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선정 과정에서부터 특혜 의혹과 부실한 환경영향조사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전북대병원 군산분원의 최종 부지 백석제(저수지,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일대)가 고래시대 말기인 1300년대 이전에 축조됐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저수지라는 것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됐다.
당초 군산시와 전북대병원은 백석제가 1940년대 일제가 축조한 제방 저수지로 역사적 가치로 볼 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북대병원 군산분원이 백석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들이 오래된 문헌자료를 검토한 결과 백석제는 1300년대에도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체들은 백석제에 대한 정밀 조사와 문화재 지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등 9개 시민단체는 6일 오전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갈은 내용의 사실과 입장을 발표했다.
단체들에 따르면, 백석제는 당초 알려진 1940년대보다 30여 년 전인 1916년 일제가 측량 제작한 지도에 명확하게 그 존재 표기되었다. 단체들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조사한 결과, 1896년 제작된 [전라북도각군읍지]에 수록된 ‘옥구지도’에도 백석제가 지도상 명확하게 표기된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1760년대 경 조선 영조 시절 관에서 직접 편찬한 [여지도서]에는 백석제의 크기와 규모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었다. 이 문헌에는 백석제의 둘레가 4천 5백 40척이며, 깊이는 5척으로 나왔는데, 둘레 1.5km로 확인되고 있는 지금의 백석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1940년대 이전 일제와 조선시대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백석제는 ‘료화제’라는 이름으로 고려시대 문헌에도 발견됐다.
이 문헌은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 말 삼은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야은 길재 선생의 글과 행실을 기록한 [야은선생속집]이다. 이 문헌에서 백석제의 흔적을 찾은 현강역사문화연구소 이우형 소장은 “고려 말 대학자이며 절의 충신인 야은 길재 선생의 문집에 길재 선생이 추모하고 존경한 군산 출신의 고용현 선생(1302년~1392년)에 대한 일대기가 담겨있다. 이 일대기에 백석제의 과거 이름인 ‘료화제’가 명확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문헌은 “고문영공행실록”이라는 제목으로 고용현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했다. 고용현 선생은 고려 말 대학자로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의 창고를 지키고자 육지로 옮기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충숙왕 시절 인사 관련 요직에도 있었다. 그의 고향은 군산 옥구 한림동(현재 당북리)으로 제주 고씨 가문이 학문을 전하며 살아왔다. 이곳에는 유학자 최치원, 고경, 고용현 선생을 모시는 염의서원이 있으며 군산시로부터 향토 문화 유산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길재 선생의 문헌에 백석제가 언급된 부분은 고용현 선생의 고향 한림동을 소개하면서 등장한다. 해석하면 이렇다.
“고향인 옥산의 동쪽에 관직에서 물러나 거주하니 료화제 위의 한림동이다. 이는 공의 9세조 이하가 세거하고 있는 터이다”
이 문헌의 료화제가 지금의 백석제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다. 1933년에 제작된 백석제 인근 염의서원을 소개한 [염의서원지]에는 “한림동은 옥구군청에서 동북으로 2리쯤인 발리산 아래와 백석제의 위에 위치한다”고 한림동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시대 문헌의 ‘료화제 위의 한림동’과 일제시대 문헌의 ‘백석제 위의 한림동’이 일치하는 것. 이처럼 여러 문헌에 기록된 위치와 규모 등을 볼 때, 백석제는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우형 소장은 “정밀한 조사를 실시할 경우, 백석제의 처음 축조 시기가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금 존재하는 저수지 중 백석제와 같이 문헌을 통해 고려시대 이전에 축조가 확인된 저수지는 거의 없다. 백제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기록된 김제 별골제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것처럼 백석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문헌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는 상주의 공검지와 제천의 의림지의 경우에는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에 백석제의 역사가 그에 버금가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지정 문화재로 보호·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일 열린 기자회견에는 보다 더 깊이 있는 정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단체들은 “전북도청과 문화재청은 군산 백석제에 대한 문화재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국가지정문화재 등록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정밀조사는 제방중심부의 축조형태와 원래 수문시설 지점에 대한발굴조사, 백석제 내부의 퇴적물과 유기물 층에 대한 폭넓은 조사가 되어야 한다고 단체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조사는 백석제가 가지는 역사성과 고고학적인 의미,우리 농업사와 사회경제학, 환경생태학적인 부분들을 총망라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동필 군산생태환경연대회의 교육팀장은 “전북대병원이 작년 말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표조사는 기본적으로 고문헌에 대한 기초조사를 기본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전북대병원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백석제에 대한 문헌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환경영향평가 부실 조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던 상황에서 문화재 지표조사의 부실성도 오씨는 제기한 것.
그래서 군산시가 지난달 30일 서둘러 전북대병원 군산분원 최종 부지로 백석제를 발표한 것이 성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편, 군산시와 전북대병원은 지난달 백석제 일대를 전북대병원 군산분원 부지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곳은 멸종위기 2급식물인 ‘독미나리’ 군락지로 알려졌고, 67종의 조류가 관찰되는 등 국제 람사습지로 지정된 고창의 운곡습지와 비견되는 습지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병원 신축 부지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백석제 선정 과정에서 독미나리가 없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작성되기도 해 논란은 결정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