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반도체 깡패’ 되려는 미국
1차 대전 때 미국의 군사력은 별 볼일 없었다. 2차 대전부터 미국의 거대한 생산력이 폭발한다. 트럭 200만대, 항공기 30만대, 탱크 8만6000대, 선박 6만5000척, 대포 19만문을 생산했다. 포드 자동차 공장에선 한 달에 400대가 넘는 B-24 폭격기를 만들고, 캘리포니아 조선소에선 수송선을 나흘마다 한 척씩 찍어냈다. 스탈린은 미국을 ‘기계의 나라’라고 불렀다.
▶승전 후 미국은 생산력 최강국의 지위를 이용해 금융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그 과정은 실로 폭력적이었다. 브레턴우즈로 44국 대표를 불러 모은 뒤, 영국 파운드화를 밀어내고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미 재무부의 일개 차관보가 대경제학자인 영국 대표 케인스의 제안을 모조리 무시한 채 ‘금 1온스=35달러’ 교환 비율을 정했다. 케인스는 “미국이 대영 제국의 눈을 빼려 한다”면서 치를 떨다 실신했다.
▶1971년 미국은 만성적 무역 적자와 베트남 전쟁 비용 탓에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었다. 달러 기축통화가 흔들리게 된 위기도 ‘폭력적’으로 해결했다. 중동의 원유 거래엔 오직 달러만 쓰도록 강제해 달러 패권을 지켰다. 이후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 전 세계 물건을 소비하고, 중국·일본 같은 흑자국들은 미 국채를 사들여 미국의 국가 부도를 막아주는 “터무니없는 특권”(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 구도가 굳어졌다.
▶너그러운 이미지의 미국이지만 패권이 흔들리면 명분과 합리 다 집어던지고 칼을 휘두른다. 1980년대 일본의 도전이 거세지자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플라자 합의’(1985), 일본 반도체 산업을 죽이는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을 동원해 일본을 주저앉혔다. 일본 반도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강제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은 반도체 생산 기지를 일본에서 한국, 대만으로 이동시켰다. 1990년대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자 미국은 ‘수퍼 301조’를 동원해 미국 차에 불리한 한국 자동차 세제를 고치게 했다.
▶한때 세계 GDP의 40%를 차지했던 미국이 중국 부상 탓에 GDP 비율이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자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과 핵심 광물 파트너십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무한정 찍어내는 달러를 이용해 막대한 보조금 투척도 불사한다. 그런데 그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에 기업 비밀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동시에 중국에 반도체 수출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이번엔 ‘반도체 깡패’를 자처하는 미국이다.
조선일보 김홍수 논설위원
사진 출처:영문학자 리커창 총리 부인 (SCMP)
‘비운의 2인자’ 리커창 퇴장, ‘시진핑 예스맨’ 리창 등장
2012년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리커창이 권력서열 1위 시진핑에 이어 2인자에 오르고 이듬해 국무원 총리가 됐을 때 외신은 중국을 이끌 쌍두마차로서 ‘시진핑-리커창 투톱 체제’를 전망했다. 이전까지 총리는 서열 3위였는데, 리커창이 총리에 오르면서 2위가 됐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후진타오의 후원 아래 승승장구하던 리커창이다. 하지만 혁명원로의 자제들인 태자당과 장쩌민의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진핑을 밀어주면서 1인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비정한 권력투쟁에선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릴 뿐이다. 리커창은 시진핑 체제에서 끊임없이 견제를 받는 ‘비운의 2인자’ ‘실권 없는 총리’로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리커창은 합리적 개혁가로서 과도기의 중국 경제를 조용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일찍이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는 조작이 가능해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가 대신 살펴본다는 △철도 물동량 △전력 소비량 △은행 신규 대출 등 3가지 지표를 재구성한 ‘커창지수’는 외부에서 중국 경제를 예측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리커창은 시진핑에게 반기를 드는 듯한 발언으로 갈등설을 낳기도 했다. 2020년 외신 기자회견에선 “중국인 6억 명의 월 수입이 1000위안(약 19만 원)에 불과하다”고 말해 절대빈곤 해결을 약속한 시진핑의 실패를 겨눈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다. 이후 리커창이 진흙투성이 장화를 신고 수해 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관영매체로부터 외면당했고, 작년 8월엔 덩샤오핑 동상 앞에서 개혁개방을 칭송한 장면마저 당국의 검열 대상이 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렇게 잊혀진 총리가 된 리커창이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업무보고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그의 흔적은 벌써 지워지고 있다. 리커창이 지난주 정부 부처를 돌며 따뜻한 환대와 작별 인사를 받는 영상이 일제히 삭제되고 있다고 한다. ‘리커창 지우기’는 작년 20차 당대회 폐막식 때 시진핑 옆자리에 있던 후진타오가 사실상 쫓겨나듯 퇴장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후진타오는 직계 후배인 리커창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는데, 이후 발표된 새 지도부에서 공청단파는 전멸했다.
▷새 총리는 시진핑 측근 그룹 ‘시자쥔(習家軍)’의 리창 상무위원이 예약한 상태다. 리창은 20년 전 시진핑이 저장성 성장과 당서기를 지낼 때 비서실장으로 보좌한 이래 시진핑의 집사로 불리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상하이 당서기 시절엔 코로나19 봉쇄 사태로 문책론이 비등했지만 그는 오히려 2인자로 올라섰다. 일각에선 리창이 시진핑의 두터운 신뢰 아래 실권을 쥘 것이란 얘기도 있지만 그가 과연 ‘예스맨’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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