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휘 _ 강 석 희
지휘자 강석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다. 동아음악콩쿨, 중앙음악콩쿨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창악회, 아시아 작곡가 연맹, 미래악회 등에서 여러 창작곡들을 지휘하였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지휘연구원에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그라쯔 국립음악원 지휘과에서 Martin Turnovsky를 사사 하였고, 오스트리아 짤쯔부르크 국립음악원 모짜르테움에서 관현악지휘(Michael Gielen) 및 합창지휘(Walter Hagen-Groll)를 전공하며 두 과정 모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여 디플롬 및 Magister를 취득하였다. 그는 Budapest Symphony Orchestra, Nuernberger Symphonker, Romania Oltenia State Philharmonic Orchestra, KBS 교향악단, 수원시립교향악단, 서울시교향악단, 부천시립교향악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 원주시립교향악단, 제주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 충남도립교향악단, 바로크 합주단 등 국내 유수 교향악단과 앙상블을 지휘하였다. 오페라와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을 소화해내는 그는 섬세한 지휘와 탁월한 곡의 해석력을 지닌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수원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단국대학교 교수, 한국음악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사단법인 한국지휘자협회 이사, 전주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다.
피 아 노 _ Gustavo Romero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구스타보 로메로 (Gustavo Romero)는 화려한 테크닉과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연주형 피아니스트이자 후학에 힘쓰고 있는 지도자이다. 개별 작곡가에 대한 심층적 탐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지난 15년 동안 매년 새로운 작곡가에 대한 콘서트 시리즈 형식의 연주에 공헌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연주해 온 대표적인 작곡가는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비롯해 쇼팽, 바흐, 슈만, 슈베르트, 브람스, 멘델스존, 하이든, 그리고 헨델이 있다. 특히 지난 2년동안 7번의 베토벤소타나 전곡연주는 완벽한 테크닉과 베토벤스타일의 재해석, 그리고 최고의 감동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베토벤적인 연주였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2013년에는 라벨과 라흐마니노프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세계각지에서 연주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고 오는 9월 클라라 하스킬 국제 콩쿨 50주년 기념행사에 솔로연주자로 초청되어 슈베르트의 곡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20011년에는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3개 대륙에서 그의 대표적인 곡들을, 그리고 2012년에는 드뷔시 탄생 150주년과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거쉰 서거 75주년을 기념하여 그들의 음악을 대중들과 나누었다. 특히 지난 2012년에는 여러 음악가들의 삶과 그들의 음악세계를 다큐먼트리로 제작하여 방영하는 스넵샷파운데이션(Snapshotsfoundation)이 이시대 클래식 음악의 리더자로 선정하여 그의 음악 인생과 철학을 필름으로 제작하였고 현재 워싱턴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미국 샌디에고 출신의 로메로는 5세에 음악적 재능을 발견함으로 Ilana Mysior 의 사사 아래 피아노를 시작하여 10세에 첫 독주회를 열고 곧이어 콩쿨에서 우승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었다. 그 후 보헤미안 피아니스트 루돌프 설킨 (Rudolf Serkin)의 추천으로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처, 같은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3세가 되던 해에 Zubin Mehta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였고 1983년에는 18세의 나이로 Avery Fisher Young Artist Career Grant에 선정되었다.
1989년 24세의 로메로는, 스위스에서 2년에 한번 열리는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쿨 (Clara Haskill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에서 우승을 거머쥐면서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4년 미국 텍사스주의 달라스 라디오 방송국 (WRR)에서 그의 공연을 그 해의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하고, 현재 달라스에서 수많은 독주회, 챔버, 그리고 협연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메로는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A minor를 오케스트라 지휘와 동시에 솔로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찬사를 받은 바 있으며, 특히 6번의 콘서트 티켓 매진을 기록한 쇼팽의 연주는 여러 매거진에 주요기사로 장식되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지는 로메로의 연주에 대해 “ 쇼팽의 짧고 강하며 서정적이고 시적인 요소들에, 그의 쉬운 연주와 완벽한 테크닉, 그리고 거침없는 기량을 더해 순수한 환희를 선사했다”고 극찬하였다. 그리고 2006년에 이어 지난해 2010년에는 이테리 베니스에 위치한 Teatro la Fenice에서의 연주를 비롯해 마카오에서의 첫 연주회를 통해 그의 음악적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엘에이 필하모닉, 아틀란타, 휴스턴, 보스턴 팝, 엘버커키, 오스틴, 피츠버그, 호놀룰루, 신세계 심포니, 영국 챔버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헝가리카, 뉴 재팬 필하모닉, 상하이 오케스트라, 카페 타운 필하모닉,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에지 필하모닉, 국제 유엔본부 방송 콘서트와 함께 연주 활동을 하고 있고 전 세계 주요 음악 축제로부터 초청받고 있다. 세계 여러 곳을 순회하며 완벽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고 있는 구스타보 로메로의 지난 3년간의 주요활동은 일본 7개 도시 순회 연주와 더불어 한국, 중국, 타일랜드, 타이완, 마카오, 홍콩등 아시아에서의 활동을 비롯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 멕시코,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에서의 연주등이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Champaign (일리노이 주립대, 샴페인)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The University of North Texas (UNT, 북텍사스대학)에서 11년동안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뉴욕과 텍사스 달라스에서 거주중이다.
program
S.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작품. 30
I . Allegro ma non tanto
II. Intermezzo. Adagio
III. Finale. Alla breve
D. Shostakovich /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10번 마단조, 작품. 93
I. Moderato
II. Allegro
III. Allegretto
Ⅳ. Andante - Allegro
Program note
S.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작품. 30
피아노 협주곡 3번은 1909년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협회 부회장과 교향곡 연주회 지휘자로 재임하던 무렵에 쓴 것으로, 자신의 미국 데뷔 무대를 위해 작곡되었다.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공할 만한 기교와 초인적인 지구력, 상상을 뛰어넘는 예술성과 시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곡으로, 피아니스트로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초월적인 의지를 반영한 작품이다. 이 곡에 대해 라흐마니노프 자신은 “코끼리를 위해 작곡 했다”라고 하였으며,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은 이 곡의 장대한 길이와 테크닉적인 어려움에 대해 "코끼리 협주곡" 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고국 러시아의 깊은 우수와 아름다운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는 곡으로 라흐마니노프 4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한편, 1909년 11월 28일 "Walter Damrosch" 의 지휘와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7주 후 "Gustav Mahler" 의 지휘로 다시 한 번 연주되었다.
(연주시간 : 약 35분)
D. Shostakovich / Symphony No. 10 in e minor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10번 마단조
쇼스타코비치는 1945년에 교향곡 제9번을 발표하고 이른바 '지다노프 비판'으로 이름 지어진 자기비판을 강요받는다. 그 무렵 쇼스타코비치에게 쏟아진 당국의 비판은 그 교향곡이 '형식주의적이고 서구 추종적'이라는 것이었다. 이일이 있어서인지 상당한 기간 동안 교향곡의 창작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가, 8년의 공백을 깨고 스탈린의 죽음 직후인 1953년에 교향곡 제10번을 작곡했다. 그러나 이 작품도 또다시 혹독한 비난과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됐고 그 덕분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창작정신을 직접적으로 강요받을 때마다 순수 음악예술을 창작해야 할 작곡자로서 겪어야하는 엄청난 정신적 고뇌를 가졌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힘없는 예술가였던 쇼스타코비치는 어쩔 수 없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앞에서 일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저 유명한 교향곡 제5번 op.47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내부에 숨어 있는 순수 예술정신은 결코 그대로 시들어 버리지만은 않았다. 때때로 반항하듯 뛰쳐나오는 예술가의 소리,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가해지는 혹독한 비판과 억압 속에서 일련의 정신적 방황과 좌절, 굴절의 산고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면서 오직 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표출시켰다. 교향곡 제10번이 뜻하는 음악적 의미 또는 인간적 의미가 그래서 더욱 귀하고 값진 아픔의 결실로 남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에서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여 말하기를 "열렬히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세상에서 인류의 사명이 파괴가 아니라 창조에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사람들의 사상과 희망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문화를 아는 것은 전쟁의 위험을 덜고 평화의 기회를 많게 한다"고 그가 말한 뜻을 되새겨 보면 이 교향곡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 질 수 있다. 그는 1954년 세계평화협의회에서 수여하는 국제 평화상을 받았다. (연주시간 : 약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