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 때처럼 점심끼니를 때우고 나서 산책길에 나섰더니 등에 땀이 났다. 그만큼 더웠던 것입니다. 이거야 원 봄을 건너뛰고 여름을 부르는 건가 싶었습니다. 산책길 2킬로의 노변에 줄 지어 서 있는 벚꽃들이 지느라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눈처럼 날리고 있었습니다. 가히 꽃눈의 폭설이었습니다. 겨울 눈이 이렇게 내린다면 더 추울 텐데 꽃눈이 내리는 지금은 기온이 더 오르고 있는 겁니다.
준호가 염 경위로부터 지시 받은 대로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거느린 흑백사 대원 두 분대원들을 동촌 유원지에서 뱃놀이 작전을 지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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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고요 최지훈 작
왜옥동네의 전설•3
일루전ILLUSION
제3부건국과 단정 반대 (제56회)
3. 총선이냐, 아니냐-(21)
쾌속정의 노잡이 중 하나는 바로 사공영춘이었다. 보트놀이를 즐기던 중학생이 마침 자기 이름과 같은 그들의 벗을 부르는 바람에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라며 당황했었다. 그는 지금 그의 조직이 경찰이 폭력배 일제 소탕 작전에 말려 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지트를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남제일관 부근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 금호강 나룻배를 이용하러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나루터에 이르러 보니 영남제일관에 가장 가까운 곳의 나루터까지 가는 나룻배가 하루 두 차례밖에 없는 데다가 이미 한 차례 떠났고 오후 배는 저녁 무렵이 돼야 배가 들어와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기가 난감해 있었는데 여름철도 아닌데 남녀 학생들이 보트놀이를 즐기기 위해 보트를 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보트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가보려고 작정한 것이었다. 나루터의 주인을 통하여 영남제일관 가까운 곳에 나루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위치를 구체적으로 물어서 종이쪽지에 약도를 그려 받아 두었던 것이다.
그들 일행은 여섯 명이었다. 나루터 주인이 네 명이 정원인데 여섯 명 다 타면 위험하다고 거절했다. 특히 영남제일관이 있는 곳은 절벽이고 물살이 빠른 곳이며 수심도 깊어서 더욱 위험하다면서 보트를 빌려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영춘이 보아하니 학생들은 남녀간에 한 척에 다섯 명씩 타고 있음을 보고 주인에게 항의했다.
주인은 한 명 정도의 여유는 가능하지만 두 명은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서에서 안전 점검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보트든 나룻배든 간에 정원을 지키지 않으면 지적을 받게 되기 때문에 더욱 곤란하다고 말했다.
영춘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의논했다. 비용이 허락되면 두 척을 빌려 세 사람씩 타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있어서 그렇게 하자하고 영춘은 주인에게 두 척을 빌리자 했더니 배가 한 척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 따라 학생들이 몰려와서 저렇게 네 척이나 동원되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한 척 뿐이라고 했다. 그나마도 여기 안전 요원으로 있는 직원이 타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빌려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저기 막 떠난 여학생들이 탄 보트는 저쪽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빌려갔기 때문에 그 학생들이 건너가면 그 배를 이용하시면 되겠심더.”
“저 학생들이 건너가면 우리가 그쪽으로 갈 수 없는데 우째 이용합니꺼?”
“우선 여기 배로 몇 분이 타고 저쪽꺼정 가시이소. 그라마 여학생들이 탔던 보트를 저어서 오셔갖고 나머지 분들이 타고 가마 되겠네예.”
하고 나루터 주인이 지혜를 써 주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네 사람이 먼저 타고 강을 건너갔다가 두 명이 다시 여학생들이 탔던 보트를 타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힘껏 노를 저으면서 빠르게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 중간 쯤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남자 중학생이 ‘영춘아!’하고 소리쳐 불러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중학생의 보트로 가까이 다가가 왜 불렀는지 물었더니 다른 보트를 타고 있는 자기 일행중 한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하필 동료 학생의 이름과 자기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성까지 한꺼번에 불렀다면 그런 혼동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의 성은 워낙 희성이기 때문에 동성명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학생은 이미 건너편 나루까지 건너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루를 건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을 오르내리며 배를 타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확인하고 뱃머리를 돌려 다시 건너편 나루를 향해 막 저어 가는데 그 나루로 가고 있는 여학생의 보트와 부딪칠 뻔한 것이다. 자기들은 그야말로 쾌속정처럼 힘차고 빠르게 저어갔지만 여학생들은 노 젓기가 힘에 부치는지 물 흐름에 배를 맡기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영춘의 일행 중 하나가 여학생들에게
“건너 저 나루로 간다면서요?”
하고 소리쳐 물었다.
“그런데예.”
여학생 중에 한 학생이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우리도 그리로 건너가는 중이요마는 지금 학생들은 노를 젓지 않고 물흐르는 데로 흘러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리되면 저쪽 나루에 닿을 수 없을 낀데?”
그러자 여학생들도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춘의 배가 가로막고 있어서 그것을 피하느라고 뱃머리를 약간 돌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배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것을 본 사공영춘의 배의 노를 젓던 그 동료가 자기의 한 쪽 노를 번쩍 들어 여학생의 배를 밀어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니까 물 흐름에 거슬렸는지 여학생의 배가 기우뚱하고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자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난리라도 난 줄 알았는지 영춘의 이름을 불렀던 학생의 배가 자기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04/13(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