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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견인 (1)|성도의 견인 (존 오웬)
C O N T E N T S 『성도의 견인』과 존 오웬 Part I 1. 성도의 견인이란 무엇인가 Part II 2. 변하지 않는 하나님 3.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목적 4.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 5.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Part III 6.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7.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 8. 성령의 사역 9.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10. 성도의 순종 Part IV 11. 올바른 성경 이해 『성도의 견인』과 존 오웬 존 오웬은 1616년 영국 옥스퍼드셔의 스태드햄프턴에서 헨리 오웬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청교도의 황태자라 불리기도 하는 오웬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사과정을 거칠 때쯤에 그는 이미 수많은 고전을 통달했을 뿐 아니라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히브리어와 랍비들에 대한 지식도 뛰어났습니다. 존 오웬은 청교도 혁명 당시 올리버 크롬웰의 군종 목사로 지냈고, 후에는 옥스퍼드 대학의 부총장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크롬웰이 죽고 왕정이 복고된 이후 그는 반 추방 형태로 집에서만 지내게 됩니다. 이 기간에 오웬은 집필에 전념하며 수많은 저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때 쓰인 80여 권에 달하는 책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이고 방대하게 저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청교도 시대의 신학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은 존 오웬을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라고 평가합니다. 『성도의 견인』은 이러한 존 오웬의 저작 중 하나입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하나인 성도의 견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1674년 집필된 존 오웬의 『성도의 견인 교리』The doctrine of the saint’s perseverance explained and confirmed, or, the certain permanency of their acceptaion with God and their sanctification from God manifested and proved를 요약한 도서입니다. 이 책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였던 존 굿윈(John Goodwin)의 『Redemption Redeemed』에 대한 대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존 오웬은 존 굿윈이 주장하는 구원의 관점에 반박하여 성도가 개인적으로 구원받으면 믿기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칼빈주의 관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구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구원의 도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지 않아 멸망의 길로 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두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의 안정성과 영원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은 영원히 구원받으며, 절대로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음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성도의 견인은 성경이 말하는 바른 교리입니다. 성도의 견인이 없다면 구원의 안정성과 불변성은 성립될 수 없으며, 구원의 확신은 흔들리게 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올바른 믿음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학을 가지고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종교개혁자들의 근본 교리를 따릅니다. 즉,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교리를 따르는데, 우리는 이들의 신앙을 바라봐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예정론에 대한 논쟁들은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등에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이 성경에 근거하여 고백한 것들을 공부함으로 성경이 말하는 바른 신학과 신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의 고백을 정확하게 살펴봄으로 바른 교훈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 책은 오웬의 다른 저작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성경의 올바른 교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구원을 바라보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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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성도의 견인이란 무엇인가
한 번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는가, 아니면 구원으로부터 멀어져 멸망의 길로 떨어질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 구원의 안정성과 영원성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성도의 견인(堅忍, 굳게 참고 견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강한 소망과 안위(히 6:17-18)가 바로 성도의 견인에 대한 성경적 초석이라고 믿는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이 복음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리로서 인간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견인을 오히려 죄를 범하도록 부추기는 강력한 요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견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 그리고 성도들의 영적 풍요로움은 성도의 견인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잖은 장애물로 다가온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그 사랑이 식어 떠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 24:11-12).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은 미혹을 당하거나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셨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17-18절에서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배교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배교도의 사악한 가르침을 따른 자들은 믿음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견고한 근거가 있는데, 이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라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 역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일 2:19)라고 서술한 바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들은 주님의 길을 가다가 포기한 사람들을 보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단지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자기 속에 거하시는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자기가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례들로 믿는 자들을 시험하신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런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는 말씀에 우리는 분명히 의존할 수 있다. 타락한 사람들의 소식이 초대교회 성도들 안에 있었던 믿음의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또한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오로지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증거하는 양심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분명 많은 성도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고, 그로 인해 성령께서 친히 그들의 영과 더불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이 충만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양심의 증거보다 더 확실하고 굳건한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양심의 증거에 의존한 구원의 확신은 종종 우리의 실수 때문에 약해지기 때문이다.
성자들(saints)이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거룩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거룩한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분’이시다. 피조물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는 다르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그에게도 거룩함이 있었지만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 그것은 타락한 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거룩함이 있다. 이것이 바로 부여받은 거룩함(imparted holiness)이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거룩한이란 말은 종종 하나님과 그분의 섬김을 위해서 구별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은 언약궤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켜 거룩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성도의 견인이라 하지는 않는다.
또한 신약성경은 거룩한이란 말을 종종 내적인 순결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일반 은혜의 선물이 어떤 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정작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지 않으실 때도 있다.
그렇다면 성자 혹은 진정한 성도들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1. 한때 성도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을 주셨다. 성도들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이다(엡 1:4).
2. 성령께서 허물로 인해 죽었던 그들을 다시 살리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성령께서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실 때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이란 귀한 선물을 받게 된다(엡 2:5).
3.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중보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하실 성령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내 주셨다(요 14:16).
4. 그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종으로 살게 된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견인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표현들을 사용하신다. 그 예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2.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
3.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히 3:6).
4.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자, 이제는 가끔 제기되는 “성도들도 완전히 믿음에서 떠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모든 사람들이 성도들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에 동의한다(갈 5:22). 그렇다면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완전 소멸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무엇이 성도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를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가? 죄인가? 물론 죄를 마음에 품고 옹호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은 분명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죄로 인해 성령께서 슬퍼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죄가 성령을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결과인데, 그 은혜는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 능력으로 우리 속에 은혜를 심으셨다. 우리가 죄를 지속적으로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와 성령을 다시 거두어 가시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죄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기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는 것을 과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는가? 오히려 그 자녀들을 도우시기 위해 달려오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꾸중하시고 혼내실망정 영원토록 쫓아내지는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성도의 견인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것이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심각한 죄로 물들어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 자체만을 확신시켜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반박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시는 자비를 한 번 맛본 성도라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그것을 귀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들을 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 지속적인 은혜를 부어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일을 함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은혜는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딛 2:12) 살게 한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성도들이 믿음에서 완전히 떠날 가능성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을 가능성보다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피한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죄를 멀리하는 지혜와 명철을 부여하셨다. 이 지혜와 명철은 성도들에게 가해지는 악한 죄의 세력을 묵살시킬 수 있다. 이러한 원수 세력들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이다(롬 7:17, 20).
바울은 이 원수를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엡 4:22)이라고 부른다.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는 보통 명철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함을 알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벧전 1:5) 받았다.
이사야 4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를 준다.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4장에서 영화로운 ‘여호와의 싹’으로 일컬어진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시온에 남아 있는 자”(사 4:3)들이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은혜로 선택된 남은 자들로서 창세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다(엡 1:4; 계 13:8). 새까맣게 태워 없애버릴 만큼 위협적인 화염 속에서 간신히 낚아챈 장작개비처럼, 멸망해 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건짐 받은 자들이다.
또한 이사야는 그들을 가리켜 “시온의 딸들”(사 4:4), 즉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고, 구원받았으며 부름 받은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성도의 칭의, 성화 그리고 견인이 약속되어 있다.
1. 칭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의로우신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그분의 옷으로 성도의 흠을 덮어 숨기신다.
2. 성화
거룩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은 그들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해진다.
3. 견인
광야 생활 중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호막이었다. 이사야가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사 4:5)라고 말한 것은 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예수의 모형인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상징한다.
성도들의 영적 영광에는 두 부분이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의 외적인 부분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값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이다.
한 번 성도들의 영혼 속에 거하신 성령이 완전히 제거되시는 일은 결코 없다. 거룩한 성령은 그가 한 번 거하신 자리를 세상의 영에게 내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성도들을 덮으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구속하심으로써 다시는 끊을 수 없는 은총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도들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성령이 소멸되시어 다시 악의 자녀가 될 정도로 심각한 악에 빠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그들이 거듭나기 이전에만 가능하다(엡 2:2, 3).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잘 표현했다(렘 31:33-34, 32:38-40). 하나님은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신다.
1. 하나님은 성도들을 조건 없이 받아주신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
2. 성도들의 성화와 거룩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어야만 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3.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들을 전적으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렘 32:39).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교리)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와 그의 추종자들은 믿음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는데 이것은 존 칼빈(1509~1564)의 주장과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1618년 11월 13일 도르드레흐트(Dordrecht)에서 도르트 총회(1618~1619)가 개최 되었습니다.
도르트 총회에서는 도르트 신조가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성경적인 5개 조항에 대응한 5대 교리도 공표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튤립(TULIP) 교리는 이러한 칼빈주의 5대 교리 내용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입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생겨났기에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칼빈주의의 모든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것을 담고 있기에 이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각각의 내용은 따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고, 당신이 선택하신 자들만을 구속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결코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은혜를 따라 끝까지 견디게 됩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인간의 전적부패(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rverance of Saints)
첫댓글 이런건 종교 게시판이나 이런곳에 올리는게 좋지 않나요? 얼핏 보면 선교활동 같기도 하단 느낌도 들고요. 교회다니시는분은 많은 줄알지만 그런건 교회가서 좋은말씀들 나누셔도 될듯 해보이는데요.
여기에 이런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랍니다. 여러 게시물과 마찬가지로 관심자만 보잖아요. 요새는 굳이 종교네 뭐네 따지지만....조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반 고전에 포함되거던요. 삭막한 세상에 장문의 게시물 올리기도 쉽지 않지만....돈 주고 사보기도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쉽게 편집해주셔서...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누가 쉽게들 가나요? 이제는 더더욱 교회가 문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요... 너그럽게 보아 주셨으면 합니당...^^
@풍성한인생 교회가 문밖으로 나온진 이미 오래되었죠.나오면서 무분별한 선교와 포교활동으로 국제 사회에 문제도 많이 되었구요.중국은 종교 선교활동이 금지이기도 하지만 여긴칭한모니까.라구 하실테니 의미없는 중국법조항인셈이구요.이미많이 나와있습니다.전세계적으로 병원학교보다 많은 붉은십자가 불빛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지요.
@치키치키차카차카 에구....견문이 많으시군요...진정한 빛은 꼭 필요한 곳에 비춰지길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 치키치키차카차카 쵸코쵸코님~ㅋ
종교게시판은 따로없는 것으로
알고있고 글은 하루에 하나꼴로 나가고 있습니다만
요목조목 반박해보고 싶지만.분란일으킨다 말나올까 그러지않으려 합니다만...차라리 종교 게시판을 기독이던 불교던 천주교던 하나 만들어두는게 어떨까 건의도 해보고 싶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