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 있어 정직한 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는 의미는 좀 더 정확하게 부연하면 정직한 믿음의 사람, 곧 제대로 된 믿음의 사람,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음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고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정직한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전에 우선 하나님께서만이 모든 의의 근본이시고 실체이시며 절대적 의이신 분임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고..
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이며, 그렇기에 실상 의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속하게 된 것이고, 그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있거나 의롭게 될 수 있는 자체부터가 불가인 상태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은 그 자체로는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의로운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와 실정인 것이고, 그를 위한 정직한 믿음, 곧 제대된 믿음으로 서는 것부터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곧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와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다시 말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그에 있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실제로 말씀이시고 절대 진리이시며 의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이고, 그렇기에 온전한 이신칭의의 구원이 가능한 것이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가 아닌, 진정 그와 반대로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 안에서 의가 되며 빛이 되기에 전적으로 합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에 약속된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든지, 실제로 적잖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살거나 제대로 된 정직한 믿음,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기보다는..
마치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들에 우선을 두면서 종종 미혹되고 유혹되며 시험에 들고 걸려 넘어지곤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잠자고 미지근해 지는 신앙이 되는 것이며, 심지어는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사람 막대기들과 인생 채찍들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거나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되곤 하는 것이고,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은 막으시면서 때로는 심히 곤고하고 비참케 되기까지 그러한 징계들 등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의 본문에서와 같이 정말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증거된 말씀대로 될 수 있는 방법과 통로는 오직 한 가지인 것이자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똑같은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자들, 그에 합당한 믿음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와 우선은 반드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어 실제로 하나님의 것이 되고 말 그대로 의신칭의에 속하게 된 자들인 것으로..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만이 모든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이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감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의로운 일을 하나하나 제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고, 원론적인 면에서 믿음이 정직한 자도 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그와 함께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고 생생하게 만나게 되며 강렬하게 경험하게 되듯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1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17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