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갖는 것이 옳은가?(2)
2020년 겨울사경회로‘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갖는 것이 옳은가?’를 주제로 하여 성탄절을 비롯한 교회가 절기로 삼고 있는 여러 절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는 시간을 두 분의 설교를 통해서 갖고자 합니다. 이 주제의 첫째 시간으로 가진‘아더 핑크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분별’의 설교에 이어서, 이번의 둘째 시간으로는‘칼빈의 성탄절 설교’를 소개하며 설명하고자 합니다.
기독교 교회가 시작될 무렵에 주님의 날에 드리는 예배 외에는 달리 특별한 공적인 예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중세시대의 교회에 이르러서는 많은‘성일’(거룩한 기일), ‘축일’(축제의 날)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교회를 개혁해 나갔던 기독교 세계는 흔히 교회력이라 불리는 복잡한 종교관습의 달력에 의해 교회 절기가 정형화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로마교회의 이런 관례적 행습에 반대하는 반응으로서, 주님의 날이 아닌 다른 날을 교회 절기로 삼은 수많은 절기들을 폐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칼빈은 조국 프랑스에서 박해를 받으므로 프랑스를 떠났으며, 153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회의 개혁을 위해 사역하게 되었을 때, 제네바 시의회가 그래도 몇 가지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반대에 부딪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제네바에서 쫓겨나기도 하였습니다. 2년 후 제네바의 재청빙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칼빈은 여전히 교회 절기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교회가 가져야 할 것임을 설교를 통해 권면하였습니다. 이는 1550년 12월 25일에 행한 설교에서 잘 나타납니다.
칼빈은 미가서 5장 7-14절을 가지고 설교를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습관적으로 제 설교를 듣는 이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째서입니까?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누가 그 날을 정하였습니까? 가련한 교황주의자들이 정한 날입니다! 그 얼마나 배은망덕인지요. 여러분이 오늘 성탄절을 축하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날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얼마나 진정한 순종을 드린다고 여기십니까? 여러분이 오늘을 성일로 지키고 싶어 하는 사실을 심사숙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일 년 중에 한 날을 택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그 탄생의 역사를 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들어왔습니다. 이 주일에 행해질 것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특별한 성일을 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셈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단을 영예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삼상 15:22-23에서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 주목하여 보십시다! 우리 주님의 탄생에 대하여 어느 날 말하여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수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아니 어느 날에든지 그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너무 악하기에 여러분의 변덕어린 본성을 따라서 하나님도 섬기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처사입니다.
여러분은 우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고 아무리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쓸데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를 쓸 때, 그것은 아주 큰 실수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불의의 극치에 도달하기까지 다른 모든 악을 불러오는 심각한 실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자체로 악한 것들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미신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점이 인식하게 될 때, 여러분은 오늘 그리스도의 탄생을 폐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일에 우리는 성찬을 나누고 주님의 탄생을 또한 상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과 신하가 되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거침돌을 하나님이 제거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악이 여러분을 어떻게 넘어지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악한 시도 속에서 여러분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칼빈의 설교와 함께 앞서 첫째 시간에 다룬 아더 핑크의 설교에서도 보게 되는, 두 분의 성탄절(크리스마스)과 관련한 설교를 소개하면서,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교회가 매년 교회 절기로 지키고 있는 성탄절을 비롯한 부활절, 맥추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일이 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보내신 일이 있어 이를 증거하며 전파함에 있어야 합니다만, 교회가 이를 성경의 절기와 연관시키며 교회 절기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의 절기는 구약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하여 예표와 실상 그리고 약속과 성취의 관계에서 한시적인 것이며 실체가 오면 옛것은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시대의 초대 교회에서는 주의 날에 예배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공적 예배가 없었습니다.‘주일’이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갖는 유일한‘날’이었으며, 이 날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과 함께 성찬(주의 만찬)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믿음에 있어나갈 뿐이었지 구약의 절기와 같은 절기 예배는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를 예언하시는 것을 통해 언약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성취하시는 것에서 있은 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한 부분으로 전 구원 역사에서 다루어질 것이니 성탄절의 절기로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주 예수께서 자신의 탄생을 기념할 것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니,“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것은 교회가 가져나갈 주의 만찬에 의한 주의 죽으심을 주께서 다시 오실 세상 끝 날까지 기억하고 이를 전함에서 기념할 것이 유일합니다(고전 11:23-26). 그런 까닭에 성탄절이니 부활절이니 하는 절기를 비롯하여 이런 저런 교회 절기를 사람의 손으로 임의로 만들어 교회의 관례로 따르는 전통으로 지켜 나가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사도 시대의 초대 교회 이후에 교회 절기가 생겨나고 그 수가 불어나 많은 절기가 형성되어 교회력을 이룸에 있어 이것에 따라 교회 절기를 가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1) 루터는 1520년에“주님의 날(주일)이 유일한 절기”라고 말하며 우려를 가졌습니다.
(2) 존 칼빈은 그의 설교에서 성탄절을 지키는 행위를‘악’에 미혹되어 우상을 만들어 내는 행위에 있는 것으로 규정하며 교회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함에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다음의 글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는 1536년 제네바에 도착하여 파렐을 도와 교회의 사역을 하게 되었을 때에 처음부터 주님의 날을 유일한 절기라고 강조하며, 그 외에 특별한 성일을 정하는 것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악한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네바 1차 교리 교육서 4계명 중에서,
특정한 날들의 미신적 준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으며, 기독교강요 4권 13장 1항에서는“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값으로 자유를 얻은 교회가 잔인한 전제에 의해 압박을 받고 거대한 유린의 덩어리로 거의 짓눌려 있는 처함한 현실은 실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무한히 귀중한 피의 값으로 교회의 자유를 사셨건만 그 교회가 잔인한 압제에 눌리며 산더미 같은 전통에 거의 압도(각종 의식과 절기들)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 (중략) …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하여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 내는 모든 예배는 아무리 그럴 듯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또한 분명히 주 하나님께서는 여러 부분에서 이와 같은 거짓된 예배 행위를 공공연하게 배척하실 뿐만 아니라 심히 혐오하고 계시다는 것을 표명하셨다.”라고 말하며, 교회의 타락과 그에 따른 위험을 경계하며 주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절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날들 중에서 한 날을 구별, 즉 분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다른 날들 중에서 특정한 날들을 분리시켜 종교적인 찬송을 드리는 날로 구분하기를 좋아했으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이런 구분은 철폐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우리는 지금도 몇 몇 특별한 날들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3) 쯔빙글리는‘쯔빙글리의 67개 조항, <축제와 순례에 대하여> ’에서
절기와 장소가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에 속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절기와 장소에 속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합법적인 자유를 강탈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운다.
라고 하였습니다.
(4) 존 낙스 또한‘제자도 제 1권’에서,
금식일의 미신적 준수, 성탄절, 주현절 등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율법, 회의, 율령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에 부과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교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전적으로 몰아내야 한다고 판단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가증스러운 것들의 준수를 고집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세속 행정 장관의 처벌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언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17세기 초반, 영국 칼빈주의적 청교도들의 신앙을 핍박하고 해제시키기 위해, 법정과 주교들에 의해 결정되어 제임스 1세의 왕명으로 출판된‘퍼스의 5개 조항’을 목회자들에게 강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5개 조항의 항목 중에 교회 절기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크리스마스, 부활절, 성령강림절, 승천절등을 지킬 것”이같은 조치에 대해 장로교인들은 주일 이외에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들은 지키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째,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지는데 역할을 한 미국 선교사들이 소속한 교단 중에서 미국 남장로교 총회는 1899년에서‘성탄절’과‘부활절’이 정상적인 기독교 안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의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했습니다.
성경에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거룩한 날로 준수함에 대한 보장이 없고(갈 4:9-11, 골 2:16-21 참조), 그런 준수는 개혁신앙 원리에 위배되며, 자의적 경배(골 2:23)를 조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단순성과 조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성탄절과 부활절을 교회 절기로 가져간 것은 한국에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한 선교사의 교단은 북장로교와 감리교에 소속되어 있어 크게 힘이 미칠 수 없었을 것인데다가, 한국의 복음화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성탄절과 부활절을 가져나가는 것이 전도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교회 절기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부각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또한 교회 절기를 따르는 교회력에 의해서 천주교(로마카톨릭교회)의 축일을 지키는 전통이 개신교에 들어와 침식해 간 것도 한 이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성경의 절기와의 연관에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은 일인 예님의 탄생과 부활과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것에서 순전한 복음 신앙을 되새기며 그 믿음에 있어가고자 하는 것에서 교회 절기로 가져나가고자 한다고 할지라도 굳이 성탄절과 부활절의 절기를 교회가 가져나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 교회는 매주일을 갖는 공예배를 통해서 이미 어느 주일에서든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에 의한 생명 얻는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여 전파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거하는 주의 날이 성탄절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주의 날이 부활절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복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보내신 성령강림을 증거하는 주의 날이 성령강림절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복음입니다. (2) 그렇게 성탄 주일, 부활주일, 성령강림주일을 매주일에서 가져나가고 있는데, 이 주의 날인 주일과 별개로 또 다른 날의 성탄절과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그리고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을 가져나가야만 하는지요. 그럼에도 굳이 그 모두를 교회 절기로 가져나가서 교회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성탄절예배, 부활절예배, 성령강림절예배, 맥추감사절예배, 추수감사절예배를 가지니, 예배에서 그에 관하여 설교를 합니다만 교회 절기 행사의 한 부분일 뿐이며, 그 외의 행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치중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절기를 내세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헌금하며, 절기에 따른 칸타타, 연극 등의 연주와 발표를 비롯하여서 재능을 발휘하고, 카드와 선물을 교환하며, 달걀, 풍성한 과일과 음식을 함께 먹으며.........이 모두는 기독교문화로 굳어져 있습니다. (3)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성탄절에는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설교하고, 부활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교하고......그렇게 해 나가는 것으로 교회 절기를 지켜간다면, 이 교회 절기가 매주일의 공예배에서 증거되는 설교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별다른 것인지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는 교회 절기를 가져나감으로써 대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고 부활을 알리는 효과를 가짐으로써 전도에 기여한다고 생각을 하며 그 필요성을 가져나갔습니다만, 성탄절인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적인 공휴일이 되어 비그리스도인이 이 날을 장악하고 기다리며 기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성탄절’이 자신들과 관계가 있어서인가요? 아닙니다. 그 날이 공휴일로서 자기들을 위하여 즐길 수 있는‘자신들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코‘자신들의 날’을‘주의 날’이 되게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데 그리스도인이‘주의 날’을 비그리스도인에게서 보게 되는 자기들을 위하여 갖는‘자신들의 날’로 삼고 있는 실정인 성탄절을 비롯한 교회 절기를 가져나가야겠는지요. (4) 만일 성탄절의 필요성을 절실히 갖는다면, 그리고 또한 부활절 등 등의 교회 절기의 필요성을 강하게 갖는다면, 중세교회 시대의 교회력이 미신화되어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던 것을 항상 주의하고 교회력이 지나치게 강화되지 않도록 조심하여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을 비롯한 복음의 진리에 있는 믿음을 주일에 신실히 증거하시며 그 믿음에 굳건히 잘 서나감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주일 외에 주일 보다 더욱 중요하고 큰 날은 없습니다. 이는 비록 성탄절과 부활절 등 교회 절기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보게 되는 사실입니다. 네덜란드 교회는 1574년에 개최된 총회에서“성도들은 오직 주의 날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성탄절 전 주의 날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하여 설교하고, 부활절 주일 설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해서 설교하고, 오순절 주일에는 성령 부으심과 관련하여 설교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 교회는 비록 몇 몇 교회절기를 허용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이런 절기들은 주의 날보다 더 위대한 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실시된 1578년 총회에서는 몇 몇 교회 절기를 허용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를“사람들이 절기의 날에 놀고 지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여 정부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절기의 날에 행해져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이신 주님과 그분의 사역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 이외에 이처럼 특별한 기독교인의 절기들을 지키는 것에 대항하여 많은 교회적인 저항들이 계속해서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 이상을 통해 성탄절을 비롯한 교회 절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교회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혁교회의 신앙에 있어 온 교회는 교회 절기에 대하여 부단히 그 문제성을 인식하고 개혁하는 모습에 있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교회 절기의 필요성을 중요성을 여전히 말하며 지지하는 편이 있으며 이에 반대하여 교회 절기의 부당성을 말하며 폐지(폐기)의 견해를 갖는 편도 있습니다. 교회 절기의 폐지(폐기)가 강하게 주장되며 그 시행에 있는 교회들이 있어 옴에도 불구하고, 교회 절기를 주장하는 편은 자신들도 이것이 시행되어온 교회의 역사가 많은 문제점을 지닌 어두운 면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습에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삼은‘크리스마스는 하나의 드라마’라고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 맘에 계신 예수님은 2000년 전 이미 태어나신 분이시고 지금은 하늘에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고 계신데, 왜“오늘 나셨다!”고들 오색 등불을 켜 놓고 난리법석인가? 주님께서 언제 제자들에게“이맘때면 꼭 내 생일 파티를 해 다오”라고 주문하셨던가? 예수님의 생일 날짜가 도대체 언제인데…? 누가 그 날을 안다는 말인가? 구교(로마카톨릭교회)가 만들어 놓은 그 드라마의 연례 연출에 과용되고 낭비되는 막대한 에너지와 리소스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는 데 돌려 쓸 수는 없는가? 신자는 크리스마스의 일부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왜 해마다 섣달 스무 닷새 날이면 생일잔치로 떠들까? 신자들의 정서함양을 위해서? 성육신의 진리를 확고히 믿으면 그뿐이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성탄 배경을 기억하고 임마누엘의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면 된다.‘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지 않아도 죄 될 일 없다. 각본대로 움직이고 무드를 탄다고 신앙이 더 돈독해 지는 게 아니다. 성경 진리 그대로를 믿어야 참 신앙인이다.
오늘날에도 성탄절을 강하게 주장하는 분들은 성탄절 전 주일에도, 그리고 성탄절 후 주일에도 그 날의 주인이‘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에 있어 온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섬김에 있은 날을 성탄절을 가지면서까지 하려는 참으로 더욱 큰 열망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더 핑크가 지적한 대로 종교놀음을 그치고, 칼빈이 말한 대로 우상을 만들어내는 악에 있지 말고, 세상이 거부하며 배척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신실히 있음을 세상에 선양함에 있어야하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말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인 삶입니다.(*)
......................................................................
* 2020년 겨울사경회로 갖는‘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갖는 것이 옳은가?’의 강론을 위해 아더 핑크와 칼빈의 설교 두 편을 비롯해서 인터넷에서 소개되고 있는 몇 몇 자료들을 참고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