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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제 3주일 설교
제목 : <12월 설교 시리즈 – ‘제사(Sacrifice)’>2. 속죄제(sin offering)
본문 : 레위기 4장 28절(27~31절)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는 대로, 곧 자신이 지은 죄를 속하려고, 흠 없는 암염소 한 마리를 제물로 끌고 와서, <새번역>
아무리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해도, 정말 발버둥을 치며 노력하더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일부러 죄를 지으려 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변명 같아 보이지만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기도 하고, 정말 의도하지 않게 실수로라도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에 대해서 오늘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바로, ‘속죄제’를 통하여 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 그리고 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드린 제사가 속죄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매 주 주일마다 회개를 반복하는 이유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면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를 통해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속죄제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죄’를 용서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에 있습니다. 죄는 인간을 이김으로 인간을 쓰러뜨리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쓰러뜨리심으로 인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속죄제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은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절, 새번역>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용서로부터 오는 해방!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어 진리가 우리를 어떻게 자유케 하는 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길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은 죄와의 동행을 거부하시기 위해서 속죄제를 명령하신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와 동행할 수 없기에, 그래서 속죄제의 또 다른 이름이 정결제인 것입니다.
둘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상황에서 떠나야 합니다.
속죄제를 드리고 나면 하나님의 용서가 임했습니다. 더 이상 죄가 없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드린 자는 다시 회중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죄에서 해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조금의 부끄럼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살 조건을 다시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려면 죄와 동행할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죄와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동시에 두 지역을 살 때가 많습니다. 소위, ‘양다리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도 여전히 하나님과 죄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면 오늘 드린 속죄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우리가 드린 예배는 그저 행위에 불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기에 우리도 죄를 미워하여, 죄를 버리기로 결단하고,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가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반복되더라도, 어쩌면 가장 많이 반복되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범죄의 영역 속에 있는 어쩌면 구원마저 잃어버리게 만들지도 모를 죄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정말 민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 개역개정>
하나님 앞에서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며 죄에 대해서 민감했던 믿음의 사람 요셉에게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이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주인의 아내는 날마다 끈질기게 요셉에게 요구해 왔다. 요셉은, 그 여인과 함께 침실로 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 <창세기 39장 9~10절, 새번역>
하나님 나라를 살기 위하여 마땅히 버려야 할 죄라는 것을, 그 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속죄제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며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속죄제는 가장 먼저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어서 그 제사장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순서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 최고통치자, 일반 평민, 평민의 순으로 충분히 아주 의도적인 나열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모두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는 기름 부음을 받고 임명 받은 제사장으로부터 ‘죄’에 대해서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짓고 있는 죄보다 기름 부음을 받아 만인의 제사장이 된 그리스도인의 죄가 훨씬 더 두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더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고, 죄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죄에 대해서 느슨해질수록 그 여파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상 초반에 등장하는 제사장 엘리는 그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사무엘상 3장 13~14절, 새번역>
엘리 제사장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의 타락은 곧 나라의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타락이 곧 나라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경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할 제사장으로부터 속죄제의 순서가 나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배를 통하여 예배자가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타락이 곧 세상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와 타협할 때, 죄와 더불어 살아갈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너무도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죄가 관영한 세상을 결코 관망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더라도, 마치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통회함을 가지고, 나라와 공동체와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고, 속죄제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의인 욥에게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찾고 싶습니다.
잔치가 끝난 다음날이면, 욥은 으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 자식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늘 그렇게 하였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 <욥기 1장 5절, 새번역>
물론 욥은 자식들에게 직접 속죄제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욥의 자식들이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 욥은 먼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식들을 위해서 제사를 올려 드렸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욥의 마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나아가 나라와 열방을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바로 ‘나’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속죄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구절입니다.
지은 죄를 그들 스스로가 깨닫는 대로 <레위기 4장 14절, 23절, 28절>
넷째, 예배를 통하여 예배가 얼마나 큰 용서와 사랑과 은혜의 현장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던 전제는 자신이 지은 죄를 그들 스스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면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죄’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 사실입니다. 죄가 두각 되어야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데, 전제 조건 없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만이 강조되다 보니 하나님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닌 선택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깨달은 이들의 예배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갈급하게 됩니다. 그 용서와 사랑,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제자 중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누가복음 5장 8절, 새번역>
그런 베드로를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3번의 부인, 저주 그래도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허락하심으로 베드로를 믿음의 사람으로 결론짓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통회하며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인정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가복음 18장 11~14절, 새번역>
예배를 통하여 오늘도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옮겨졌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도무지 죄인이기에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예배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저 세리와 같은 마음으로 예배드리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바리새인처럼 예배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제를 드리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그 예배자의 마음과 행동은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누가복음 15장 18~19절, 새번역>
오늘도 우리 가운데 속죄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 스스로 죄를 깨달았다면 어찌 이런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한없는 용서와 사랑과 은혜의 현장인 예배를 어찌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속죄제를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이런 제사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용서받을 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용서가 있으니 계속해서 죄를 짓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죄를 용서받을 길이 있다는 것을 속죄제를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상황에서 떠나야 합니다.
셋째, 예배를 통하여 예배자가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 예배를 통하여 예배가 얼마나 큰 용서와 사랑과 은혜의 현장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도 속죄제,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 크신 용서와 사랑, 은혜를 마음껏 경험하는 귀한 예배, 너무도 귀하디 귀한 주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단 찬양 –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 왕 되신 주 앞에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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