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비릿한 맛이 가득했다.
정민은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에, 손을 뻗어 물을 찾았다.
“…응? 뭐 - 왜 자꾸 손을 허우적거려.”
“…무울.”
“뭐라고? 에이씨!! 못 알아듣겠으니 또박또박 말해!!!”
…커다란 목소리에 정민은 귀가 웅웅거릴 지경이었다.
입안이 터져서 쓰라리고 따가웠지만, 가까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물.”
“아아~ 물. 짜식 진작말하지.”
우당탕탕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지나간 뒤로, 정민의 입가에 차가운 물이 입가에 닿았다.
생각처럼 물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끙끙거리자, 은성이 침음성을 흘렸다.
“끄응 - 물도 혼자 못 삼켜가지고는….”
순간 말캉하고 시원한 무언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이 무언인지는 몰랐지만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목의 갈증마져도 해소했기에, 정민은 혀로 그것을 감아 올렸다.
아픔조차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몽롱한 기분이었다.
“으…웅!?”
“…시원해.”
“이-이새끼가 지금 뭐하는… 거야!!!”
-쿠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정민은 커다란 충격을 느끼며 다시 의식을잃었다.
정민은 의식을 잃기전 입안이 허전해져서 아쉬웠다고 느꼈던 것 같다.
“후아…후… 이,이 자식이 감히 동생을 덥쳐?”
기분좋게 자고있는(?) 정민을 보며 은성은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떨어졌던 소리를 가늠하자면 힘껏 내팽개친게 분명했지만 신경이 쓰이지않았다.
그보다 굉장히 분했다.
분하고 또한 원통하기[?]까지 했다.
덥쳤으면 모를까 당하다니…!
“이 놈의 유정민 키스도 생 초짜면서 어디서…! 아차차 이런걸로 화낼 때가 아니지.”
한껏 성질을 부리던 은성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바닦에 주저앉았다.
문득 떠오르는 신하루의 얼굴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민이 정신을 차리자, 이제서야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 상처받은 눈이라니….
정민때문에 이성을 잃어서 하루를 상처입혀 버렸다.
사실 그렇게까지 못박을 생각은 없었는데.
“…다신 못 보는건가?”
자신이 말해놓고도 웃겨서 피식 웃어버렸다.
먼저 선을 그어버린건 자신이었으면서 뒤늦게 후회를 할 건 또 뭐람.
“아마 복수하겠다고 칼을 갈고있지 않는 한… 만날일은 없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에 “이거 왜 이래?”라며 심장을 쿵쿵 두들겼다.
왜 이렇게 눈이 시큰거리는건지도 몰랐다.
“그래…. 이건 순전히 아쉬워서 일거야. 그렇게 죽이 잘맞는 놈도 찾기 힘드니까.”
은성은 그렇게 단정짓고 큭큭 웃어버렸다.
그래도 내심 하루가 복수한다고 달려오길 바라고 있었다.
*
정민은 하루와 그 친구들에게 장난감처럼 치이고 또 치이면서 이를 악 물었었다.
짓물린 입술에선 이미 피가 잔뜩 고여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왜 나는.. 왜 난..=
바닦을 뒹굴며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몰골이어야 할까.
은성을 조금만 닮았더라면….
은성처럼 용기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볼품없이 당하고만 있지 않을텐데.
그럼 자신이 은성을 지켜줄 수 있었을 텐데.
“병신새끼! 동생이 없으면 살아가지도 못 할 놈이.”
“넌 어떻게 동생하고 그렇게 다르냐? 똑같은 쌍둥이면서.”
“킬킬 좀 본받아라. 본 받아.”
언제나 처럼 야유어린 시선들과, 비웃음소리가 사방가득히 울려퍼졌다.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생동감에 그는 귀를 틀어막아버렸다.
그러나 헛수고였는지, 소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크게만 들려왔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내 목소리였지만, 또한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가 소리치자, 정민을 괴롭게하던 목소리들이 언제그랬냐는 듯 수그러들었다.
그가 다가왔다.
그의 주변은 항상 밝았고, 눈부셨다.
그래….
은성은 항상 이런식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을 물리쳐주었다.
“어차피 내가 유정민이고, 유정민이 나인걸.”
“…….”
“난 싸움을 잘하니까 네 육체를 지켜주면 되는거고, 넌 마음이 따듯하니까 날 보듬어주면 되는거야.”
은성이 손을 뻗어 정민을 따스하게 감쌌다.
이 차갑기 그지없는 공간에서, 자신을 향해 내밀어준 손이 너무 따듯해서 눈물이 났다.
“그치만 나도 널 지켜주고 싶어….”
작게 웅얼거리자 은성이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필요 없어. 지키는건 내 몫이니까….”
“어째서?”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우린 원래 하나인데, 육체만 둘로 나뉘어서 똑같은 걸 가지진 못했거든.”
“…난 가진게 없잖아.”
“왜 없어? 내게 없는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있잖아.”
“그렇지 않아…. 내 마음은 타락할 대로 타락했어.”
고개를 젓자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 난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착한사람이 아냐….
“아니. 내게 만큼은 더 없이 따듯한걸? 자 생각해봐-
넌 나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단 한번도 날 원망한 적 없잖아.
그렇지?”
“…….”
“날 원망한 적 있어?”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왜?”
은성이 생긋 웃으며 물어왔다.
왜냐니….
“…그야.”
“그야?”
그는 짖궃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넌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맞아.
…고민할 것도 없지.
정민은 눈물젖은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우린 쌍둥이니까….”
은성은 만족했는지 손을 들어올려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맞아. 그러니까 잊지마. 내가 너고… 네가 나라는거.”
나와 같은 얼굴로… 그는 밝게 웃음지었다.
순간 멍해져버렸다.
세상에… 꿈속에서조차 마의 미소를 지어버리다니.
*
잠에서 깨고나니 어느덧 점심이었다.
눈부신 햇살때문에 눈을 찡그리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자신과 똑닮은 얼굴의 은성이 보였다.
“아….”
정민은 지금 이순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은성이란 사실에 기분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사락
“…고마워 은성아.”
“쿠울.”
“사실 나 의식을 잃기전에… 가장 보고싶었던 사람이 너 였어. 신하루에게서 널 지키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네가 와주길 바랬어. 언제나 날 지키는건 너였으니까.”
그의 옅은노란빛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은성이 자고있지 않으면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
“…이젠 괜한 오기는 안 부릴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네가 계속 날 지켜줘.”
순간 은성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정민의 손목을 확 낚아채버렸다.
그리고는 휙 하고 몸을 굴려 정민의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버렸다.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뭐 그런 당연한 말씀을….”
은성이 반짝이는 눈으로 생글 하고 웃어버리자 정민은 놀란눈으로 숨만 헉헉 하고 내쉬었다.
은성이 곤히 자고 있는줄만 알았던 정민은 심장이 반쯤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들었다.
“너 말야. 이틀만에 일어난거 알아?”
“으,으아 나…나가(?) 그렇게 오랫동안 잔거야?”
“응. 그래서 한 숨도 못 잤어.”
말 대로 은성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말에 정민은 의아해 했다.
“에…왜. 좀 자지.”
“걱정이 되서 잘 수가 있어야지.”
“…날 걱정해? 왜?…. 넌 날 싫어했잖아.”
그래도 자신을 지켜준건 단순히 쌍둥이라는 이유에서라는거 잘 알고있었다.
은성은 어릴때도 곧잘 자신이 싫다고 말했으니까.
“뭔 헛소리야. 내가 언제 널 싫어했어.”
“그치만, 너 옛날부터…”
“그걸 믿냐 병신아. 이 몸이 이래뵈도 구라의 신인데.”
은성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찡그리고 있었지만, 정민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정말이지 기뻤다.
“어쨌거나 깨어나서 다행이야.”
“아….”
은성이 두 손으로 정민의 얼굴의 감싸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정민은 당황스러워서 새빨개진 얼굴로 눈만 깜빡거렸다.
그렇지만 아래에서 바라본 은성의 얼굴은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점점 가까워만 지는 은성을 보며 정민은 침을 꿀꺽삼켰다.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본 것은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 듯 싶었다.
저 긴속눈썹과…
그 속눈썹아래 드리운 갈색의 고혹한 눈동자.
매끄럽게 잘 뻗은 오똑한 콧날과 투명하다 싶이 하얀 얼굴.
분홍빛의 싱그러운 입술은 분명 자신과 같은 것이었지만, 또 다른 매력을 보이고있었다.
얼라리 근데… 이거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오는거 아닌가;
“으,은성아…. ”
“복수야.”
“으- 응? 자-잠깐 내가 뭘 어쨌… 우-우웁.”
…그 뒤의 일에대해선 잠시 묵념.
“하아…하. 하….”
입가에 흥건한 침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정민은 거친숨을 내몰아 쉬었다.
이렇게 숨이 모자를 정도로 진득한 키스는 난생 처음이었다.
정민이 새빨갛다 못해 터질듯한 얼굴로 옆을 돌아보자-
“장난을 칠게 있고, 쳐서는 안될 게 따로있…”
“ZZzzZzzzZz.”
은성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정말이지 할 말이 없어지는 정민이었다.
그로부터 은성이 깨어난걸 볼 수 있었던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은성은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난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다.
그러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있는 정민을 보고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미친놈. 야 넌 그러고도 학교를 가고싶냐!?”
“그,그럼 어떻게해. 안 그래도 무단으로 3일동안 결석했는데.”
“몰라 학교고 뭐고 다 때려쳐!! 우린 그냥 어머니 아버지의 유산만 잘 물려받고, 잘 살면되는거야.”
“그,그런 불효막심한.”
“건강하고 즐겁게만 살면 그게 효도하는거야! 알았어?”
크르릉 하고 크게 호통치자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씨 그래도 교복 안 벗네? ”
“아-알았어. 갈아입고 올게.”
풀죽은 모습으로 방으로 올라가는 정민을 보며, 은성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얻어 맞고도 학교를 또 가고싶어 하다니.
“그,그럼 출석 확인만 하고…. 아-알았어 안 갈게! 안 간다고!”
식탁위에 놓여져 있던 식칼을 집어들자 정민이 깨갱거리며, 다시금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복으로 갈아입은 정민이 나왔다.
그는 아무래도 걱정인 듯 얼굴에 붙은 반창고를 긁적거리며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휴우… 그보다 너 솔직히 말해봐.”
“응? 뭘?”
“학교에서 완전 개 밥이지?”
그의 직설적인 말에 정민은 “…너무해.”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좋은말들을 다 버려두고 ‘개밥.’이란 단어를 쓸 건 또 뭘까.
“야야 울지마. 자 초콜릿.”
“…(훌쩍) 응.”
“그보다 이런 심각한 사태인걸 알았으니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순 없어. 정 학교를 다니고 싶다면 한 달뒤에
나랑 같이 광주로 가자.”
“한 달 뒤? 왜 하필 한 달뒤야?”
“우선 광주로 이사가려면 부모님이 계셔야 하는데…. 마침 한 달뒤에 한국에 들르신다고 했거든.”
“와 - 이,이사?”
“응. 나랑 같이 광주에서 사는거야 어때? 물론 학교도 같이 다닐거고.”
은성의 제안에 정민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앞으로도 같이 살 수 있을거란 생각에 기분이 붕 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칠 수 있었다.
“그럼 한 달동안 학교에 못 간다고 연락이라도 해야하지 않을….”
“아씨! 그럼 넌 여기에 짱박혀 있어! 내가 다녀올게.”
“으-응?”
은성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정민의 방으로 향했다.
“우와아- 진짜 나랑 똑같다.”
“킥 그러냐?”
“응. 근데 네가 더 멋져보여.”
“당연하지.”
교복을 입은 은성을 보며 정민은 이리저리 호들갑을 떨었다.
그를 보며 은성이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우울증이 더 심각해지면 어쩌나 했는데, 밝아보여서 다행이었다.
광주로 가자는 말이 제대로 먹힌건가.
“역시 내가 가면 안될까….”
“시끄러 환자는 잠자코 잠이나 자고있어.”
정민은 아직도 은성을 보내는 것이 망설여지는지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그런다 한들 은성을 말릴 수 있을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은성의 고집은 부모님조차 꺽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그래도 무슨 사고를 칠까하는 걱정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불안했다.
단지 교무실만 다녀올테지만, 나오는 길에 괜히 싸움이나 하고 오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 같았지만, 혹여나 너무 크게 벌리지는 않을까싶었다.
=에이 아냐. 그냥 교무실만 다녀올거니까.=
정민은 스스로를 납득했다.
“아차차- 은성아. 참고로 난 2학년 5반이야.”
막 신발을 신고있는 은성에게 정민은 마지막으로 교무실의 위치와 선생님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은성은 집을 나오자 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성학고 앞이요.”
이윽고 얼마지나지 않아 택시가 멈춰서자, 은성은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려섰다.
앞으로는 회색빛의 우중충한 건물 몇 개가 눈에 보였다.
헌데 어디가 후관이고 어디가 본관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전에도 한번 찾아온 적은 있었지만, 그땐 무작정 옥상까지만 올라갔었다.
아무래도 혼자 찾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많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역시 모르고 있을 땐, 직접 묻는게 최고지.
“어이!”
“응? 뭐… 하 이게 누구야. 유정민 아냐?”
“…끙, 한 동안 날뛰질 않았더니 소문이 금새 사그러진 모양이군.”
“이게 뭐라는거야?”
멀쩡히 길을 잘 가고있던 한 남자가 기분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은성의 예상대로 요즘은 정민에 대한 소문이 사그러들었다.
더불어 하루도 정민에게는 손 떼버린 듯 싶고.
어쨌거나 은성은 어차피 정민이 다시 이 학교에 올 일은 없었기에 마음껏 난동을 부리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너 잘 걸렸다고.”
씩 하고 은성이 웃으며 주먹을 뻗었다.
* * *
은성이 열심히 사고를 치고 교무실을 찾았을무렵-
간만에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신하루와 그 일당들은 정민이 등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듣고 있었다.
“헤에 그 멍청한 새끼. 또 학교를 나왔단 말이야?”
“나 같으면 콱 자살해 버리겠다.”
“에이 그치만 그 새끼 겁이 많아서 그러지도 못 할걸?”
“하긴- 킥킥킥.”
다른 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지만, 하루는 유독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두근두근
정민이 등교했다는건 아까부터 창밖을 봐왔기에 알고있었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런 느낌을 또 언제 느꼈더라?
그는 고뇌하고 고뇌하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고운 미간에 주름이 잡혀버렸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몇 일전과 다르게 수척해지고, 입술에 반창고가 붙어있었지만 그 조차도 마치 컨셉이라도 잡은마냥 잘
어우러졌다.
“근데 놀라운게 뭐지 알아? 유정민 그 놈. 뭘 잘 못먹었는지 싸움을 하고 있더라고.”
“엥? 싸움? 에이…. 뭘 잘 못 본거겠지.”
“아냐 진짜야. 휙휙 날라다니는데 난 공중에 피아노줄이라도 달려있는 줄 알았다니까.”
친구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하루는 여전히 턱을 괸채 창밖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기분좋은 심장소리에 하루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말았다.
그러다 이내 흠칫하며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입무새를 만져보았다.
‘내가 드디어 실성했나….’
얼마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옅은 노란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가 누구인지는 딱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그가 나오길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교내에서의 볼일이 모두 끝났는지 손을 툭툭 털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드르르륵
순간 교실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얘들아 빅뉴스야!!”
“뭐가.”
“유정민 말야! 걔 광주로 전학간대!! 조금전에 담임이랑 말하는거 들었거든.”
…1달후 라는 얘기는 못 들은거 같지만.
“그게 무슨 빅뉴스감이냐. 어차피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놈인데.”
“하…하긴. 근데 좀 전에 유정민을 보고 왔는데 사람이 겨우 3일만에 그렇게 변할 수 있는거냐?”
“왜?”
“아니 무진장 막 나가길래… 게다가 분위기도 묘하게 날카롭게 변해서 순간 딴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하하 니가 아프긴 무지 아픈가보다.”
하루는 여전히 무관심하게 창밖에만 몰두해있었다.
그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가자, 기분좋게 두근 대던 심장이 툭 하고 멈추는 기분이들었다.
낯익은 뒷 모습….
낯익은 느낌….
“…너로군.”
하루의 까만 눈동자가, 어둠속의 고양이처럼 반짝였다.
하루는 더 이상 지체할 것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눈을 뗄 수 없었던 남자.
그는 분명 유정민과는 같지만,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유정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었다.
당장 그를 만나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온 몸을 지배해버렸다.
다시 상처를 받는다 해도 좋았다.
단지… 그가 보고싶을 뿐이었으니까.
“어? 야 어디가?? 곧 수업시작인데.”
멍하니 창밖만 주시하던 하루가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친구들이 의아하단 얼굴로 물었다.
“…잡으러.”
“엉?”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하루를 보며, 그들은 할말을 잃은 듯 눈만 깜빡였다.
하루가 교실에서 나가자 친구들을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뭐,뭐냐. 저 사람 숨넘어가게 만드는 미소는- 신하루가 저런 놈이었냐?;;”
“아 씨발. 나 방금 코피 쏠릴 뻔 했어.”
“코피뿐이냐? 난 존나 꼴리는 줄 알았… 뭐야.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봐.”
“변태 호모새끼. 아무데서나 꼴려하는 짐승.”
“마-말이 그렇다는거지. 누가 진짜 그렇대!?”
“간도 큰놈. 어떻게 신하루를 상대로…. 깔릴게 1000% 분명한데.”
새빨갛게 닳아 오른 얼굴로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있자, 주위의 친구들이 한 걸음 두 걸음
그에게서 물러섰다.
“야- 야!!”
“미안, 난 여자가 좋다.”
“다가오지마. 너 같은 놈한테 사랑을 받을바엔 콱 접시에 코 박고 죽어버리겠어….”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그는 절망어린 얼굴로 바닦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의 친구들은 좀 전에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말야…. 너 아까 유정민이 싸움을 무진장 잘 한다고 했지?”
“응 그랬지.”
정민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고 올라왔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하루의 친구 중 한명이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혹시 걔 얼굴에 상처가 있던? 없던?”
“…으음.”
잠시 고민을 하던가 싶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 전혀.”
“역시… 그럼 오늘 왔다던 그 녀석이 유정민의 쌍둥이였던가?”
“엥? 그,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들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유정민과 똑 닮았지만 야수처럼 사납고
날카로웠던 은성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추측대로라면 분명 정민의 쌍둥이가 틀림없었다.
유순했던 정민과 다르게, 시리도록 아름답고 차가웠던.
“모르겠냐? 얼마전에 만났던 그…….”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놀랍다는 기색으로 바뀌어갔다.
*
“허억…헉….”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하루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교실에서부터 교문까지의 거리를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은성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은성과의 거리가 3M로 좁혀지자, 하루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기다려 유정민!!!”
“…….”
은성의 어깨가 잠시 흠칫했지만, 그 뿐이었다.
하루는 역시 호칭이 문제였던가? 하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호칭으로 부르려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결국 하루는‘젠장,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알아듣기 쉬운 호칭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아니… 그 쌍둥이!”
…별 수 없었다.
하루는 작명센스엔 영 재능이 없는걸.
분명 작명센스는 엉망이었지만 효과는 있었는지, 계속해서 요지부동이던 은성이
반응을보였다.
“이번엔 용케 알았군…. 대충 찍어 맞춘건가?”
“그렇지않아! 이젠 느낌만으로 알 수 있으니까.”
은성의 비릿한 미소에 하루는 흠칫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소한 말이긴 하지만… 전에 내가 했던 말을 잊지는 않았겠지? 분명 다시 만날 일은 없을거라 했을텐데.”
“…하지만 하고싶은 말이 있어.”
“듣고싶지 않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리자 당황스러워 하던 하루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 버렸다.
마치 벌레라도 보는 듯한 은성의 눈빛과 얼음장 같은 차가운 말투에
하루는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처럼, 울상을 지어버렸다.
알 수없는 통증이 가슴을 짓눌렀다.
자신이 왜 이러고 있어야하나 생각 때문에 비참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은성을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툭…
“내가…”
“…뭐하는거야.”
하루는 급히 은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은성의 냉랭한 눈빛을 차마 마주할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내가… 다 잘못했어.”
“……!”
“니가 원한다면 다신 유정민도 안 괴롭히고… 성격도 죽일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
“…제발 다신 안 볼것처럼 그러지마.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 보지마.
네가 그렇게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눈동자를 가득 메우고있던 눈물이 결국 후두둑 하고 떨어져버렸다.
하루는 자신이 울고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차라리 평소처럼 싸움이나 걸고 자신이 먼저 등을 돌렸으면 좋으련만 미련스럽게도
은성의 앞에선 마법이라도 걸린것 처럼 그럴수가 없었다.
“…하아.”
하루의 눈물에 은성의 두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아서 한 참동안 두 눈만 깜빡깜빡였다.
만난진 얼마되지 않았지만 하루의 성격이 어떤지는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다혈질에, 단순하고, 콧대높은…
한마디로 단순무식하고 지랄맞은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을 가진 대부분이 하늘을 찌릇듯한 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구지 오래된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신하루는 자신이 만난 이들중에 최고봉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걸렸다.
“병신아 울긴 왜 울어….”
“씨발, 진짜 병신같아.”
“이건 무슨 새로운 장난이냐. 복수를 하려면 좀 평범하게 하라고.”
은성은 허둥지둥거리면서 하루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이 상황에서 ‘우는 모습이 굉장히 예쁘잖아?’ …리는 생각이 들어서 흠칫했다.
하루가 남자치곤 예쁜얼굴이긴 하다만, 이성에게나 느낄법한 감정이 들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새빨간 얼굴로 코를 훌쩍거리는 모습도 귀엽게만 다가왔다.
‘미,미친새끼! 지금 무슨 생각을하는거야!!!!’
괜히 우는걸 봐가지고- 하며 은성은 하루에게서 손을 떼내어버렸다.
그 때 잔뜩 충혈된 눈으로 씨이 거리던 하루가 심통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이 아냐.”
“장난이 아니면 뭔데. 네 성격에 그 높은 자존심마져 한 수 접어두고 날 붙잡는게 말이 되?
우린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마지막엔 크게 싸우기까지 했잖아.
게다가 난 니가 그리 싫어하는 유정민의 쌍둥이이기도하고.
차라리 복수를 한다고 달려드는쪽이 정상인 반응인걸.”
“알아 나도… 내가 이상한거. 그렇지만….”
또륵하고 눈물방울이 턱밑까지 흘러내렸다.
이제 그쳤는가 싶었더니 이 놈의 눈물샘은 정말 밑도 끝도 없는모양이었다.
“반해버린걸 어떻하냐고….”
“……!”
하루의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은성이 뒤로 주춤했다.
이-이게 말로만 듣던 동성간의 고백인건가.
하지만 생각했던것 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사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무언가가 깨져버리는 듯한기분이었다.
“너 진짜 미쳤냐? 우,우린 같은 남자…”
“알아 안다구! 나도 게이가 아니었단 말야!! 너만 보지 않았더라면 이딴 엿같은 감정은
느끼지 않았을텐데.….”
“개새끼 난 그딴거에 관심없으니까…. 아 제길.”
도무지 하루를 지나쳐 갈 수가 없었다.
우는 모습만 보지 않았어도 모른척 갈 수 있었는데….
은성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저렇게 애처롭게 울고있는 모습을 보자니, 따듯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울지마.”
자신도 모르는새에 손을뻗어 하루를 품에 가두어버렸다.
실제로 키는 하루쪽이 더 컸지만, 고개를 숙인터라 은성이 좀 더 커보였다.
은성은 어색하게 한쪽손을 들어올려 하루의 붉은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울지마 신하루.”
그 따스한 손길과 음성에 이상하게 눈물이 뚝하고 멈추어버렸다.
“…….”
“사실 불안해하고 있었던건 나였는지도 몰라…. 그 날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선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으니까.
그래서 아까 네가 날 잡았을 땐 굉장히 기뻤어. 어떤 형식으로든 너와 다시 만나길 바랬거든”
“그럼 왜 그렇게 차갑게 돌아선거야….”
“내 쌍둥이를 건들인 놈인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 이 정도만 해도 특혜를 베푼거라고.
보통은 반 죽여놓는건데 말야.”
피식 하고 웃으며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자, 하루가 발끈하며 되물었다.
“…호오, 그럴 실력은 되고?”
“얼레 이것봐라. 금새 기가 사네? 역시 네 놈은….”
은성의 표정이 찌푸려지자, 하루가 움찔했다.
“…시,싫어?”
“아니. 오히려 너 다워서 좋아.”
이런 귀여운 모습은 반칙이잖아. 하고 은성은 하루를 다시 한번 꽉 껴안았다.
하루가 발버둥을 치며 숨막혀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은성은 지금까지 평범하게 자라와서인지 동성끼리의 사랑에 대해선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너라면 괜찮을 지도… ”
“뭐?”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에 놀라기는 했지만, 은성은 그냥 이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에라 모르겠다. 우선 저지르고 보자.’
처음에 반했다는 말을 들었을떄 거부감이 들었던건 사실이다.
같은 남자한테 고백이라니….
하지만 상대가 신하루라면 한 번쯤 사귀어봐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아직까지도 생소하고 거부감이 들지만, 막상 하루를 안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씻은듯이
날아가버렸다.
오히려 지금까지 사귀어 온 여자들보다 훨씬 더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이미 하루의 눈물을 본 순간부터 그에 대한 감정이 친구이상인 정도는 잘 알고 있었고,
동성간의 사랑이 평생까지 이어지리라곤 생각치도 않고있으니까.
“남자는 처음이라 많이 부족할거야…. 그래도 괜찮아?”
“어,어? 어… 너…너!!!!!”
나긋나긋한 은성의 말투에 하루가 눈을 크게떴다.
설마….
“응 맞아. 사겨보자는 거지.”
언제나처럼 이어지는 마성의미소에, 하루는 넋이 나가고야 말았다.
……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정신이 나가버린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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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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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귀엽다....
이제 사귀는건가요ㅋㅋ 정민이랑 사겨도 됬을텐데
완존 귀엽당!!
드디어 사귀는군
재밌네요
벌써 사귄다닛!!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