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블로그>Alexandria Magna
로마인들은 건강한 마음이 곧 건강한 신체로 연결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에게는 건강을
유지한다면, 질병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많은 로마인들은 의
사에게 보다는 건강을 유지하는데 돈을 더 많이 투자하였다.
“하루 중 일부를 몸 관리를 위해 두어야 한다. 특히, 식사 전에는 항상 충분한 운동을
해야 한다.” -켈루스(Celcus)유명한 로마의 의학자)
로마인들은 질병이 자연적인 원인과 함께 오폐수로 인한 건강 악화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 제국의 공중 보건 체계를 개선하고자 하였고 이에 따라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혜택이 제공되었다.
부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군인처럼 건강이 필요했다. 이런 점에서, 로마인들은 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제공한 최초의 문명이었다.
로마의 도시, 마을, 요새들은 건강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지어졌다. 로마인들은 적절한 장소 뿐만 아니라 적절치 않은 장소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집이나 농장을 지을 때는, 건강에 좋은 바람이 부는 숲이 우거진 언덕의 아랫부분에 짓도록 하여야 한다.
주변에 늪이 있는 곳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이 그곳에서 번식하므로 주의해야한다.
이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며 입과 코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 심각한 병을 유발한다.”
-마르쿠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로마시대의 저술가)
“무더운 여름 동안 습지는 유독한 증기를 내뿜으므로 건물 근처에 습지가 있어서는 안된다. 습지는 우리를 향해 큰 무리를 지어 날아오는 해로운 침을 가진 동물을 만든다.”
-루시우스 콜루멜라(Lucius Junius Moderatus Columella, 로마시대의 농업 관련 저술가)
로마인들은 말라리아 모기의 번식지를 없애기 위해 습지의 물을 빼냈다. 카이사르는
코데탄 늪(Codetan Swamp)를 없애고 그 자리에 숲을 만들었다.

군인 없이는 나라가 무너질 수 있으므로 로마인들은 그들의 군사들의 건강에 큰 신경을 썼다.
군인들에게는 깨끗한 물만을 쓰고 건강을 유지할 것이 강조되었다. 지휘관들은 각 장교들에게 늪에 너무 가까운 곳에 부대를 세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며 늪지대의 물을 마시는 것은 엄격히 금해졌다. 군인들이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그 지역에 있었을 질병에 걸릴 것이라 생각해 이동하여 다녔다.
깨끗한 물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우리는 샘을 찾고, 이를 선택함에 있어 시민들의 건강을 염두에 두고 매우 주의해야 한다.”
-위트루위우스(Vitruvius), 로마의 건축가.
도시, 마을 요새들은 샘 가까이에 지어졌다. 하지만 로마의 도시들과 마을들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들은 더 먼 곳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깨끗한 물의 필요성도 증가하였다. 납 파이프는 너무 약했고 청동 파이프는 너무 비쌌기에 대량의 물을 파이프를 통해 끌어오려는 시도는 불가능했다.
로마인들은 철 파이프를 주조하는 기술을 몰랐다. 물을 파이프로 옮기는 것은 어려웠으므로 물을 육지를 통한 관으로 끌어오기로 하였다.
물이 도시에 도착하면 이는 작은 구리관이나 도자기 관으로 흘러들어갔다. 물이 일정한 속도(느린 속도)로 흐르도록 하기 위해 경사면에 도관을 지었다. 계곡을 지날 때는 수로를 통해 운반했다.

이런 수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갈리아 남부의 네마우수스(현재 님Nimes)에 있는 가르교가 있다.

외르강에서 흘러나온 물을 50Km 거리를 터널을 통해 물을 운반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비교적 작은 언덕이 필요했다. 로마는 제국의 수도로서 안정적인 물의 공급이 중요했다. 이는 서기 97년에 로마의 수자원 책임자로 임명된 율리우스 프론티누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로마에 공급된 수로의 하루 공급량은 약 1억리터에 달했다.
개인 위생 또한 로마인들의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의 유명한 공중 목욕탕은
개인 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목욕탕은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사용했다.
로마제국의 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에페소스, 로마, 스미르니, 네아폴리스, 루테시아 등등) 보통 대중 목욕탕이 있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스(로마인들에게는 Aquae Sulis라 불렸다.)이다. 입장료는 매우 쌌다. 보통 1 쿼드란스(로마의 청동화) 낮은 가격은 누구나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네카의 글에서, 로마인들이 목욕탕을 짓는데 많은 돈을 썼다는 것을 알 수있다.
세네카는 커다란 거울과 대리석으로 덮인 벽에 은빛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욕조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평민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네카
부자들의 목욕탕에는 폭포가 있었다. 심지어 아픈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목욕을 장려하였다.
로마의 집과 거리에도 화장실이 있었다.
다른 문화에서도 화장실을 사용했으나 그것들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서기 315년 당시 로마에는 144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었고 이들은 수세식이었다.

모든 요새들 조차도 화장실이 있었다. 이러한 화장실 때문에 효과적인 배수 시스템이 필요했다. 저술가였던 플리니는 많은 로마인들이 로마의 하수구가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곱 개의 강이 도시를 통과하도록 설계되었고 하수구에서 나오는 오물들을 흘려보냈다. 위생의 중요성은 군병원까지 확대되었다.
당시 군병원은 배수와 하수처리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부상병들이 위생적인 환경에서더욱 빨리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첫댓글 귀한정보 감사합니다, 점점 추워지는 요즘 손씻는데에도 게으름피우지 않도록 해야겠어요^^배워갑니다.
Good
잘 읽었습니다~
정말 2천년전 문명수준이 19세기 수준이었죠 그러고보면 인류 문명은 1900년동안 허비하고 후퇴한것 로마의 수술기구 보면 지금것과 거의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