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 허준과 한의학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학 박물관
허준박물관(許浚博物館)
▲ 허준박물관 옥상에 박힌 박물관 이름
(허준박물관 홈페이지는 위의 사진을 클릭) |
구암공원 서쪽이자 탑산 동쪽에 터를 닦은 허준박물관은 허준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한
의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학 테마 박물관이다. 이곳은 사립박물관
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엄연히 서울시와 강서구청에서 만든 일종의 시립박물관이다.
강서구청에서는 허준이 강서구 출신임을 내세우며 허준과 그가 평생 업으로 삼았던 한의학을 주
제로 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1999년 10월 허준기념관 건립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듬해 5월 건립 부지를 매입하고 설계용역과 시공업체 선정을 거쳐 2003년 4월 10일 첫삽을 떴다.
2004년 11월 20일 준공되어 2005년 3월 23일 정식 박물관으로 개원되기에 이른다. 그해 5월에는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었으며, 대지 면적은 1,725평, 건축 면적은 543평이며, 사업비는 141
억원이 들었다.
박물관 건물은 1동으로 지상 3층 규모이다. 1층에는 관리사무실과 창고,
주차장 등의 부대시설
이 있으며, 2층에는 박물관 로비와 매표소, 휴게실, 뮤지엄 샵, 옛 양천고을을 재현한 모형도가
있다. 전시실은 3층에 몰려 있는데, 허준기념실과 약초약재실, 의약기기실,
체험공간, 내의원과
한의원 등 5개의 전시실이 있다. 그중에서 허준기념실이 가장 크며 동의보감과 언해두집창요를
비롯한 허준의 저서와 여러가지 자료, 동의보감 제작 과정과 집필 과정을
재현한 디오라마, 한
의학 관련 옛 서적 등이 진열되어 있다. 내의원과 한의원실에는 한의원과
내의원의 모습을 재현
하여 눈길을 잡아맨다.
옥상에는 다양한 약초가 자라는 약초원이 있으며, 약초원의 범위는 박물관 서쪽에 자리한 탑산
동쪽 자락까지로 옥상에서 탑산까지 다리가 이어져 있어 한덩어리로 둘러볼 수 있다. 탑산 북쪽
밑에 양천허씨의 성지인 허가바위가 있으며,
옥상에서는 한강과 하늘공원이 바라보인다.
박물관 옆에는 한국한의학연구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자리해 있어 우리나라 한의학의 중심지 역
할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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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박물관 정문 |
▲ 허준박물관 본관 (정문 북쪽) |
박물관 전시실은
체험공간을 제외하고는 유물 보존을 이유로 촬영이 통제되어 있으며. 전시실을
일일이 다룬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본글에서는 전시실 일부 유물과 체험공간, 약초원이
있는 옥상 부분만 취급한다. 그 이전에 허준의 일대기를 간략히 짚어보도록 하자.
* 한의학의 대부, 허준(許浚, 1537~1615)의 생애
허준은 1537년 무관 출신으로 평안도 용천군수(龍川郡守)를 지낸 허론(許碖)의 서자(庶子, 첩의
소생)로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가양동 남쪽)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으로 호는 구암(龜巖
), 자는 청원(淸源)이며, 생모는 영광 김씨이다. 그의 이복 형인 허옥(許沃)은 내금위(內禁衛)
에 있었고, 허징(許澄)은 서자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承文院校檢) 등을 지내는
등, 집안이 꽤나 잘 나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전과 사서에 밝았다고 하며, 의학(醫學)에 소질이 있어 일찍부터 의학 공
부를 했다고 한다. 동의보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생모와 부인을 데리고 경상도 산음(山陰,
산청)으로 내려가 유의태(柳義泰)의 문하에서 의술을 공부했다고 한다. 허나 그것은 가상일 뿐
사실이 아니다. 당연히 스승의 몸을 해부하여 5장6부의 생김새를 터득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유
의태는 허준의 의학 수준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하는 가공의 인물로 18세기에 어의(御醫)로 천
거된 적이 있는 유이태(劉以泰)를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어나고 32년 동안 이렇다 할 행적이 없으니 아마도 속세에서 의술 활동을 하며 지낸 듯 싶다.
동의보감 소설처럼 인술(仁術)을 펼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동의보감에서 의원의 바른 자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봐서는 인덕(仁德)까지 두루 갖춘 의원임은 분명한 것 같다.
1569년 유희춘(柳希春)이 이조판서 홍담(洪曇)에게 그를 내의원(內醫院)에 천거하면서 본격적으
로 수면 위로 오른다. 그래서 1571년 바로 종4품 내의원 첨정(僉正)에 올랐는데, 동의보감 소설
과 달리 국가 기술직을 뽑는 시험인 취재(取才)에 붙어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닌 천거나 빽으
로 들어간 모양이다. <양천허씨 세보(世譜)에는 1574년 의과(醫科)에 급제했다고 나옴> 허나 이
는 그의 능력과 인덕에 따른 천거로 등용된 것으로 바로 4품으로 직행한 것을 보면 그의 의술이
매우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천거로 관직에 들어간 인물이 제법 많았음, 조광조(趙光祖)나 토정
이지함(李之菡)이 대표적>
1573년 정3품 내의원정(內醫院正)에 올랐으며, 1575년 어의 안광익(安光翼)을
도와 선조 임금을
진료했으며, 1587년 태의(太醫) 양예수(楊禮壽)와
함께 선조의 건강을 지킨 공으로 사슴가죽(어
떤 자료에는 호랑이 가죽)을 하사받았다. 1590년에는 광해군(光海君)의 두창(痘瘡,
천연두)을
치료한 인연으로 그와 무척 가까워지며,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작위를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왕을 호종했고, 1596년 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정2품
정헌대부
(正憲大夫)의 지위에 오른다. 1597년 선조가 의서 500권을 내리며 조선 실정에 맞는 어서를 쓰
라고 명을 내리면서 동의보감 편찬에 들어갔으나 정유재란 발발로 보류되고 1600년에 본격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1600년에는 내의원 수의(首醫)가 되었으며, 1601년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언해두창집요(諺解
痘瘡集要),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를 완성했다. 1604년에는 임진왜란 시절 왕을 호종한 공
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어 양평군(陽平君)의 작위와 함께 종1품에 해당되는 보국
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되었으나 의원인 중인(中人) 신분에 과도한 벼슬이라며 대간(臺
諫)들이 개거품을 물며 반대하여 잠시 보류되기도 했다.
1607년에는 언해태산집요를 펴내고 언해구급방과 언해두창집요를 세상에 펴냈으나 1608년 선조
가 승하하자 그 책임을 지고 평안도 의주(義州)로 귀양을 가야했다. 다행히 광해군의 은혜로 1
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나 그의 어의가 되었으며, 허가바위에서 두문불출 동의보감 마무리에 매
진하다가 1610년 드디어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바쳤다.
동의보감은 25권 25책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의서로 의방유취(醫方類聚),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의림촬요(醫林撮要)와
중국 의서 86종을 참고하여 직접 발로 뛴 경험을 발판삼아 편찬한 것
이다. 보감의 내용은 내경(內景),
외형(外形),
잡병(雜病),
탕액(湯液),침구(鍼灸)
등 5편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청나라와 왜국에도 전해져 국제적인 의서로 위엄을 떨쳤다. 특히 청나라판
서문(序文)에는 '천하의 보(寶)를
천하와 함께한 것'이라 했고, 왜국판 발문(跋文)에는
'보민(
保民)의
단경(丹經)이요.
의가(醫家)의
비급'이라 평하면서 앞다투어 동의보감의 가치를 칭송했
다. 현재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인 보물이 되었다.
1612년에는 찬도방록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를
내고, 1613년에 동의보감 25권 25책을 간행,
벽역신방(辟疫神方)과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을
간행했다. 1615년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뜨니
그의 나이 78이었다. 광해군은 크게 통곡하며 그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을
추증
했다. |
▲ 박물관 2층 로비에 마련된 옛 양천고을 모형
오른쪽 가까이에 보이는 울타리가 쳐진 곳이 목동(木洞)에 있던 국영 목장으로
지금의 목동신시가지 자리이다.
▲ 3층으로 올라가면서 담은 옛 양천고을 모형 전경
오른쪽의 길다란 물줄기가 안양천이며, 왼쪽으로 중간에 끊긴 물줄기의
하류 동쪽 산지가 양천고을의 중심지였던 궁산이다.
▲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 - 보물 1087-2호
1612년 광해군의 의뢰로 허준이 작성한 전염병 치료에 관한 의학 서적이다.
▲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 보물 1236-2호 |
구급 의방(救急 醫方)을 집대성한 민간용 한방 사전으로 1489년(성종 20년)에 간행되었다. 백성
들도 알기 쉽게 한글로 번역되어 편찬되어 국어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구급간이
방은 우리나라에 2권 남아있는데 하나는 충북 음성에 있는 한독의약박물관에 있다. |
▲ 약재를 갈던 약맷돌 3형제
손잡이인 어처구니를 잡아 직접 돌릴 수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바로
맷돌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으니 어찌 맷돌을 돌릴 수 있겠는가..?
▲ 약재를 갈던 배 모양의 도구인 약연(Mortar)
▲ 약재를 찧던 약절구
▲ 하얀 피부의 약사발
▲ 허준박물관의 백미(白眉)인 내의원(內醫院) 모형도
건물 모습은 물론 내부까지 세세히 재현되어 보는 나그네의 눈을 단단히 잡아맨다.
▲ 허준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천하
한강에 다리를 담군 가양대교와 수도권 쓰레기를 발판으로 어엿한 산이 된
난지도 하늘공원이 보인다.
▲ 옥상에 마련된 기념 촬영장
붉은 조복(朝服)을 입은 허준 모형과 녹색 옷의 상궁(尙宮) 모형에
얼굴을 살짝 대고 기념촬영을 하는 곳이다.
▲ 박물관 옥상과 이어진 탑산 동쪽의 약초원(藥草園) |
허가바위를 지닌 탑산 동쪽 자락에 터를 닦은 약초원은 동의보감에 수록된 70여 종의 약초가 무
럭무럭 싹을 띄우는 곳이다. 약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연학습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박물관의
옥상과 이어져 있다. 이미 3월 중순이건만 겨울 제국 잔당들의 건재로 자태를 선보인 약초가 하
나도 없어 황량하기 그지없다. (봄의 절정기나 여름, 가을이 적당한 시기) |
▲ 봄을 꿈꾸는 인삼(人蔘)의 보금살이
▲ 겨울에 잠긴 약초원 |
※ 허준박물관 찾아가기 (2012년 3월 기준)
*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3번 출구)에서 1002, 6631, 6645번 시내버스를 타고 허준박물관(공
진중교) 하차, 길 맞은편 가양2동주민센터 옆에 허준박물관이 있다.
* 지하철 9호선 가양역 1번 출구를 나오면 가양3,5단지 4거리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5분 정도
가면 가양3단지 3거리인데, 3거리에서 왼쪽(허준로)으로 꺾어 공진중학교와 탑산초교를 지나
면 허준박물관이다.
* 지하철 5호선 발산역(5번 출구)에서 6630, 6712번 시내버스 이용, 6630번을 탔을 경우 영등포
공고 하차, 6712번을 탔을 경우 허준박물관(공진중교) 하차
* 지하철 5호선 발산역(3번 출구)에서 1002, 6630번 시내버스 이용, 1002번을 탔을 경우 허준박
물관 하차, 6630번을 탔을 경우 한보구암마을아파트 하차
* 지하철 2호선 당산역(1,13번 출구)에서 6631번 시내버스를 타고 허준박물관(탑산초교) 하차
* 주차공간이 넉넉치 못하므로 대중교통 이용 요망
★ 허준박물관 관람 정보 (자세한 정보는 허준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 관람시간 - 하절기(3~10월) 10시~18시 / 동절기 10시~17시 / 토요일과 일요일은 10시~17시
(매표는 문닫기 1시간 전까지 /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
* 관람료 - 어른 800원(20인 이상 500원) / 초,중,고,군인 500원 (20인 이상 300원)
* 매월 2,4주 토요일과 어린이날, 설날과 추석 연휴,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은 무료이다.
* 7세 미만과 65세 이상은 공짜이며, 20인 이상 단체관람시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 요망
* 매년 10월 초/중순에 의성허준축제가 조촐하게 열린다. 축제기간은 2일로 한방체험 테마파크
와 어의/의녀복 입고 사진찍기, 한방차 시음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며, 구암공원에서는
허준 추모제례, 허준 뮤지컬/음악회, 동의보감 진서 재현극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2동 26-5 (허준로 87) ☎ 02-3661-8686
* 허준박물관 홈페이지는 이곳을 클릭한다 |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저도 이 동네로 이사온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산보길로 다녀봐야겠네요.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정독 하였습니다. 정말 유익한 정보를 주셨네요. 저도 꼭 한번 가 보고야 말겠습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봄에 꼭 가보시길 ~~
예전에 구암공원 옆에 직장이 있어서 자주 갔던 곳이네요. 그런데도 허준 박물관은 가보질 못하고 건물만 보며 지나쳤네요.
추억을 되새기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직장에 다니셨군요. 올봄에 한번 갔다오시길 ~~
사진과 설명 감사합니다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버스타고 찾아가 보렵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