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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 노엘 갤러거 (The Chief)
수퍼마켓에서 공산주의까지, 오아시스의 대장은 이야기할 것이 많다. 그러나 단지 그가 좋아하지 않는 동생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글 : 폴 리스
사진 : 존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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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갤러거가 큰 헛기침 소리를 내더니 눈썹을 이마 쪽으로 찌푸리며 화를 낸다. 그는 분노를 쏟아내는 중이다. 그의 분노의 주제는 - 당연히도 - 중국 정부, 특히 이 기타리스트가 1997년 뉴욕에서 열린 티벳 해방 자선 콘서트에서 연주한 것이 알려진 후, 계획돼있던 오아시스의 중국 공연이 최근 취소된 것에 대해서다.
우리는 지금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런던을 누비고 있는 은색 벤츠의 뒷좌석에 앉아 있다. 이동하는 동안 노엘은 2012년 런던 올림픽("당연히 우린 말아먹게 돼있어")과 맨체스터 시티의 원정경기 성적("쓰레기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음정과 세기가 점점 높아지더니, 이야기가 중국 사태에 이르자 최고조에 달한다.
"내가 뉴욕에서 했던 그것때문에 우리가 갈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어." 그가 말한다. "난 그 공연 기억이 전혀 없는데 말야. 유투, 라디오헤드, 비스티 보이즈도 나왔다니까, 괜찮은 공연이었겠지! 내가 그 날 인터뷰를 몇 개 했는데, 인민 문화부*¹에서 막 그 사실을 입수하고는 내가 무슨 티벳 문제를 일으킬 놈이라고 생각하게 됐나봐. x나 열받는 일이야. 그 놈의 공산주의자들은 기억력도 좋다니까." 그는 '어쩔 수 있겠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결론을 짓는다. "그 놈들한테는 시비걸어선 안되니까."
*¹ : 중국도 문화부의 공식 영문 명칭은 그냥 문화부Ministry Of Culture이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는 걸 강조하려고 이렇게 부름.
공산주의 체제와의 문제만 제외하면, 밴드 관계자들이 습관적으로 그를 '치프'라고 부를 정도로 오아시스를 이끌어온 이 남자에게 지금은 좋은 시기이다. 그들의 7집 Dig Out Your Soul은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180만장이 팔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영국 스타디움 투어는 오래 전에 매진이 됐다. 그러니 3코스 정찬을 먹는 긴 시간 동안 '노엘 갤러거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진행하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때가 있겠는가.
우린 소박하게 꾸며진, 노쓰 런던의 한 유럽 음식 전문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받는다. 노엘은 본인이 와인 전문가라고 으시대며 레드 와인 한 병을 주문한다. 그가 선택한 와인이 나왔는데 화이트 와인이다. "제기랄"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후 3시간 동안 그가 아주 많이 말하게 될 그 말을.
노엘 갤러거에 대한 첫 인상은 다음과 같다: 그는 부자들이 입는, 조심스럽지만 값비싼 옷들을 입고 있다 - 가죽 자켓, 진 바지, 빳빳한 화이트 셔츠. 한 때 유명했던 일자 눈썹은 이제 두 개가 됐다. 분명 성공이 그에게 정기적으로 눈썹 제모를 할 사치를 허용한 것 같다. 그의 손은 놀라우리만치 섬세하다. 그는, 유명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예상보다 키가 작고, 그의 머리는 몸에 비해 너무 크다. 그래서 실물로 본 그는 자신의 캐리커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과하게 웃지도, 적게 웃지도 않지만, 일단 웃으면 그의 얼굴 전체가 기쁜 표정으로 흐트러진다. 그는 같이 있기에 정말 멋진 사람이다. 유독 성대모사를 좋아하고 (폴 웰러 흉내가 특히 똑같음) 맛깔스럽게 느긋한 말투를 가진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이야기를 잘한다. 형 갤러거를 만나면 당나귀떼 한 무리가 전부 뒷다리를 잃어버린다 해도 모를 지경이리라.
일단 음식을 주문하고, 제대로 된 와인인 생떼밀리옹이 나오자, 우린 처음부터 시작한다. 노엘 토마스 데이빗 갤러거는 42년 전, 맨체스터 롱사이트에서 토미와 페기 갤러거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어떤 건가?
우리 엄마의 11명 형제 중에 여자형제가 엄마까지 7명이었는데 다들 아일랜드에서 제일 애를 잘 낳는 분들이었어. 내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일랜드에서 이 거대한 가족들과 휴가를 보냈던 기억이야. 삼촌들이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거길 뛰어다니고 낚시가고 했던 기억이 나.
당신은 어떤 아이였나?
아주 착했지. 구멍가게를 털다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그건 거의 낭만적인 범죄였다구. 젊은 날의 치기어린 장난 같은 거였지. 요즘은 사람들이 맥도날드에서 서로 총질을 하잖아. 난 학교에는 흥미가 없었어. 음악과 축구를 사랑했지. 80년대에 우리 부모님은 이혼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을 이미 시작했었어. 우리가 주변에 없을 수록 그분들에게는 도움이 됐지. 그래서 밖으로 나돌며 말썽에 휘말리게 된 거야. 싸움? 싸움은 별로 안했어. 난 폭력은 안좋아하거든. 난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형제들이랑 싸운 적도 없어.
당신 형 폴에 따르면 당신이 갤러거 중에서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난 사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신 한 번 사귀면 오래 사귀었지. 이 말은 꼭 해야 되겠어. 한 두 명만 빼곤, 내 여자친구들은 전부 끝내주게 멋졌다구. 내 마누라 사라는 x나 매력적이지. 난 고독을 정말 좋아하지만, 좋은 여자의 사랑 없이는 고독도 소용이 없어.
그러면 당신은 파트너에게 충실한 남자군?
응. 난 한 번도 남의 떡이 더 커보인 적이 없었어. 연애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알란 맥기한테 들어보면 알 거야. 우리가 크리에이션보다 더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받았기 때문에, 그는 6개월 동안은 내가 그를 배신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일할 땐 내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지.*²
*² : [08.10.03] Irish Times - 노엘 인터뷰 中, (http://cafe.daum.net/oasislife/6UyN/190)
"1993년, 우린 지금 생각하면 푼돈인 48,000달러에 크리에이션 레코드와 계약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보노의 회사[마더 레코드]가 3배의 금액을 제시했어. 그건 맨체스터의 어린 실업자들에겐 엄청난 액수였지. 하지만 앨런 맥기가 계약서를 다 만들어놨고 자기가 우릴 얼마나 믿고 있는지 항상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우린 그대로 크리에이션과 계약하기로 했어."
좀더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크리에이션은 영세한 인디 레이블이었기 때문에, 이후 오아시스는 외국에 대해서는 소니와 계약을 했지만, 영국 내 권리는 크리에이션이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1999년 말 알란 맥기가 크리에이션을 떠나면서, 오아시스는 빅브라더 레코딩스를 설립해서 스스로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빅브라더는 형인 노엘을 의미하고, 빅브라더의 고유번호인 RKID는 우리애를 뜻함.) 빅브라더에서 제일 처음 나온 RKID 001번 싱글이 Go Let It Out이었죠. 또한 6집 발매로 외국에 대한 소니와의 계약도 끝나서 현재는 이 역시 빅브라더가 저작권을 갖고 배급만 지역에 따라 소니, 워너브라더스 등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로부터는 어떤 영향을 받았나?
노동 윤리를 가르쳐 주셨지. 엄마는 우릴 키우느라 투잡을 뛰셨어. 그리고 아일랜드의 출신배경도 있겠지. 아일랜드인들은 다 사기꾼이야.
아버지는 어땠나?
그는 우리 엄마를 임신시켰지만 결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었거든. 좋다 이거야. 그러면 애는 하나만 낳을 것이지 왜 셋이나 낳아서 날 끌어들였냐고. 사랑으로 넘치는 가정에 날 태어나게 해줘서 아주 감사할 따름이야. 그는 엄마랑 나한테 폭력을 휘둘렀어. 하지만 내 친구 아빠들에 비해 특별히 더 폭력적이었던 건 아니었어. 파업이랑 '불만의 겨울'*³ 등등 그 때는 x나 황폐했던 시기였거든. 그렇게 힘든 시기에 집에 개가 없다면 누구를 걷어차게 되겠어?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기타를 샀고,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당신은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을 거야.
*³ : 대규모 파업이 있었던 영국의 1978~79년 겨울을 지칭하는 말.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였나?
거의 20년 전이지. 그에게 악감정은 없어. 오히려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정장이랑 빠른 차, 화려한 삶을 좋아했고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 거야. 엄마는 정반대였지. 조용한 삶을 좋아하셔. 돈이 생기면 분명 새 집을 사야 되잖아? 아니야.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떠난 후 우리가 이사갔던 그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계셔. 우리가 그걸 샀지. 원하신 거라고는 새 정원 문이 고작이었어. 예전 문이 삐걱거렸거든.
아버지와의 그런 관계가 분명 당신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거 같은데?
내 생각엔 리암이 더 큰 충격을 받은 거 같아. 걔랑 아빠의 관계는 달랐거든. 걘 금지옥엽 같은 아이였어. 그러던 게 깨져버리니까 충격이 컸지. 걘 당신이 평생 만나볼 사람 중에 가장 분노로 가득찬 사람일 거야. 수프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포크밖에 없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 또 항상 앓는 소리를 해. 자기가 얼마나 풍부한 영혼을 가졌는지 늘상 떠들어대는 녀석의 참모습이 이렇다구. 밥 말리라면 영혼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자기 민족이나 그런 걸 위해 발언했었잖아? 하지만 밥 말리가 레인보우 극장에서 공연할 때, 자기 대기실의 냅킨 색깔 따위를 두고 징징거리진 않았을 거 아니야. 사실 밥 말리는 대기실을 혼자 쓸 것 같지도 않아. 아마 웨일러즈와 같이 썼을 걸.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모르겠어. 아무 영향도 없었을만큼 내가 철인도 아닐테고. 분명 영향이 있었겠지. 그로 인해 뭔가 열심히 하려는 추진력을 얻게 됐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잘 모르겠어.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부모님 사이에 그런 일들이 있었을 때 난 아빠를 죽였을 수도 있었을 거야. 분명히. 그리고 난 아빠를 두려워했지.
* * *
아까 노엘은 Q의 사진촬영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했었다. 그는 우리와 사진촬영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랬는데, 이건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흔들목마의 똥만큼이나 보기 힘든 일이다. 그는 다른 면에서도 여느 락스타들과는 다르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핸드폰은 꺼져있으며, 그와의 대화는 (일방적인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그는 본인이 이 직업(그는 락스타를 직업이라고 표현한다)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 비교적 이 바닥에 발을 늦게 들여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Definitely Maybe가 나왔을 때 그는 27세였다.
그는 자기자신인 것에 완전하게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파트너 사라 맥도날드와 18개월된 아들 도노반(그에겐 전처 멕 매튜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9살된 딸, 아나이스도 있다)과 함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고, 그의 밴드는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장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은 항상 시간을 잘 지킨다...
난 늦는 사람을 싫어해.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꼭 지키고 싶었던 거였고, 저절로 얻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밥 딜런이 오늘 오후에 전화를 해서 오늘밤에 나랑 저녁을 같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하더라도, 난 아마 "내일 먹으면 안될까요?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요"라고 했을 거야. 난 피트 도허티의 노동 윤리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중산층들이나 그러는 것 같아. 난 절대 민폐를 끼치지 않아. 그게 바로 우리가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이유지. 보드워크에서는 연습은 매주 5일씩, 9시부터 11시까지 계속됐어. 거기 안오면 잘리는 거야. 그리고 난 매일 밤마다 나갔다구.
당신이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흔히 락스타들이 얘기하는 '음악적 접신' 같은 건 없었어. 항상 내 안에 있었을 뿐이지. 우리 할아버지 집에는 TV가 없었기 때문에 친척들이 라디오를 듣곤 했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컨트리/웨스턴 뮤직 DJ였지. 그래서 내가 처음 접한 음악은 컨트리/웨스턴 음악, 그리고 아일랜드의 저항음악들이었어.
작곡을 시작한 건 언제였나?
내가 15살 때.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지에 중고품 광고가 났었어. 어떤 사람이 기타 튜너를 팔고 있었는데, 아마 이름이 피트였을 거야. 그는 4트랙 녹음기도 갖고 있었지. 서로 알게 된 후 난 1주일에 두 번씩 그 사람 집에 가서 같이 곡을 썼어. 그가 작은 드럼머신이랑 4트랙 녹음기를 담당했고, 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지. 그렇게 테입에 두 곡을 녹음해 갖고 와서 내 방에서 틀어봤던 기억이 나. 처음으로 내가 직접 만든 음악을,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더 잼의 음악이 나오던 바로 그 스피커로 듣는다는 건... 내 머리를 날려버리는 것 같았어.
당신은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디로 2년 동안 일하다가 리암의 밴드인 더 레인에 합류했다. 밴드에 들어가기 전 당신이 완전한 지배권을 갖겠다고 주장했다는 게 사실인가?
아니, 그건 잘못 알려진 소문이야. 초창기 인터뷰 때 내가 일부러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긴 했어. 그보다는 사실 걔네들이 "너 곡 만들어 놓은 거 더 있어? 니 노래들 환상적이다"라고 했다는 게 맞겠지. 근데 그 소문이 그럴 듯하긴 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사실처럼 된 거고. 우리가 제일 처음 합주했던 곡은 Columbia였어. 연주곡 상태였지. 그 때 연습실에서 내가 "와! 노이즈 장난 아니네!"라고 했던 기억이 나. 그 때부터 코가 꿴 거였지.
Definitely Maybe의 제작과정을 짧게 소개해달라.
재미없었어.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까지 3번이나 작업을 해야 됐거든. 힘든 작업이었지. 그리고 토니[맥캐롤]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 그 때 난 이미 Morning Glory의 대부분 곡들을 써둔 상태였는데,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마지막 코러스로 넘어가기 전의 드럼 부분을 쓰고 나니까, "어휴..걘 그냥 쭉 똑같이 치는 것도 못하는데" 싶어지더라구.
그러면 Morning Glory는?
만약 내가 그 당시에 1,800만 명이 그 앨범을 살 거란 걸 알았다면, 난 아마 아직까지 그걸 만들고 있을 거야.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아무 생각없이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놀랍도록 낭만적인 시기였지. 나랑 본헤드가 동네 펍에 당구 한 게임하러 갈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게 그립나?
넵워쓰 전까지의 초창기 몇 년은 그리워. 그렇다고 그 때를 다시 살고 싶다는 건 아니야. 난 이미 한 번 살아봤으니까.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새로웠어. 그 이후론 전화가 오면 전부 판매량에 관한 것뿐이지. 난 앞으로 5년간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 그리고 그건 지난 5년간 있었던 일과 전혀 다르지 않을 거라구. 하지만 넵워쓰 전에는 매일매일이 새로웠어. 심지어 그 땐 내가 숙취를 겪었던 기억도 없어. 지금이야 기네스 캔을 쳐다보기만 해도 x나 머리가 아프지만. 이번 여름에 리무진의 호위를 받으며 웸블리로 갈 때 난 락스타 같은 기분이 들겠지. 그 때는 안그랬어.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거든.
후회는 없나?
미국. 우리가 날려버렸지. 리암이 MTV 어워드에서 입에서 침을 잔뜩 흘린 바로 그 다음날*⁴우리 레코드 회사는 사실상 우리랑 바이바이했어. 그게 끝이었지. 그 때까지 우린 미국에서 앨범을 4백만장이나 팔았어. 영국보다 더 많이 팔았다구. 우린 미국에서 비틀즈보다 더 성공할 수도 있었어. 궁극적으로 리암은 자기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 파괴해 버리려고 했던 거 같아. 불안함에 x나 분노하면서. 난 불안하지 않았지. 내가 팔 수 있었어. 걘 그냥 뒤로 물러서서 선글래스나 끼고 입만 닥치고 있으면 됐단 말야.
*⁴: http://www.youtube.com/watch?v=i34tf7JdQXg. 5분 정도부터 보시면 됩니다. 그 외에도 카메라에 잘 잡히진 않았지만 맥주 흘리고 마이크 쳐버리고 시상식이 형편없다고 욕하고 그랬다고 하네요;;
성공이 밴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본헤드랑 귁시는 일단 백만장자가 되고 나니까 나가고 싶어했던 거 같아. 내가 걔들한테 영원히 몹쓸짓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걔들은 본인이 이렇게 큰 밴드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특히 귁시가 그랬지. 한 때 마약과 모피 코트 등등 난리치던 시기가 있었어... 우린 미쳐갔지. 그 땐 쿨하게 자제하고 이런 건 전혀 모르던 때였어. 난 "누가 나한테 돈을 잔뜩 주더니 날 사탕가게에 데려다 놨네. 나 우리집 이름 바꿀래!" 이런 식이었지. 난 정말 시청에 가서 집 주소를 공식적으로 바꿔버렸어. 간판 세우는 걸 보더니 한 이웃이 이렇게 말하더군. [상류층 목소리로] "이런 세상에, 당신 진심이에요?" "아, 이거 x나 맘에 들 거예요. 여긴 이제 더이상 9번지가 아니고 수퍼노바 하이츠라구요!" 하지만 난 이미 락앤롤 드림에 관한 책 같은 건 다 읽었기 때문에 전혀 겁먹지 않았어. 짜릿했지. 난 단 한 번의 코카인도, 단 하룻밤도 후회하지 않아. 처음부터 사람들이 우릴 사랑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고 생각하거든... [한 패가 되자는 듯 몸을 기울이며] 그런 상황이었으면 당신이라도 똑같이 했을 거라구.
그 광기는 언제 멈추었나?
공식적으로 내가 코카인을 마지막으로 했던 건 1998년이었지. 그 이후로 딱 2번 더 했었는데, 술에 취했다가 아주 급하게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어서 그랬어.
Be Here Now에서 Heathen Chemistry까지는 뭐가 잘못됐던 건가?
우린 Morning Glory가 가라앉고 멀리 사라질 때까지 Be Here Now나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만들면 안됐어. 난 마약은 끊었지만 코카인 대신 의사한테 처방받은 각성제나 진정제를 잔뜩 먹었었지. 음악을 만들만한 영감이 전혀 없었어. 잘못된 이유로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구. 앨범을 만들기 위한 앨범을 만든 거야.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가사만이 진실함을 담고 있어. Gas Panic!의 경우에는 난 마약 때문에 심각한 공황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 Where Did It All Go Wrong?은 내가 "이 집은 도대체 누가 이름을 바꾼 거야? 다시 좀 알려줘..."라는 생각을 했던 실화를 담고 있어. 그리고 밴드랑 어울렸던 그 모든 떨거지들. 그들은 단지 마약 친구들일 뿐이었어. 난 그들을 아무도 몰랐고, 그들도 날 몰랐지. 가사는 x나 환상적이었어. 근데 곡이 쓰레기 같았지.
*Gas Panic! 중에서
My pulse pumps out a beat to the ghost dancer
My eyes are dead and my throat's like a black hole
And if there's a god would he give another chance?
An hour to sing for his soul
내 맥박이 유령들의 춤에 맞춰 뛰고
내 눈은 죽었으며 내 목은 블랙홀 같네
만약 신이 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줄까?
그의 영혼을 위해 노래할 단 한 시간만이라도
*Where Did It All Go Wrong? 중에서
Do you keep the reciepts
For the friends that you buy?
And ain't it bittersweet
You were only just getting by.
니가 돈을 주고 샀던 친구들, 영수증은 보관하고 있니?
넌 그들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게 씁쓸하지 않아?
당신의 재능을 잃어버렸다는 두려움을 느꼈나?
[긴 침묵] 아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보단 영감이 없었거나 아니면 굳이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지. 니가 바로 음악 산업 그 자체인 순간(주: 대중음악계를 대표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가도, 결국 그것도 지나간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되는 때가 있어. 이제 난 그걸 아주 잘 하지. 난 우리가 그 순간에 있을 때를 알고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그게 트래비스와 콜드플레이로 넘어간 순간도 알고 있었지. 그리고 한 번 지나가면 그걸 다시 쫓는다는 건 무의미해. 무엇보다 x나 바보처럼 보일 테니까. 난 다른 누구와도 경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만약 이제부터 내 평생 차트 10위권 싱글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 난 이미 역사상 최고의 앨범 중 두 개나 썼으니까. 우린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어. 많은 밴드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내가 보기엔 우리랑 섹스 피스톨즈 정도뿐이야. 그러니 난 그런 건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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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거스님이 직접 타이핑해주신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감사드려요!!
원문은 번역소모임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수정 : 당신 형 폴에 따르면 당신이 갤러거 중에서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라는 질문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원문이 I really enjoy my own company, but you can't do without the love of a good woman인데, enjoy one's own company라는 뜻이 고독을 좋아한다, 혼자있는 걸 즐긴다는 뜻이란 걸 이제야 알았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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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노엘의 첫인상에서 좀 웃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인터뷰네요. 진지한 이야기들도 많구요. 파트 2 기대할게요^^
캐리커쳐.............피식...................
와인전문가 노엘...ㅋㅋㅋ.... 미치겠다......ㅋㅋㅋㅋㅋㅋㅋ
와...인터뷰 대게 매력적이네요...원문도 보러가야겠어요...감사합니다~! (_._)
제가 근간에 봤던 인터뷰중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했었던 거같아요!!!! 파트2도 있나요? 정말 기대되네요 ㅎㅎ!!
타고난 이야기꾼 노엘
왠지 슬프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첫인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캐리커쳐 ㅋㅋㅋㅋㅋ
멋있네요 역시,,,확실히 다양하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재치라고나 할까,,,입담,,,쵝오ㅜㅜㅜ
그러고 보니 귁시는 뭘하고 있을까요? 3집 공연때 All Around The World 차분한 엔딩서 베이스 퉁기던 모습 이후론 전혀 기억에 없네요..
잘봤습니다. 수프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포크밖에 없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 이 비유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
감동적이네요.. 멋있고.. 글이 딸려서 뭐라고 댓글을 못달겠네요.. 암튼 잘봤습니다! 담편 기대할께요
농담도 좋지만 진지한 질문과 답변도 너무좋아요... ㅠ.ㅠ 멋지다
고맙습니다!
아.. 참 멋진 사람입니다.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노엘 상당히 진지하내요ㅎ 정말 재능에 대한 질문에서 노엘의 침묵은 상당히 흥미롭고도 무섭습니다ㅋㅋㅋㅋ
아 정말ㅠㅠ 너무 좋다 .
노엘이 말을 잘하는 것도 있지만 페퍼민트님이 번역을 잘 해놓으셔서 휙휙 잘 읽혀요!!!!너무 고마워요~
진정한 롹스타ㅠㅠㅠㅠ짱 멋졐ㅋㅋㅋ대둨ㅋㅋㅋㅋㅋ
역시 난 치프가 좋아.
좋은여자의 사랑없이는 아무것도 할수가없대 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사랑해주잖아 ㅠㅠㅠㅠ
아 멋지다 정말... 노엘은 그냥 멋지다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인터뷰 좋네요 번역 감사드려요. 노엘은 진짜 성공할만한 사람인게 느껴져요....
잘 봤습니다! ^^ 요런 인터뷰 좋아요 진지하고 ... 노엘만의 철학!;이 느껴지는 인터뷰 ㅎㅎ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인터뷰 어쩜 이렇게 좋나요.. 번역도 흡인력이 있네요. 노엘이 옆에서 말하는 거같아요 ㅠㅠㅠ 눈물나...
난 내 주변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지만, 좋은 여자의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핡...
Q를 사서 먼저 읽고 난 다음에 이걸 읽으려고 오늘까지 기다렸습니다. ^^; 역시 최고의 번역입니다.
오...대단한 인내심!! 고맙습니다^^
예상보다 키가 작고, 그의 머리는 몸에 비해 너무 크다. 그래서 실물로 본 그는 자신의 캐리커쳐와 크게 다르지 않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십년전 글이지만ㅠㅠ 혹시 보신다면! 이 인터뷰 너무 좋아서 그러는데 혹시 원문을 구할수 있을까요? 원문으로도 읽어보고 싶어서요.. 갤러거스님이 올려주셨다는 원문을 못찾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