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시(詩)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으며
"시를 읽으면 삶이 맑아진다"고 말했다.
"맑게 갠 청명한 가을하늘 덕에 일상이 흥겹습니다.
빨래를 빨랫줄에 널며 혼자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읊기도 합니다. 두런두런 시를 외면
무뎌진 감성의 녹을 벗겨낼 수 있고,
새삼 사는 일이 고마워집니다."
▲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있던 13일 이해인 수녀가
성 라자로마을 부속 성당에서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작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전기병 기자
┗━☆ 3월의 바람속에☆━┓
차갑고도 따뜻한 봄눈이 좋아
3월의 눈꽃속에 정토로 떠나신 스님
"난 성미가 급한 편이야"하시더니
꽃피는 것도 보지않고 서둘러 가셨네요
마지막으로 누우실 조그만 집도 마다하시고
스님의 혼이 담긴 책들까지 절판을 하라시며
아직 보내드릴준비가 덜 된 우리 곁을
냉정하게 떠나가신 야속한 스님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 정화시키려
훨훨 타는 불길속으로 들어 가셨나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중생들을 깨우치 시고자
타고타서 한 줌의 재가 되신 것인가요
스님의 당부처럼 스님을 못 놓아 드리는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할까요
타지않는 깊은 슬픔을 어찌할까요
많이 사랑한 이별의 슬픔이 낳아준 눈물은
갈수록 맑고 영롱한 사리가 되고
스님을 향한 사람들의 존경은 환희심 가득한
자비의 선행으로 더 넓게 이어질 것입니다
종파를 초월한 끝없는 기도는 연꽃으로 피어나고
하늘까지 닿는 평화의 탑이 될 것입니다
하얀 연기 속에 침묵으로 잔기침하시는 스님
소나무 같으신 삶과 지혜의 가르침들 고맙습니다
청정한 삶 가꾸라고 우리들 재촉하시며
3월의 바람 속에 길 떠나신 스님 안녕히 가십시오
언제라도 3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십시오,우리에게
[이해인 수녀의 법정스님 추도사]
(사)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 중앙사무국은
11일 법정(法頂)스님의 원적후 이해인 수녀가
보내온 추모글을 공개했다.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는 불교계와 천주교계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많은 교류를 해왔다. 두 사람 모두 암투병이라는
공통의 고난속에서도 종교적 깨달음을 담은
맑은 글로 독자들을 감동시켜왔다.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은 이날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세. 법랍 55세.
이해인 수녀의 추모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
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
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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