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새벽제단
어릴 때 어머니는 새벽예배에 철저하셨습니다. 족히 이삼십분은 걸어야 가
는 교회이고 길도 변변치 못해 어둑어둑한 논길을 건너야 하는데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을 지키셨습니다. 주일 혹은 특별한 날이면 어린 저도
덩달아 엄마 손을 잡고 새벽예배에 나가곤 했지요. 아직도 그 차가운 청주
동산교회, 마루바닥에 꿇어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 음성이 귓가에 들리
는 듯 합니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중고 청년 십여 명은 남궁외과(현 남궁병원)에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당시 제일 큰 병원이었는데요, 각 층마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
양을 하면 많은 환자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요청하는 분은 병실에
들어 가서 찬양하기도 하고 중환자실 앞에서는 보호자들과 손을 맞잡고 뜨겁
게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지 않는 분들도 따라 나와 허리인사를 몇 번이나 하시고 따
스한 차를 대접해 주기도 하셔서 어린 마음에 큰 은혜와 기쁨이 되었습니
다. 그래서인지 그때 함께 했던 청년 중고생들 가운데는 목회자도 많이 배
출되었습니다. 최규영 목사님, 지대영 목사님, 또 그 중에 한 분이 우리 알
고 있는 여기 상지대 최경선 선생님이지요.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새벽예배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때 어머니께로부터
이어 받은 새벽예배 유전자(?)가 아직도 제 몸안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
다.
그리운 청주동산교회 그 새벽제단.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오랫동안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하숙이나 방을 얻는
것은 엄두도 못내던 그때에 기숙사는 기필코 붙어 있어야만 하는 요람이었
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기숙사는 규율이 엄격했습니다. 경건점수가 있어서 사생들을
잡았는데요, 특히 새벽예배를 한 학기에 세 번이상 빠지면 다음 학기 기숙사
등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 시간이 되면 전쟁이 벌어 집니다.
4학년 선배들은 몽둥이를 가지고 각 방문을 쭉 두드려 오구요, 스무 살 한참
새벽잠이 쏟아 지던 때, 1분이라도 더 자려고 그 몽둥이가 내 방을 두드려
서야 억지로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자주 나오던 찬양이 ♫“누군
가 널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였는데요, 아직도 이 찬양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얼마나 그 찬양이 듣기 싫었는지 잠결에 스피커 선을 끊는
학생도 있었고, 농에 숨었다가 신발을 처리하지 못해 걸리던 학생들도 있었
습니다. (물론 저는 아닙니다...정말이라니깐요).
그렇게 젊을 때부터 쌓은 새벽기도의 내공(內攻)이, 지금껏 목회하면서 새벽
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이어온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운 장신대 새벽채플.
아무리 예수께서 새벽예배를 만드셨다고 엄포를 놓아도, 목사들끼리는 이런
말 하지요. “새벽예배만 없어도 목사 할 만하다”.
그런데 요즘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새벽예배 인도하는 목
사는 참으로 행복하다”.
아닌게 아니라 새벽예배 인도하지 못한 것이 벌써 달포가 넘어 갑니다. 정
말 “마음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제 것입니다.
하나님께 면구스럽고 혼자 애쓰고 있는 손목사님께 미안하고 그래도 자리
비우지 않는 새벽이슬같은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전에 오지는 못하지만, 새벽마다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깨기도 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뜬 눈으로 보내기도 하지요. 출근하면 본당에 먼
저 들러 조목조목 기도 분량을 채움으로 새벽을 대신하기도 한답니다. 허나
어찌 첫시간 첫마음을 드리는 새벽예배에 가름하겠는지요.
그래서입니다. 새벽이 그립습니다. 아내와 함께 새벽공기 가르며 성전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그립습니다. 강단에 올라 찬송 두 장 부르며 하루를 깨우
고, 성도들과 교독하며 하루 주시는 말씀의 양식을 나누고, 통성으로 기도하
며 하루를 맡기는 시간, 홀로움 가운데 임하시는 하늘의 은총이 내 잔을 넘
치게 했습니다. 그러면 어둠과 밝음이 뒤바뀌는 새벽처럼, 내 마음도 어느새
환히 밝아 오곤 했지요.
그렇게 새벽은 인자하신 주의 음성을 듣기에 참으로 좋은 시간입니다. 호듯
한 성전에서 하루 삶의 방향과 방식을 여쭙는 시간, 내 영혼을 주님 앞에
내 보이면 주님은 우리를 고치시고 새로운 힘과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아픈 후 가만 돌아 보니, 영락교회 7년동안 새벽예배 길게 비운 적 없이 늘
감당해 온 것이 감사중에 감사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새벽강단에 설
수 있을 지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운 우리 원주영락교회 새벽제단.
어제도 심야기도회 자리가 많이 비었습니다. 수술한 제 몸보다 더 아픈 것
이 제단 자리가 비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 매일의 직업이라”(M.
Luther)는 말처럼,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그 영혼이 점점 사위어 갈 것입니
다. 새벽예배를 비롯해 기도하는 삶을 통해, 날마다 우리 삶에 묵상과 행함
의 균형을 잃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
니하고...”(삼상12:23절)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