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강 문 석
블라디보스토크는 도시 규모에 비해 기차역 건물이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크기로 역을 짓다보니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驛舍는 엷은 녹색바탕에 러시아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건축물로 제정러시아시대의 영화가 고스란히 담긴 건물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로 떠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점이자 종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 누구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광활한 러시아를 달리고 싶은 낭만을 꿈꾸게 된다. 그런 매력에 끌려 매년 1억5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열차에 오르고 있을 것이다. 과거 전쟁 물자를 싣고 달리던 기차가 이제는 설렘과 낭만을 품은 여행자를 싣고 달린다.
1912년 완공된 기차역은 역으로 들어가거나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구름다리를 통과하도록 만들어졌다. 사흘 동안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서 일행은 매일같이 역 부근을 배회했다. 역 건너편 경사진 언덕엔 레닌 동상이 그리고 영화배우 율 브리너가 태어난 집이 역 가까이에 있어서였다. 구소련시절에 러시아 전역에 세워진 레닌 동상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이곳에만 남겨둔 것이 겨우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가이드가 말했다. 러시아에는 정말 동상이 많다고.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있는 동상도 누구의 동상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율 브리너 생가 앞에도 석상이 서있는데 어린 시절에 부유했던 그의 집안은 공산혁명으로 몰락하였고 연해주와 북한을 떠돌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세기의 배우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도 검색을 했다. 그 바람에 짜증이 나서 정말 못 말리는 러시아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이쪽에서 웃어도 그들은 결코 웃지 않는다. 상냥하게 잘 웃는 일본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그래선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란다. 물론 러일전쟁에 대한 원한이 사무친 때문일 터이다. 이들은 국토가 서로 붙어있는 중국 사람도 싫어한다. 일본과 중국에 비하면 한국 사람에겐 완전히 파격적이다. 꼬레아! 하면서 무조건 좋아한다. 역에서는 검색대만 통과하면 그 안은 자유로운 공간이고 바로 바다가 나타난다. 바다엔 초대형 크루즈가 정박하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하얀 크루즈 머리 부분은 기차역 건물의 꼭대기로 보인다.
역에는 바다 쪽으로 운동장처럼 널따란 공간이 마련되어 크루즈와 거의 붙어 있었다. 이곳에다 초로의 여인은 자신이 그린 풍경화를 옆으로 길게 전시하여 팔고 있었다. 나는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가 땀 흘려 그린 작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는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역에서 내려다보니 크루즈 승객이 시내관광을 하고 돌아오는지 아니면 새로운 손님인지 연신 사람들이 크루즈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러시아 미녀들이 공주처럼 꾸미고 나와서 크루즈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 나선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1차로 예약했던 3박4일 일정은 희망자가 적어 취소되었다. 그러곤 바로 2박3일짜리 상품을 발매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푹푹 찌는 여름 폭염을 피해 탈출하려다가 취소되었던 터라 곧바로 나섰다. 무엇보다 러시아 대문호들의 소설 속 무대이기도 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렸다. 하지만 오늘 열차 객실은 침대칸이 아니라 목재로 만든 일반용 의자로 문학작품 속 횡단열차 운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 기차역은 시베리아 철도의 동쪽 끝으로 여기서부터 모스크바까지 9,288킬로미터의 여행이 시작된다. 따라서 역은 동토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물론 열차를 타고자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동북아시아 여행객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열차에 오르면 모스크바까지는 꼬박 7박8일이 걸린다. 열차의 침대칸도 3등급으로 나뉜다. 1등석은 2개의 침대가 마주보고 놓여 낮에는 침대를 소파로 사용할 수 있다.
창가에 꽃이 장식되어 있고 질 좋은 카펫도 깔려 있다. 2등석은 2단 침대를 마주보게 설치한 4인용 객실인데 침대는 접히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도 없다. 3등석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마주보는 침대와 통로방향의 침대가 6명에서 9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1등석 2등석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면 어색한데 3등석은 여럿이 함께 사용하므로 오히려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여행이라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12시간 침대칸을 타볼 수 있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우리네 인생은 기차여행과 닮았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바로 이 기차를 탔고 기차표를 끊어준 사람은 부모님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어느 역에선가 우리를 남겨두고 홀연히 내려버리는 부모님이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이들이 기차에 오르고 내리며 그들과 또한 이런저런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기차여행의 미스터리는 우리가 어느 역에서 내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고 서로 다른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어느 역에선가 우리가 내려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인생이라는 기차를 함께 타고 여행했던 많은 사람들과도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시발역에서 출발하면서도 열차표를 역에서 끊지 않고 열차 내 여자승무원에게 의뢰했다. 승무원에게 표를 구매하는 경우는 중간에서 환승하는 승객들인데 가이드는 승무원을 이용하면 더 편리하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열차에 올랐을 때 승무원은 출입구에 붙은 2인용 의자에 혼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우리 부부와 마주앉은 승무원이 잠시 눈을 떴을 때 사진촬영을 부탁했더니 싫은 내색 없이 찍어주었다. 승무원은 가방에서 육중하게 생긴 단말기를 꺼내어 30명 승객 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인들의 업무처리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절대 곱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금이 동일한 단체 손님이라면 열차표 한 장에 끊으면 편리할 것을 30장을 모두 발행했다. 승무원은 두루마리로 출력된 승차권을 나에게 넘겼고 가이드가 휴대하기 편하도록 접으면서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차역을 나서서 구름다리 중간지점에서 열차승강장으로 내려서면 제2차 세계대전에 쓰인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플랫폼이 항상 개방되어 있어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들다보니 소문이 나서 명소가 되었단다. 증기기관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깨끗한 상태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만큼 매력을 느끼면서 찾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란 블라디보스토크 광고카피는 어느 항공사가 만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건축양식이나 거리 분위기가 유럽과 흡사하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북한과 서로 통하는 러시아항공이나 시베리아항공은 인천에서 곧장 블라디보스토크로 직행하여 2시간에 닿으니 이런 광고까지 등장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항공사들은 중국으로 우회하다보니 항공시간은 40분이나 더 늘어난다. 그러고 오늘 처녀 출항한 부산의 저가항공은 일본 도야마와 홋카이도에 거의 붙을 정도로 빙 돌아 항공시간을 늘였다. 백야의 나라에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든 시각은 밤 10시에 가까웠다. 우리 일행이 탄 열차는 아무르 강변을 따라 북상하면서 작은 시골 역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정차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불리는 어둑한 공간의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쳤거나 도시에 장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이었다. 반세기 전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아있는 풍경이었다.
첫댓글 멋쟁이님 좋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기행문 읽으면서 못가본 곳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잘 보고 풍경도 그만입니다
늘 동경하던 여행지였지만 짧은 사흘 동안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러시아와 우리 한국만 호칭을 그대로 부르고 중국은 海參葳, 일본은 우라지오스토쿠(줄여서 우라지오 海塩), 북한은 울라지보스또크.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도시명칭이 너무 길다고 '블라디'로 줄여서 부르지만 이도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러시아말로 '블럇'은 우리말 '씨팔'과 같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