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애양병원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어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여수 애양원 시대가 시작되었다.
초기 애양병원
애양원은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1904년 2월 목포 선교부에서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벨 목사와 오웬목사를 파송하여 광주 선교부를 만드면서 1904.12.25. 성탄절 예배와 함께 광주 선교가 시작되었다. 오웬목사는 이 후 전남 동부지역의 능주, 남평, 화순, 장흥 등지를 맡아 선교하였다. 오웬은 1909.4.3. 급성 폐럼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당시 오웬을 치료하기위해 목포에서 활동중이던 의사 포사이트(Wiley H. Forsythe) 는 급히 광주로 떠났다. 광주로 오던 포사이트는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말에 태우고 광주까지 걸어왔다. 이 한센병 여인은 1908.3. 에 부임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윌슨(Robert M. Wilson) 과 선교사들에 의해 치료받게 되었다. 윌슨과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사택 건축을 위해 사용하던 벽돌 가마터를 단장하고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것이 서양의학으로 한센병을 치료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정성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여 한센병 환자는 주님을 영접하고 수 주일 후 소천하였다. 이일을 시작으로 1909년 여름 인근 봉선리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집을 짓고 20여 명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의 시작이었고 1928년 여수로 터를 옮긴 후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수애양병원
현재의 애양병원은 정형외과, 피부과, 마취통증과, 내과 진료를 하고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와 일반 장애인들에게 의료적, 직업적, 정신적으로 재활을 도모하고 영적 구원을 위해 설립되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애양병원 이외에 애양평안요양소, 애양재활직업보도소 등도 함께 운영하고있다.
애양병원의 조각물
애양원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은 애양원이 여수로 이주한 후 현재의 현대식 병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한센 환우들을 치료했던 병원 본관 건물이었다. 한동안 양로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 후 개보수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에는 애양원의 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도록 당시 사용하던 의료기구들, 의료진들의 활동, 환우들의 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과 손양원목사 순교기념비, 박물관은 성산교회 건너편에 위치해있다.
여수애양재활병원 현판
애양병원 역대 원장
초기 애양원 사진
설립자 포싸이트 선교사
포싸이트 선교사
윌슨 원장
윌슨 원장
윌슨에게 내려진 훈포장
윌슨 선교사 관련 기사
대한민국문화훈장
훈포장
1941년 윌슨 병원장 환영행사
애양원병원과 성산교회의 변천사
애양원병원과 성산교회의 변천사
애양원병원과 성산교회의 변천사
성산교회 역대 교역자
성산교회 역대 교역자
성산교회 역대 교역자
전시물
제1전시실, 한센병
진료실
진료실
방사선 실
진료실
진료실
진료실
진료실
진료실
1층 194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휠체어
당시 사용하던 선교사 의자
1층 애양원 병풍
1층 전시실
전시실
1층 인공 고관절 시술 전시물
1층 인공 고관절 시술 전시물
인공 고관절 시술 전시물
2층 선교사 사무실 재현
1940년대 미국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사무용 집기들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였다.
2층 선교사 사무실 재현
2층 초창기 환자 입원실 재현
부부가 입원할 경우는 한 병실을 사용하였고 독신인 경우는 3명이 한 병실을 사용하였다.
2층 전시실
전시실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
1층 전시실
전시실
2층 전시실
전시실
전시실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
전시 사진
2층 전시물
전시물
전시실
전시실
전시실
전시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