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비가 징허니 옵니다. 열흘 간의 시집살이을 뒤로 하고 경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추풍령 휴게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최신 지도 하나 구입한 후 무작정 경주를 향해 고속 도로를 달렸습니다. 비가 어찌나 무섭게 내리는지 차창 밖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무섭습니다.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니 지역마다 날씨가 다르네요. 날이 개어서 산 봉우리마다 산안개에 쌓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차츰 여행의 느낌이 들더군요. 시댁에서 오후 세 시 경에 출발을 한 지라 경주에 도착하니 밤이더군요. 교육문화회관에 숙소를 잡으러 갔더니, 이 빗 속에도 빈 방이 없네요. 애들이 배 고프다 하여 보문단지 주변을 돌다 보니, 차가 많이 몰려 있는 식당이 있더군요. "맷돌 순두부집" 현관을 들어서니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맛있겠거니 하고 그냥 기다렸습니다. 비도 오고 어디를 또 찾아간다는 것도 번거롭네요. 순두부를 맛나게 먹고 빵을 사러 힐튼호텔로 들어갔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라이브가 펼쳐지길레 맥주 한 잔 하고는 주변 모텔로 와서 방을 잡았습니다. 우리 애들 너무 좋아라합니다. 애들은 집만 나오면 좋다는군요.
다음날도 날씨가 꿀꿀합니다. 느즈막히 일어나 잼 바른 식빵과 캔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열 시 쯤 밖으로 나섰습니다. 경주도 많이 변했더군요. "신라 밀레니엄 파크"라는 곳이 2007년에 새로 개장했습니다. 구경을 하려니 또 비가 후두둑 쏟아지네요. 발로 걸어서 돌아야 하는데, 비가 와서 그 곳 구경을 포기하고 보문단지내 호수로 왔습니다. 남편은 동해 쪽으로 그냥 올라가자네요. 그런데 오랜만에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고 그냥 올라가는 것이 저는 영 섭섭합디다. 그래서 유람선이라도 타자고 했습니다, 비도 피할 겸! 겨우 유람선 타고 난 후 다시 동해로 이동! 대신 해안도로만을 타기로 했지요. 바로 바다를 옆에 끼고 위로 오르는 것도 꽤나 낭만적이더군요. 한참을 가다보니 영덕군입니다. 영덕대게나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영덕대게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조그만 항구에 대게를 파는 사람들과, 먹으러 온 사람들이 빗 속에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2kg에 5만원! 큰 놈으로 세 마리입니다. 우리 네 식구한테는 좀 많은 양이긴 하지만 언제 또 와서 먹으랴 싶어 주문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대게는 영덕에서 나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할린산과 일본산, 러시아산이었습니다. 수족관에 아예 어디 산이라고 붙여 놓고 팔더군요. 국산이라고 우기지 않으니 더 믿음이 갑니다. 제가 한 5분의 4 정도는 먹은 것 같습니다. 우리 남편과 큰 놈은 얼마 못 먹고 배부르다며 뒤로 빠지는군요. 우리 작은 놈은 몇 점 먹더니 맨 밥 달랍니다. 나 참! 거기서도 흰 밥에 김치만 먹고 오는 작은 놈! 참 얄밉더군요. 실컷 먹고 항구의 활어들 구경 좀 하고 또 위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진 해수욕장! 섬 지방이 아니면서 이렇게 깨끗한 해수욕장은 처음입니다. 지나다 사람들이 보이고, 마침 비도 살짝 멎었길래 내려서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한 것이 거기 주저않아서 마감 시간까지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좀 서늘한 느낌이 들더니 애들과 모래놀이도 하고 해변가를 뛰기도 학고, 바다에 들어가 물장구도 치니까 춥지도 않더군요. 우리 애들 너무 좋답니다. 한참 놀다 해수욕장에 임시로 들어와 있는 농협에서 컵라면 말아 비치 테이블에서 후루룩 먹고는 한참을 또 놀았지요.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물 속이 훤히 다 보입니다. 물고기도 해수욕을 하는 사이사이로 보입니다. 물이 너무 맑아서 속이 다 보이니까 그것도 공포더라구요. 저것이 혹 바다 생명체? 해파리? 우리를 물지나 않을까? 겁이 더럭 나더군요. 옆 바위에서 게도 잡고, 따개비도 떼어내 보고, 미역도 건져 올리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너무 맑고 좋아서 하루 더 놀자고 했지요. 그래서 가까운 백암온천에서 자고 또 오기로 했습니다.
백암온천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중 홈플러스에 들러 간단한 음료와 과일, 다음날 먹을 식빵 등을 샀습니다. 마침 애들 신발이 많아서 신발도 한 켤레씩 앵겨 주니 입이 한없이 벌어집니다. 백암온천에 가니 작은 놈이 죽어라 자장면을 먹어야겠답니다. 할 수 없이 시골 자장면집을 들어갔습니다. 숙소로 어디가 좋으냐고 자장면집 아저씨께 물으니, 호텔은 온천수가 나오고, 모텔은 온천수가 아니라며 간단한 정보를 건네는군요. 저희는 늘 숙소를 정하기 전에 식당이나 편의점에 들러 어디가 깨끗하고 좋은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가 있더라구요. 자장면을 다 먹은 작은 놈이 또 요구 사항을 들이댑니다. 노래방까지 가야겠답니다. 할 수 없이 노래방에 갔습니다. 작은 놈 신이 났습니다. 코러스까지 넣어 가면서, 템버린 들고 춤을 추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놀아댑니다. 이 동네는 시간 서비스도 없더군요. 노래방을 나와 자장면집 아저씨가 알려준 호텔로 갔습니다. 호텔방까지 온천수가 나온다더군요. 다음날까지 쓸 수 있는 사우나권까지 주더군요. 호텔 하루 숙박료 7만원이랍니다. 공시가입니다.
잠을 자고 사우나하러 갔습니다. 맛사지나 받을 욕심으로 때밀이가 있길래 부탁했습니다. 이 때밀이 할머니덕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얼굴에 맛사지액을 바르는데 콧구멍까지 무시하고 처덕처덕 막 바르는 겁니다. 이 할머니가 뭘 알고 때를 밀고, 맛사지를 하는지 의심스럽더군요. 그래도 힘은 좋습디다. 바가지만 쓰고 온 느낌입니다. 때를 미는데 무슨 비누를 쓰는지 빨래비누 냄새가 훅훅 풍기고! 느낌 참 껄쩍지근하더군요. 그러면서 저한테 운동 안한다고 야단입니다. 내 돈 주고 야단까지 맞고 나왔습니다. 우리 남편, 실컷 자고, 실컷 사우나하고 난 후 하는 말, "다시 올 데는 아니야!" 남들은 좋다고 일부러 찾아오는 백암온천! 우리는 대진 해수욕장 다시 갈 욕심으로 잠시 들렀을뿐입니다. 우리 애들에게 "해수욕장 또 갈래?" 했더니, 에버랜드로 곧장 가잡니다. 숙소에서 물건 챙겨 에버랜드를 향해 산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려면 큰 봉우리를 몇 번 넘어야 올 수 있더군요. 작년에 불영계곡 넘다가 우리 작은 녀석이 다 토하고 난리를 쳤는데, 이번에도 낙동정맥을 넘으면서 산 봉우리를 세 개 정도 넘었습니다. 구주령, 한티재, 백암산 등을 넘으니 봉화에 이르더군요. 백암온천은 오지 중의 오지더군요. 대진 해수욕장 역시 서울 경기 지역 사람들이 가기는 어렵겠더라구요. 봉화에 와서 점심으로 비비큐 통닭을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큰 놈이 죽어라고 통닭을 먹어야겠답니다. 할 수 없이 통닭집을 찾아가서 주문하고,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 사와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우리 애들 맛있어라 잘 먹습디다. 다 먹고 봉화 시내 조금 둘러보고 고속 도로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백암에서 고속도로까지 올라오는데 서너 시간은 걸린 듯 합니다. 그러니 오지지요. 에버랜드를 향해 계속 이동하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집니다. 에버랜드 갈 수 없다고 애들 달래서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니 너무 좋네요. 아주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입니다.
이번 여행은 비 덕에 제약을 많이 받았지만, 운치는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목적인 해수욕은 참으로 찐하게 잘했습니다. 날씨가 뜨겁지 않아서 오히려 해수욕장에서 놀기에는 더 좋았구요. 빗줄기를 즐기면서 탄 유람선도 꽤나 낭만적이었지요. 대진 해수욕장! 또 가고 싶은 장소로 찜해 놨습니다. 경주 남산! 우리 애들이 좀 크면 경주 남산을 꼭 오르고 싶습니다. 아니면 소리랑에서 함께 가도 좋구요.
첫댓글 티나황님! 요 며칠 폭~~~~~~~~~~~쉬세요. 랑에 재 충전을 위하여....
감사! 휴가 나온 아드님과 잘 놀아 주고 계신가요? 이젠 다 커서 오히려 엄마를 귀찮아 할 듯 하네요.
드뎌~~서울로 입성하셨구려. 효와 가족애 공동체의식이 깃들여진 아주 값진여행 이었든것 같으네요. 건강한 가족여행 축하드리며 소리랑에서 뵙지요.
여행은 늘 값진 것이지요. 이번 방학은 참 알차게 보내는 느낌입니다. 집에 있으려니 벌서 몸이 근질거리는걸요. 소리랑에나 가 볼까요?
여행 다녀 오셨군요 날씨가 그리 명쾌하지는 안았지요..나도 어디좀 일주일 다녀왔는데 하루 해를 보았답니다..ㅎㅎ 계곡의 물소리가 나중에는 괴물소리 같더라구요..그곳에선 추위를 느낄정도로 선선했는데 집에오니 후덥지근하네요..
계곡의 물 소리가 괴물 소리로 들리시다니요? 사무장님의 그 소리로 계곡의 물소리를 삼켜 버리셔야지요.
우중에 추억이 많이 깃든 여행이었겠군요~^^
소리 많이 하셨지요? 회장님 원성 못 들으셨나요? 우리랑도 가셔야지요.
님의 맛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날날리는 아닌 것 같군요. 날날리가 되고 싶은 분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