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새해였을 겁니다.
조선일보 萬物相에 실렸던 글인데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맑은 날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 숫자는 3000개가 채 안된다.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Our Galaxy)'에는 눈에 띄지 않는 별까지 합쳐 1000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 전체에는 그런 은하가 다시 1000억개가 있다. 그러면서도 별과 별 사이는 성글기 짝이 없어, 태양계로부터 가장 가까운 '알파 센타우리'까지 거리는 4.3광년(빛이 1초에 30만km 속도로 4.3년간 달리는 거리), 40조 7000억km나 된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가장 먼 별의 빛은 사실은 40억년 전에 출발한 것이다.
▶우주의 나이는 150억∼250억년으로 추정된다. 우주 탄생부터 이 시간까지를 1년으로 쳐서 달력을 만들어보면 은하의 생일은 4월 1일, 태양계의 생일은 9월9일이 된다. 지구에 공룡이 출현한 날은 12월 24일, 최초의 인간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겨우 1시간 30분전인 12월 31일 밤 10시 30분이다. 11시 59분 55초에 부처가, 11시 59분 56초에 예수가 태어났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11시 59분 59초에 시작됐으며, 현대 천문 우주학의 역사는 12월 31일 자정의 약 0.2초간에 불과하다.
▶동양에는 '겁(劫:kalpa)'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있다.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한 바위를 뚫어 없애거나,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리의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 혹은 사방 40리의 철성(鐵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 꺼내 다 비워질 때까지를 겁이라고 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광대무변한 우주의 변방 중 변방인 지구에, 그것도 미물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 함께 살게 되는 인연을 범상하게 보지 않는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1000겁에 한 번, 하루 길을 동행하는 것은 2000겁에 한 번, 하루 밤 함께 묵는 것은 3000겁에 한 번,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8000겁에 한 번, 형제로 만나는 것은 9000겁에 한 번, 부모나 스승으로 모시게 되는 것은 1만겁에 한 번의 확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주의 시야(視野)로는 티끌하나도 아닌 자기 존재를 과신하면서 몇 백 몇 천겁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들을 너무 낭비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3(원래는 2002였음)년만큼은 '이곳, 지금(here, now)', '오늘 현재(present)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선물(present)'이라는 금언들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