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뇌전증도우미견1호 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작 때 위기 알리고 신체 손상도 막아요”
부산 뇌전증 장애인에 국내 첫 분양 위기 상황 짖어서 주변 알리는 역할 환자 몸 아래 받쳐 더 큰 사고 예방
신체 변화 감지해 발작 전 경고도뇌전증 장애인 도우미견 인식 미비 대중교통·식당 이용 거부 당하기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과태료 대한뇌전증학회 예산 지원해 육성 훈련 거친 도우미견 현재 3마리뿐
뇌전증 장애인 김정철 씨가 도우미견 릴리와 KTX를 타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다. 장애인을 돕는 도우미견은 공공장소 및 대중교통, 식당 등에 출입할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김정철 씨 제공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 우리나라 가구 4곳 중 1곳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보호자 곁에서 정서적 교감을 하며 지내는 반려동물도 있지만, 훈련과 학습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개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시각, 청각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도우미견 등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2월 전국 최초로 분양된 뇌전증 도우미견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각,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에 비해 생소하게 느껴지는 뇌전증 도우미견,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걸까?
■뇌전증 장애인이 도우미견 필요한 이유
뇌전증은 영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발병하는 흔한 만성 신경계 질환 중 하나다. 신경계 질환 중에서는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다. 일반인의 3%가 일생에 1회 이상 발작을 하며, 발작을 경험한 환자의 20분의 1 정도가 뇌전증으로 발전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1년 뇌전증 환자 수는 14만 4091명이었다.
뇌전증은 특유의 발작 증세 때문에 사회적 편견이 많은 질환이다. 이러한 편견으로 뇌전증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반인들이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대개 발작 중 낙상, 화상, 익사 등의 사고 때문에 뇌전증 조기 사망 위험률이 높기 때문이다.
뇌전증 당사자가 혼자 있을 때 발작이 발생하면 신체 손상이 발생하거나 드물게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뇌전증 도우미견이 있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발작이 발생할 때 크게 짖어 주변에 알리고, 환자의 몸 아래 들어가 신체 손상을 막아주거나 경보 장치를 눌러서 가족들에게 알려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뇌전증 도우미견이 호흡, 심박수 또는 기타 미묘한 대사 변화를 감지해 발작이 시작되기 전 환자에게 미리 알려 주기도 한다. 이럴 경우 환자는 발작에 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혼자 생활하는 뇌전증 당사자에게는 일상생활의 독립성을 제공하고, 정서적 교감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도 제공한다.
실제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뇌전증 도우미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 2021년 뇌전증 미국인 환자인 티나 씨가 설거지를 하다 발작 증세로 쓰러지자 옆에 누워 있던 경보견 맥스가 재빨리 자신의 몸을 받쳐 구하는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맥스 덕분에 티나는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뇌전증 도우미견과 실제로 다녀 보니…
지난 2월 전국에서 최초로 부산의 뇌전증 장애인에게 도우미견 분양이 진행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철 센터장이다. 뇌전증 장애인인 김 센터장은 뇌전증지원센터에서 올린 도우미견 분양 공고를 보고 뇌전증 장애인을 돕는 개가 있구나 하는 호기심에 분양을 받았다.
실제로 함께 다녀 보니 어떨까? 시각·청각 도우미견에 대한 인식은 조금 알려져 있어 식당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조금은 수월하지만, 뇌전증 당사자의 경우 발작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신체활동이 가능하기에 입장을 거부 당하는 일이 잦다.
김 센터장도 초반에 도우미견 릴리와 대중교통 이용 시 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에게 승차 거부를 당하며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에 부산시 택시운수과 등에 민원을 넣고 업체 쪽에도 공문을 보내는 등 인식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김 센터장은 “식당에 들어가면 손님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주인이나 직원들이 불편한 내색을 비추기도 한다”며 “과태료 때문에 할 수 없이 입장을 허락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한 가족이 ‘주인이 입장을 거부하면 우리가 따지려고 했다’고 말해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릴리가 일하는 중이라 눈으로만 예뻐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런 시민들이 많아질 때, 도우미견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리나 식당에서 겪는 어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복지법 40조에 따르면 공공장소,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에서 도우미견의 출입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만약 길에서 뇌전증 도우미견뿐만 아니라 다른 도우미견을 마주쳤다면 간식을 주거나 부르는 등 시선을 끄는 행동을 지양해야 한다. 또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부로 만나게 하는 것도 도우미견이 위협으로 느껴 돌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뇌전증 도우미견 분양 방법은?
뇌전증 도우미견은 2020년 7월 개소한 뇌전증지원센터가 대한뇌전증학회의 예산 지원을 받아 육성하고 있다. 현재 정규 훈련을 거친 뇌전증 도우미견은 3마리다. 이들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지난해 3월부터 약 10개월간 복종훈련과 상황 대처 훈련, 야외 훈련 등을 받았다. 이 가운데 훈련을 통과한 1마리는 부산으로 분양됐다. 남은 1마리는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 중 동물을 사랑하고 대형견 양육이 가능한 사람일 경우 분양 신청할 수 있다. 분양 후 1년 동안 함께 살게 된다. 예방접종 등 필수 관리에 드는 비용은 뇌전증지원센터에서 지원한다. 다만 분양 예정자는 4주(3주 협회 내 교육, 1주 현장교육)의 사전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뇌전증지원센터 도우미견 담당 이유진 간호사는 “길에서 만난 도우미견이 크게 짖거나 경보를 울린다면 관심을 가져주시고, 발병 시 환자를 안전한 곳에 눕힌 후 위험한 물건을 치워달라”고 당부했다. 덧붙여 “분비물이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환자의 몸과 머리를 옆으로 돌려주신 후, 몸을 압박하지 않고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뇌전증 도우미견 분양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전화(1670-5775)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