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663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3 : 경상도 황부자 전설이 서린 황지
‘낙동강 1) 에 오리 알 떨어지듯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낙동강에 오리 알이 떨어져도 흔적이 없듯이, 일을 했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으로 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강물은 감자를 심지 않네. 목화도 심지 않네. 심는 사람은 잊히지만, 유장한 강물은 흘러서 갈 뿐”이라는 노래처럼 세세천년만년을 흘러온 강물은 그침이 없이 유장하게 흐른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길고 남한에서 제일 큰 강이다. 낙동강은 매봉산(梅峰山) 천의봉(天衣峯) 너덜샘에서 발원하는데, 그 물이 지나가는 태백산 자락의 태백에 연못 황지(黃池)를 천연적으로 만들어낸다. 낙동강 원류의 하나가 되는 이 곳에 ‘황 부자 전설’이 서려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억불산에 전해지는 며느리바위 설화와 매우 비슷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황 부자가 마구간을 치우고 있었는데 태백산의 스님이 시주를 청해왔다. 황 부자는 곡식 대신 쇠똥을 던져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민망하게 여겨 시아버지 모르게 쌀 한 되를 시주하고 사과를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며느리더러 “이 집은 곧 망할 것이니 그대는 나를 따라오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마라” 하고 당부하였다. 며느리가 얼마를 걸어서 구사리(九士里) 산꼭대기에 이르자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며 천지가 진동하였다. 놀란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니 황 부자가 살던 집이 못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며느리는 아기를 업은 채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황지의 물은 한국의 명수(名水) 100선에 들고 양이 풍부하며 맛이 좋아 1989년까지만 해도 태백시 상수도의 수원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척시 하장면에 위치한 광동댐의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택리지』, 삼척의 향토 역사지인 『척주지(陟州誌)』에도 황지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원래의 못은 지금의 두 배쯤 되었고 주변에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높고 낮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작은 못일 뿐이다.
황지는 수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져도 얼지 않으며 아무리 큰 홍수나 가뭄이 와도 수량이 줄거나 넘쳐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최대의 석탄생산지인 황지, 도계, 장성, 철암을 연결하는 태백산 지구의 지하수가 황지로 솟아 오른 것이다.
황지낙동강은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하는데, 그 물이 지나가는 태백산 자락의 태백에 연못 황지(黃池)를 천연적으로 만들어낸다.
천삼백 리 길을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은 삼국시대에는 황산강(黃山江), 황산하(黃山河), 황산진(黃山津)으로 불렸다. 『경상북도지명유래집』을 보면 낙양리(洛陽里)는 중국의 낙양성을 본떠서 붙여진 이름으로 낙양의 동쪽을 낙동, 서쪽을 낙서, 남쪽을 낙평, 북쪽을 낙원이라 한다. 상락(上洛, 상주의 옛 이름)이 부근에 있었으며, 여기에 조선시대의 교통 제도인 역(驛)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낙동면과 낙동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곳을 둘러 흐르는 낙동강의 이름을 따서 낙동면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낙양(洛陽, 상주의 옛 이름)의 동쪽에 있으므로 낙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가락(駕洛, 가야)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낙동강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불국사 석가탑
정약용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낙동강을 이렇게 설명한다.
황수(黃水)는 태백산 황지에서 시작한다. 서남쪽으로 흘러 3백 리쯤에 있는 함창에 닿고 동으로 굽이져 남쪽으로 또 3백 리를 흘러서 함안에 이른다. 북향으로 꺾어 동류(東流) 백 리, 김해의 동북 황산포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낙동이라 함은 가락의 동쪽이라는 말이다.
한편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낙동강에 관한 부분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낙동이란 것은 상주의 옛 이름인 낙양의 동쪽이란 뜻이고, 현재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시 천의봉의 너덜샘이다. 봉화, 안동을 지난 물길이 의성, 예천, 상주를 거쳐 선산칠곡을 지나 대구에 이른다. 창녕을 지나 밀양, 양산에 접어든 낙동강은 김해와 부산 사이를 흘러 부산시 사하구 을숙도에서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변에서 나고 자란 시인 안도현은 낙동강을 「다시 낙동강」이라는 시로 노래하였다.
아우야
우리가 흰 모래밭 사금파리 반짝이는 소년이었을 때 앞서거나 뒷서거니 땅으로만 기어 흐르던 낙동강이
오늘은 저무는 경상도 하늘 한 끝을 적시며 흐르는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로
강물이 하나의 회초리라는 것을 우리 어린 종아리에 감기던 아버지 싸리나무 푸른 매
강물도 하회 부근에서 들판의 종아리를 때리며 가는구나
아우야
아버지 수십 년 삽질로도 퍼내지 못한 낙동강이 아직 철들지 않은 물고기들 하류로 풀어 보내며
조심하여라 조심하여라 웅얼대는 소리 듣느냐 아버지 등줄기에 흐르던 강물 보았느냐
그 곳을 거슬러 올라 헤엄치던 어린 날 우리는
그렇지 한 마리씩 빛나는 은어였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 낙동강에 나갈 때 아우야 강물이 스스로 깊어진 만큼 우리도
나이가 부끄럽지 않고 서글프지 않은 물줄기 이루었을까 저무는 강가에 아버지가 되어
푸른 매가 되어 돌아와 설 수 있을까 아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