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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는 시불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1. 酬張小府(수장소부) 응대할수,마을부 - 장소부에게 답을 보내다
晩年惟好靜(만년유호정)생각할유 늙어가며 고요한 것만 좋아하고
萬事不關心(만사불관심)관계할관 세상일에 관계하고 싶지 않다네
自顧無長策(자고무장책)돌아볼고,꾀할책 스스로 돌아봐도 뽀죽한 수도 없으니
空知返舊林(공지반구림) 그냥 옛 숲으로 돌아온 것이라우
松風吹解帶(송풍취해대)불취,풀해,띠대 솔바람은 풀어 놓은 옷깃 스치고
山月照彈琴(산월조탄금) 산달 비추면 거문고를 탄다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 그대가 궁통의 이치 물어오니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깊을심 어부가를 부르며 깊은 물로 들어가네.
* 酬(수) :보내준 것에 대한 보답 * 少府(소부) : 벼슬 이름. 주로 도적 잡는 일을 맡는다. *長策(장책) : 좋은 계책이나 책략. * 彈(탄) : 켜다. * 君(군) :그대. 친구, 君問 : 그대가 묻다. * 窮通(궁통) : 궁은 통하지 못해 곤궁하다는 뜻이고 통은 순조롭게 잘 풀려서 높은 벼슬에 오른다는 뜻이다. * 浦(포) : 물가 또는 포구를 의미한다.
자신을 후원해주던 장구령(張九齡)이 재상으로 있을 때는 왕유 역시 정치적인 포부가 있었고 현실에 대해서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간신 이임보(李林甫)가 재상이 되어 권력을 독점하자 정직한 관리들은 잇따라 공격당하거나 조정에서 쫓겨난다. 내용상으로 본다면 이 시는 왕유가 42의 늙지도 않은 나이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한 후 쓴 작품이다.
세상사 무심한 채 ‘솔바람 불면 허리띠 풀고, 산 달빛 비추면 거문고 타는’ 자연 회귀의 삶, 시인은 만년에 들어서야 겨우 ‘고요함’을 찾았다. 젊은 시절 관리 생활에 어지간히 시달렸고, 어떻게 해야 곤궁한 처지를 벗고 영달(榮達)의 길을 가는지를 꽤 고심도 했으리라. 더이상 현실의 간난(艱難)을 헤쳐나갈 계책이 없다고 판단한 순간 시인은 고향행을 선택한다. ‘곤궁과 영달의 이치’에 노심초사했던 영혼은 ‘돌아온 옛 숲’의 솔바람과 달빛에게서 너끈하게 위로받는다. 친구 장 씨 역시 같은 고민에서 헤매고 있었던 듯 시인에게 ‘곤궁과 영달의 이치’를 물었다.
‘어부의 노래’는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후 만났던 어부와의 대화에 등장한다. 어부가 축출된 이유를 묻자 굴원은 ‘세상이 다 혼탁해도 나만은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다 취해도 나만은 깨어 있었기 때문’이라 해명한다. 이때 어부가 배 떠나며 부른 노래,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으면 되지’. 맑든 흐리든 상황에 적응해가며 처신할 일이지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는 훈계였다.
2. 山居秋暝-산속의 가을밤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빈 산에 막 비 내린 뒤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날씨는 가을날 저녁 무렵에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추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샘은 바위 위로 흐른다
竹喧歸浣女(죽훤귀완녀)떠들석할휘,빨레할완 대숲이 떠들썩하니 빨래하고돌아가는 아낙들
蓮動下漁舟(연동하어주) 연잎이 흔들리니 내려가는 고깃배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따를수,쉴헐 어느덧 봄꽃은 시들었지만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왕손은 절로 머물만 하구나
* 山居 : 산속에 사는 것으로, 여기서는 작자가 은거한 輞川(망천,바퀴테망)의 별장을 말한다.
* 竹喧(죽훤) : 대나무 숲 사이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다.
* 隨意: 계절이 바뀌어, 어느덧, 어느새 * 歇(헐): 다하다
* 王孫:의 원뜻은 귀족의 자제이지만, 여기서는 남자의 美稱으로 쓰여 왕유 자신을 뜻한다.
마지막 두 구절은 아름다운 봄경치가 사라지더라도 가을 풍경 역시 아름다워 王孫은 돌아가지 않고 산속에 머문다는 의미인데, ≪楚辭≫ 〈招隱士〉의 “왕손이여 돌아오라. 산속에서 오래 머물 수 없음이여.[王孫兮歸來 山中兮不可以久留]”라는 구절을 역으로 인용한 것이다.
3. 鹿柴(녹채)사슴녹,울짱채 - 망천20경중 하나
망천 상상도. 직업화가인 이방운(1761년) 작품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텅빈 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다만단,울릴향 다만 말소리만 들려오는데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돌이킬반,그림자영 한줄기 저녁 햇살이 숲속 깊숙히 들어와
復照青苔上(부조청태상)이끼태 파란 이끼 위를 다시 비추네.
* 鹿柴(녹채):원래 뜻은 사슴을 가둬놓고 키우는 울타리지만 여기서는 왕유가 말년에 은거한 망천장 별장 인근의 지명. 柴는 땔나무,잡목등의 뜻으로 쓰일 때는 "시"로 , 지키다,막다,울짱(말뚝따위를 죽 잇따라 박아 만든 울타리)의 뜻으로 쓰일 때는 "채"로 읽는다. * 返景(반경):경(景)은 영(影)과 같다. 해질녘 반사되어 되비치는 태양빛을 말한다.
4. 木蘭柴 (목란채)
秋山斂餘照(추산렴여조) 거둘렴 가을 산 남은 빛을 거둬들이고
飛鳥逐前侶(비조축전려) 쫓을축,짝려 날던 새들도 짝을 지어 돌아가네
彩翠時分明 (채취시분명) 빛채,푸를취,좋을시 푸른 빛이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 지더니
夕嵐無處所 (석람무처소) 남기남 가을 저녁 어스름에 사라지는구나
* 木蘭柴: 목련나무로 두른 울타리 또는 목련나무 심은 곳에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는 것
* 彩翠: 비취옥의 고운 빛, 공작의 깃 따위의 아름다운 빛을 표현 한것 * 分明: 틀림없이 or 확실하게
* 嵐=嵐氣 해질 무렵에 멀리 보이는 푸르스럼하고 흐릿한 기운
5. 辛夷塢(신이오)메울신,오랑캐이,둑오 - 목련꽃 핀 언덕
木末芙蓉花 (목말부용화) 연꽃부/용, 나무가지 끝의 부용화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꽃받침악 산 속에 붉은 꽃이 활짝 피었네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산골간,고요할적 개울가 오두막 인적 없는 곳에서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어지러울분,장차차 꽃은 분분하게 날리며 피었다 떨어진다
* 신이오(辛夷塢): 왕유의 별장 인근의 地名. 신이(辛夷)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목이다.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자목련(紫木蓮)을 가리킨다. 오(塢)는 둑(언덕)을 의미한다. 해서 신이오는 ‘신이나무가 핀 언덕’ 정도의 뜻이다.
* 紛紛: 흩날리는 모양(模樣)이 뒤섞이어 어수선함.
6. 鳥鳴澗 (조명간) 산골간 - 새우는 골짜기
人閒桂花落 (인한계화락) 한가할한 인적없이 계수나무꽃은 떨어지고
夜靜春山空 (야정춘산공) 밤이 고요하니 봄 산 텅 비었네
月出驚山鳥 (월출경산조) 달이 떠오르니 산새가 놀라
時鳴春澗中 (시명춘간중) 때때로 봄 골짜기에서 우네
○ 鳥鳴澗(조명간) : 왕우승집전주(王右丞集箋註)에 하류명(河流名)이라 한다.
○ 澗(간) : 산골짜기. ○ 桂花(계화) : 계수나무의 꽃. 목서(木犀)의 통칭이며 봄과 가을에 꽃이 핀다.
7. 竹里館 (죽리관) 마을리,객사관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그윽할유,대숲황 고요한 대숲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탄금복장소) 되풀이할복,읇조릴소 거문고 타고 다시 길게 읇조리네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속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밝은 달이 와 서로 비추네
* 竹里館(죽리관) : 망천(輞川) 별장의 승경(勝景) 중 한 곳이다.
* 幽篁(유황) : ‘篁(황)’은 대나무 숲이다. ‘幽篁(유황)’은 빽빽하여 깊고 고요한 대나무 숲을 말한다.
* 復長嘯(부장소) : 復(부)는 又의 의미이다. ‘嘯(소)’는 휘파람을 부는 것인데, 여기서는 시를 읊거나 노래하는 것을 가리킴.
그윽한 대숲 속의 탈속적인 정취를 묘사하고 있으니, 세상과 동떨어져 고적(孤寂)함이 감도는 깊은 대숲 속에서 거문고도 타고 휘파람도 불며 살며시 다가와 비춰주는 밝은 달빛과 ‘지음(知音)’의 벗인 양 하나 되어 탈속적인 정취를 즐기는 시인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 든 듯하다.
8. 過香積寺 (과향적사)
不知香積寺 (부지향적사) 향적사가 있기는 있나
數里入雲峯 (수리입운봉) 봉우리봉 몇 리 구름 드리운 봉우리를 들어왔는데
古木無人逕 (고목무인경) 늙은 나무만 서 있고 사람 가는 길 없는데
深山何處鐘 (심산하처종)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 오네
泉聲咽危石 (천성인위석) 삼킬열 개울물은 위험한 돌부리에 울리고
日色冷靑松 (일색랭청송) 햇빛은 푸른 솔에 식는다
薄暮空潭曲 (박모공담곡) 엷을박 어둠이 깔리니 계곡 물살이 텅 비듯
安禪制毒龍 (안선제독룡) 억제할제 좌선하니 꿈틀거리던 마음이 가라앉네
* 香積寺: 중국 장안의 동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절로 왕유의 과향적사로 유명해졌다
* 安禪: 고요히 앉아서 참선(參禪)함,선종(禪宗)에서 중요시(重要視)하는 수행법(修行法),세상에 있는 허상들을 다 내려놓는 것이 안(安)이며, 그 빈 것의 힘으로 그 문턱을 넘는 것이 선(禪)이다.
* 毒龍: 마음의 사나운 용,속인의 사특한 마음,망령된 마음. 번뇌.
9. 淸溪 (청계) 맑을청,시내계 - 맑은 시내
淸冬見遠山 (청동견원산) 맑은 겨울날 먼 산 바라보니
積雪凝蒼翠 (적설응창취) 엉길은,푸를창,푸를취 쌓인 눈에 푸른빛이 어렸어라
皓然出東琳 (호연출동림) 휠호,명백할연,옥림 호연히 동림을 나왔으니
發我遺世意 (발아유세의) 세속에 뜻을 두지 않네
* 蒼翠: 싱싱하게 푸름 * 皓然: 아주 명백(明白)한 모양
10. 青谿(청계) 시내계 - 푸른 개울물
1) 청계에 들어가기 전까지 경치 묘사
言入黃花川(언입황화천) 황화천(黃花川)에 들어와
每逐靑谿水(매축청계수) 매양매 매번 푸른 개울물 쫓아간다.
隨山將萬轉(수산장만전) 맴돌전 산을 따라서 만 번은 돌았으나,
趣途無百里(취도무백리) 달릴취 길은 백 리가 못갔네.
2) 청계주변이 경치 묘사
聲喧亂石中(성훤난석중)시끄러울훤 흩어진 바위돌에 물소리 요란하고.
色靜深松裡(색정심송리) 고요할정 깊은 소나무 고을, 경치는 고요하다.
瀁瀁泛菱荇(양양범릉행) 내이름양,마름릉/행 마름풀은 둥둥 떠다니고
澄澄映葭葦(징징영가위) 맑을징,비칠영,갈대가/위 물에 비친 갈대는 맑기도 하구나
3) 청계의 情懷(정과 회포) 표현
我心素已閒(아심소이한) 내 마음 본래 한가로워
淸川澹如此(청천담여차) 맑을담 맑은 시내물 담박하기 내마음 같구나
請留盤石上(청류반석상) 바라건대, 너른 바위에 앉아
垂釣將已矣(수조장이의) 드리울수,낚을조 낚시 드리우고 이렇게 살리라
* 言은 뜻이 없는 發語詞 * 黃花川(황화천) : 내(川) 이름. 섬서성 봉현 동북쪽 10리 되는 곳에 있다. * 淸溪水(청계수) : 황화천 일대의 계곡물 이름. 섬서성 면현 동쪽에 있다. 청계와 황화천 모두 진령 남쪽에 있어 산길이 험준하고 굽이가 많다. * 趣 : 뜻 취. 재촉할 촉. 벼슬 이름 추. * 趣=趨(빨리걸을추), * 趣途: 길을 가다 * 漾漾(양양) : 떠돌아다니는 모양(模樣). 흔들흔들 움직이는 모양(模樣). * 菱荇(능행) : 마름 : 마름과의 한해살이풀. 바닥의 흙 속에 뿌리를 박거나 물 위에 떠서 군생하는데, 잎자루에 공기가 들어 있는 불룩한 부낭(浮囊)이 있어서 물 위에 잘 뜨고 여름에 흰 꽃이 피며 열매는 핵과(核果)로 식용함. * 葭葦(가위) : 갈대,葭는 어린 것을 葦는 다 자란 갈대를 말한다 * 澄澄(징징) : 매우 맑음. * 淸川=青谿 * 垂釣: 물고기를 낚기 위(爲)하여 물속에 낚시를 드리움 * 將已矣=終老: 장차 생을 끝마치는 것
11. 제주로 처음 보내질 때 성 안의 친구들과 헤어지며
微官易得罪(미관이득죄) 쉬울이 미천한 벼슬은 죄를 얻기 쉬우니
謫去濟州陰(적거제주음) 귀양갈적 제주의 남쪽으로 귀양을 가노라
執政方持法(집정방지법) 거스럴방,가질지 권력을 쥔 자는 법을 주무르고
明君無此心(명군무차심) 이차 총명한 임금님은 이 마음 몰라주네
閭閻河潤上(여염하윤상) 마을안의문여/염,물하,불을윤 민가는 강가 습지대에 있고
井邑海雲深(정읍해운심) 제주 성은 바다구름 깊은 곳에 있구나
縱有歸來日(종유귀래일) 풀어줄종 설령 돌아올 날 있더라도
多愁年髮侵(다수년발침) 터럭발 오랜 근심에 귀밑머리 새어지리라
* 제주(濟州): 지금의 山東省 荏平縣) *閭閻: 백성(百姓)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
* 河潤: 강물(江-)이 땅을 윤택(潤澤)하게 한다.’는 뜻으로, 은덕(恩德)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
어느 시대나 예외가 없지만 지배자 곁에서 아첨하는 무리가 들끓어 정직한 관리는 공연히 화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명군明君’이라고 하지만 실은 당 현종을 은근히 원망하는 내용이다. 권력을 쥐고 법을 주무르던 자는 당시의 재상 이임보였다. 이런 시가 재상의 손에 들어갔더라면 귀양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 용기백배하여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12.送元二使安西(渭城曲) - 안서도호부에 사절로 가는 원씨네 둘째를 전송하며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강이름위,젖을읍 위성땅에 아침비 살짝 내려 가벼운 흙먼지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유색신) 여관집 버드나무 푸르름을 더하는구나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권하노니 그대여 한잔 술을 더 들게나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땅 벗어나면 아는 사람도 없으리니.
* 元二: 元씨 집안 둘째아들
* 安西( 안서) :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고거현(庫車縣)으로 당나라때 도호부(都護府)를 두어 국경을 지켰다.
* 渭城( 위성) : 진(秦)의 수도 함양(咸陽)을 한대(漢代)에는 渭城이라 일컬었는데 당(唐)의 수도 장안(長安)의 북쪽에 있어 서역(西域)으로 여행하는 사람을 여기서 전별(餞別)했다. * 浥(읍) : 적시다, 축축해지다.
* 輕塵(경진) : 가볍게 날리는 흙 먼지나 티끌.
* 客舍(객사) : 손님이 머무는 여관(旅館). 柳色新(류색신) : 버들잎이 비에 젖어 더욱 싱싱해진 것. 예로부터 중국에는 멀리 가는 사람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전송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위성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
* 陽關(양관) : 감숙성(甘肅省) 돈황현(燉煌縣) 서남방에 있는 관소(關所)로 서역으로 가는 또 하나의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의 남쪽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실크로드의 관문. 위성에서 양관까지는 약 1,400㎞이고, 양관에서 안서까지는 약 500㎞로 사막이 펼쳐져 있다.
* 故人(고인) :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 우인(友人).여기에서는 친구의 뜻.
워낙 유명한 이별시여서 중국에서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많은 송별시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이시는 "送元二使安西"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나라 때부터 석별의 노래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渭城曲 또는 陽關曲이라 하기도 하며, 세인들이 예로부터 이 시를 노래 할때면 아쉬운 나머지 陽關이 들어가는 마지막 구절을 3번 불렀다하여 陽關三疊이라고도 한다
13. 歸嵩山(귀숭산)높은산숭 - 숭산으로 돌아가며 시를 짓다
소림사 가는 길
淸川帶長薄,(청천대장박), 맑은 개울 긴 숲 끼고
車馬去閑閑.(거마거한한). 수레 타고 한가히 간다
流水如有意,(류수여유의), 흐르는 물은 무슨 마음 있는 듯 하고
暮禽相與還.(모금상여환).더불어여 나는 저녁 새와 함께 돌아온다
荒城臨古渡,(황성림고도),나루도 황폐한 성은 옛 나루에 접해있고
落日滿秋山.(낙일만추산). 지는 햇빛 가을 산에 가득하다
迢遞嵩高下,(초체숭고하),멀초,전할체 높고 멀어라, 숭산 밑이여
歸來且閉關.(귀내차폐관).우선차 돌아왔으니 우선 문을 잠그리
숭산(1491.7m) 소실산 등산로
50대 후반에 들어서서 쓴 시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울어진다. 숭산嵩山은 중국 5대 명산[동악인 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악인 섬서성의 화산(華山), 중악인 하남성의 숭산(崇山), 남악인 호남성의 형산(衡山), 북악인 산서성의 항산(恒山)]의 하나로 산세가 깊고 높은 명산이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는 정신의 안식처다. 벼슬을 그만두고 숭산의 품에 안기니 마음이 더없이 편하다는 뜻이다. 마지막 행의 문을 잠근다는 것은, 문을 닫고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 은거 생활을 하겠다는 뜻이다. 벼슬을 할 때는 숭산이 멀기만 했는데 직접 와보니 맑은 냇물, 긴 숲, 흘러오는 물, 저녁의 새, 황폐한 성, 옛 나루, 지는 햇빛, 가을 산 같은 것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왕유의 경우 마음은 늘 귀거래를 꿈꾸었지만 낙향해 있거나 유람을 하며 유유자적한 행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공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늘 꿈은 숭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음을 이 시가 말해주고 있다.
소림사 탑림
16. 輞川別業 바퀴테망 - 망천별장에서
不到東山向一年(부도동산향일년) 나아갈향 한 해가 다 가도록 동산에 못 오다가
歸來纔及種春田(귀래재급종춘전) 겨우재 와서보니 봄밭에 씨 뿌릴때가 되었구나
雨中草色綠堪染(우중초색녹감염) 견딜감 빗속의 녹색 풀빛은 더욱 진하여 염색한 듯하고
水上桃花紅欲然(수상도화홍욕염) 바랄욕,탈연 물에 비친 복숭아꽃은 타는 듯 붉구나
優婁比丘經論學(우루비구경론학) 넉넉할우,끌루 우루스님은 불경을 공부하고
傴僂丈人鄕里賢(구루장인향리현) 등굽은구,구부릴루 등굽은 우리마을 어진 어르신
披衣倒屣且相見(피의도시차상견) 걸칠피,거꾸로도,신시,또차 옷을 걸치고 신을 거꾸로 신고는 서로 마주보며
相歡語笑衡門前(상환어소형문전) 기쁠환,횡목형 허름한 문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네
* 比丘: 출가(出家)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男子) 승려(僧侶) * 丈人: 아내의 아버지,늙은이
* 倒屣: 급(急)하게 허둥지둥하다가 신을 거꾸로 신음 * 衡門: 「두 개의 기둥에다 한 개의 횡목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대문(大門)」이라는 뜻으로,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이르는 말
왕유는 나이 마흔한 살 때 장안의 남쪽 교외에 있는 남전현藍田縣이라는 곳에다 별장을 하나 마련하였다. 당나라 초기의 시인인 송지문宋之問(아첨을 잘함,賜死)이 쓰던 별장이다. 이 별장을 리모델링해서 망천장輞川莊이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공무가 없을 때면 가서 시를 짓고는 했다. 경치가 좋은 이곳에다 어머니도 모셨다.
‘동산’은 친구들과 모여 시 쓰기 모임을 갖곤 했던 ‘위씨산장韋氏山莊’을 가리킨다. 공무에 쫓겨 1년이 넘도록 그곳에 못 가봤는데 망천에 별장을 마련해놓고 가보니 때마침 봄이라 마을 사람들은 밭갈이가 한창이다. 시의 제 3, 4행은 봄 풍경에 대한 묘사인데 그림 같다. 이 마을에 큰 절이 있는지 비구들은 불경을 공부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어른을 깍듯이 공경한다. 얼마나 사람들이 정다운지 누가 찾아오면 급히 옷을 걸치고 나가는데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가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집이 너무 누추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다들 가난하지만 인심이 푸근하여 서로 정답게 사는 고장임을 알 수 있다.
17. 輞川閒居한가할한 - 망천에서 한가히 살며
망천10경
一從歸白社(일종귀백사) 토지신사 한번 백사로 돌아온 뒤로
不復到靑門(부복도청문) 다시는 청문에 가지 않았다
時倚簷前樹(시의첨전수) 의지할의,처마첨, 때로 처마앞 나무에 기대어
遠看原上邨(원간원상촌) 언덕원,마을촌 멀리 언덕위 마을을 본다
靑菰臨水映(청고림수영) 줄풀고 푸른 줄풀이 물에 비춰있고
白鳥向山飜(백조향상번) 날다번 흰새는 산을 향해 날개짓 한다
寂寞於陵子(적막오릉자) 탄식할오,어조사/언덕릉 적막하게 살고 있는 오릉자
桔槹方灌園(길고방관원) 두레박틀길,두레박고,수단방,물댈관 두레박질로 남새밭에 물을 준다
* 白社: 흰띠로 지붕을 이은 집 * 靑門: 도성문(都城門)을 말함. 중국 한(漢) 나라 장안(長安)의 동남방 문인 패성문(覇城門)이 청색이었으므로 청문이라 하였던 것에서 연유함. * 寂寞: 적적함,고요함 * 桔槹: 용두레. 낮은 곳의 물을 논이나 밭으로 퍼올리는데 쓰는 기구 * 남새밭’이란 사전적 의미로 보통 집 안 마당한쪽이나 집 근처에 있는 채소를 심어 캐먹는 작은 밭을 말한다.
18. 別輞川別業 - 망천별장을 떠나며
망천장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가 벼슬을 하고 있었더라면 황제를 따라 피난 갔을 텐데 망천에 있었기 때문에 포로로 잡혔던 것이다. 겨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시 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떠나게 되었으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짧은 시 한 편으로 심정을 고백하였다.
依遲動車馬(의지동차마) 더딜지 느릿느릿 움직이는 수레와 말에 기대어
徟悵出松蘿(주창출송라) 가는모양주,원망창,쑥라 슬픔 속에 소나무와 이끼 낀 숲을 나오노라
忍別靑山去(인별청산거) 차마 청산을 떠나지 못하겠는데
其如綠水何(기여녹수하) 푸른 물이야 오죽하리오?
청산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한다. 이후 반란군의 수하에서 참모의 역할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일은 두고두고 큰 상처로 남았다. 만년에 쓴 글 가운데 「내 녹봉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약속하는 글」이라는 것도 있었다. 절을 지어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해주어야 한다는 상소문을 쓰기도 했다. 벼슬을 내놓고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여러 사람에게 말했지만 성사가 되지는 못했다. 말년에 쓴 편지나 산문을 보면 참회와 속죄의 내용이 아니면 보은과 감사의 내용이 가득했다. 죄를 지은 이 사람을 용서해준 데 대해 고마워하는 내용도 있었고 자신이 계속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내용도 있었다. 불가에 완전히 귀의했더라면 마힐이라는 자를 다른 것으로 고쳤을 것이다. 그는 늘 마음으로는 수양하며, 혹은 참선하며 살았기 때문에 생활은 불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젊었을 때 상처한 이후로 재혼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아서 그런지 그의 생활은 늘 소박하였다. 부모도 돌아가시고 서른두 살 이후로 딸린 식구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면서 이런 도통한 듯한 내용으로 시를 썼기에 후대인들은 그를 가리켜 ‘詩佛’이라고 일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