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전고(典故)라고 하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어휘를 즐겨 사용한다.
이렇듯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극도로 추구하는 변문은 기실 운문의 요소를 적잖게 지닌다.
이런 변문의 출현은 중국 고대문학의 독특한 일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글에서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은 잘 표현할 수 있으나
내용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또 그 내용의 전달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형식미 위주의 글과 상대적인 글로서 산문이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산문은 우선 시가를 대표로 하는 운문과 상대적인 글,
즉 운이 없는 글을 의미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대구(對句)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형식미 위주의 글과 달리
내용을 위주로 한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가리킨다.
이 고대문학에서 말하는 산문은 경전(經傳: 경서와 경서를 주해한 책)과
사서(史書)를 비롯하여 사상과 감정을 담은,
형식이 자유로운 여러 형태의 글들을 가리키며 흔히 고문(古文)이라 불린다.
다만 오늘날에 이르러 산문은 시가, 소설, 희극 등과 더불어
일종의 문학 체재를 가리키는 말로서,
운율이나 대구와 같은 형식미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단편 문장을 의미한다.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하여 의론과 서사 및 서정 어느 것도 가능하다.
본문이 논술하고 있는 것은
현대산문비평의 4가지 기본 캐타고리인
1.산문의 계정(즉 산문이란 무엇인가);
2.산문의 미학적 특징(aesthetical characteristics);
3. 산문의 창작이론 ;
4. 산문의 감상론등 내용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현대 중국 문단에서 기본상 정설로 되여 있는 시각들을 분석 및 정리 하면서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한국문단의 시각과 비교하면서 논술하였다. 현재 매우 혼란스러운 산문의 개념정의에 대한 토론부분에서
필자는 독자의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하여
중국 당대의 산문작가들의 시각들을 소상히 나열하면서 비교하였고
또 지난 30년대의 중국 문학가들의 시각과 비교하였으며 한국문학가들의 시각과도 비교하였다.
산문이란 쟝르(genre)가 갖는 3대 특징을 서술하면서 필자는
산문작가는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의
특이한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글을 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한 편의 산문중의 작은 한 단락만 읽어도
그 산문이 누구에 의해 쓰여졌는지 알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산문창작의 특수성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필자는
중국 문자의 특수성과 산문에서의 修辭學(rheotoric)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의견에 의하면 산문(san-wen)중의
"散(san)"이 주제의 광범함을 대표한다면 "文(wen)"은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문감상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필자는 최근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접수미학"(Reception aesthetics) 의 관점에서
중국에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산문붐"- 즉 "90년대한문현상"의 사회적인 원인을 분석하였다.
"90년대 산문붐"의 원인은 보다 넓은 인문, 사회 배경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 한국문단의 관심을 요하는 과제라고 언급하였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필자는 대륙의 "산문비평"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인
다른 사람의 산문에 대해 찬양만 하고 비평을 안하는 풍조에 대해 언급하였다.
• 창 작 영 역 •
소 영 역
산문
차시
1차시
학습 주제
서사란 무엇인가?
학습 목표
① 현대소설 창작교육, 소설 창작을 위한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
② 창작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③ 서사적인 글쓰기에 대한 개념을 파악한다.
1. 서사의 개념
‘인간’에 대한 정의 중 그나마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정의는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정의일 것이다.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정의가 타당성이 있다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고등동물’이라는 정의도 성립된다.
따라서 생각을 가진 고등동물인 인간은, 생물학적인 삶을 넘어서는 행위
즉 자신이 가진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러한 욕구를 곡으로 표현한 것이 음악이며,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미술이며, 문자로 표현한 것이 문학인 것이다.
문학이 하위 갈래인 운문이나 산문 또한 마찬가지다.
함축성을 가진 시어에 운율을 실어 표현한 것이 운문 곧 시라면,
이야기로 풀어 쓴 것이 소설이 되고 수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문학의 특정 양식에 따라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말을 통하여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사람들은
글을 통한 창작의 필요성까지 느끼지 않겠지만,
말만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음성으로 전해지는 말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고도의 언어를,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글의 구조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상당수가 인문학적 사고의 소유자들이며,
문학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문학작품을 창작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말로,
내가 살아 온 것을 책으로 묶으면 몇 권은 족히 나올 것이다‘는 말씀들을 하시곤한다.
그런데, 과연 그 분들 중의 몇 분이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르긴해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참고로 현재 이 지구상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전세계 인구의 30%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에서 미적인 구조를 갖춘 문학 작품의 생산이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작품의 창작은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은 더 더욱 아니다.
작품을 자주 접하고, 인생을 보다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고,
창작과정에 대한 이해와 소정의 연습과정을 익힌다면 누구나 작품을 창작해 낼 수 있다.
남은 문제라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자신에게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일인가,
혹은 자신의 특기와 적성에 어울리는 일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 장에서 주로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산문이다.
그렇다면 산문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치개념은 절대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인 가치개념이며,
산문이란 명칭은 운문의 상대적 개념이므로,
산문과 운문을 동시에 비교할 때 그 성격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전적인 정의부터 살펴보자.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할 때의 시란,
일정한 울림․리듬․하모니를 가진 운문(韻文)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시작품을 성립시키는 각 시구(詩句)를 가리킨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함에 있어서
전자를 무용(舞踊)에, 후자를 보행(步行)에 비유하고,
산문은 보행과 같이 명확한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향한 한 행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시는 무용과 같이 그것도 행위의 한 체계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 행위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즉 시는 무용과 같이 어딘가를 목표로 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하나의 황홀한 상태, 생명의 충일감(充溢感)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보행과 무용의 공통점은 그때 쓰이는 것이 육체(肉體)라는 점인데,
이것을 시와 산문에 적용시켜 보면 양자는 다같이 언어(言語)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시에 쓰이는 언어, 시적 언어(詩的言語)는
산문에 쓰이는 언어가 이른바 의미기호(意味記號)로서의 언어,
전달을 첫째 목표로 하고 있는 실용적인 언어인 데 비해,
독자 속에 있는 어떤 감동 상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이는 언어,
즉 감화적․정동적인 기능을 달성하기 위한 언어인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하고 있는 시에 쓰이는 언어는
반드시 의미 전달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적 언어의 본질은 그런 데에 있으며
이런 사고(思考)를 밀고 나갈 때 소위 순수시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동아대백과사전)
산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설이란 말의 범위가 너무 좁아
서사(敍事. Narrative)라는 좀 더 범위가 넓은 용어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서사’란 말 그대로 ‘사건에 대한 서술’을 말한다.
그러나 서사는 그것이 의존하는 형식이나 매체가
소설이라는 협의의 범위보다 훨씬 크고 다양하다.
예컨대 소설, 서사시, 극, 신화, 전설, 역사 등의
언어적 서사물 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발레, 오페라 등의
비언어적 서사도 포괄하는 개념이 바로 서사라는 용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서사라는 용어는 문학적 서사만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고,
가장 좁게는 소설에 국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 교재에서는 소설보다 범위가 조금 넓은 뜻으로
혹은 거의 비슷한 뜻으로 ‘서사’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2. 서사적인 글쓰기의 특성
서사란 대상의 움직임이나 사건을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묘사의 경우 전체적인 인상이나 느낌을 기술하기 위한 감각작용과 공간인식이 중요하다.
그에 반해 서사는 기본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사건의 추이를 서술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간인식이 중요시된다.
사건의 앞뒤 관계나 문맥적 연관성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사란 일단 ‘사건의 시간적 진술'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모두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사건은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보편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1) 전민통련 의장 문익환 목사가 18일 저녁 8시반경
서울 도봉구 수유 2동 527의 30 자택서 과로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문목사는 이날 저녁 자택서 가슴이 답답하다며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둔 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 응급실로 긴급히 옮겼으나 소생하지 못했다.
-<동아일보>, 1994. 1. 19.
이러한 기사는 다루고 있는 인물이
민주통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국민적인 관심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사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나고 죽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온갖 고난과 탄압을 받으며
살아 온 사람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관심과 초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서사는 단순한 사건이나 상황의 기술이 아니라
의미있는 사건을 시간적 전개과 정을 통해 기술하는 글쓰기의 양식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 시간, 의미, 이것은 서사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들이다.
서사문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세계와 인물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전개되는 이 야기가 필요하다.
배경에는 장소, 사물, 시간, 공간적 상황 등이 포함되고,
이야기에는 그 세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들이 포함된다.
물론 이때의 사건이나 움직임이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전개되는 의미있는 행동을 의미하며,
발단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물과 사건, 배경은 서사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서,
이것들이 상호 연관성 속에서 완결된 하나의 의미,
주제를 파생시키게 될 때, 훌륭한 서사문이 되는 것이다.
서사문에는
기사문과 보고문, 자서전, 회고록, 역사 서술, 소설, 서사시,
희곡, 동화, 신화, 전설, 르포르타지 등 의미적 사건을 서술하는 모든 종류의 글이 포함된다.
다음의 글들은 각각 전설과 사건보고, 영화 줄거리 요약,
그리고 기사문 등인데, 전체 글의 성격이나 장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일정한 사건의 전개를 시간적 연계성 위에서 진술하고 있는 서사문이다.
(2) <공후인>이란 노래는 조선 땅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란 여자가 지은 것이다.
(이 노래가 지어진 연유를 소개하자면)
자고가 새벽 일찍이 일어나 나루터에 가서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에 난데없이 머리가 새하얗게 센 미치광이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 헤 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비틀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늙은 미치광이의 아내가 쫓아 오면서,
목이 찢어지도록 남편을 부르면서, 한사코 남편을 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애절한 정성도 보람없이,
그 늙은이 는 깊은 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기어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죽을 힘을 다하여 쫓아오던 아내는 남편의 그런 죽음을 당하자,
들고 오던 공후를 끌어 잡고 튀기면서 公無渡河 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때에 그의 노랫소리는 말할 수 없이 구슬펐다. 노래를 마치자,
그 아내 또한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어 가는 것이었다.
(3)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지리산에는 그날 아침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고정희 선생은 지난 밤 12시가 넘어서 지리산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상가의 한 식당에서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려고 하자 식당 주인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비가 올 것 같고 또 비가 오면 위험하니 산에 오르지 말라고 말렸다.
고정희 선생은 꼭 산에 올라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지리산에 올랐고,
또 잘 안다고 말하면서 동행인 배기자와 함께 8시에 뱀사골을 향해 떠났다.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곧 폭우로 변했고,
9시부터는 관리사무소 쪽에서 산행을 금지시켰다. 선생 은 12시경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곳은 막차 바로 아래 지점으로 관리사무소에서 15km 떨어진 곳이었고,
뱀사골에서 3km 떨어진 곳이었다.
-김은실, “고정희 선생님이 죽었다?"
(4) 록스타로서의 모든 영광과 소란을 떠나 호텔방에서
스스로를 폐쇄시켜 버린 그에게 ‘자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집요한 탐색이 시작된다.
전쟁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 그늘에서만 자란 어린 핑크의 고독,
자유와 애정에 대한 열망, 실패한 결혼의 허식과 배신,
마약에 빠져 들수록 배가되는 공허, 눈에 띄는 바깥 세상의
모든 무질서와 위선, 학 교 생활의 독선적인 억압감,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발버둥치는
그 자체 가 실은 낱낱이 벽돌장이 되어 벽으로 쌓아 올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속수무책이다.
연인의 상냥함조차 견디기 어렵게 된 그는 발작적으로 방 속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절규한다.
인사불성이 된 핑크를 매니저가 병원으로 데려 간다.
차 속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 의 내부에서 용트림하고 있는
의식의 중심이 권력의지라는 걸 깨닫는다.
망상은 곧 그를 독재적인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군중을 선동해 유태인과 호모를 가려내 처단하고,
나찌가 무색할 지경의 온갖 파괴와 만행을 그는 자행한다.
그래도 눈 앞의 공허와 벽은 요동이 없다.
긴 꿈에서 깬 그는 실은 정신병원의 일실에서 변기의 물로 입술을 적시면서 일기를 읽고 있는 처지이다.
자신이 정말로 미쳐 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그는 전율한다.
괴물 같은 판관이 나타나 그를 논죄하고 중형을 내린다.
그 두텁디 두터운 벽을 깨부수라는 명령이 다.
왜소한 정신병자가 돼 버린 그 앞에서 거대한 절규와 함께 허공으로 산산이 벽이 허물어진다.
-이제하, 「벽과 마주선 벽의 의미 - 알란 파커의 <벽(Wall)>과 <버디>」
(5) 지난주 동료의 구속에 항의, ‘준법운행'으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줬던
서울지하철이 기관사와 차장이 모두 졸면서 운행,
2개 역을 그냥 통과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2천여 승객들 을 한때나마 공포에 몰아 넣었다.
18일 오전 8시 15분경 강변역을 출발,
강남으로 가던 지하철 2호선 2012호가 성내역과 잠실역에 정차하지 않고 통과해
승객과 출근길 시민들이 역에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사고 전동차가 2곳의 역을 통과하자 지하철공사는 본사 사령실에서
급히 사고 전 동차로 무선을 보내 다음 역인 신천역에 전동차를 정차시킴으로써
커다란 사고는 방지 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1994. 2. 19.
수필(隨筆)이란 어떤 것인가 - 수필의 정의. 어원. 종류
* 문학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라고 했습니다만
그 중 수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수필의 정의, 어원, 종류 및 수필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통해 수필의 성격을 알아보고 수필에 보다 확실하게 접근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수필의 정의
수필은 작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과 체험을 자유롭고 진솔하게 나타낸 현시(顯示)적. 고백적. 인격적인 글로,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간명하게 문예적으로 쓴 산문'입니다. (' '은 趙演鉉)
조연현 선생의 정의를 들었습니다만 <수필은 산문의 대표적 양식>이란 글에서도 말했듯 수필은 '서정적인 정서나 감흥을 가지면서도 서정시가 아니고, 소설적 구성을 갖되 소설이 아니고, 희곡적 비평적 요소를 가지면서도 희곡도 비평도 아닌 독자적 양식' 이라고 하여, 수필이 서정적 정서와 감흥, 소설적 구성, 희곡적 비평적 요소를 갖는 독자적 양식의 문학으로 대표적 산문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필에 대한 정의는 어느 것이 옳다, 어느 것이 그르다 할 수 없을만큼 정의를 확실히 내리기가 어려우면서도 많은 정의가 내려져 있습니다. 그 중 수필의 교과서처럼 인정되고 있는
'피천득'의 수필 <수필>에는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라고 수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수필의 정의'로 보긴 어렵습니다. 너무나 추상적입니다. 수필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기엔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문장 때문에 수필을 잘못 이해 하거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수필은 그런 것이구나' 하고
감을 잡게 하는 것으론 이보다 더 좋은 정의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수필의 語源
그렇다면 수필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수필'을 서양어로는 essay, 동양어로는 隨筆이라고 합니다. '에세이'는 프랑스의 몽테뉴로부터 비롯된 시론(試論),
시도(試圖)라는 뜻인데,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 발전을 했습니다.
참고로 수필의 정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에세이'에 대한 정의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웹스터 사전> 에세이란 '분석 또는 해석을 본질로 하고, 어떤 대상을 다소간 제한된 입장이나 개성적인 입장에서 다루며, 문체와 방법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문학적 지식을 말한다. (...) 대체적으로 학술 저자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면에서, 역사가나 자서전은 대상을 어느 일면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에세이와 구별된다.'
<컬럼비아 백과사전>
에세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서나 상관없이 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산문으로 된 문학적 저작물이다. 좀 더 주관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점에서 논문이나 소설 등과 구별되는 것이다.'
<대영백과사전(1965년판)>
'에세이는 대개 산문으로 스여지는 적당한 길이의 작문이다. 어떤 대상과 그 대상이 작자에게 그림자 드리우는 관계를 부드럽고 소략(疏略)하게 쓰는 것이다.'
<문학작법(스타인만과 윌른 공저)>
'오늘 날에는 에세이는 넓은 의미로 씌어서 단편소설, 장편소설, 희곡이 아닌 산문으로 된 모든 작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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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은 한국.중국.일본의 고전으로부터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는데 '隨筆'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2세기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1123∼1202)라는 사람이 쓴「容齋隨筆」
(용재수필)에서 연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나는 게으른 탓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으나, 그때그때 뜻한 바 있으면 앞뒤의 차례를 가려 챙길 것도 없이 바로바로 기록하여 놓은 것이기에 수필이라 일컫게 되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李仁老(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1260)을 최초의 수필로 그 범주에 넣고 있으며, 용어상으로는 조성건(趙性乾)의 한거수필(閑居隨筆, 1688)을
최초 본격 수필이란 용어로 보고 있는데, 그 후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이 일신수필(馹訊隨筆)이라 하여 '隨筆'이란 용어를 정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무로마찌 시대(室町時代:1338-1573)에 '동재수필'(東齋隨筆)이라고 하여 수필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 우리 나라에서 수필이 문예지에 실린 것은 1919년 창간된 한국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創造)]에 '일기문'이 문예물로 실린 것이었고, 3년 뒤인 1922년에 창간된
[백조(白潮)]에 감상.기행이란 이름으로 각각 1편씩이 수록 되었지만 수필이란 명칭으로 실려진 것은 아닙니다. -----------
윤오영(尹五榮)은 '수필은 동양적인 에세이요, 에세이는 서구적 수필' 이라고 말해 동양의 수필과 서양의 에세이를 같이 보고 있지만 원래 에세이는 '시금(試金)', '계획(計劃)'의 의미를 가진 말로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엑시게레 exigere」라는 어원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몽테뉴였고, 에세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영국의 베이컨이「명상록」이란 의미로 사용한 후부터입니다.
그러면 에세이라는 말의 시원(始原)이 된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지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에게 <몽테뉴>(鄭鳳九 옮김)
여기 이 책은 아주 성실 정직한 책¹이다. 독자여, 책머리에서 당신에게 그 사실을 말 해 두지만, 나는 이 책 속에 내 가족적인 사사로운 일 밖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에게 대한 어떤 보탬이나 또는
내 영광을 위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마련은 내 힘에 넘치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내 친척들과 친구들의 쓸모의 보탬으로 드린다. 즉 그들이 나를 잃고 나서 (머지않아 그렇게 될 테니까) 이 책에서 나의 타고난 기질의 그 어떤 특징을 생각해 낼 수 있게 하고, 또 이 책에 의하여 그들이 나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지식을 더욱 완전하고 더욱 생생한 것으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좀 더 자신을 분칠했을 것이고, 조심스러운 발자취로 스스로를 드러냈을 것이다. 나는 여러 분들이 이 책에서 나를 자연스럽고 예사로운, 긴장도 기교도 없는 담백한 모습으로 보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나²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내 결심이 생생하게 그대로 읽혀질 것이고, 또 내 타고난 외모도 독자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예절의 한도 안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질 것이다. 만약 내가 아직껏 자유 관대한 자연의 최초의 법칙 밑에서 산다는
그런 민족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당신들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아주 기꺼이 완전하게 벗어붙인 나를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여,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의 내용³이다. 이렇게도 가볍고, 이렇게도 별 볼 일 없는 내용이니 당신이 당신의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만한 구실도 못된다. 그러면 안녕. 1580년 3월 1일. 드 몽테뉴.
위의 -¹.²,³을 보면 몽테뉴는 ① 성실 정직한 책, ② 내가 그려내고 있는 것이 나, ③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의 내용 이라고 했습니다.
곧 몽테뉴는 '에세이'를 거짓없이 진솔하게, 내 고백적 성격과 체험적 사실을, 완전하게 발가벗은 나로 나타낸 것'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수필도 서구의 에세이에 관한 지식과 개념들이 들어옴으로써 문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에세이와 수필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에세이'는 논리적. 지적. 사회적. 객관적. 비평적으로 내용이 비교적 중후(重厚)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수필'은 개인적. 주관적. 감상적. 정서적이어서 정적(情的). 감성적. 체험적으로 비교적 내용이 가벼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서구의 에세이는 중수필(重隨筆), 동양의 수필은 경수필(輕隨筆)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 중수필 : 제목부터 무거운 느낌을 주며, 말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주장이 있음)하며, 사회적 시사(時事) 비평적이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기회에 수필의 종류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수필의 종류
수필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그저 붓 가는 대로 쓰는 산문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문장력만 있으면
누구나 쓰는 글이라고 생각을 하거나 타 장르의 문인들이 자기 장르 외의 잡다한 글들을 모아 에세이 또는 수필이란 이름으로 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뿐 아니라 자서전적 체험담이라던가 편상(片想)들을 모은 글이거나 음악, 미술, 연극, 철학, 사회,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써낸, 말하자면 엄밀히 문학예술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여록(餘錄)들까지 버젓이 수필(에세이) 행세를 한다든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들이 쓴 이야기가 잘 팔리는 수필 노릇을 한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입니다.
물론 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수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수필가들보다 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필이 독립된 문학예술의 한 부문임을 인식해야하며, 수필에 대해 열정을 갖고 고민을 거듭한 뒤 씌어진 글이 수필이며, 그런 인식으로 수필다운 글을 써야한다는 말입니다.
'수필'과 '에세이'를 두고도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시간에 조금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이러한 혼란을 막고 이해를 돕기 위해 수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종류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에세이(essay)와 수필(隨筆)
가장 혼란을 많이 겪는 게 바로 이 '에세이'와 '수필'입니다. 어떤 것을 에세이라 하고, 어떤 것을 수필이라고 하는가, 결국은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몇 사람의 정의를 보겠습니다.
· 윤오영은 "수필은 동양적인 에세이요, 에세이는 서구적 수필"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R.M 알베레스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된 문학"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의 요시아 세이이찌(言田精一)는 "수필론에서 에세이는 구분해서 정의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에세이'와 '수필'은 같다고도 볼 수 있고,
서로 구별된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수필은 '자기 삶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서양 삶의 생활도 다릅니다. 표현하는 방법도, 성품도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동양의 수필과 서양의 에세이도 내용에서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essay라는 말에는 '評論'이라는 뜻과
'隨筆'이라는 두 가지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에세이를 보통 수필이라고 번역할 때는
평론부문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수필을 의미한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文德守,「現代文章作法」, 서울靑雲出版社, 1964, p 261 참조)
(2) formal essay와 Informal essay
에세이는 영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에세이'는 포오멀 에세이(formal essay)와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로 나뉘어집니다. 객관적 진리와 무게 있는 지식을 정연한 논리적 전개를 통해 나타낸 글
- 重隨筆, 논리적수필, 輕隨筆 - 을 formal essay라 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고 정서와 기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글
- 經隨筆, 서정수필, 軟隨筆 - 을 Informal essay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종류는 내용과 표현 방법에서 전혀 다른 것들로 우리가 말하는 수필에 해당하는 것은 후자인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經隨筆,서정수필,軟隨筆)입니다.
'인포멀(informal)'이란 말은 正格이 아니라는 말인데, 내용에 있어서 객관적 진리와 무게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독자를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늦추게 하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한가한 시간에 한가하게 쓰여지는 글이며, 한가한 시간에 읽을 수 있는 글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인포멀 에세이는 논문처럼 무엇을 증명하거나 어떤 결론에 도달하여 작자의 주장을 독자에게 설명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연한 논리적 전개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조직적 체계를 요구하지도 않으며, 명상적이고 철학적이더라도 그냥 독자가 편하게 판단하고 동감하는 정도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그렇다고 중언부언이나 횡설수설하는 그런 잡담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 많은 변화를 품고 있으며, 파격적인 지식과 유머와 철학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글입니다.
(3) essay 와 Miscellany
'수필'이라는 말에 대해 외국어로는 Miscellany와 essay를 씁니다.
Miscellany가 우리 나라에서 흔히 통용되는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반적으로 신변잡기(身邊雜記)나 감상문(感想文) 및 잡문(雜文)을 일컫기도 하지만 비교적 부드럽고 정서적인 문체로 엮어지며 자기의 견문(見聞)이나 감상(感想)의 기록 등을 말합니다.
essay 란 Miscellany에 비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는 소논문(小論文)이나
논설(論說)에 가까운 것으로 중국의 논(論), 계(啓), 의(議), 서(書), 서설(序記), 설(說) 등이 이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정리>
1.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동양적 에세이, 인포멀 에세이, 미셀러니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2.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쓰려고 하는 수필이 어떤 종류의 것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수필의 종류' 서두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연예인들의 글,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의 자서전적 글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시나 소설로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나 작품 여적을 창작 노트식으로 쓴 글들을 '에세이'란 이름으로 출간하고, 또 그런 것들이 에세이로 알고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 시대 풍토에서 굳이 그것은 에세이가 아니다 라고 반론을 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수필을 쓰고자 하는 우리만은 그런 오류에서 벗어났으면 싶습니다.
3. 수필은 다른 여느 문학 장르보다도 품격이 있는 문학입니다. 요즘은 개성의 시대가 되어 웬만큼 튀어나게 해도 흉이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나가면 품위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수필은 바로 작가의 품위를 보여주는 글이라는 것입니다. 수필의 종류를 언급한 것도 바로 그런 품위 있는 문학이 수필이므로 그런 수필을 쓰고자 한다면
어떤 것을 수필이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입는 사람이 제대로 잘 입으면 품위 있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옷은 옷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볼품이 없어지는 것처럼 수필은 내 인격과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글쓰기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꼼꼼히 읽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은 읽고서 알고 글을 쓰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