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1
수능을 하루 앞둔 십일월 둘째 수요일이다. 며칠 전부터 전 학년 전 교실이 수능 고사장 시험실 준비에 들어갔다. 교육부와 도교육청 매뉴얼 따라 표준화된 시험실이 마련된다. 행정실 주무관은 교실과 복도 벽면 얼룩을 지우고, 환경미화 도우미는 화장실 청소에 더 신경 썼다. 학생들은 사물함을 비우고 담임은 책걸상 상태를 점검했다. 학교 관리자는 전체를 세심하게 점검했다.
사전에 오간 공문 따라 전교사들은 수능 감독관으로 위촉 되게 마련이다. 난 작년까지 전임지에서 수능 감독에 관여했다. 언제부터인가 고사실 감독관이 아닌 본부 요원으로 밀려나 지원부서 일을 맡았다. 그것도 해마다 업무 부담이 경감되었다. 복도 감독에서 대기실 감독으로 밀려났다. 대기실 감독에서 고사장 외곽 순시를 맡겼다. 고급 인력치고는 단순 노무를 맡아 어색했다.
올봄 거제로 학교를 옮겨왔다니 나이든 교사라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담임만 맡기지 않아도 다행인데 말이다. 학기 초 약간의 업무가 배정되었다만 교무부장이 나서 내게 맡긴 업무를 젊은 동료에 나누어주었다. 동아리나 청소지도를 맡은 구역도 없었다. 요일별 짜인 수업만 꼬박꼬박 들어가면 되었다. 한 주 열여섯 시간이니 하루 서너 시간 배정된 셈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동료가 육십 명 넘는다. 수능일이면 그 가운데 일부가 우리 학교 감독관과 본부 요원으로 남겨두고 다수는 관내 다른 학교로 흩어져 감독관 업무를 수행한다. 기간제 교사까지도 감독에 투입되기에 면제자는 드물다. 수험생 자녀를 둔 자, 만삭인 임부, 그리고 나이 예순 이상 교사다. 어느덧 세월 따라 나는 수능일 감독에서 밀려나 자택에서 편히 쉬게 되었다.
감독관에서 면제되어도 단서가 붙었다. 자택에 대기하다 감독교사 유고가 발생하면 대체하는 예비 인력이라고 했다. 몇 명인지 모른다만 우리 학교에 배정된 감독관들 가운데 수능 당일 건강이나 신상에 무슨 일로 업무를 수행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대체 감독관이 되는 셈이다. 어느 고사장에서나 그런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는 드물어 자유로운 영혼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창원에 복귀해 바쁜 일정이었다. 금요일 오후 치과 진료를 받고 같은 아파트단지 퇴직 선배를 만나 곡차를 가볍게 들었다. 토요일은 새벽열차를 타고 진영을 지난 한림정에 내려 화포천을 찾았다. 습지 물안개와 갯버들 사이 떠오르는 일출을 사진으로 담고 북면 지인 농장을 찾아 밀린 안부를 나누고 나왔더니 친구부터 연달아 전화가 와도 날이 저물어 나가질 않았다.
일요일 아침나절 구산 갯가로 나갔다. 난포 해안을 걸으면서 장목과 칠천도를 건너다보고 서둘러 귀가 거제로 돌아왔다. 토요일 잔을 들자고 전화가 온 친구는 창원에 살아도 김해로 출퇴근한다. 그도 나와 같은 처지라 주중 창원으로 건너오라고 닦달이다. 오는 주말 뵙자니 그럴 사정이 못 된단다. 시제 지내려 진주로 가야해 저녁자리도 이튿날 아침 음주단속으로 금할 처지란다.
창원 친구에게 좀 미안했지만 수험생 예비소집일 오후와 수능 당일 거제에 머물기로 했다. 술자리를 가지려고 먼 길을 오가려니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친구에게 전화와 문자를 넣어 한 주 건너뛰어 다음 뵙자고 양해를 구했다. 그럼, 거제에서 보낼 소일거리가 생각해 두어야했다. 수요일 오후는 낙조가 아름답다는 사등으로 나가고, 목요일은 구조라에서 학동으로 걸을까 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여섯 시 와실을 나섰다. 바깥은 날이 밝지 않아 캄캄했다. 골목을 빠져나가 연사삼거리로 나갔다.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날이 밝아오는 무렵이 되니 면소재지 부근에선 어제와 달리 안개가 번져나갔다. 일교차가 큰 이른 아침 보는 풍경이었다. 연초천 산책로 따라 들녘을 빙글 둘러 학교에 닿았다. 현관 형광 자판엔 D-1이었다. 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