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사마방목》의 말미에 삼가 쓰다(敬書丙午司馬榜目後) 1797년 蔡濟恭[樊巖集]
유군 태현(柳君台顯)이 나에게 가정(嘉靖) 25년 병오년(丙午年, 1546, 명종 1) 생원과 진사의 명단이 실린 방목(榜目) 한 책을 보여 주며 “이 책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우리 두 집안 모두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손을 깨끗이 씻고 그 책을 열람해 보았다.
대개 그 책은 우리 명종대왕이 왕위에 올라 시행한 증광시(增廣試)의 방목을 간행해 펴낸 것으로, 지금까지 252년 된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7대조 집의공(執義公)이 생원시 3등 제42인으로 입격한 사실 및 성과 휘, 거주지와 본관 등이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삼가생각건대 우리 선조께서 조정에서 벼슬한 것은 선조(宣祖) 임진년(壬辰年, 1592, 선조 25) 이전의 일로, 8년간 이어진 병화(兵火)의 여파로 문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 선조의 후손인 나조차도 그와 관련한 사적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만 동주(東州) 이공 민구(李公敏求)가 우리 집안의 묘명(墓銘)을 지으면서 “집의(執義)는 도를 지켜 선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라고 하였으니, 평소 언행이 사림들로부터 분명하게 존경받고 숭앙받지 않았다면 그 칭송과 경모가 어찌 이토록 참되고 절절할 수 있었겠는가.
이 구절을 욀 적마다 선조에 대한 존경심이 뭉게뭉게 일어남을 더욱 금할 수 없었는데, 이제 이 책을 열람해 보니, 어렴풋이 직접 뵙는 듯 숙연히 직접 들리는 듯 그 음성과 모습이 마치 내 곁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시경》에 이르기를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아침저녁으로 가까이해 온 선조의 성과 휘, 거주지와 본관을 어찌 뽕나무와 가래나무와 동렬에 둘 수 있겠는가. 아아, 존경할 만하도다.
유군(柳君)의 8대조 부학공(副學公) 역시 우리 선조와 같이 입격하여 나란히 방목에 이름을 올렸는데, 군의 집안에서는 그 책을 마치 주(周)나라 왕실의 완염(琬琰)과 홍벽(弘璧) 처럼 보물로 간직하였다. 이후 그로부터 4갑(甲)의 세월이 흘러 군이 능히 그 책을 꺼내어 표장(表裝)을 새롭게 꾸미고 그 일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는 방목에 기록된 여러 집안의 후손들과 함께 그 책을 똑같이 보물로 여기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면 생각건대 나의 경우는 무지하여 선조의 훌륭함을 알지도 못하기에 고인(古人)이 말한 부지(不智)와 불인(不仁) 중 반드시 어느 한쪽에는 해당될 것인즉, 그 현명하고 불초함의 차이가 과연 어떠한가? 군의 아들 유중묵(柳重默)은 출중한 재능을 가진 젊은이로서 이 일을 실제로 맡아 왔는데 불행히도 단명하고 말았으니, 인간사 참으로 탄식할 만하다.
집의공의 휘는 난종(蘭宗)이고 자는 문원(聞遠)이며, 부학공의 휘는 순선(順善)이고 자는 순중(純仲)이며 호는 소재(素齋)이니, 훗날 이 책을 보는 자들은 필시 옷깃을 여미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금상(今上) 21년 정사년(丁巳年, 1797, 정조 21) 봄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원임 규장각제학(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原任奎章閣提學) 채제공은 78세에삼가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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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01] 집의공(執義公):
번암의 7대조인 채난종(蔡蘭宗, 1513~1573)으로, 사헌부 집의를 역임하였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자는 문원(聞遠)이다. 1546년 실시된 증광시에 생원으로 입격한 뒤 1558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의 지평과 집의 등을 역임하였다.《海左集 卷24 領
議政諡文肅蔡公神道碑銘》《平康蔡氏大同譜》
[주02] 집의(執義)는 …… 받았다:
동주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번암의 5대조 채충연(蔡忠衍)의 묘갈명에서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훌륭한 명망을 칭송하며
한 말로, 집의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채난종을 가리킨다.《東州集 卷9 進士蔡公墓碣銘》
[주03] 시경에 …… 하였는데:
《시경》〈소아(小雅) 소반(小弁)〉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데, 하물며 우러러뵐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으며, 의지할 분으로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
匪母?]”라고 하였다.
[주04] 부학공(副學公) …… 올렸는데:
부학공은 유순선(柳順善, 1516~1577)으로, 그가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중(純仲), 호는 소재(素齋)이다. 1546년 실시된 증광시에 채난종과 함께 생원으로 입격하여 성균관 대사성,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東園集 卷2 贈嘉善大夫……柳公墓誌銘》
[주05] 완염(琬琰)과 홍벽(弘璧):
모두 주(周)나라 때 서서(西序)에 보관되어 있던 보옥(寶玉)이다.《書經 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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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敬書丙午司馬榜目後
柳君台顯甫示余以嘉靖二十五年丙午生員進士榜目一冊。且曰。是冊也寶重愛護。吾兩家宜無異同。余乃盥手奉閱。葢我明宗大王登極增廣榜目之刊布者。而今爲二百有五十有二年矣。我七代祖執義公。以生員試三等四十二人姓諱居本。儼然載是。竊惟吾祖立朝始卒。在宣廟壬辰以前。八年兵燹之餘。文獻蕩然。雖以吾之爲吾祖之後孫。漠然未詳其事行。惟東州李公敏求。爲吾家墓銘。有曰執義守道。善類是宗。苟非平日言行皭然爲士林所宗仰。其稱道景慕。豈若是眞且切乎。每誦之。尊祖之心。益不禁油然而生。今覽是冊。僾然如見。肅然如聞。殆若聲容之臨之在傍。詩曰。維桑與梓。必恭敬止。况先祖之姓諱居本晨夕密邇者。豈可與桑梓比同乎。嗚呼其可敬也已。柳君之八代祖副學公。亦與吾祖同榜同錄。而君家之寶藏是冊。若周室之琬琰弘璧。於四甲之周。君能出而改粧之。又以文記其事。要與榜中諸家後裔同其寶。自念如吾者。蠢焉不知先祖之美。於古人所云不智與不仁。必居一於是。則其賢不肖果何如也。君之子重默。以年少才俊。實相是役。不幸短命。人事良足可唏。執義公諱蘭宗。字聞遠。副學公諱順善。字純仲。號素齋。後之覽者其必斂袵起敬也夫。上之二十一年丁巳春。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原任奎章閣提學蔡濟恭。七十八謹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