년 전 자유의 여신상이 내다보이는 뉴욕 맨해튼의 작업실 풍경이다.
오디오에서 니나 시몬의‘Don’t smoke in bed’가 흘러나온다.
그 시절 그 노래를 참 좋아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을 때였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떠나는 여자,
어디 떠나면서 할 말이 그것뿐이겠는가?
그 짧은 문장 안에 수많은 말이 들어있을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첫날,
책을 읽다가 잠시 졸다가 깨니 문득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금 들으니 갑자기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지금이 언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나 시몬의 호소력 짙은 노래에 이어 라디오 진행자가 읽어주는
하루키의 문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백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니 이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문장에 꽂혀 문득 현실로 돌아오니 지금의 작업실에선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팔공산의 산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금호강 변이지만 3층이라 11월이 되어야 숲의 초록이 다 지고 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은 강물보다 산 능선이 좋다. 왠지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믿음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나는 믿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진화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내 안의 산 능선들과 강물들이 흘러넘쳐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다.
심지어는 슬슬 타인이 다 ‘나’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의 좋은 모습을 만난 것 같아 유쾌해지고,
오만방자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내 못생긴 구석을 봐버린 것 같아서 울적해진다. 착한 당신도 나다. 재수 없는 당신도 나다.
재수 없는 말만 하는 당신도 바로 나다.
그 맞는 말이 다 틀린 말인지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당신도 바로 나다.
나는 겸허하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재수 없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화해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를 화해란, 지구의 언어가 아닌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쓴 노트를 뒤적이다가 언젠가 내가 쓴 실감 나는 글을 발견했다.
“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는 꿈이었다.
돌리면 빙빙 돌아가는 중국 음식점의 커다란 원형 식탁 앞에 다들 앉아있는데,
식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중에는 외할머니, 아버지, 동생, 이모부,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
몇 년 전 세상 떠난 초등학교 동창 등 한 스무 명쯤이 둘러앉아 있었고,
꿈에도 그리던 애견 베티가 생전처럼 발치에 앉아 있었다.
내가 어느새 환갑이라는 사실은 꿈속에서 더 실감이 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늙지 않은 사람들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음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손님 중에는 살아있는 내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아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 뿐,
산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죽음을 이미 경험한 분들에게 저세상에 관해 묻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분들이 매 순간 깜짝 놀라게 달라지는 이승을 더 궁금해할 것만
같았던 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화가 선생님이 축사를 해주셨는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삶은 시간 예술이다. 지나가는 매 순간을 색칠해라. 정성껏 온 마음으로.’
깨 보니 아무도 없었다. 정말 며칠 뒤면 내 나이 팔순이다.”
이 글을 쓴 뒤로 7년이 또 지났다. 꿈이다.
세월이 빨리 가버린 것처럼 모진 꿈이 있을까?
저 먼 별까지 맨발로 걸어가는 빈센트 반 고흐의 고독한 꿈을 떠올린다.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 병실의 벽에는 “나는 제정신이다”라고 씌어있었다 한다.
앞서가는 정신은 늘 제정신이다.
제정신이 아닌 건 이 시대에도 전쟁으로 세상을 위협하는 독재자들이다.
문득‘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 풍선은 아니라 해도 오물 풍선은 심하게 진부하다.
결혼할 때 하얀 드레스를 입는 것도 반동으로 금지되며,
청소년들이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들키면 총살당하는 나라,
그곳이 가장 가까운 형제 나라라니, 그야말로 지독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문득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런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삶은 언제나 살 가치가 있다. 터무니없을지라도 축제에 초대받은 듯 살아라.”
삶은 언제나 가치로우니
축제에 초대받은 것처럼 살아라
참되고 진실하게
선하고 인자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며
대화를 나누면 향기가 나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마음에 담으면 온기가 나고
가슴에 담으면 감동이 남는다.
은은한 향기 소소한 행복을 위해
진리에 순종하라
겸손하게 남을 섬겨라
축제에 초대받은 것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라
좋은 이웃을 사는 데는 천만금을 지불한다.
삶은 고개를 드는 순간 삶은 끝난다
늘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라
삶에 잉여를 남기면 죄를 짓는다
한 없이 나누고 베풀어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사는 것이 달관의 삶이다
참다움을 위해 늘 생각하고, 진지하며,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