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포 갯가로
십일월 둘째 일요일이다. 두 주 연속으로 일요일에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지난 주 일요일은 농어촌버스를 타고 진북 상평으로 갔다. 종점 못 미쳐 미천마을에서 부재골로 올라 의림사로 내려섰다. 이슥한 가을 산마루에 핀 산국과 구절초를 완상했더랬다. 이번 주는 산골이 아닌 갯가로 나가볼 참이다.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구산면 옥계로 가는 60번 버스를 탔다.
산골로 가는 여느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났다. 시장을 봐 가는 할머니와 시제를 지내려 가는 노인이 탔다.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지구를 지났다. 교외에 새로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버스는 덕동 유산삼거리에서 수정을 지나 백령고개를 넘어 옥계 입구에서 내포로 들어갔다. 떡 방앗간 보자기를 든 시제 가는 노인은 내포에 선산이 있는지 거기서 내렸다.
내포에서 반동으로 가질 않고 옥계로 향해 나아갔다. 옥계는 마창대교 바깥 합포만으로 진해만과 연결되는 길목이다. 진해 군항과 마주한 어항으로 겨울엔 대구가 잡히고 철 따라 자연산 바닷고기들로 생계를 잇는 곳이다. 수정 앞바다는 홍합 양식이 유명하고 진동만에는 미더덕과 오만디를 많이 양식한다. 옥계와 원전 일대는 양식보다 자연산 어로작업과 낚시터로 알려졌다.
포구엔 어로를 나가지 않은 고깃배가 여러 척 묶여 있었다. 그 가운데 시동을 끄지 않은 한 척은 금방 포구로 귀환한 어선인 듯했다. 젊은 어부가 금방 잡아온 활어를 트럭 물칸에 옮겨 실었다. 어부에게 옮겨 담은 고기 어종이 뭔지 물었더니 쥐치라고 했다. 포구 곁에 방치된 폐교 자리는 말끔하게 정비해 마을 복지관으로 탈바꿈이 되어갔다. 포구 건너는 지역 대학 연수원이었다.
포구 끝 별장횟집 근처는 낚시꾼들이 몇 보였다. 나는 해안선 따라 생긴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섶은 철 늦게 제초작업을 해 시든 풀잎이 보였다. 칡넝쿨이 조경수를 덮어 상당수 나무들이 고사하고 있었다. 어디나 무성한 칡이 숲을 헤치는 주범으로 골칫거리였다. 해안 따라 가는 언덕 아래는 진해만이었다. 뒤로는 저 멀리 마창대교가 아스하고 바로 건너편은 해군사관학교인 듯했다.
임도가 끝난 지점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찾으려니 난감했다. 멧돼지가 경운기 로터리가 논밭을 파 일구듯 샅샅이 뒤져 놓았다. 제법 큰 돌덩이도 보이더미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집어 놓았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고, 덩치가 큰 녀석의 소행인 듯했다. 헤집어 놓는 흙더미에서 바닷가로 내려서는 들머리를 찾아냈다. 개옻나무가 빨갛게 단풍으로 물든 숲을 지났다.
갯가에 닿으니 바다는 윤슬로 반짝였다. 양식장 부표가 뜨고 갯바위가 드러났다. 양식장으로 작업을 나선 어선이 한 척 물살을 가르면서 지나갔다. 내가 가끔 산책을 나섰던 인적이 드믄 난포 갯가였다. 봄이나 여름엔 틈이 나질 않았고 가을이나 겨울에 들렸던 연안이어다. 멀리 거가대교 연륙교 구간이 보였다. 작은 섬이 뜬 저편은 거제 장목 황포 연안이고 칠천도 옥녀봉이었다.
전에는 난포 갯가로 나왔을 적 거가대교와 거제도를 예사로 생각했다. 그 섬이 올봄부터 내 근무지가 될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 아시아 물개라던 조오련이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터 박태환정도라면 헤엄쳐서 건널 거리였다. 난 일요일 늦은 시간 창원 팔룡동 터미널에서 고현행 시외버스를 타고 거제로 건너간다. 주중 닷새를 거기서 머물다 금요일 일과를 마치면 창원으로 복귀한다.
갯바위에서 거제 바다를 응시하면서 가져간 김밥과 곡차를 비웠다. 해안선 따라 걸어 난포로 향했다. 산언덕엔 노란 산국이 가득 피어 있었다. 진한 향기는 감국도 해국도 아닌 산국이었다. 아주 외진 곳인데 한 젊은이가 낚시 장비를 둘러메고 다가왔다. 내가 아까 앉아 쉬던 그 자리가 낚시 포인트였던 모양이었다. 난포에서 종점 원전을 출발해 시내로 가는 62번 녹색버스를 탔다. 19.11.10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49D505DC7B1B245)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2CE475DC7B1BD0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