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와 잔디 깎기
송원 홍 재 석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 오곡백과가 여물어가는 가을의 문턱이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한들거리며 오가는 사람과 계절의 전령사 노릇을 한다. 뒷동산 밤나무에 알밤 송이가 탐스럽게 벌어져도 요즈음은 밤을 줍는 아이들이 없다. 그만큼 세상은 풍요롭지만 인심은 날로 어렵고 인정은 삭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내 탓도 아니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급변한 세상으로 돌리고 말없이 천심(天心)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고향 농촌은 정막감이 감돌고 있다. 그래도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알알이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풍광은 풍요로운 아름다움이다. 더없이 즐거우니 이를 보려고 멀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님을 찾아가는 효심의 귀향행렬의 많은 자동차를 보았으리라. 매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모든것은 오직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자손들과 함께 하는 벌초도 힘겹지만, 보람으로 가슴 가득히 기쁨을 담고 간다. 조상님 산소의 벌초는 효행의 실천이다. 내 몸 귀한 줄을 알 면은 자기조상 소중함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한 벌초보다 자손을 생각하고 불효자를 안 만들려고 하는 일임을 알라. 조상의 뿌리를 찾아 정성껏 매년 빠짐없이 묘전을 밟으면서 해오지 않았는가. 이는 수천 년간 대대로 이어온 우리 민족만의 효 문화로 자긍심을 증명하는 산 증거다.
물론 벌초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예취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낫으로 이를 다 깎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기계 덕에 얼마나 편리한가.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다. 안전 장구만 갖추고 사용수칙을 알면 농민도, 나이 많은 어르신도, 하물며 부인들도 사용하는 능률적인 농기구다.
추석 20여 일 전부터 청산의 짙어진 산기슭에는 이곳저곳 벌초하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엇지면 하늘나라 조상님께 알리는 고사의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그 효성에 이름 모를 산새와 꿩도 반겨주고 산짐승도 비겨 가리라.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저 잘난 큰소리만 치는 졸장부는 그 소리를 외면하고 못 들은 척할까. 삼척동자도 아는 가을 일손 바쁜 농촌사정을 그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핑계와 돈 몇 푼 앞세우고 양심 없는 자존심을 죽이는 벌초 대행의 일을 누가 누구에게 부탁 한단 말인가. 못하면 그만이지. 몇 년 전부터 몰지각한 몇몇 농협에서 농민을 생각하지 않는 처사이었다.
옛날에도 산소 벌초 한기의 대행을 3일의 품값을 주어도 기피했다. 얼마 남지 않은 농촌인구는 태반이 노인들이다. 몰인정한 처사에 어른들이 분노하고 있는 현실을 이해되리라. 지금의 산은 가보면 잡초와 나무가 무성하다. 주인 없는 무덤도 많다. 부모 조상님 은혜 모르는 세상을 원망하리라. 도덕심 부재의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에 멍들고 부끄러운 수치심도 모르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도 사람이라면 최소의 도리를 알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효자 나무 가꾸듯이 한평생 자식 낳아 키우고 가르치며 허리 휘는 줄도 몰랐다. 온갖 고생과 수모를 참고 겪으면서 살아왔다. 이제 살만하니 그 자손 조상 산소 모르면 아무리 훌륭하고 명당이라도 나무가 무성한 주인 없는 무덤이 된다. 예부터 임자 없는 묘가 있었던가. 부모가 자식들께 조상 산소 가르쳐 주는 것도 하나의 가정교육이었다. 10년만 안 가보면 태산 같이 믿었던 산도 변하여 그 자리도 찾지 못하게 되는 이치를 아는가. 숱한 영웅호걸도 무연고분묘가 된 것은 수신제가 하지 못한 처사가 아닐까?
지금은 주2일 간이나 쉬는 날이다. 직접 벌초를 못 하면 제백사 하고라도 일꾼을 데리고 함께 와서 지켜보면서 벌초를 해야 자손 된 도리다. 그래야만 풍성한 한가위에 둥근 달을 쳐다보고 마음 편히 소원을 빌며 다복을 받으리라. 죽으면 만사가 다 허사며 소용이 없다. 임자 없는 무덤처럼 허무한 것이니라. 살아생전에 효를 다하는 마음을 아는가. 앞으로 도덕심 회복운동의 목적으로 벌초 휴가제 신설을 고려할 사안으로 어떠할까. 효심을 일깨우는 하나의 배려로 국민적 인성교육의 방도가 되지 않을는지……
나는 우연한 기회에 문의향교 경내의 잔디 깎기를 약속했다. 500여 평이 넘는 넓은 공간을 힘겹게 혼자 온 종일 하였지만, 성현을 모시는 내 마음은 작가의 심정으로 일했다. 일을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추석맞이의 마지막 날이며 가을 석전제를 준비하는 일이다. 깔끔히 다 하고 난 뒤를 돌아보니 내 마음마저 깨끗하고 존경심에 성스러움마저 깃들고 보람이 앞서더라.
잘나고 못나고 있고 없든 간에 조상님은 누구에게나 가장 존경하는 대상이며 산소는 표상이 아닌가. 후손된 본분으로 그림자 없는 조상님께 드리는 효행의 마음가짐이다. 가을맞이의 벌초로 깨끗한 모습에서 얻어지는 자부심은 인간이 지키는 작은 하나의 도리로서 아름답지 않을는지……
2013.9.17 문의향교의 경내 잔디 깎기를 하고서
첫댓글 " 그 자손 조상 산소 모르면 아무리 훌륭하고 명당이라도 나무가 무성한 주인 없는 무덤이 된다. 예부터 임자 없는 묘가 있었던가. 부모가 자식들께 조상 산소 가르쳐 주는 것도 하나의 가정교육이었다. 10년만 안 가보면 태산 같이 믿었던 산도 변하여 그 자리도 찾지 못하게 되는 이치를 아는가. 숱한 영웅호걸도 무연고분묘가 된 것은 수신제가 하지 못한 처사가 아닐까?"
" 나는 우연한 기회에 문의향교 경내의 잔디 깎기를 약속했다. 500여 평이 넘는 넓은 공간을 힘겹게 혼자 온 종일 하였지만, 성현을 모시는 내 마음은 작가의 심정으로 일했다. 일을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추석맞이의 마지막 날이며 가을 석전제를 준비하는 일이다. 깔끔히 다 하고 난 뒤를 돌아보니 내 마음마저 깨끗하고 존경심에 성스러움마저 깃들고 보람이 앞서더라. "
** 홍재석 회장님. 혼자서 고생 많으셨어요. 병 나지 않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작업을 거들어 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