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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멧돼지 아닌데?”
고기를 한 입 먹어본 국왕의 한 마디지만 카인은 덤덤했다.
“오는데 10일 넘었습니다. 저 혼자 숙성(熟成)이 된 모양이군요.”
숙성? 그럴 겨를이 있었나? 치프 일행은 잠시 생각에 잠겨야 했다.
“그렇군.”
카인의 거짓말에 국왕을 포함한 시트초즈 사람들은 꼴딱 넘어갔고, 3m 길이의 상어 고기는 사람들의 뱃속으로 속속들이 들어갔다.
그들의 맛난 식사 후.
카인은 다이아를 데리고 궁을 나왔다. 레몬이 초대 손님격으로 어깨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 사이 그들이 잡은 여관 위치를 파악한 국왕은 그들의 짐을 모두 궁으로 가져오라 일렀고, 칼리프는 빙긋 웃으며 아버지의 명을 받들었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성큼성큼 가는 카인을 보며 다이아가 물었다.
“반지- 라니요, 카인?”
“커플링 보러 가는 거예요, 지금.”
“커, 커플링이요?”
“예.”
다이아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카인은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조금 크게 뜬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액세서리점을 찾는 것이고, 그래서 다이아의 얼굴이 한껏 붉어진 것을 보지 못 했다.
“아, 저기가 좋겠네요.”
카인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헌데 그러지를 못 했다. 이유는 다이아한테 있다. 마치 못이라도 박은 것처럼 꼼짝달싹도 않는 다이아 때문에 카인도 움직이지를 못 했다.
“마마.”
“응?”
“가시지요.”
카인은 몸을 숙여 다이아를 품에 안았다가 내려놓았다. 그 덕에 다이아의 금색 눈동자에 흰 빛이 제대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레몬은 꼼짝도 안 했다. 이 녀석이야말로 못을 제대로 박은 모양이다.
“정신 차리셨죠?”
“응.”
“가죠.”
카인은 찍은 액세서리점으로 향했고, 다이아는 끌려가다시피 했다. 당도한 액세서리점 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손님과 주인 및 직원의 시선이 온통 카인과 다이아에게로 쏠렸다.
적색 머리카락을 높이 올려 묶은 청년은 허리에 권총벨트와 권총을 갖고 있었고, 같이 온 아가씨는 금색의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나눠 땋아 내렸지만, 아무런 무기도 안 갖고 있었다. 적색과 금색이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더불어 적색 머리카락 청년이 어깨에 데리고 있는, 청회색의 몸에 날카로운 눈과 돌이라도 쫄 것 같은 뾰족한 입을 가진 매, 레몬도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냈다. 그러면서 주위를 날카롭게 바라봤다. ‘뭘 보냐? 새 처음 보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가게 안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카인은 다이아에게 말을 건넸다.
“반지 골라 봐요.”
“음-…… 아, 저거 어때요?”
다이아는 손을 뻗어 반지 하나를 골랐다. 가운데에 사각형의 하얀 보석이 박혀 있고, 좌우로는 작은 십자가 모양이 양각으로 제작되어 있는, 은색의 동글동글한 반지였다.
카인도 반지가 맘에 들었는지 다이아가 고른 반지를 가리켰다.
“예쁘네요.”
둘은 반지를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껴봤다. 잘 맞았다. 반지를 다시 빼어 유리문 위에 올린 카인이 묻는다.
“이걸로 주세요. 얼마죠?”
“한 쌍에 10만G입니다.”
“이니셜 새기시는 거 가능하죠?”
“예.”
직원은 대답과 함께 종이, 그리고 펜을 꺼내서 유리문 위에 올렸다. 카인은 자신의 이름과 다이아의 이름과 사이의 사랑 표, 그리고 ‘Forever' 라고 적어서 건넸다.
“반지 안쪽에 음각으로 새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새기는데 30분 정도 걸립니다.”
직원의 대답에 카인은 곧장 다이아를 돌아봤다.
“마마, 기다릴까요?”
“잠깐 구경 좀 갔다 와요. 30분 맥없이 기다리려면 지루해요.”
카인은 지갑을 꺼내 선불로 계산한 뒤 다이아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갔다. 레몬은 여전히 붙박이마냥 꼼짝도 안 했다. 카인은 오른손은 다이아의 손을 잡고 있고, 왼손으로는 레몬의 턱을 매만져 주었다. 레몬은 주인의 차가운 손길이 좋은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느꼈다.
두 연인과 한 마리의 매는 액세서리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며 옷 구경을 했다. 너무 집중을 해서일까. 둘은 자신들을 촬영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찰칵, 찰칵.
“왜 레몬이랑 같이 있는 거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사내는 눈을 껌벅였다. 옆에 있는, 흑색 머리카락을 길게 올려 묶은 청년도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레몬이랑 데이트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닐 거다.”
연보라색 단발머리의 사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옆에 있는 주황색으로 치장한 아가씨 역시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아직 반지를 안 끼고 있잖아.”
“그러게요.”
청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동조했다.
“이니셜 새긴다고 그럴 거야. 제가 정보를 알려줬거든요.”
“정보?”
주황색의 여인과 청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동시에 묻자, 카메라를 손에 들고 셔터를 눌러대던 사내가 대답했다.
“허즈그레이에서 맛깔 나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과 100일이 되는 날, 이니셜을 새긴 커플링을 끼면 그 사랑이 영원하다- 라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아주 많으므로 전설이 아니고 사실이지만요.”
“낭만적이다.”
“근사해요.”
아가씨와 흑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눈을 반짝였다.
“근데 이렇게 도둑촬영을 해도 되나?”
연보라색 청년의 물음에 아가씨가 씩 웃었다.
“안 걸리면 되지.”
“자신 있나?”
“아니.”
“…….”
여인의 너무 밝은 부정에 모두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 애초 도둑촬영을 권했던 사람이 그렇게 나오니, 할 말을 잃어버리는 반응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나중에 현상하면 액자에 넣어서 방에 걸 거거든?”
100% 걸리는 거라고!!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수시로 셔터를 누르면서 촬영을 해대는 사내, 칼리프였다. 주황색의 여인 라이아가 불쑥 물었다.
“근데 이렇게 나와 있어도 돼?”
“네. 5일 있을 거잖아요. 실컷 놀죠, 뭐.”
“아, 근데-.”
“?”
모두의 시선이 청색 머리카락의 청년, 치프에게로 몰렸다.
“오늘 카인 녀석 생일이거든요? 근데 지 생일은 완전히 잊고서 100일에만 팔려 있어도 되나?”
그러고 보니 그렇다. 그런데 주인공이 저러고 있으니~.
한편,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카인과 다이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우편배달부를 꾸밀 수 있는 조류용 액세서리를 파는 판매점에 들렀다. 레몬이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지낸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안으로 들어간 카인은 이것저것 둘러봤다. 그 중 눈에 띄는 게 리본이었다.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색의 적색 리본을, 가만히 보던 카인이 그것을 뗐다. 그 시간차에 맞춰 레몬이 다이아의 어깨 위로 건너갔다.
카인은 리본을 레몬의 목에 살짝 둘러봤다. 바로 그 때.
“풋!”
여기저기서 작은 폭소가 터졌다. 가게 주인과 직원, 그리고 다이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 웃음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레몬은 눈을 가늘게 떴다. 못마땅한 것이다. 그는 그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째렸다.
카인은 손은 그대로 한 채 고개만 숙이고 웃고 있었다. 어깨까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니, 보통 참는 게 아닌 모양이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키려는 그 모습이 더 웃겼다. 하지만 한계에 닥친 듯 카인은 고개를 들고 대소를 터트린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의 웃음이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가게 안은 대소의 도가니탕으로 변했다. 그럴수록 레몬의 표정은 더 괴팍해지고 있었다.
“레몬이 목이 너무 굵은 거 맞죠? 그래서 지금 리본의 매듭이 안 닿는 게 맞죠?”
다이아가 가까스로 물었고, 직원의 이어진 말은 더 큰 웃음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게 제일 큰 사이즈거든요.”
“근데 안 맞아요!”
“하하하하! 레몬, 살 좀 빼야겠다?”
주인의 물음이었다. 다이아의 말을 통해 매의 이름이 레몬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런데 그 웃음은 가게 안에서만 터진 게 아니었다. 카메라를 통해 가게 안의 상황을, 모두 보고 있던 칼리프 일행도 웃음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기척을 숨기는 것도 더 이상은 힘이 들었다. 모든 신경이 웃음으로 쏠리고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들리는 대화도 한 몫 했다.
칼리프는 카메라를 그대로 들고서 작게 웃었다.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건 카인과 같은 증상임을 알렸다.
“크크크큭!”
“레몬이 살이 좀 쪘다 했더니, 기어이 저런 일이 터지네요.”
치프의 말을 들은 라이아의 입에서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머지않은 가게 안으로 스며들어가기에 이른다. 카인과 다이아, 레몬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와 동시다. 폭소를 간신히 그친 카인은 리본을 원래의 장소에 걸어놓으며 중얼거렸다.
“녀석들. 저기서 저러고 있었군.”
“저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래요?”
“사진 촬영을 하는 모양입니다.”
“쳇.”
다이아는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빙긋 웃었다. 치프 일행의 기운이 다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화 때문에 레몬의 옆얼굴을 굵은 땀방울 하나가 지나간 것은, 주인의 착시일 지도 모른다.
레몬은 크게 토라졌는지 눈을 감고 얼굴을 오른쪽으로 휙 돌리더니, 이내 날개를 펼치며 가게를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그럼 이거라도 하나 가져가세요. 발목 보호대에요. 편지를 자주 묶는 새의 경우 발목에 무리가 갈 수도 있거든요.”
“하나 주십시오.”
“2000G입니다.”
카인은 지갑을 꺼내 1000G 지폐 두 장을 꺼내 계산을 끝내고, 발목보호대를 들고 다이아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다이아는 그가 주머니에 보호대를 넣는 것을 보며 물었다.
“이거라면 좋아하겠죠?”
“물론입니다. 레몬도 별 말 안 할 겁니다. 아, 반지. 다 새겨 넣었겠군요. 반지 받으러 가요.”
다이아의 손을 잡은 카인은 가게 밖에서 웃음소리가 난 방향을 항해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도 가자!”
“…….”
풀숲에 숨어 있던 치프와 칼리프 일행이 줄줄이 벌떡 벌떡 일어났다. 치프가 대표로 묻는다.
“알고 있었냐?”
“당연하지.”
카인은 다이아의 손을 잡은 채로, 일행과 함께 아까의 액세서리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반지 안쪽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자를 본 카인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은 직접 다이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다이아도 답례하듯 카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다.
둘의 모습을 가만히 보던 가게 주인이 보관고 쪽에서 뭔가를 꺼내들고 왔다. 카메라다.
“두 분, 사진 하나만 찍어도 될까요?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요.”
“마마,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전 상관없어요.”
카인은 다이아의 오른쪽에 서서 왼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오른손은 다이아의 오른손과 잘 맞대었다. 카인은 아까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다이아도 빙긋 웃었다. 연인이 반지와 반지가 잘 보이게끔 도와주자, 직원은 수월하게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성함 좀 알려주세요.”
“전 카인.D.그레이드라고 합니다. 마마의 성함은 다이아.L.바브로라고 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진 감사해요~! 걸어둘 테니까 꼭 보러 오세요~!”
카인과 다이아는 목례를 하고 가게를 나왔고, 밖에서 기다리던 칼리프도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한 장 담았다. 카인과 다이아는 가게 주인 앞에서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다. 촬영이 끝난 뒤 카인이 부탁을 하나 했다.
“두 장으로 뽑아줘.”
“어-.”
칼리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의 생일을 궁에서 보내고 그로부터 이틀 후인 2월 5일.
액세서리점 쇼 윈도우에 웬 사진이 하나 덜컥 걸렸다. 카인과 다이아가 커플링을 맞춘 사진이었고,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카인.D.그레이드님과 다이아.L.바브로님의 100일 기념일 커플링 맞춘 날. 두 사람 잘 어울리죠?』
칼리프도 사진을 액자에 담아 카인의 침실과 두 왕녀의 침실에 걸어두었다.
국왕은 카인 일행에게 식사를 보답하겠다고 했으나, 일행은 그를 한사고 거절했다. 잠만 궁 안에 마련된 침실에서 잤다. 식사는 배에서 했고, 때문에 시트초즈에서는 여행객들의 식사를 해줘야 하는 것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레몬의 편지를 받은 <허즈그레이> 와 <넨갈>, <델자쇼로스> 에서 비축분으로 모아뒀던 것을 배편으로 보내주어, 시트초즈에서는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카인 일행은 그에 대한 보답을 사진으로 대신 했고, 일곱 남녀를 찍은 사진은 왕궁을 포함한 대륙 전역에 퍼지게 된다.
『카일리프 왕자님의 친구들이자 아쿠아리버 호의 사람들. 시트초즈력 279년 2월, 시트초즈를 식량난에서 구해주다』
다시 사흘 후인 8일, 카인 일행은 출항을 위해 항구로 움직였다. 한참 잘 가던 신이 갑자기 우뚝 섰다.
“아.”
“?”
“신문 보는 걸 잊고 있었다.”
“…….”
일행은 옅은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반응을 본 신은 소리를 꽥 질렀다.
“나한테는 큰일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