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어떤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어떠한 문화를 창조하느냐가 창조적 지식기반국가의 성취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지난 1백년간 한국의 근대는 스스로 창조한 지식과 정보, 문화를 성취했다기 보다는 서구의 것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활용하고 재창조함으로써 사회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의 다음 한 세기는 그 동안 축적된 근대적 지식과 문화생산의 토대 위에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그것을 인류사회에 환원하는 기여의 시기가 되어야 한다. 20세기가 따라가고, 빌려오고, 배우는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만들고, 나누어주고 베푸는 세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전망에서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성장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 IMF도 우리의 고속성장 중심의 발전주의 사고에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불황을 벗어나서 다시 고속성장의 속도를 회복하는 일이 모든 부문의 과제가 되고 있다. 창조적 지식기반 사회에 대한 전망도 지식과 정보와 문화가 새로운 산업과 성장의 기반이 되니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성장중심적 틀에서만 해석하면 국가의 새로운 비전이 되기 어렵다. 20세기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사회가 또 하나의 침략적 강성국가도 아니고, 근대과학기술과 생산력이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도 외면하지 않는 새로운 국민국가의 비전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21세기에 더욱 가속적으로 진행될 지구화 (globalization) 과정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국민경제, 국민국가의 위상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의 국민국가, 국민경제의 위상 그리고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안에서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면서 창조적 지식기반국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은 지식기반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커다란 관심사 안에서 지식기반 사회의 문화적 기반을 검토하고자 한다. 여기서 문화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라고 할 때 문화가 아니다. 정치 안의 문화, 경제 안의 문화, 사회 안의 문화를 가리킨다. 정치 안의 문화는 정치풍토를 가리키는 말로 정치문화를 가리키지 않는다. 정치의 문화적 형성을 가리킨다. 경제 안의 문화 역시 소비자문화나 문화산업 등 경제적 행위와 관련되는 문화나 돈이 되는 문화를 가리키지 않는다. 자동차산업 하면 누구나 이건 경제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산출물일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과 국도, 철도, 선박, 항공 등 종합적인 교통체계라는 근대적인 제도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다. 도로체계, 신호체계, 교통인프라, 법과 정책, 기술체계 등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사회적 과정을 우리는 경제를 형성하는 문화 혹은 경제의 문화적 형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지식기반 사회의 문화적 기반이란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실천의 문화적 기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음절에서는 그동안 제출된 지식기반 사회에 관련된 보고서들을 간략히 검토하고자 한다. 두 번째 절에서는 이론적 기반으로 문화론을 채택하고 문화론의 틀에서 세가지 문제영역에서 지식기반 사회의 문화적 토대를 논의하고자 한다. 세가지 문제 영역은 형성적 학습과 형성적 교육, 협력적 지식생산 네트워크, 정책적 수준에서 정보통신, 문화, 교육정책의 통합적 사고 등이 그것이다. 이들 세가지 수준의 논의를 통해 이 글이 기대하는 바는 단기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장전략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지식기반 사회에 대한 관점을 보다 장기적이고 성찰적인 새 천년의 비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 보고서들의 검토
(1) 매일경제의 두 가지 보고서: <<지식혁명 보고서>>와 <<두뇌강국 보고서>>
매일경제는 지식기반 사회를 주도하는 지적 정책적 작업을 주도해 왔다. 98년 8월 <<지식혁명 보고서>>와 99년 1월 <<두뇌강국 보고서>>를 통해 이 분야에 담론과 의제를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 <<지식혁명 보고서>>는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부는 "제 5의 물결, 지식혁명"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은 지식 열등국, 세계는 지식경쟁시대, 두뇌강국으로 일어서자라는 세 장으로 구성되었다. 2부는 "당신도 지식인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서 지식, 21세기는 지식근로자가 만든다, 당신도 지식인입니다 등 세 장으로 이뤄져 있다. 철가방에서 스타강사가 된 중국집 배달부 이야기도 여기에서 나온다. 3부는 지식경영으로 승부한다는 제목 아래 왜 지식경영인가, 지식경영 이렇게 하라, 지식경영 사례연구로 구성되어 있다. 4부는 지식혁명을 향한 정부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다, 사례로 본 지식정부 등 두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지식혁명을 한국경제의 부흥을 위한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말하는 지식혁명의 내용이 무엇인가. 보고서는 이렇게 규정한다.
"이제 정보통신 혁명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이미 우리생활의 일부로 스며들었고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200여 년에 걸쳐 세상을 바꾼데 비해 정보통신혁명은 엄청나게짧은 기간 동안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이제 선진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혁명이 불길을 지피고 있다. ... 지식혁명은 인류의 삶을 또다시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농경사회, 산업사회, 글로벌 산업사회, 정보화사회에 이어 인류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젱5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34-35쪽).
2부 1장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 지식"에서 지식을 세가지로 나눈다. 이론적 지식, 실용적 지식, 현장경험과 노하우 등. 그리고 보고서는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의 암묵지 (tacit knowledge)와 형식지 (explicit knowldege)를 원용하면서 학습과 체험을 통해 개인에게 습득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의 지식을 뜻하는 암묵지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누가 이러한 지식을 만들고 사용하는가 라는 질문에 보고서는 지식근로자의 필요조건으로 1) 컴퓨터 소양, 2) 지속적인 개선, 개발노력의 의지가 있는 사람, 3)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 4)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 5) 대인관계 능력을 갖춘사람, 6) 기업가 정신을 갖춘 사람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식기반 사회 혹은 지식기반 경제와 관련한 첫 보고서이니 만큼 내용이나 주장의 근거들이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식기반사회, 지식기반 경제, 지식경영 등의 개념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고 편리한 대로 혼용해서 지식기반사회가 무엇인지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지식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는 사회인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컴퓨터를 잘하고 영어 잘하고 기업가 정신 갖추는 등 6가지 요건을 갖추면 지식근로자가 된다는 규정에 가서는 그 내용이 대단히 혼란스러워 지게 된다. 철가방에서 스타강사로 출세한 중국집 배달부나, 날 밀어 넣기로 세계를 제패한 빙상 쇼트트랙 감독 전명규씨, 포프투갈어 전공자가 영어박사로 변신해 성공한 오성식씨 등을 대표적 지식인 (최근 용어로는 신지식인)으로 제시한 것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지식기반사회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이다.
제 3부 "지식경영으로 승부한다"는 비교적 짜임새가 있고 내용이 정리가 되었지만, 지식경영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경영전략의 한 유형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을 지식기반사회의 한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보고서는 124쪽에서 컨설팅 회사, 언스트 영의 지식경영의 개념을 여덟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 두 번째는 외부의 가치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것, 세 번째, 서류나 데이터베이스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조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재현시키는 것, 네 번째는 조직전체에 지식을 전파, 공유하는 일, 다섯 번째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유하고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것, 여섯번째, 기업문화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늘려가는 것, 일곱 번째는 지식을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제품 또는 서비스에 활용하는 일, 마지막 여덟 번째는 지식자산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124- 125쪽).
이상 여덟가지 요소들에서 보듯 지식경영은 기업조직이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전략으로 조직 내적 외적 지식자원을 활용하는 기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기반 사회 비전을 설정하기 위한 이론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이 책의 4부에서 지식정부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한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국가지식시스템 (National Knowledge System)을 우리의 전략모델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름대로 구축할 국가지식 시스템의 내용이 뭔가를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교육사회에서 학습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제안이 그래도 가장 구체적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선 근본적으로 교육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부 교육자들이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군림하면서 틀에 박힌 내용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해야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민들도 산업사회에서나 통용됐던 제도교육의 틀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교육부 해체를 제안하고 있다. 학습사회 (learning society)의 내용이 스스로 배우는 교육이고 정보통신 테크놀로지가 이를 쉽게 해주고 있다는 식이다.
매일경제 지식프로젝트 팀이 두 번째 발간한 <<두뇌강국보고서>>는 앞의 책보다는 훨씬 짜임새를 갖추고, 주장의 내용도 현실적인 제안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보고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진다. 앞부분은 지식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10가지 제안을 내놓고 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지식을 잣대로 구조조정하라," "고시제도와 집단공채를 폐지하라." "학습고용부를 신설하라" "세계수준의 지식단지를 만들라" 등등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38가지 두뇌강국 실천방안을 6개의 장으로 나눠서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두뇌강국은 기업, 정부, 지식근로자로 이뤄진다. 기업이 지식주도 경제의 엔진이고, 정부는 촉매자이며 사람들은 지식주도 경제의 연료가 된다.
"지식 주도 경제의 엔진은 지식 기업이다. 지식 기업이란 종업원득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말한다. 지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체제, 즉 지식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을 말한다. 지식 주도 경제의 촉매는 지식정부이다." (19쪽).
보고서의 핵심이 되는 2부는 지식주도 경제의 네 가지 요소를 각각 독립된 장으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지식주도 경제의 네 가지 요소를 1) 조직의 지식경영-어떻게 기업, 연구소, 정부 기관이 지식을 수집하고 개발하고 관리하고 그리고 응용하는가, 2) 개인의 지식역량- 각 근로자들의 기술 지식과 분석적 사고 기술, 3) 지식의 흐름- 경제 내 또는 국경을 넘는 정보 및 지식의 이동, 4) 인센티브 및 보상- 지식의 확산을 권장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법적, 경제적, 문화적 연동 시스템 등으로 제시한다. 이들 요소들에 대한 설명과 전략적 행동을 따라가면서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기업조직이 어떻게 지식경영을 할 것인가라는 관심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마다 결론은 지식주도 경제, 지식기반 사회로 일반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앞서 나온 <<지식혁명보고서>>에서부터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 산업연구원 "신산업의 발전비전 및 육성방안: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구조개편"
이 보고서는 우선 지식기반 사회 전반에 대한 프로그램을 그리기 보다는 지식기반 산업 육성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는 지식기반 산업을 "산업의 직접적인 기반이 지식과 정보의 생산, 분배 및 사용에 있는 산업구조"라고 규정하고, 새로운 전문지식과 기술을 도입하여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지식집약적인 생산과정을 갖추어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제공하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일을 지식기반 산업으로 개편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산업연구원 보고서는 한국형지식기반 산업을 추출하고 있다. 첫째, 지식집약도가 높은 정밀화학, 메가트로닉스, 전자.정보통신기기, 정밀기기, 우주항공, 생물, 신소재, 원자력, 환경산업 등, 둘째, 지식자체가 거래의 대상인 산업으로서 소프트웨어, 데이터베이스 관련, 컨설팅, 엔지니어링 및 연구개발, 광고, 산업디자인, 교육서비스, 의료산업, 문화산업 등, 셋째, 지식을 생산과정에 집약적으로 투입하거나 활용해서 부가가치가 증가시키는 산업으로 첨단작물, 첨단축산, 첨단영림, 첨단양식, 생명공학관련 생산업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 보고서는 장석인이 98년 분류한 "지식기반 산업의 정의와 범위"에 의존해서 지식기반산업을 단순서비스업으로 보지 않고, 지식기반 1차산업, 지식기반 제조업,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으로 분류해 현실적 적용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분류와 자료분석에 근거해서 보고서는 1) 우리나라 지식기반 산업의 생산유발계수 (해당 산업분야에서 한 당위의 최종수요가 증가했을 때 그 산업과 타산업에 파생되는 산출물의 증가도)가 산업전체 및 기타 산업의 계수보다 작게 나타났으며, 2) 이렇게 생산유발계수가 낮은 까닭은 주로 3차 서비스산업에 기인한 것으로 우리나라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산업간 연관관계가 대단히 취약함을 의미하고, 영향력계수, 부가가치 유발계수, 소득유발계수 등도 미미하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렇게 분석결과를 정리한다. 우리나라 지식기반산업은 "소득이나 부가가치 창출면에서는 기타 산업보다 유리하며, 고용흡수력은 지식기반 산업 뿐아니라 전산업에서 감퇴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산업간의 연관효과가 아직 미미하며, 투자면에서는 다른 산업과의 차이가 거의 없으므로" 아직 진정한 지식기반화에 도달하지 못했다 라고.
이러한 분석결과로부터 보고서는 지식가반산업 육성 방안으로 1) 전문인력 양성, 2) 기초(기본)기술의 개발과 축적, 3) 제도개편과 정부역할의 조정, 4) 기업활동의 변화, 5) 통신정보망, 입지 등의 인프라 구축 등을 제안한다.
(3) 정보통신 정책연구원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책토론 보고서>>
이 토론회 발표문은 세 부분으로 돼있다. 1주제는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개혁," 2주제는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정보화 전략: 차세대 전략산업," 3주제는 "지식기반 경제를 위한 정보통신 산업 정책" 등. 세 가지를 각기 검토하기보다는 이들 발표문들이 지식기반 사회를 어떻게 파악했고 뭘 제안하고 있는가를 간략히 살펴본다. 손 상영은 지식기반 국가를 "성숙된 지식기반 경제로 이행한 국가,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해에 따라 정부의 역할과 행정과정도 이에 적합하게 변모한 지식정부를 갖춘 국가, 지식기반 사회활동에 적합한 인프라와 제도를 갖춘 국가"로 정의했다. 그리고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개혁 방향을 1) 지식기반의 업무혁신, 2) 지식인프라와 제도의 정비방안, 3) 지식기반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지식기반 업무 혁신을 위한 기반으로 지식기반 국가경영시스템을 제안하면서 "정부의 행정업무에 정보기술을 주입하고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지식과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정책실패를 최소화하고 국민에게 최대한의 편의와 신뢰를 주는 '지능형 전자정부'를 구현 가능하게 한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제도개선에서 구체적 제안으로 나타난 것 한가지만 보면 공무원의 신지식인화라는 개념을 통해 1) 인센티브 부여로 자발적인 지식축적을 유도하고, 2) 실용적 지식축적을 위한 공무원 교육, 3) 순환보직제도 개선, 4) 민간전문가 영입 등을 제안하고 있다.
세 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용규의 "지식기반 경제를 위한 정보통신산업 정책"은 OECD와 세계은행이 정의한 지식기반 경제의 정의를 받아들이면서 한국 정보통신산업 정책을 지식기반 경제를 위한 틀로 어떻게 새로 짤 것인가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왜 지식기반 경제인가를 설명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지식과 정보가 생산요소로서 그리고 지식자체가 상품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식경제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한국의 현황과 문제점을 1) 원천 기술력 취약 및 연구개발성과의 수준 미흡, 2) 창의적 연구개발체제 취약, 3) 낮은 정부의 연구개발 부담율 및 대학지원 미흡 등 세가지를 꼽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제안에서 정보통신분야의 소프트웨어 산업, 영상컨텐트 산업, 인터넷산업에 대한 현황과 지식경제로 이행을 위한 정책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 발제문이 파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지식기반 산업의 문제점과 정책제안의 방안을 알기 위해 소프트웨어산업 사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소프트웨어산업이 지식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집약되는 분야인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발제문은 우선 세계소프트웨어시장의 성장률이 98년 기준 12.7%로 정보통신 산업 7.4%, 세계경제성장률 2%보다 대단히 높으며, 그 시장규모가 98년 4,850억 달러에서 2003년 9,06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진단한다. 국내 소프트웨어시장은 98년 4조 5천억에서 2003년 21조 7천억으로 평균 42.7%의 고속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문제점으로 1) 높은 불법복제율 (67%), 2) 30대 재벌 모두 종합 SI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왜곡된 비즈니스시장, 3) 변처 성격의 패키지 소프트웨어 부문의 저발전, 4) 해외 시장정보 및 해외진출 경험부재, 5)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의 질적, 양적 수준 미흡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 1) Software Business Window Project를 통해 실리콘벨리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벤쳐비지니스 창구로 만들고, 2) 소프트웨어 진흥구역 확대 및 사이버단지 구축, 3)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및 공동기관 정품사용 방안 강구, 4) 우수 소프트웨어벤처 선별 유통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하고 있다.
(4) 이들 보고서에 나타난 지식기반국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
지식기반 사회로 가기 위한 전략을 검토하는 여러 보고서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여러 수준의 조직이 지식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생산과 조직효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었다. 지식기반 사회에 대한 논의가 나온지 1년만에 정부투자기관이나 민간 기업연구소에서 이렇게 많은 양의 보고서가 쏟아져 나온 것은 참 놀랍고, 속도전에 강한 우리사회의 풍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보고서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경향은 정확한 사태분석과 성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이미 나타났지만, 한국사회가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별달리 없었다. 몇몇 보고서가 R & D 투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이 투자효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분석이 그저 GNP 대비 비율을 나라별로 비교하고, 효율지표로는 학술지 게재논문수, 특허권 출연건수를 비료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왜 효율이 떨어지는가를 분야별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서는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는데 어떤 장애물을 우리가 넘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새천년, 새로운 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전망(visioning)하는 인식주체들의 성찰성(reflexivity)이 부족함을 지적할 수 있다. OECD가 추진하고, 세계은행이 권고하기 때문에 우리도 지식기반 경제를 해야겠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야 세기전환의 사회적 비전으로 그것을 전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찰성의 부족은 바로 두 번째 문제점인 단기적이고 근시안적 전략으로서 지식기반사회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많은 보고서들이 지식기반국가, 지식기반사회를 효율성, 부가가치생산, 조직유연성 등 새로운 투자대상이 되는 신산업 전략이나 조직의 경영전략이라는 미시적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식기반 국가를 지식주도 경제 (knowledge-driven economy)라는 틀로 한정하고 다시 그것을 한 기업이나 하나의 산업분야가 채택할 전략으로 이해해서는 21세기 한국사회, 한국경제의 비전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산업경제연구원과 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들이 이 점에서 공통적이고, <<지식혁명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매일경제가 99년에 제출한 <<두뇌강국보고서>>가 이 점에서는 가장 거시적 전망에서 지식기반국가를 하나의 국가비전으로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지식경제 6대 과제는 1) 부채 중심의 구조조정에서 탈피해 지식 경쟁력을 기준으로 구조조정, 2) 국가고시와 집단공채제도를 폐지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인다, 3) 필요인력 수요공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평생교육 시스템을 추진할 주체로 교육부와 노동부를 통합한 학습고용부를 신설한다, 4) 세계적 수준의 산업집합체를 육성한다, 5) 선진국과 지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해외지식 유치 노력을 경주한다, 6) 비리적발 위주의 감사원 기능을 대안제시형으로 바꾼다 등 여섯가지다. 이 중 몇가지는 대단히 참신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보고서의 전반에 걸쳐 역시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고 인력을 육성해야 한국경제가 생존할 수 있다는 기업중심의 사고, 성장 중심의 전망에 기초해 있다. 시민사회, 국가, 시장 세 부문에서 시민사회와 국가가 모두 시장에 기여하라는 식의 전망으로는 사회전체의 미래를 조망하는 시야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국가와 시민사회를 포획하는 사회를 우리의 21세기 그림으로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기반국가를 만드는데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지식주도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데 집중돼 있다.
셋째, 이 보고서들은 지식기반사회, 지식경제, 지식경영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개념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식기반국가라는 큰 국민국가, 민족국가의 비전을 구상하면서 경영학의 한 패러다임으로 사용돼 온 지식경영의 개념들을 마구잡이로 동원함으로써 기업조직의 전략과 국가의 비전이 같은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다. 물론 OECD와 세계은행이 몇 년전부터 제기해서 개발하고 있는 지식기반 경제는 지식기반 국가 건설의 한 분야로 설정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OECD나 세계은행이 지식기반 경제를 이론적으로 구상하면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정보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로 이행하는 근거를 우리나라의 보고서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있다.
OECD나 세계은행 보고서는 (UN 보고서는 물론이고) 정보사회론이 정보테크놀로지를 사회변화의 중심축에 놓음으로써 기술중심주의 사고의 한계를 드러냈고, 정보와 기술의 사용자, 정보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는 사람의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지식기반경제를 제기한다는 이론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식사회라는 용어는 정보기술을 사회변화의 동인(drivers)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정보기술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가능성과 지식과 통합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개념이다 (UN commission on Science and
Technology for Development, 1998).
지식경영이라는 경영학의 이론적 전략이 지식기반사회 개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루는 범위와 수준이 전연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 때문에 몇몇 보고서들이 기업조직이 도입할 지식경영 전략을 국가기구나 사회전반에 생산성 고도화 전략으로 제안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 또 한가지 우리나라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다수 보고서들이 Information technology (IT)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TC)라는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 역시 정보사회에 대한 인식, 지식기반사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기술중심주의 틀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 하나를 탈락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 정보를 나누는 사람이 누락되고 기술이 사고의 중심에 서있는 데서 오는 인식의 왜곡이라는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정보기술이 지식을 창출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보기술은 지식의 창조와 유통을 촉진시키는 도구이다. 특히 정보기술이 지니는 상호작용성 (interactivity)이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간의 상호작용,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크게 향상시켰고, 이것이 지식생산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데,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관심에서 누락돼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보고서 목차구성에서 이러한 관심사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넷째, 위에서 살펴본 우리나라 보고서들이 지식기반국가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산업전략의 수준에서 인식했기 때문에, 지식기반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도, 국가간 계층간 지역간 지식불균등 문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발전주의 전략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세계은행 보고서조차 가난한 계층과 가난한 나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지식불균등 분배 문제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지식과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참여와 배분의 문제는 관심 바깥의 명제인 것이다.
지식기반국가와 지식기반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산업진흥에 맞췄다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정보통신 정책연구원 발표문 제 1주제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개혁"에는 이러한 인식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발제문은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개혁 방향을 1) 지식기반의 업무혁신 (정책수립 및 집행, 민원행정), 2) 지식인프라와 제도의 정비, 3) 지식기반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조직개편 등 세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 정부개혁과제는 지식기반 국가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인데, 지식기반 원스톱 민원행정, 국가지식 관리시스템, 공무원의 신지식인화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식기반국가를 준비하기 이해 정부행정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보다나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을 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정책전략들이 틀린 것도 아니고, 지식경제 기반구축을 위해 중요한 제안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틀이 산업진흥에만 관심이 있지, 한국사회 구성원 개개인과 공동체들이 어떻게 지식기반 사회에 참여하고 그 열매를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 지식기반 국가 건설을 위한 국내 보고서의 문제들은 곧 21세기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국가비전으로 그것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무엇을 성찰해야하는가를 거꾸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문화론의 전망에서 본 지식기반 사회의 비전
문화론 연구(Cultural Studies Perspective)는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사회이론을 구성하는 이론적 노력이기 때문에 문화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문화에 대한 연구 (studies of culture)와 구분된다. 영국에서 시작된 문화론연구는 전세계적으로 독립된 연구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여러 대학에 대학원과 학부 수준에서 학위를 수요하고 연구하는 학과와 프로그램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식기반국가의 비전을 구성하는 이론적 틀로서 문화론적 연구를 채택하고자 한다. 문화론 연구는 주류사회과학의 기능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 사고와 단절하면서 생활세계 안에서 행위자들에 의한 의미와 의미구성과정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여기에 비판이론으로부터 도출된 지배와 종속의 사회적 관계라는 개념을 결합시키려는 이론적 노력이다. 따라서 문화론 연구는 사회적 행위자로서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력관계, 그것의 불평등한 구조가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해서도 동시에 관심을 가진다.
지식기반국가에 관한 보고서들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생산요소로서, 조직의 효율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경영전략으로서 지식을 파악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런 지적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즉각적인 부가가치나 경영전략의 측면에서만 지식과 더 폭넓은 의미를 지닌 문화를 봐서는 오히려 그런 전략적 효용성 조차 놓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론 연구가 지식기반국가의 이론적 전망을 위해 시사하는 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선 무엇보다 문화와 지식, 그리고 창조성의 개념을 문화론적 연구의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문화론 연구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윌리암즈는 그동안 사회이론들이 인간의 사회관계를 정치(결정의 체계)와 경제 (유지의 체계)의 두가지 영역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배움과 커뮤니케이션의 체계'와 '삶의 생성과 성장에 기초한 관계의 복합체계'를 포함한 사회이론을 구성하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현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술과 배움이 이차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삶이 있고 그 다음에 삶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식으로 (Williams, 1966, 19쪽).
사회과정을 단선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윌리엄스는 의식, 문화,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는 구성적 과정, 즉 존재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따라서 문화론의 전망에서 보면 문화는 흔히 예술이나 가치체계, 지식, 종교 등 제도화된 유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인식과 지식을 서로 배우고 공유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키고 또 그것을 통해 사회질서를 형성해 가는 사회구성 과정이다. 이러한 이론적 전망은 바로 문화정책이 기존의 제도화된 문화를 보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고 자발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문화를 지원하는 작업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문화정책의 키워드가 '진흥'과 '향유'에서 형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문명과 개념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문화는 '문명화된' (civilized) '교양있는' (cultivated) 어떤 것을 의미하거나, 서구 계몽주의 역사가들이 파악한 문명 (단수로서 civilization이었고 그것은 곧 보편적 역사를 의미했다)의 의미로 쓰였다. 헤르더(Herder)가 문화를 "인간의 자기발현"이란 의미로 사용하면서 복수로서 '문화들' (cultures)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비로소 다른 문화가 있을 수 있고 한 국민국가 안에서 지구상에서 여러 개의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한 국민국가 단위에서 계층과 집단별로 별개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서구문명의 보편성 주장이 제국주의적인 것이고 오히려 지구상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식기반국가 앞에는 창조적이란 형용사가 붙는다.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창조하다(create)는 동사와 창조(creation)이란 명사는 모두 만들다 생산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reare 에서 나왔다. 17세기까지는 주로 신에 의한 세계의 창조라는 뜻을 중심으로 사용되다, 18세기에 이르러 예술과 사상이라는 말과 결합하면서 인간의 작업을 서술하는 의미를 획득한다. 이때부터 창조성(creativity)은 인간의 능력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말이 된다. 이렇게 해서 창조한다, 창조적이다라는 용어는 독창적이고(originality) 혁신적(innovation)인 인간의 활동과 결과물을 지칭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윌리암즈는 현대예술에서 창조성과 관련하여 대단히 재미있는 딜레마를 제시한다. 현대예술에서 많은 예술작품들이 창조적인 글쓰기, 창조적 예술이라 불리는데 사실상 모방적이고 상투적인 작업들인 경우가 있다. 소위 상업예술이라 불리는 광고예술, 카피라이트처럼 모방적이고 상투적인 문자와 영상언어를 통한 작업을 창조적 예술(creative art)라 이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창조적 행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를 부여한다. 많은 상업예술이 모방적이고 상투적인 대신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기 때문이다. 지식생산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딜레마를 마찬가지로 만난다. 소수의 독창적인 지적 작업과 그것을 모방하는 수많은 모작들. 이것을 끊임없는 혁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모방의 축적이라 볼 것인가. 창조와 모방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상상력이다. 상상은 꿈꾸기이고 환상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어진 전망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내다보는 행위이다.
정리하면 창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식은 그것이 인간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무엇인가 독창적이라는 점이고 혁신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문화론적 전망은 여기에서 창조성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특정의 미학적 체계에 의해 선별되거나 평가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배움과 지혜의 축적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형성적 교육 (formative education)의 철학적 기반
지식기반 사회에서 교육이 핵심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교육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학교 교육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문제가 있다. 초중등학교 개혁, 대학개혁 등 학교교육의 개혁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학생들이 성취하는 교육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배운다는 일을 흔히 교과학습으로 축소해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교육개혁을 논의할 때 교육제도나 커리큘럼, 시험제도의 개혁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배움의 과정을 학교교육 안으로 좁혀 놓으면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의 변화를 제대로 전망할 수 없다. 사회적 수준에서도 교육은 이미 평생교육으로 전환되었다. 포드자동차가 1984년에 노동자 교육에 2백만 달러를 썼는데, 94년에는 4억달러를 지출했다는 변화에서 보듯 바로 산업현장이 교육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아동부터 대학생들까지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일과 학교 바깥에서 배우는 일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기 아동들의 심성이 형성되는 과정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어떤 지식과 가치를 가르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기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요인들이 개입돼 있다. 오히려 청소년들은 가족과 친척들과 관계, 친구관계, 텔레비전과 스포츠, 책과 잡지와 컴퓨터 등에 의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들의 소비생활, 그들이 부모들과 함께 경험하는 경제활동과 소비의 세계는 사물과 인간의 관계, 삶의 스타일, 부와 가난에 대한 관념 등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담당 교사와 사회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어떤 이론과 가치관도 이보다 직접적일 수 없다. 이런 소비활동의 통해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을 학교교육의 틀 안에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학습(learning)에 대한 새로운 사고전환이 필요해진다. 지식기반사회에서 학습, 특히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이 중요해 진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보고서에서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에서 모든 종류의 학습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정보를 습득하고 또 그것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의 확장이라는 훈련과 정보습득을 중시하는 학교중심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론이 제안하는 배움의 과정으로서 학습이란 사실과 정보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훈련 뿐만 아니라 어떻게 배우는지를 배우는 (learning how to learn) 과정인 것이다. 이것을 여기서는 형성적 학습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유용한 학습개념을 제시한 사람이 <<제5 학문>>(The Fifth Discipline Fieldbook)의 저자 Peter Senge이다. 그가 제시하는 학습의 개념은 학교와 관계없이 바로 일상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학습과정 전체를 가리킨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과정으로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기존의 교육과정 안에서 학습이 개인적 수준에서 어떻게 잘 가르치고 또 배우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는 집합적 학습을 중요시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준의 공동체 (기업이든 단체든 어떤 형태의 집단인가에 관계없이)에서 구성원들이 비전을 공유하는 훈련이 학습의 핵심임을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사와 교실의 개념도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교사가 교실에서 문을 닫으면 그곳은 하나의 왕국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학생과 교사의 간계를 어떻게 만들고 하는 모든 결정이 교사에 의해 이뤄졌다. 학습 결과에 대한 평가 역시 개별 학생의 성취를 평가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개별 교사, 개별 학생, 개별 교실, 개별 학교가 중심이 되는 교육환경에서는 혁신이 제대로 일어날 수 없다. 많은 경우 혁신은 이들 개별 교사와 교실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안하는 형성적 학습이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교양교육 (Bildung; core curriculum)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학의 교과과정에서 오래 전부터 도입돼 실행해 온 것이다. 첫째, 형성적 학습은 교과과정이란 틀에서 벗어나 모든 배움이 일어나는 인간활동 전체에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그 동안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사회에서 학습은 사실이나 숙련기술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지식기반사회에서 학습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배우는가를 배우는 과정이 된다. 산업사회에서 교육은 평생학습량의 80%를 학교에서 가르쳤다면 지식기반사회에서는 2%에 불과하게 된다는 Senge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형성적 학습이란 삶의 전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형성적 학습에서 학습자들은 정보를 기억하고 습득하기 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는 훈련을 한다.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우기 보다는 정보를 체계적 지식으로 바꾸는 능력을 훈련한다.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생각과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안하는 훈련을 의미한다.
셋째, 형성적 학습에서 학교의 역할은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지식이 개인의 마음이나, 교과서나, 학술잡지나 도서관이나 실험실에 있는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을 연결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특정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네트워크를 탐색함으로써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게 된다. 교육개혁의 내용도 바로 이런 시야에서 이뤄질 때 지식기반사회를 향한 개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집합적 수준에서의 지식생산
정보가 지적 작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성되면 지식이 된다. 지식은 크게 사실지( know-what)와 방법지로 나눠진다. 방법지 (know-how)는 사실지를 실제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방법지는 많은 경우 사실지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지식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사실지는 개인의 머리 속에 기억의 형태로 저장돼 있지만, 방법지는 그것이 정보와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개인의 머리 속에 있기 보다는 여러 사람의 협업을 통해 드러난다. 노나카는 이를 지식창조의 나선 (knowledge creation spiral, The concept of ba building a foundation for knowledge creation, 1998, 40,3. )이라 부른다.
협업적 지식생산의 사례로 여기서는 지식기반 산업의 선두분야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어떻게 지식생산이 개인적 수준이 아니라 집합적 수준에서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지식기반의 문화적 토대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조직의 역할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정보를 처리하고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었다. 지식기반 기업은 지식을 획득하고 생산하는 핵심기구로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조직의 경우 그것이 대학이든 연구소이든 혹은 기업이든 혁신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혁신은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먼저 지식을 배우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조직구성원들 사이에 그러한 지식을 공유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생명공학과 같은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협력적 지식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서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협력적 지식생산 네트워크를 하나의 사례로 검토하기로 한다. Powell (1998)에 따르면 생명공학 소규모 벤쳐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80년대에는 개별기업이 각자 중요한 연구업적을 이룩했지만, 80년대 후반부터 협력적 지식네트워크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80년대 초까지 첨단지식이라 생각됐던 genentic engineering, monoclonal antibodies, polymerase chain reaction amplification, gene sequencing 등의 기술과 지식이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미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에게 기초적 지식이 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대학, 연구소, 병원, 소규모 생명공학기업, 대규모 약학산업체 등이 협력해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빠르게 개발되는 지식을 습득해야 할뿐만 아니라, 이들 지식이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유전학, 생화학, 세포생물학, 의학, 컴퓨터공학은 물론 물리학과 시과학(optical science)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하나의 연구조직이 단독으로 새로운 혁신을 이뤄낸다는 게 대단히 어려워졌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생명공학분야의 연구소나 벤쳐기업들은 학문간(interdicplinary)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조직간(multi-institutional) 네트워크를 발전시켜야 했다. 연구와 연구자금 모두에서 단일 조직으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그것을 다시 공유함으로써 조직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첨단 생명공학분야에서 어느 조직이나 기업도 한 지붕 아래 모든 숙련기술과 지식을 축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이 그랬고, 생명공학분야에서 혁신과 발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나오는 지식을 흡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병원, 소규모 연구조직과 대규모 제약회사 등은 연구자금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숙련기술과 지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조직간의 협력형태도 다양하게 또 대단히 유동적으로 네트워킹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협력적 지식생산을 위해 네트워킹의 형태의 두 가지 사례를 간략히 보기로 하자. 우선 로스엔젤레스에 본부를 둔 Amgen은 1980년에 설립되어 현재 생명공학 분야의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는 회사다. Amgen이 구축한 연구개발 네트워크는 주로 소규모 생명공학 연구회사로 이뤄져 있다. ARRIS, Envirogen, Glycomex, Guilford, Interneuron, REgeneron, Zynaxis 등이다. 이들 소규모 연구 기업들은 Amgen의 재정지원과 과학기술 지원을 받으면서 분야별 연구의 분업체계를 형성하고, 혁신이 만들어지면 Amgen은 그것을 상품화한다. 이와함께 Amgen은 대학이나 병원들과 몇 개의 핵심기술을 공유하는 기술제휴를 맺고 있다. Sloan-Kettering 병원 (cell growth factor), Ontario 암센터 (knockout mice), Rockefiller 대학 (obesity gene) 등이 그것이다.
Amgen과 달리 캠브리지 지역에 본부를 둔 Biogen은 오히려 덩치를 가볍게 하고 유연한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한 경우이다. 78년 설립이래 종업원이 780명에 불과한데, 대부분의 필요한 자원은 아웃소싱하는 형태를 취했다. 우선 회사 자체가 개발한 기술을 Abbott, Lilly, Pharmacia Upjohn, Merck, Organon TEknika, Schering Plough 등의 회사에게 이양하고, 로열티를 받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힘입어 96년 한 해 로열티 수입이 1억5천만 달러에 달했다. 또 생명공학 회사들이 골머리를 냣는 업무인 연구조직과 계약을 체결하고, 임상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일을 외부회사에 발주하고 다만 내부 전문가가 이들 외주기업들의 업무를 조정하는 업무만을 하도록 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인 Chiron은 81년 설립된 후 7500명의 종업원과 9개 자회사를 거느리는 거대기업이다. Novartis사가 주식의 49.9%, Johnson & Johnson사가 4.6%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Chiron이 구축한 협력네트워크는 가장 규모가 크다. 소규모 연구기업과 대학과 연구개발 협력체제를 맺고, 제약회사와 라이센스 협력관계를 맺고, 생명공학 회사나 제약회사, 마케팅회사와 공동투자협약을 맺고 있다. 97년 회사발표에 따르면 eogkrdmf 비롯한 연구기관과 1천 4백건의 비공식적 연구계약을 맺고, 다른 회사들과 64개의 협력계약을 맺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협력네트워크는 결국 생명공학 분야에 관련된 대학, 연구소, 병원, 제약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혁신을 촉진하고 또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Powell에 따르면 제약회사들이 96년 한해에 생명공학 연구기업들에 투자한 자금이 45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제약회사들은 소규모 생명공학 연구회사들과 다양한 형태로 숙련기술과 연구자금과 자원을 공유하고, 자금이나 설비가 없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연구인력을 지원함으로써 혁신의 열매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첨단지식기반 분야인 생명공학의 활동주체인 연구기업과 대학과 병원과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낸 지식협력 네트워크가 강력히 시사하는 점은 중요한 지식과 창조적 혁신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일어나기 보다는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학습의 측면에서 보면 개별 개인 수준에서 학습이 일어난다기 보다는 조직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Powell은 네트워크 메니저란 개념을 제안한다. 흔히 지식경영에서 지식브로커와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시사하듯이 병원이나 제약회사가 소규모 생명공학 연구기업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네트워크가 한 번의 거래나 계약관계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고 이를 네트워크 메니저가 담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생명공학 분야의 활동주체들이 맺고 있는 협력적 네트워크는 지식이나 숙력기술을 획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누가 어떤 기술과 혁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요한 첨단지식을 소유한 활동주체들 간에 협력을 유지하느냐라는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생산이 개인적 수준에서 보다 집합적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보통신정책, 문화정책, 교육정책의 통합적 사고
한국의 커뮤니케이션 정책, 문화정책, 통신정책은 권위주의적 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돼 온 역사적 상흔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의 커뮤니케이션 기반은 그 나라의 민족문화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본틀이 된다. 80년 이후 한국의 방송은 공영중심의 민영방송이었다. 공영은 민족의 창의적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의 수단이었다. 전통문화 조차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거기에 맞춰 취사선택되었다. 이러한 정책결정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참여할 생각조차 내지 못했다. 오히려 민중문화 운동에서 보듯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에 대응해서 대항이념과 대항문화로서 민중문화 운동이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방송을 포함한 문화산업에 대한 논쟁의 대립도 현재까지 민족문화의 창달이냐 아니냐에 있는 게 아니라 국가의 통제로부터 시장의 통제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현재 진행중인 방송개혁도 방송위원회 구성과 권한 등 정치적 독립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민족문화를 창달하는 공간으로서 방송에 대한 인식과 논의는 뒷전에 물러나 있다.
그 동안 우리의 정보통신정책은 기본적으로 한국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기 위한 시장형성정책, 더 구체적으로는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진흥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여전히 그렇다. 국가가 시장형성에 개입해서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정보통신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의 뒤에는 우리의 정보통신정책에서 공익 (public interests)의 개념, 공익에 관한 정책이 2차적일 수 밖에 없었던 한계가 숨겨져 있었다. 여기서 공익개념이 부족하거나 부재했다는 말은 사용자에 대한 무관심, 접근과 사용에 있어서 불평등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만 들면, 좀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지만, 지역정보화 사업은 정보통신의 전국적 기반을 위해 10년 이상 상당한 정도의 예산이 투자되었지만,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그 다음날로 사라져버릴 현실에 놓여있다. 물류유통망, 지역경제의 통신망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틀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각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지역사업자들이 정보통신 기반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면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역 내 주민들도 참여하리라는 가정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달리 미국이나 캐나다의 지역정보화 사업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틀에서 접근하지 않고 주민참여를 활성화시키는 보편적 서비스의 틀에서 접근했다. 이 결과 90년 초부터 치자면 2천개가 넘는 지역네트워크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시장적인 정책을 펴는 미국이 어떻게 자발적 참여의 공간을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한가지 지식기반 사회로 전환을 위한 정보통신정책의 방향에서 중요한 점은 정보테크놀로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테크놀로지의 소프트웨어 측면과 정보테크놀로지 사용과정이 사용자의 상호작용 (interactivity)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창조적 지식기반 사회 형성에서 정보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정보사회이든 지식기반 사회이든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은 누구나가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몇 가지 기본 전제에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테크놀로지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인프라보다는 상호작용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정보테크놀로지가 주도하고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테크놀로지의 상호작용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문자언어, 소리 그림을 다양한 형태로 저장하고 전달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화선, 광섬유, 위성통신, 무선기기와 같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전달된다. 그런데 이 파이프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파이프 양쪽에 서서 내용을 만들고 받아보고 반응하는 사용자들은 덜 중요시되었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성에 의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상호작용이 구현되는 정보통신망에서 학습과정이 변화하게 된다. 무엇보다 학습과정이 비공식적이고, 개별화된 학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때 비공식적이란 전통적인 공교육과정이 아니라 정보통신 사용자들이 정보와 지식을 직접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교사의 개념도 변화한다. 원격교육을 통해 한정된 수의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알 수 없는 수의 학생을 상대로 하게 된다. 학생들 역시 "언제나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는 새로운 평생교육의 개념이 일상화된다. 이런 변화를 "주문형 학습"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서는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아는 것이 무엇을 아는가 보다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와같은 주문형 학습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네트워크화된 클래스, 전자도서관, 여러 형태의 지식/정보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상호작용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은 가상공동체가 마치 무슨 환상적이고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호들갑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가상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창조적 작업을 하는 보통사람들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망은 자발적으로 의견을 제출하고 자료를 올리는 지식축적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보통신정책이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의 핵심부문이 되는데 있어서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방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이러한 정책적 한계가 상당한 기간 질곡으로 작용할 것이라 예상된다. 많은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단기적인 효과와 미시적인 산업진흥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한 문화와 지식이 기반이 되는 경제, 그러한 경제를 가능케 하는 창조성은 진작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것은 앞서의 논의가 보여주듯이 정보통신정책을 교육정책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는 문화정책과 교육정책, 정보통신 정책이 어떻게 얽혀있는가를 간략히 살펴보자. 한국의 지식기반 사회의 비전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가장 먼저 21세기 한국사회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떠한 지식기반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문화는 정신이고 민족을 구성하는 핵심이기 때문이고,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있고, 가치가 있고 꿈이 있고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다.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구적 수준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문화가 단일문화로 돼서는 안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맥도날드를 먹고, 록뮤직을 듣고, 허리우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그러한 문화를 보러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을 만나기 이해 로마에 가고, 프라하에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바로 세계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와 창조성을 위한 엔진이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국민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국가간 거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정보테크놀로지는 이미 세계 도시를 연결해서 거대한 규모의 금융자본이동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통합하고 있다. 뉴욕과 파리와 동경과 서울에 사는 국제화된 상류층 특정집단은 그들이 향유하는 의식주 모든 면에서 세계화되었고, 그들의 행동양식, 관심사, 문화취향을 공유하고 있다. 동경과 홍콩에 사는 이들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동경과 홍콩의 대다수 시민들 보다 오히려 뉴욕과 파리의 유사집단에 더 가깝다. 이러한 문화의 동질화는 상류계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산되고 있다. 정보통신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문화적 확산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는 어느 도시 보다 국제화되어 진짜 인도음식, 진짜 베트남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가 서방 선진국의 대도시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도국에서 저개발국 대도시로 올수록 문화적 교환과 교류의 다양성은 한 쪽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방의 문물이 일방적으로 흘러들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교류의 불균등과 불평등은 구조화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서구 소비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만큼 다른 사회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상업적 미디어를 통해서는 이러한 문화적 접촉의 기회를 가지기 어렵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사람의 삶을 관광의 대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나름대로 축적된 그들의 삶과 경험을 보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그리고 남미사람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물으면 서방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데모와 고도성장과 전쟁위협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아닌 것이다. 21세기 지식기반 국가라는 비전은 지구화하는 세계 안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 위에 세워져야 한다.
디지털로 통합되는 영상정보테크놀로지에서 테크놀로지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길 내용이 핵심이다. 이것은 당연히 한국사람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담은 내용이기 마련이다. '한국적'이란 걸 우리만의 고유한 어떤 것으로 정의하거나 도식화된 전통문화로 생각하기 보다는 현재 한국인들의 삶과 정서가 담겨 있는 내용으로 보면 된다. 문화론적 전망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바로 제도화된 예술이나 특별히 선택된 전통문화가 한국적이라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고 있는 삶의 문화인 것이다. 민족문화의 창조를 위한 문화정책이란 바로 이러한 삶의 문화를 예술로 재창조하고 미디어프로그램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적 컨텐트의 지원정책이라는 과제를 끌어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순수하게 '고유한,' '전통적인,' 문화의 내용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고유한 전통은 특정시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허구이거나 조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유함과 전통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컨텐트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프랑스는 세계무역기구 출범이후 프랑스 영상물 지원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외국영화를 수입해서 생기는 이익의 15%를 프랑스 영상물 제작기금에 투입한다. 무엇을 프랑스적인 것으로 규정하는가. 규정은 이렇다. 프랑스 사람이 제작진에 70%이상일 것, 전체 제작비의 70%가 프랑스땅에 투입하면 '프랑스적' 영상물로 인정된다. 이러한 규정은 문화의 내용을 가지고 프랑스적인 것 규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긍할 수 있는 규정이다.
한국적 컨텐트 지원정책을 위한 전략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본다. 우선 지식기반사회나 정보테크놀로지라고 하면 모두 첨단 기술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회전체에서 컨텐트 생산자가 어디에 있는가를 찬찬히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컨텐트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문화적 풍토와 지원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출판산업과 신문산업은 가장 고전적이지만 핵심적 컨텐트 생산자이다. 특히 전통적 글쓰기나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창조적 인력과 시디롬제작자, 웹디자이너 인터넷서비스 제공자들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둘째, 정보고속도로 기반구축 사업을 컨텐트 창조기획과 연관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기존에 축적된 문화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는 컨텐트 창조작업일 수 있다.
끝으로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어떤 지식을 우리가 만들어낼 것인가와 관련해서 정보통신, 교육, 문화정책 영역이 교차하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말인 한글과 컴퓨터와 한국문화는 이들 세가지 정책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탐색기능을 구축하는데 한글학자와 컴퓨터 과학자와 민족언어로서 국어학자, 문화연구자의 관심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98년 한글 프로그램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기로 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된 사례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언어테크놀로지 (language technology)라는 새로운 분야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필자가 만든 용어가 아니고 핀란드의 <<The National strategy for education, training and research in the information society>>라는 보고서에서 제시된 용어이다).
언어테크놀로지라는 문제영역은 바로 세가지 정책영역이 교차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첨단 기술과 지식을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해서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고 오히려 얼마만큼 빨리 선진기술과 지식을 따라잡느냐가 우리에게 중요한 관건이 된다. 영어를 제2의 공영어로 하자는 발상도 이런 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언어테크놀로지라는 문제영역에서 볼 때, 영어공영론은 우리가 앞으로 개발할 정보, 지식테크놀로지를 한국어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영어로 해야한다는 주장이고 그게 오히려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효율적이고, 시장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근대의 형성과 국민국가의 역사적 축적을 쉽사리 실용적 틀에서만 사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지배에 대항하는 틀로서 국민국가에 대해 안이하게 사고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홍콩 등 도시규모의 국가나 지역이 영어를 공영어로 사용하는 것과 7천만정도의 규모를 가진 국민국가가 제2의 공영어를 택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이고, 국민국가 형성의 핵심기제로서 공영어, 표준어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서구자본주의적 제도와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사회제도를 바꾸고, 우리나름대로 근대를 성취하는 일이 영어를 공영어로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어떤 실증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인도가 영어를 덜 사용해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인가.
따라서 지식기반 사회에서 한국어와 한국적 컨텐트, 한국문화는 오히려 필수적인 자산이 된다. 지구화시대에 귀중한 자산이 문화적 다양성이라면 우리가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한 문화적 차이는 지구수준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고, 동시에 한국의 국민경제 기반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지구화가 전지구의 서구화가 아니라 지역적 다양성의 지구적 발현이라면 근대세계가 오랜 역사적 투쟁을 통해 축적한 언어적 다양성을 보존돼야 할 뿐만 아니라, 진흥돼야할 문화적 다양성의 기반인 것이다. 정보통신정책, 교육정책, 문화정책을 통합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이처럼 한글언어 테크놀로지 분야와 같은 문제영역을 설정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일인 것이다.
마무리
이상에서 우리는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으로서 형성적 학습과 교육, 협력적 지식생산 네트워크, 통합적 정책의 입안과 실천을 검토해 보았다. 그동안 제안된 지식기반 경제, 지식기반 국가의 구축에 관한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밝혀졌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한국사회 현실의 구체적 분석과 성찰에 기반한 전망이었다. 지식기반 사회에 대해 여러 연구보고서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연구개발비의 투자효율이 낮은지, 어디에서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지식기반 사회에 대한 전망 역시 단기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어떻게 낼 것인가라는 미시적인 관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국민경제, 누구를 위한 지식기반에 대한 성찰은 대단히 미흡했다. OECD 뿐만 아니라 카나다, 호주, 핀란드 등 다른 나라의 경우 대부분 지식기반 경제나 지식기반 사회비전을 제시하면서 삶의 질 (quality of life)이나 공공적 이해(public interests), 불평등 극복 등의 키워드를 같이 성찰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 근대적 시장경제의 외양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것이 사실이나 압축적이었기 때문에 기본과 기초가 부실한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새 천년의 미래전망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서 지식을 생산하는 사회이다. 지식창조의 과정, 배움의 과정, 지식생산 기반이 인간중심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결코 지식기반 사회는 제대로 구축될 수없다. 대량생산 제조업이 기술과 지식을 빌려와 열심히 하면 가능한 산업이었지만, 지식기반 경제와 사회는 사람을 중심으로 협력을 통해 장기적으로 사회운영의 원리를 재편해야함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속도를 통해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변화에 익숙한 문화를 고치지 않으면 아마 지식기반 사회의 기본과 기초는 다져지지 않을 것이다.