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교 앞의 안동지역 전통 차전놀이 기념탑
안동의 명물 월영교.(月映橋)
요즘 젊은이들에게 야경이 핫하게 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조선 전기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머리카락과 대마피로 미투리(짚신)를
만든 '원이 엄마'의 숭고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영교란 명칭은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의 지명을 참고하여 지어지게 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 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안동 월영교는 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과 성곡동을 잇는 다리
안동 월영교는 잔잔한 낙동강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전통적인 건축미
길이 387m 폭 3.6m로 2001년10월 착공2003년 4월 준공하였다.
木橋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 라고한다.
월영정에는 많은 분들이 자리잡고 더위를 식히고 있네요.
낮에 보는것 보다 야경이 더 아름다운 월영교.
운치있는 다리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져 더 예쁜것 같다.
분수 운영 시간이 맞지않아 분수는 못 보았네요.
다리를 건너오면 꽤 나이를 먹은 벚나무가 깊은 그늘을 만들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쉼을 주며 쉬어가라 한다.
월영교를 구경하고 안동 구시장으로 이동, 안동의 유명한 찜닭 먹으러 ~
안동 구시장 입구
구 시장 안에 찜닭골목
많은 연예인들이 다녀간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했네요.안동까지 왔으니 맛은 보고 가야겠지요.
찜닭 집이 수십여군데 있지만 맛은 다 거기서 거기리고,
구시장을 둘러보고 찜닭으로 식사를 한 뒤 안동 하회마을로 이동해 매표를 하고..
매표소 앞의 긴 줄, 입장료 5000량 경로는 무료
매표소에서 하회마을을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
매표후 셔틀버스를 타고 5분정도 하회마을로 들어간다.마을안까지 관광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셔틀을 이용해야 한다.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줄기
마을로 들어가는길에 시원한 벚나무 그늘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낙향하여 저 곳에서 4년여에 걸쳐 징비록을 집필했다고,
강 건너 옥연정사,유성룡 선생이 저기서 징비록을 집필했다고 한다.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安東 河回마을 玉淵精舍)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선조 20년(1587)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1979년 1월 26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를 키우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선조 19년(1586)에 지었으며 하회마을 부용대 동쪽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크게 문간채,
안채, 별당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따로 떨어져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대문채는 앞면 6칸·옆면 1칸 크기로 뒷간과 광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있는데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이다.
'ㅡ'자형 평면 가운데 부엌을 두고 좌우로 방을 배치한 특이한 구성으로 양반집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별당채는 안채 바로 뒤편으로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다.
그중 제일 규모가 작은 건물로 온돌방과 2칸 대청을 두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서애 류성룡
유성룡 선생은 이곳에서『징비록』(국보 제132호)을 집필하였다고 전한다.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로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1칸씩 방을 두고 툇마루로 꾸며 놓았다.
양반집이지만 이 지역 민가의 기본형인 '도토마리(베틀에서 실을 감는 기구)집' 형식으로 가운데 부엌을 두고
양쪽에 방을 둔 점이 독특하며, 정사(精舍)다운 지형 요건,『징비록』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으로
귀하게 평가 받고 있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한을 없애는 일이라고,
징비록:임진왜란의 사실적 사건을 집필한 문서 국보로 지정 되어있다고,
부용대
부용대는 연꽃을 내려다 보는 언덕,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하회마을이 물위에 떠 있는
한송이 연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함
만송정숲
참깨가 풍년이네요.아래 사진은 요즘 보기드문 목화밭
1999년 4월 21일,영궁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안동화회마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충효당 앞에서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는 중
충효당, 류성룡의 종택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이다.
충효당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종택으로, 후손과 문하생들이 류성룡의
유덕을 기리는 위하여 지었다.
당호를 ‘충효당(忠孝堂)’이라 한 이유는 류성룡이 평소에 자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기에 이를 받들어 이름 지은 것이다.
류성룡은 임종할 무렵 시 한 수를 지었는데,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럽다고 자신을
낮추며 자손들에게는 충과 효를 강조하였다. 류성룡이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숲 속의 새 한 마리는 쉬지 않고 우는데/
문 밖에는 나무 베는 소리가 정정하게 들리누나/
한 기운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우연이기에/
평생 동안 부끄러운 일 많은 것이 한스러울 뿐/
권하노니 자손들아 꼭 삼가라/
충효 이외의 다른 사업은 없는 것이니라.
林間一鳥啼不息 門外丁丁聞伐木 一氣聚散亦偶然 只恨平生多愧怍 勉爾子孫須愼旃 忠孝之外無事業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을때 저 손잡이 줄을 잡고 마루에 오르던 기억이 난다.
영모각..류성룡 선생의 유물전시관
지정 - 보물 제306호
이 건물은 160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의 가형(家兄)인
겸암 류운룡(謙庵 柳雲龍)의 종가이다.
하회 북촌을 대표하는 가옥이다. 안채는 임란 때 소실되어 임란 후 다시 지었다 한다. 화재로 손상된 흔적이
안채와 맞닿은 사랑채 부분에 남아 있다.
입향시조인 풍산 류씨의 7세(현 종손은 30세) 전서종혜(典書從惠)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에
지어 유서가 깊은 곳이다.
류성룡의 형이 살던 곳 입암고택, 올 들어 최고로 더운 오늘 그늘에서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있다.
하회마을의 고택들과 어우러진 배롱나무꽃
고택들과 어우러져 더 멋지게 다가오는 멋스런 담벼락 골목길
하회마을 입구에 세워진 빗돌
하회마을을 둘러 보고 셔틀버스로 이동
세계 탈 박물관도 둘러보고
복례문
배롱나무꽃으로 더 유명해진 병산서원으로 이동
병산서원 전경 <펌>
'병산서원 만대루'는 조선 중기 대표 문신이자 학자인 류성룡과 류진을 모신 병산서원의 누각 건물이다.
유생들이 유식하고 주변 산천의 풍광을 보며 시회를 가졌던 공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압도적인 규모에 팔작지붕으로 전체가 개방돼 있는 등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다.
경사지에 자리한 병산서원의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외부로부터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은 물론
병산서원 맞은편 강과 절벽이 이루는 승경을 서원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각적 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의 경치를 그대로 두고 건축물 조정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내는 전통적인 조경수법인
차경(借景)의 예를 잘 살린 누각으로 평가된다.
만대루를 떠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
건립 경위
병산서원의 전신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은 1563년(명종 18) 건립되었으며 생원 권경전(權景絟) 등의
상소로 학전(學田)이 내려졌다.
그 후 풍악서당이 길가에 있어서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유성룡의 권고로 병산으로
이전하고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1579년(선조 12) 7월에는 권호문(權好文)이 유성룡의 요청으로 병산서당에서 강회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립대학교인 셈이다.
쉬 볼 수 없는 강회를 보다니..여기 온 사람들은 다 마루로 올라 들을 수 있는데 시간상 아쉽게도 내려선다.
내삼문 주변 배롱나무꽃,4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ㄴ
존덕사 내삼문
이 나무들은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병산서원 안에 후손 류진 선생의 위패를 모셔서 향사(제사)를
올리는 사당인 '존덕사'를 건립하던 1614년에 심어진 나무들로 수령이 390여년으로 추정되며 키가 6~9m,
나무 둘레가 80~90cm에 이르는 희귀목이다. 2008년 당시
지금 현재는 400년이 넘은 배롱나무들이다.
서원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많은 수의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찾아 온 관객들을 맞아준다.
화려한 배롱나무꽃
꽃말:부귀와 번영/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마음
개와기:7,8,9월 붉은색, 흰색, 보라색 꽃이 있다.
안동 여행을 마치고...
올 여름들어 가장 더운날 안동 여행을 떠난다.
비가 오다가 갑자기 기온이 오르며 경북지방의 날씨는 34도 까지 오른다고 하여
공포스럽기까지,,,여행도 부담스러운데, 이른 아침 관광버스로 안동으로 출발한다.
3시간여를 차를 타고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안동의 명물인 월영교에 도착하여
예전부터 와 보고 싶었던 월영교 다리를 건너가는 감회가 새롭다.
안동댐 하류 파란 강물 위에 목조 다리로 세워진 月映橋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튼튼한 다리라고 하며
다리위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은 더위도 잊게 해준 멋진 그림이였고
아름답고 멋진 다리와 주변 풍경에 마음을 빼았기고, 서안동 ic에서 안동시
해설사 한분을 모시고 안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안동 구시장 찜닭 골목으로
이동하여 유명한 찜닭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시장도 한바퀴 둘러보고
안동 류씨들의 집성촌인 하회마을로 이동하여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마을을 둘러본다,
하회마을 여행은 꼭 해설사와 함께하는 여행이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며
많이 더웠지만 볼거리들이 많고 서애 류성룡 선생이 살던 곳 하회마을에
대하여 많은 역사공부를 하고 병산서원과 유명한 배롱나무꽃을 보기위해
약30여분 이동하여 병산서원에 도착하니 강가가 내려다 보이는 산아래쪽에
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훗날 병산 서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후손들이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400년이 넘었고 아직 60%가량 개화한 상태인데도
붉은꽃이 서원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날씨 더운날에도 찾아오고 있었고, 지금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있는 병산서원은
양반들의 자손들이 다니던 학교라 할수 있다.
경상도에 크고 이름있는 서원들이 많은 것은 양반집 자녀들이 장원급제를 꿈꾸고
공부를 하던 곳이고, 후일 출세하여 기득권 세력이 되고 지금의 영남권 보수 세력의
뿌리가 된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병산서원의 역사와 아름다운 배롱나무꽃을 잘 구경하고 귀경길에 올라
밀리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만에 서울 시청앞에 도착하여 덥고 힘들었던
안동 여행을 마친다.
기대를 가지고 출발한 안동 여행을 당일에 다 돌아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름 몇군데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모르고 있던 안동지방 역사에 대하여 배우며
느껴보는 좋은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하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한번쯤 가 보고 싶던 안동지역 관광명소를 거리가 다소 멀어 힘든 점도
있었지만 역사와 함께 지금 많이 핫해진 월영교의 멋스런 목교를 건너가며 안동댐의
잔잔한 물결에 잠시 더워진 기온도 잊으며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까지 현싯점에서
다시 한번 새겨볼 부분에 자신에 경계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는
것과 한창 예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꽃에 반해 보는 뜻 깊은 시간을 뒤로하고
늦은 시간 귀경길에도 도로까지 뻥 뚫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서울에 도착한다.
여기까지...
2026. 7. 11.
가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