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어머니
조경숙
“엄마! 저 최종합격했어요!” 1차, 2차 면접에 이어 3차 세미나에 참석 후 열 흘 만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이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기쁨의 전화를 끊자마자 이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엄마가 돌아가셨데...” 하며 우는 것이 아닌가. 기뻐할 새도 없이 짐을 챙겨 친정집으로 향했다.
돌아가시기 4일 전에 병원에서 퇴원을 하신 어머니를 친정집에서 병간호하러 갔을 때 집근처에 있는 전봇대위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었다. 감은 잡았지만 그래도 2주 정도는 더 사실 줄 알았다. “내가 네 맘을 알아주질 안했다. 정있게 잘했는데 못해줘서 항상 걸린다. 미안하다 용서해 다오.” 하며 용서해달라던 어머니의 말씀에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그동안 생각의 차이로 소통이 안 되어 서운하였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서 최선을 다했더니 끝내는 나의 마음을 아셨던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데 아들의 합격발표가 더 일찍 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럼 어머니가 기뻐하시며 눈을 감았을 텐데...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라는 말이 뇌를 스치기도 했다. 외손자가 출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어머니는 우리 손자가 서울대 학생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였는데 하루 한 날에 기쁜 소식과 슬픔소식이 겹치니 “오늘은 이상한 날이네요.” 라고 하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의 선물인가 하는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전날에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다. 천사가 하얀 꽃마차를 끌고 와서 어머니에게 타라고 했으니 천국으로 가신 것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아들딸 오남매의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가 계신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왔다. 오신 분들에게 환영이라도 하는 듯 무겁고 어둡게 느껴지는 장례식장은 하얀 꽃들로 장식한 화환들이 이름표를 달고 양쪽 행렬로 폼을 재고 서있다. 사장 두 명에 사위와 딸이 공무원 이다보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충북도지사도 오시고 충북대학 총장님도 오셨다. 문상하는 인사문화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 인해 애도하는 마음이 더욱 발휘하는 것만 같다.
오남매가 다니는 각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모시고 오셨다.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까지 드려주니 얼마나 뿌듯해하시며 좋아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가족과 친척들이 지하로 내려갔다. 영혼이 떠난 어머니가 볼터치 화장을 하고 똑바로 누워계신 채로 주무시고 있다. 어머니의 인상이 어쩜 그리도 편안해 보이시는지 육신은 눈에 보이지만 영혼은 분리되어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 느껴졌다. 기도가 끝나고 듣지도 못하는 귀에 바짝 대고 “엄마 잘 가요~”라고 말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와 가정을 일으켜 세우신 어머니는 기분파이며 만능 탤런트이셨다. 여자로서 맵시, 솜씨, 마음씨 다방면으로 못하시는 것이 별로 없는 반면에 아버지는 세상물정을 모르셨기에 아버지 뒷바라지 등 모든 일에 몸을 사리지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까지 정을 주며 사셨기에 장례식장 오신 동네 분들은 어머니가 그립다며 2~3일 간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리시니 인정 있게 사신 것이 증명이 된 날이기도 하였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봐야 안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기도 하였다.
평생동안 농사만 짓고 사시면서 교회 일까지 담당하다보니 남들보다 배나 바쁘게 사셨다. 이런 수고의 댓가라고 할까 어머니는 마지막 생애에서는 주의 종을 참 잘 만났다. 수술 여러 번에 암수술까지 병원 생활에 기력이 없어 마음과 영혼이 지쳐 있었다. 다리에 힘도 없어 잘 걷지도 못하셨는데 퇴원하자마자 새로 부임해 오신 목사님과 어머니는 신앙의 협력자가 되었다. 능력 있는 주의 종이 오시기를 사모 하였다며 목사님의 사랑에 푹 빠지셨다. 자녀들까지 기도해 주신다며 어머니는 이 목사님을 만나고부터 침체된 믿음이 점점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육신의 장막은 해가 갈수록 수술 후유증과 약물로 인해 자꾸만 쇠약하기만 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어 요양병원은 안 가신다고 하시니 먼 곳에 사는 자식들을 대신해 제가복지를 집으로 신청 하였다. 그러나 답답한 어머니의 마음의 복지는 역시 목사님이었다. 요양사가 집에와서 도와준다고 해도 새벽과 밤늦게는 목사님께서 하루에 한 두 번씩 찾아오셔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니 어머니는 복이 많은 분이다. 어느 때는 목욕과 기저귀까지 갈아 주시며 자식 노릇까지 담당해 하니 나는 시골에 갈 때마다 과일 상자로 감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장례하는 기간 내내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어느덧 훌쩍 자란 손자 손녀들의 봉사하는 손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발인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걸 어쩌나... 우산까지 챙겨들고 차에 올랐다. 산으로 모시기 전에 어머니께서 몸담고 다니던 교회에 머물러 예배를 한 시간 가량 드렸다. 목사님께서 축도 하실 때 막내 제부가 환상을 봤단다. 사슴이 끌고 온 꽃마차에 어머니를 태웠는데 분홍한복을 입고 손에 방울을 흔들고 환한 미소로 위에서 웃고 계신 장면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니 천국가신 것 같아 슬프고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비가 그쳤다. 모든 과정을 어머니가 지켜보는 것만 같다. 장례식 내내 구름이 더위를 피해주었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일하기 좋은 날씨로 변했다. 동그란 봉에 잔디까지 입히니 어머니의 안식처가 단장이 되어 예쁘기만 하다. 대학총장님이 보내준 꽃바구니까지 있으니 쓸쓸하지는 않으시리라.
3일 후에 어머니가 계신 곳을 가봤다. 시들지 않은 꽃바구니가 어머니를 지켜주는 것만 같다. 촉촉한 황토 흙에 초록색 잔디가 곧 뻗어나갈 기세다. 전망 좋은 명당자리에서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 이생에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주님나라에서 편히 안식하소서! 사랑합니다.
첫댓글 교수님을 비롯하여 회장님, 사무국장님, 선생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 목사님께서 축도 하실 때 막내 제부가 환상을 봤단다. 사슴이 끌고 온 꽃마차에 어머니를 태웠는데 분홍한복을 입고 손에 방울을 흔들고 환한 미소로 위에서 웃고 계신 장면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니 천국가신 것 같아 슬프고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일 후에 어머니가 계신 곳을 가봤다. 시들지 않은 꽃바구니가 어머니를 지켜주는 것만 같다. 촉촉한 황토 흙에 초록색 잔디가 곧 뻗어나갈 기세다. 전망 좋은 명당자리에서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 이생에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주님나라에서 편히 안식하소서! 사랑합니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쿨합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듣지도 못하는 귀에 바짝 대고 “엄마 잘 가요~”라고 말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서울대학 아드님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어머님의 소천하심 . 희비가 교차하는 묘한 운명의 시간 참 안타깝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시간 병간호하면서 바쁜시간에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주신 선생님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