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의 이야기 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아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 하셨다.
그것도 같은 직장에서 말이다. 언제나 출근은 우리보다 빨랐고 퇴근역시 나와 형보다 늦었다. 늘
그랬듯이 나와 형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을 기다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부모님말
고 한명더 왔다. 부모님이 근무하는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 아버지는 거창고등학교 서무과에서 기
능직을 맡고 계셨고 어머니는 식당과 기숙사 청소 하시는 일을 맡고 계셨다.최근에 들은 이야기인
데 부모님께서는 못배운게 우리 형제에게 누가 될까 일이라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해 자존
심을 세워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부모님은 가난하고 못배운게 한 이셨던 모양이다. 그래
서인지 유독 눈에 띄던 학생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하고 우리집으로 데리고
온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이제부터 우리집에서 지낼것이니 친형처럼 생각하고 공부도 배우고 같이
잘지내라고 하셨다. 보통 어린애들은 자기가 사랑을 못받을까 질투하고 밀어냈을텐데 우리 형제
는 별 생각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이 차이도 많이나서 그저 큰형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거
기다가 그 유명한 거창고등학교 학생이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친형제 처럼 지냈다. 어머니는 큰
형의 미래 계획까지 계획하고 그렇하기를 원했다. 어머니 께서는 큰형이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
기를 희망했다.큰 형의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기업체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 쪽을 선호 하셨다. 또
그것을 큰형은 받이 들이고 공부하였다. 어머니는 청소일을 하며 최선을 다해 큰형을 도왔다. 결국
큰형은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 생도생이 되었고 부모님은 마치 친 자식이 합격한 것처럼 자랑
고 하고 다니셨다. 이때쯤 나는 운동을 한답시고 어린나이에 일찍이 서울로 와서 숙소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몇번 음식을 해서 어머니와 같이 사관학교에 면회도 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
형은 졸업하고 임관하여 정확히 어디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야전에 배치를 받았다. 어머니 생각대
로 큰 형이 잘해주어서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했다. 순간순간 문제 있을때면 어머니께서는 금전적
으로든 정신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바램은 가정을 꾸민는 것이 었다. 고
등학생 때부터 둘이서 약속한것이 있었나 보다 28살이쯤 결혼하기로 ....어느세 약속한 나이가 되
어 어머니는 이곳저곳 배우자를 물색하고 계셨는데 마침 어머니 친구로 부터 배우자를 소개 받았
다. 그리고 급속도로 진행되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거창고등학교 출신에 육
국사관학교 출신 이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결혼날에 어머니는 누구보다 기뻐
하며 사관학교 식장으로 갔는데....큰 형의 태도는 180도 변해있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우리 부모
님을 보고 인사조차 하지 않고 냉담하게 대하는게 아닌가 심지어 사진한장 같이 찍자는 권유도없
었다. 늘 우리 부모님이 형한테 하던말이 "너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흘린 녀석"이라고 노래
를 불렀다. 그만큼 형은 냉철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뭔가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은혜를 잊은채 이미 우리가족이 아닌듯했다.
물론 보상을 바라고 도운 것은 죽어도 아니었다. 더욱더 충격을 받은것은 식을 마치고 집을 돌아가
려고 전세낸 버스에 오르려고 하자 배우자 어머니께서 왜 우리차에 타나며 못타게 저지를 한것이
다. 결국 어머니는 쓸쓸이 혼자 돌아왔고 이것을 끝으로 그 형과의 인연은 끝이 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배우자의 어머니부터 시작되었다. 못배우고 가난한 우리가정과 연맺는게 상류층 사회에 알
려지는게 지독히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나보다 그래서 배우자 어머니는 큰 형에게 우리가족과
졀규를 강요했고 또 그것을 큰 형은 받아 들였나보다.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앓아 누우셨고 아버
지는 아무말 없이 담배만 태우셨다. 하루빨리 큰형과 오해를 풀고 예전으로 돌아 가고싶다.....
어머니게서는 처녀때부터 이웃을 도우 셨다고 한다. 처녀때 경주불구사로 놀러가서 만난 영등
포공고 축구부원 한명을 서포트해서 그 선수는 청소년대표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
울에서 체육교사겸 K리그 주심을 하고있고 또 다른 한명은 경상대를 졸업 현재 창원 소재의 한 초
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고있다. 이런 부모님의 피를 이어 받은 나는 올겨울 해외로 봉사활동을
계획하고있다.
첫댓글 아.. 정말 드라마네요 형님
그순간 배신감 엄청...ㅎㄷㄷ
아... 엄청나내요...
문제는 상류층인가..!!
ㄷㄷ임
사람살이 참 희한하지.. 혹부리 영감처럼 모두들 혹 하나씩을 달고 살지. 글 잘 읽었고 조금 더 다듬으면(이런 일로 어떤 것을 느꼈다.. 같은 것) 아주 완성된 글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자꾸 읽어 보고 오타,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다시 다듬길..
글 잘읽었습니다 형님.
참.......배신감많이 드셨겠네요
형님의 앞으로의 멋진 삶 기대합니다
빨리 오해풀기를 바랄게요.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힘내십시오 형님.
형님 글 잘읽었습니다.
빨리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형님도 꼭 성공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